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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기열전(史記列傳)’⑤

유협열전

말에는 믿음이 있었고 행동은 과감했다 평생 재능을 자랑하지 않았고, 보답도 바라지 않았다

  •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유협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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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협열전

2002년 11월21일 SBS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역을 맡은 탈런트 안재모 등 출연진이 김두한 천도재에서 헌화하고 있다.

사마천은 유협에 대해 명증하게 정의했다.

“패거리나 세력이 강한 종족이 서로 의지하고,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부리며, 문벌 세력이 외롭고 약한 사람을 해치고 억누르며,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따위를 유협의 무리는 수치로 여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직폭력배와 협객은 사마천의 이러한 분류로 간단하게 구분된다.

진정한 유협은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세상 사람들이 유협인 주가와 곽해 등을 세력이 강한 종족이나 문벌 세력과 같은 부류로 보고 비웃는 것은 슬픈 일이다. 주가는 노나라 협객으로 당대 유명인사다. 그가 구해준 인물은 호걸만 수백명, 일반 백성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지지기반으로 명예나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군사를 만들어 정부를 전복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조용히 숨어서 정의를 실천했다. 사마천은 주가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는 평생 자기 재능을 자랑하지 않았고,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전에 자신이 은혜를 베푼 사람을 다시 만날게 될까 두려워했다. 남의 어려움을 도울 때에는 우선 가난하고 신분이 천한 사람부터 했다. 그의 집에는 남아도는 재산이 없었고, 옷은 빛깔이 바랜 것들뿐이었고, 두 가지 이상의 반찬을 먹지 않았고, 타고 다니는 것은 소달구지가 고작이었다.”



이렇게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도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해 기어이 구해주었고, 자신의 일보다 먼저 다른 사람의 위급함을 생각했으니 우리가 조폭 영화에서 보는 인물들과는 사뭇 다르다. 유협의 특징 중에 가장 두드러진 점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이중적인 의미로 파악할 수 있다. 하나는 국가의 법집행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련된 인성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구제행동을 할 때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 사마천의 유협들이 그렇게 행동했다. 사마천은 이들이 어떻게 유협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임꺽정처럼 힘이 장사인지 일지매처럼 신출귀몰한지 그러한 활극적인 요소가 없다. 다만 그가 한 결과만을 담담히 기록한다.

주가의 행동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일찍이 몰래 계포 장군을 위험 속에서 구해준 적이 있었다. 계포는 존귀한 신분이 된 뒤에 그를 찾았지만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함곡관 동쪽 지역 사람치고 목을 늘이고 그와 사귀기를 원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주가의 뒤를 잇는 극맹과 왕맹 역시 협객으로 이름을 날렸다. 사마천이 유협열전에서 가장 길게 다룬 인물은 바로 곽해다. 곽해의 아버지도 협객으로 그는 효문제 시대에 처형됐다. 흥미로운 것은 사마천이 인정한 협객의 대표적인 인물인 곽해 역시 인생 초반에는 건달 혹은 ‘주먹’으로 살았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엔 심성이 잔인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살인을 서슴지 않았으며, 법을 어기고 강도질을 하기도 한다. 도굴을 해서 재산을 모으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몸을 던져 친구의 원수도 갚아주고, 여러 번에 걸쳐 망명한 사람들을 숨겨주었다.

‘주먹’에서 ‘협객’이 된 곽해의 겸손

이러한 그가 나이를 먹으면서 협객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자기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에게는 덕으로 갚았고, 남에게는 큰 은혜를 베풀었으며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보답하기를 바라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의협심을 실천하는 것만은 더욱 즐겨했으며, 사람의 목숨을 건져주고도 그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

사마천은 말했다. “나는 곽해를 본 적이 있는데, 그의 얼굴 모습은 보통 사람보다 형편없었고, 말솜씨도 본받을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천하에서 현명한 자나 못난 자, 아는 자나 모르는 자나 정말 그의 명성을 사모했으며, 협객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모두 그의 이름을 말한다. 속담에도 ‘사람이 아름다운 명예로 얼굴을 삼으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라고 했다. 아, 정말 애석하다.” 사마천이 이처럼 애석해했던 이유는 곽해 역시 말년에 일족이 몰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곽해의 탁월한 점은 겸손과 공정성에 있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곽해의 조카가 삼촌의 위세를 믿고선 술을 마시다가 상대방의 명예를 무시하는 무례한 행동을 했다. 화가 난 상대방이 곽해의 조카를 죽이고 달아났다. 곽해는 이 이야기를 듣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자 화가 난 곽해의 누나는 길거리에 아들의 시신을 놓고서는 동생인 곽해가 원수를 갚아주지 않음을 원망하면서 장사도 지내지 않았다.

협객이 조카의 원수도 갚아주지 않는다고 떼를 쓰는 것이다. 곽해는 은밀히 범인을 알아냈다. 범인은 결국 스스로 곽해를 찾아와 자초지종을 다 말하고 처분을 기다렸다.

요즘으로 치자면 전국 조직폭력배 최고 보스에게 찾아가는 심경이었을 것이다. 곽해는 조용히 그의 말을 다 듣고는 이렇게 말하고 조카의 시신을 수습했다. “당신이 그를 죽인 건 진실로 당연하오. 내 조카가 나빴소.”

또한 자신에게 무례하게 구는 동네 양아치에게 몰래 선행을 베풀어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찾아온 그 사내가 울면서 용서를 빌기도 한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선비가 글로써 자신의 이름을 빛내는 것과 같다. 특히 곽해가 빛나는 대목은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낙양 사람들을 중재하고 나서 보여준 모습이었다. 곽해는 그 고을 안에 명망가들이 화해하려다가 결국 실패한 일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나서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낙양의 여러 인사가 중재를 나섰으나 당신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들었소. 지금 다행히 이 곽해의 말을 들었소만, 다른 고을 사람인 내가 어찌 이 고을에 계신 어진 분들의 권위를 빼앗을 수 있겠소. 여러분은 당분간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하시오. 내가 떠난 뒤에 낙양의 호걸들이 중재에 나서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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