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호

큰 당근, 작은 당근, 흰 당근… 맛은 어떻게 다를까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2-06-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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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근은 녹황색 채소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gettyimage]

    당근은 녹황색 채소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gettyimage]

    나는 어릴 때부터 뭐든 잘 먹는 아이였다. 나보다 5년이나 먼저 태어난 오빠가 마른 멸치는 눈이 무섭게 생겼다며 피해 다닐 때 나는 된장찌개 속 퉁퉁 불은 멸치를 자근자근 씹어 먹었단다. 아빠의 젓가락에 잡혀 있는 활어 회, 쇠간과 천엽 같은 것을 호기롭게 먼저 받아먹은 것도 나였다. 그러나 문턱 없이 드넓은 나의 탐식 영역에 도무지 들일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익은 당근이다. 아무리 탐하려 해도 익은 당근에서 나는 그 향이 너무 불편하다.

    순하고 부드러운 ‘손가락 당근’

    손가락당근은 크기가 손가락 만해 ‘미니당근’으로도 불린다. [gettyimage]

    손가락당근은 크기가 손가락 만해 ‘미니당근’으로도 불린다. [gettyimage]

    당근은 1년 내내 슈퍼마켓 진열대에 쌓여 있다. 나만 빼고 사람들이 이렇게 당근을 자주, 많이 먹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하긴 김밥, 볶음밥, 유부초밥, 갈비찜, 닭볶음탕, 잡채, 냉채, 무침, 카레, 미트소스, 수프, 스튜 같은 끼니 요리에도 많이 쓰이며 쿠키, 케이크, 주스에도 필요한 재료가 당근이다. 최근에는 당근 라페(carottes râpées 유럽식 당근 채 샐러드)의 인기로 당근을 찾는 이들이 더 많이 늘어난 것 같다. 당근은 저장이 수월해 우리가 쉽게, 싸게 구해먹을 수 있는 채소이다. 누구나 알 듯 녹황색 채소의 대표 주자로 우리 몸에 이로운 영양 성분과 섬유소를 듬뿍 지녔으며, 손질과 조리가 쉽고, 열량은 낮다.
    당근의 맛은 확실히 달다. 매운 맛은 아예 없고, 쓴맛도 도드라지지 않을 만큼 딱 좋다. 조금 이르게, 작은 크기일 때 수확한 당근은 여물기도 덜하여 아삭한 맛이 아주 좋고 물기도 촉촉하다. 완숙한 당근에서는, 내가 불편해하는 특유의 흙내음도 덜 풍긴다.

    시장에 나오는 햇당근 중 하늘거리는 줄기와 잎사귀가 붙은 것이 간혹 있다. 가늘고 연해 보이는 연두색의 당근 줄기와 잎은 싱그러운 샐러드 재료로 알맞게 생겼다. 그런데 부드러워 보이지만 질기고, 순해 보이지만 쓰다. 길게 자란 줄기 끄트머리의 아주 여린 잎 정도면 모를까 날 것으로 먹기엔 다소 버거운 편이다. 혹 다른 허브나 향이 강한 채소와 섞어 페스토로 만들 자신이 있다면 모를까 되도록 줄기와 잎은 떼어 버리는 게 속 편하다. 참고로,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 요리사 알랭 뒤카스는 완숙한 당근의 줄기를 깔고 다른 채소를 얹어 찐다. 풍미 재료로 당근 줄기를 활용하는 것이다.

