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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살 아파트’ 사태, 까보니 LH가 막장왕

[부동산 인사이드]

  • 나원식 비즈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3-09-2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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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정 아이파크 → 검단 안단테, 해 이은 人災

    • 철근 누락·전관예우·無전문성, 총체적 난국 LH

    • LH 처분·혁신안으로 쏠리는 시선

    8월 16일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경남 진주시 LH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이 든 상자를 옮기고 있다. [뉴스1]

    8월 16일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경남 진주시 LH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이 든 상자를 옮기고 있다. [뉴스1]

    4월 발생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의 파장은 예상보다 더 컸다. 공사 현장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건설업계 전반에 부실 시공 문제가 만연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퍼졌다.

    지난해 1월 터진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는 공사 중이던 단지 주거동 외벽이 무너져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당시엔 해당 현장과 건설사 문제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컸다.

    두 사고는 설계·시공·감리 등 전반적 공사 과정의 부실이 총체적으로 겹치면서 발생한 인재(人災)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불러일으킨 파장의 크기는 달랐다. 이유가 있다. 우선 검단신도시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의 경우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가 난 지 1년여 만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많은 이에게 더 경각심을 줬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사고 직후 현장을 찾아 “지난해 광주에서 발생한 후진적 건설 사고와 유사한 사고가 또다시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고가 발생한 두 곳 모두 무량판 공법이 적용됐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공포감은 더 확산됐다. 무량판 공법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에서다. 무량판 공법이란 ‘없을 무(無), 대들보 량(梁)’이라는 말 그대로 ‘대들보가 없는’ 구조다. 대들보 없이 기둥 위에 슬래브(콘크리트 천장)를 얹는 건설 공법이다.

    총체적 부실

    5월 13일 인천 서구 원당동 LH검단사업단 앞에서 인천 검단신도시 AA13(안단테) 입주 예정자들이 시위하고 있다. 해당 아파트는 4월 29일 지하 주차장 지붕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아파트 발주청은 LH이며 시공은 GS건설이 맡았다. [뉴스1]

    5월 13일 인천 서구 원당동 LH검단사업단 앞에서 인천 검단신도시 AA13(안단테) 입주 예정자들이 시위하고 있다. 해당 아파트는 4월 29일 지하 주차장 지붕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아파트 발주청은 LH이며 시공은 GS건설이 맡았다. [뉴스1]

    검단신도시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의 경우 공사 발주처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라는 점, 시공사가 ‘자이’라는 브랜드로 잘 알려진 GS건설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사고가 터진 직후 LH와 GS건설은 서로 책임 공방을 벌였다. 붕괴 사고가 설계 오류 때문인지, 아니면 시공 과정에서 빚어진 부실 때문인지에 따라 책임 소재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GS건설은 설계 구조상 문제일 가능성이 있어 정밀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LH는 해당 사업장은 시공책임형 CM(건설사업관리) 방식이 적용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공사가 설계 단계부터 관여했다는 것이다.

    공방은 금세 잦아들었다. 원희룡 장관이 곧장 사고 현장에 달려가 LH와 GS건설 모두에 ‘무거운 책임’을 각오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서다. 이 단지는 GS건설이 시공을 맡기는 했지만 LH의 공공분양주택 ‘안단테’였다. 단순히 민간 건설사 한 곳의 문제라면 해당 건설사에 철퇴를 내리면 그만이겠지만 LH라는 공기업과 이를 감독하는 국토부로 불똥이 튈 수 있었다. 공공 아파트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국토교통부와 LH, GS건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GS건설은 원 장관이 사고 현장에 다녀간 날부터 1주일 후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며 당시 공사하고 있던 전국 83개 아파트 현장 모두를 대상으로 정밀 안전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역시 건설사고조사위원회를 꾸려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섰다.

    가장 먼저 GS건설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GS건설이 건설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와 별도로 사고 현장을 자체 조사한 결과 설계와는 다르게 철근 30여 개를 빼고 공사한 점을 발견하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소비자들은 이 건설사의 아파트 브랜드 자이를 ‘순살 자이’라고 조롱하며 분개했다.

    7월 초 건설사고조사위원회가 공식 발표한 사고 현장 점검 결과는 더 처참했다. 단순히 철근 몇 개를 누락한 수준이 아니었다. 설계부터 감리, 시공에 이르는 전 단계에서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설계 단계에선 철근이 필요한 기둥인데도 필요 없다고 표기했다. 32개 기둥 가운데 15개가 철근 미적용 기둥으로 잘못 표기됐다.

