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호

反쿠팡 깃발 아래 네이버·카카오·신세계 모였다

[유통 인사이드] 불타오르는 유통 전쟁…지금은 ‘동맹의 시대’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1-03-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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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랫폼·물류 시너지 네이버+CJ대한통운

    • 네이버, 신세계와도 협업 가능성

    • 11번가, 바로고·우체국·아마존 손잡아

    • 카카오, 이베이코리아 삼키면 판 급변

    • 전통 강자 현대百·이마트도 반격 준비

    쿠팡이 이커머스 시장에서 앞서가는 가운데, 
네이버와 카카오, 신세계, 11번가, 현대백화점 
등이 반(反)쿠팡 전선을 펼치는 모양새다.

    쿠팡이 이커머스 시장에서 앞서가는 가운데, 네이버와 카카오, 신세계, 11번가, 현대백화점 등이 반(反)쿠팡 전선을 펼치는 모양새다.

    “이미 시장이 쿠팡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는데 더 어려워지겠습니다. 물론 아직 끝은 아닙니다.” 

    지난 2월 미국 뉴욕 증시 상장을 공식화한 쿠팡을 두고 한 유통 대기업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쿠팡은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대규모 적자를 감내해가며 전에 없던 서비스를 만들었다. 물건을 주문하면 다음 날 문 앞으로 배송해 주는 ‘로켓배송’이다. 이 서비스는 국내 이커머스 생태계를 바꿔놨다. 로켓배송이 등장한 이후 너도나도 배송 속도 올리기에 나서면서 경쟁이 격화했다. 

    쿠팡의 성장이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많았다. 매년 엄청난 규모의 적자를 쌓아가면서 어떻게 사업을 지속하겠느냐는 지적이었다. 쿠팡의 특징은 자체 물류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한다는 점이다. 주문한 물건을 다음날 배송해 주기 위해 직접 ‘물류’까지 컨트롤한다는 전략이다. 다른 이커머스 업체의 경우 택배 회사와 계약해 배송을 위탁하는 경우가 많았다. 쿠팡의 이런 전략은 배송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이 문제였다. 실제 쿠팡이 매년 엄청난 매출 성장을 하면서도 적자가 쌓인 것은 물류 시설을 지속해 늘려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켓배송보다 빠른 ‘오늘 도착’?

    경쟁사들은 쿠팡의 돈이 다 떨어지길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쿠팡을 좇아 자체 물류 시스템을 만들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쿠팡 스스로 고꾸라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쿠팡이 미국 증시 상장을 통해 막대한 규모의 돈을 끌어 모을 수 있게 돼 이런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게다가 쿠팡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쿠팡의 자체 물류 시스템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쿠팡은 30개 이상 도시에 100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갖췄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인구의 70%가 쿠팡 물류 센터에서 7마일(11.3km) 이내에 있다는 게 쿠팡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제 정말 쿠팡의 시대가 오게 될까. 그간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는 ‘지배적 사업자’가 없었다. 몇몇 업체가 시장을 꽉 잡게 되면 이후 신생 업체들의 시장 진출이 쉽지 않아지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 경쟁자가 지속해 늘기만 했다. 이에 앞으로 누가 지배적 사업자가 되느냐가 국내 온라인 쇼핑 산업에서 가장 큰 관심사였다. 

    업계에서는 쿠팡의 질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미래를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쿠팡의 경쟁력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경쟁사 역시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각 업체가 일종의 ‘동맹’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이 격화하니 잘 맞는 기업끼리 손을 잡고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가장 주목받는 동맹은 네이버와 CJ대한통운이다. 네이버는 쿠팡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힌다. CJ대한통운의 경우 물류에서는 쿠팡을 앞서는 사업자다. 쿠팡은 미국 증시 상장 신고서에서 ‘쿠팡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물류회사’라고 밝혔다. 첫 번째로 큰 물류회사가 바로 CJ대한통운이다. 두 업체가 손을 잡는 것만으로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네이버는 CJ대한통운과 지난해 10월 3000억 원 규모의 지분 교환을 단행하며 ‘전략적 동맹’을 맺었다. 온라인 쇼핑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 네이버는 그간 자체 물류 서비스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약점이었다. CJ대한통운과 손을 잡으면서 이를 단번에 보완했다. 

    두 업체는 조만간 ‘지정일 배송’과 ‘오늘 도착’ 등을 포함한 배송 서비스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주목받았다. 쿠팡이 미국 증시 상장을 발표한 즈음에 내놓은 계획이다. ‘오늘 도착’ 서비스는 소비자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에서 오전 10시까지 주문하면 당일 오후까지, 오후 2시까지 주문하면 당일 저녁에 배송해 주는 방식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로켓배송보다 더 빠른 서비스가 될 수 있다. 두 업체는 이륜차 배송망을 활용해 배송 방식을 다양화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쉽게 말해 오토바이를 활용해 더 빠르고 효율적인 배송 방식을 찾겠다는 의미다.