    먹을 수 있는 당근 줄기가 있기는 하다. 우리가 먹는 일반 당근과 다른 이른바 ‘손가락 당근’이라고 알려진 하이브리드 품종. 이름처럼 손가락 만하게 자라는 당근이다. 굵고 크게 자라는 일반 당근보다 모든 것이 순하고 부드럽다. 주황 뿌리의 달고 아삭한 맛이 좋다. 이 품종에 달려 나온 줄기와 잎은 쌉싸래하지만 먹을 만큼 매력적이다. 날 것으로도 먹고, 데쳐서 입맛대로 무쳐 나물로 먹어도 된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흔히 부르는 ‘베이비 캐럿(미니 당근)’도 짚고 넘어 가자. 마치 손가락 당근의 다른 이름 같지만 베이비 당근의 대부분은 일반 당근의 ‘일부분’이다. 일반 당근을 일정하게 깎아, 가공해 포장 판매하는 것이다. 모양도 예쁘고, 손질도 편하고, 냉동 제품도 있다. 온라인 몰에서 ‘미니 당근’을 검색하면 다양한 상품이 보인다. 그중 모양을 보면 뿌리째 뽑혀 온 당근(손가락 당근)인지, 깎아 만든 당근(베이비 캐럿)인지 금세 구분할 수 있다.



    비타민K 많이 든 파스닙

    파스닙은 식초물이나 레몬물에 담가놔야 뽀얀 색이 유지된다. [gettyimage]

    파스닙은 식초물이나 레몬물에 담가놔야 뽀얀 색이 유지된다. [gettyimage]

    당근은 대체로 주황색이지만 최근에는 보라색 당근, 노란색 당근도 보인다. 보라색 당근은 재배가 꽤 활발해져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구해서 맛볼 수 있다. 보라색 당근의 표면은 검붉은색에 가깝다. 속까지 완전히 자줏빛을 띄는 것, 가운데가 희끗한 것, 속은 주황색인 것이 있다. 맛은 일반 당근과 비슷하나 보라색을 내는 안토시아닌 성분, 요리했을 때의 아름다움 덕에 한번 쯤 경험해보는 이들이 꽤 많다.

    당근과 꼭 닮았지만 완전히 다른 맛을 지닌 채소가 있다. ‘설탕 당근’ ‘흰 당근’이라고 불리는 파스닙(parsnip)이다. 멀리서 보면 길쭉한 무 같은데 눈으로 보이는 질감이나 주름, 아래로 갈수록 뾰족해지는 모양은 당근과 인삼을 반씩 섞어 놓은 것 같다. 파스닙은 당근과 같은 미나리과에 속하니 당근의 사촌뻘은 된다.

    파스닙의 맛은 당근도, 인삼도, 무도 닮지 않았다. 단맛이 있으나 고소하고, 물기가 적으나 부드럽다. 섬유질은 당근 못지않게 풍부하며,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도 지녔다. 특히 비타민K가 많아 몸속에서 칼슘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준다. 당근보다 녹말 성분이 많아 채소치고는 열량이 높은 편(100g 당 75kcal)이나 혈당수치를 끌어올리는 식품은 아니다.

    파스닙은 날 것으로 먹기보다는 푹 끓여서 수프나 소스 재료로 사용하기 좋다. 맛이 둥글둥글하고 순하며, 섬유질이 많지만 부드럽게 으깨진다. 버섯이나 브로콜리 등과 섞어 수프를 끓여도 되며, 푹 삶아 으깬 다음 버터를 넣고 휘휘 저어 으깬 감자 대신 먹어도 좋다. 날 것으로 맛보고 싶다면 필러로 얇게 긁어 낸 다음 와인 식초에 최소 30분 이상 담갔다가 샐러드 재료로 사용해 본다. 필러로 긁다 보면 파스닙 가운데의 심이 질기다는 게 느껴진다. 그 부분은 날로 먹지 말고 따로 두었다가 푹 익혀 활용하자. 파스닙은 사과나 모과처럼 쉽게 갈변한다. 손질해 바로 조리하거나, 식초물이나 레몬물 등에 담가 놓아야 뽀얀 색을 유지할 수 있다. 색색의 당근과 함께 함께 길쭉하게 썰어서 오일에 천천히 굽거나, 그릴에 구워 고기나 생선 요리 등과 곁들이면 맛도 모양도 잘 어울린다.

    아직 한국에서는 판매할 만큼 재배하는 이가 없는 듯하다. 호주나 스페인에서 수입해 온라인 몰에서 판매하는 이들이 꽤 있어 마음만 먹으면 맛보기 어려운 채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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