    동맹으로 엮인 위협적인 ‘연합군’

    쿠팡 물류센터 전경. [쿠팡 제공]

    쿠팡 물류센터 전경. [쿠팡 제공]

    양사가 협력해 인공지능(AI) 기반 시스템으로 물류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계획도 주목받는다. 물류 시스템은 단순히 물류 창고를 많이 만든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소비자의 주문을 받은 뒤 최대한 빠르게 창고에서 물건을 찾아 택배 상자에 넣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당일배송, 익일배송 등의 서비스를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다. 쿠팡의 경우 이런 시스템 고도화를 위한 투자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는 IT(정보기술) 기술력이 강하다는 점에서 고도화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의 질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네이버는 전통의 유통 강자인 신세계와도 손을 잡았다. 지난 3월 16일 양사는 2500억 원 규모의 지분 교환을 통해 향후 주요 사업에서 전방위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네이버의 또 다른 단점으로 지적돼온 것이 상품 소싱 능력이다. 네이버는 기본적으로 ‘판’을 만들어주는 플랫폼 기업이기 때문에 좋은 상품을 제조사로부터 사들여 판매하는 소싱 경험이 많지 않다. 유통업계 전통 강자인 신세계와 긴밀하게 협력하면 이런 단점을 극복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쿠팡의 특징이 물류 시스템 등을 스스로 만드는 전략이라면, 네이버는 경쟁력 있는 업체들과 손을 잡는 전략을 택한 셈이다. 단순히 협약을 맺은 게 아니라 지분을 교환한 정도로 강하게 동맹을 맺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쿠팡에는 위협이 될 수밖에 없는 ‘연합군’이다. 

    다른 업체들도 파트너를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11번가는 2월 22일 배달 대행업체인 바로고에 25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바로고 지분 7.2%가량을 보유하게 되면서 3대 주주가 됐다. 11번가는 바로고의 근거리 물류망을 활용해 배송 차별화를 꾀한다는 구상이다. 앞서 언급한 CJ대한통운의 이륜차 활용 방안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11번가는 또 지난해 말 우체국과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우체국이 갖추고 있는 전국적인 배송 인프라를 활용해 배송 속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앞서 11번가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과 손을 잡으면서 주목받은 바 있다. 아직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밝히지 않아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지만, 두 업체가 향후 어떤 청사진을 내놓느냐에 따라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아마존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카카오, 발톱 드러내나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판을 바꿀 수 있을 만한 카드는 또 있다. 이베이코리아 매각이다. 이 업체는 G마켓과 옥션, G9을 운영하는 이커머스 기업이다. 미국 이베이 본사는 최근 이베이코리아의 매각을 공식화했다. 

    쿠팡과 네이버 등 신흥 강자에 가려 최근 주목도가 떨어졌지만, 이베이코리아는 국내 이커머스 업체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내실 있는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이베이코리아가 기록한 연간 거래액은 20조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거래액으로만 따지면 쿠팡(20조 원), 네이버 쇼핑(21조 원)과 함께 여전히 선두권에서 경쟁하고 있다. 

    미국 이베이 본사가 내놓은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베이코리아 매출은 1조 3000억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영업이익은 850억 원 정도로 2005년부터 16년 연속 흑자를 냈다. 국내 주요 이커머스 업체 중 유일하게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베이코리아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만한 새 주인을 찾으면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클 수 있다. 최근 진행된 예비입찰에는 롯데, 신세계 등 유통 대기업과 SK텔레콤, 사모펀드 MBK파트너스 등이 참여했다. 

    업계에서는 카카오에도 주목하고 있다. 카카오는 경쟁사인 네이버가 쇼핑 부문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이제 제대로 움직일 때가 됐다는 분석이다. 카카오는 이베이코리아 인수의 유력 후보자로 꼽혔지만 결국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카카오만의 경쟁력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미 플랫폼 기업으로서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만큼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만만치 않은 경쟁자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카카오는 최근 카카오톡의 네 번째 탭으로 ‘카카오 쇼핑’을 신설하며 본격적으로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증시에 상장을 추진하는 이커머스 업체들도 있다. 티몬은 지난 2월 3050억 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히면서 올해 안에 코스닥 시장 상장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대규모 투자 유치를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한 뒤 기업공개를 하겠다는 의미다. 11번가도 상장 추진을 예고한 바 있다. 11번가의 모기업인 SK텔레콤은 지난 2018년 실적을 발표하면서 “5년 내 상장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 업체들이 상장에 성공하면 선두권 업체들도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2~3곳의 업체가 시장을 장악하면 지금과 같은 치열한 경쟁이 잦아들게 되리라는 전망이 많다. 하지만 이처럼 여러 업체가 지속해 자금을 확보할 경우 경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커진다. 

    오프라인 점포의 부활 여부도 관심거리다.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이커머스 시장이 유독 크게 성장했다. 그간 온라인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기는 했지만, 특별한 해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쿠팡을 비롯한 이커머스 업체들의 급성장에 다소 거품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현대百·이마트, 반전 노린다

    최근 오프라인 점포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현대백화점 그룹은 지난 2월 말 서울 여의도에 초대형 백화점 점포인 ‘더현대 서울’을 만들어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단순히 점포를 크게 만든 게 아니라 내부에 인공폭포와 공원을 조성하는 등 오프라인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개점 초반 이슈 몰이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마트의 경우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SK와이번스 프로야구단을 인수하며 이목을 모았다. 정 부회장은 테마파크로 만들려던 인천 청라지구에 돔구장을 대신 건립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특히 이곳에 스타벅스와 노브랜드 버거 등을 넣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한 마디로 프로야구단 구장이 있는 ‘종합 쇼핑몰’을 구상하는 셈이다. 오프라인 업체들이 경쟁력을 강화해 반격에 나서면서 살길을 찾는 모양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유통시장이 온라인으로 쏠리다가 이제는 온·오프 점포를 함께 운영해 시너지를 내는 전략이 더욱 각광받고 있다”면서 “아마존이 오프라인 점포에 공을 들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온·오프를 막론하고 국내 유통업계 주도권 경쟁은 여전히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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