    감리 단계에선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시공 과정에선 점입가경으로 설계와는 다르게 철근이 추가로 빠졌다. 콘크리트 강도도 부족했다. 레미콘 품질 자체엔 이상이 없었지만 타설이나 양생 과정이 부실하게 이뤄져 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한 강도로 건물이 지어졌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원희룡 장관은 국민이 걱정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GS건설을 겨냥했다. 해당 사고 현장뿐 아니라 GS건설이 맡고 있는 다른 사업장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주차장 붕괴 사고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조사해 줬으니 이해에 도움이 됐지만, 입주민이나 일반 국민이 걱정하는 것처럼 (GS건설의) 다른 사업장은 어떠냐는 부분에 의문이 있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8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검단아파트 사고 및 GS건설현장 점검결과 회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이날 원 장관은 GS건설에 대해 10개월 영업정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스1]

    8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검단아파트 사고 및 GS건설현장 점검결과 회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이날 원 장관은 GS건설에 대해 10개월 영업정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스1]

    GS건설은 사과문을 통해 “건설사고조사위원회 조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시공사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사고 단지 전체를 전면 재시공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국토교통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GS건설이 실시한 자사 아파트 건설 현장 83곳에 대한 자체 점검 결과를 국토교통부가 다시 한번 검증하겠다고 발표했다.

    LH, 91개 단지 中 20개 단지 철근 누락

    이때까지만 해도 LH에 대한 비판 여론은 크지 않았다. LH는 GS건설의 검단신도시 아파트 전면 재시공 계획에 대해 “GS건설의 입장을 적극 수용하며 조속한 사고 수습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신속히 지원할 예정”이라는 입장문을 내놨다.

    7월 말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LH가 자사 발주 아파트를 자체 조사한 결과 곳곳에서 철근이 누락됐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LH는 검단신도시 주차장 붕괴 사고 이후 자사가 발주한 아파트 가운데 지하 주차장에 무량판 공법을 적용한 91개 단지를 점검했다. 그 결과 무려 15개 단지에서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나타났다. 10개 단지에서는 설계 미흡으로 반드시 넣어야 할 철근이 빠졌고, 5개 단지의 경우 시공 미흡으로 철근이 누락됐다. 특히 이 가운데 한 단지는 철근이 설치돼야 하는 기둥 154개 모두에서 철근이 빠진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비난 여론이 커지자 정부는 점검 대상을 민간 아파트로 대폭 확대했다. 무량판 공법이 적용된 모든 단지를 조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론의 화살은 점차 LH로 쏠렸다. 공교롭게도 LH 발주 단지 외엔 철근이 대거 누락하는 등의 부실이 발견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공동주택 공사 현장 27곳을 조사한 결과 철근이나 콘크리트 강도에 이상이 없었다.

    LH는 스스로 진행한 점검마저 부실했음이 밝혀지면서 더 큰 비난을 받았다. LH는 자사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단지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총 91곳을 조사해 15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을 확인했다고 밝혔는데, 재확인 결과 10곳이 조사 대상에서 누락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당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5곳에 대해서는 철근 누락 정도가 경미하다고 자체 판단해 발표에서 제외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결국 실제 철근 누락이 발생한 단지는 20곳에 달한 셈이다.

    결국 8월 11일 이한준 LH 사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임원 전원에게 사직서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본인의 거취는 임명권자의 뜻에 따르겠다고도 했다. 이처럼 LH가 이번 부실 시공 논란의 중심에 선 뒤 밝혀진 사실은 더 가관이었다.

    8월 11일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이 사장은 부실 시공 사태의 책임으로 임원 전원에게 사직서를 받았다고 발표하며 본인의 거취는 임명권자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뉴스1]

    8월 11일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이 사장은 부실 시공 사태의 책임으로 임원 전원에게 사직서를 받았다고 발표하며 본인의 거취는 임명권자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뉴스1]

    가장 많이 거론된 문제는 전관예우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이 LH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철근 누락 등으로 문제가 된 16개 단지의 설계·감리에 참여한 전관 업체는 18개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업체들은 2020년 6월부터 3년간 경쟁 방식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LH 용역 77건을 따낸 것으로 밝혀졌다. 총 2335억 원 규모다. 이 밖에도 LH가 올해 들어 자체적으로 감리에 나선 아파트 단지와 주택 공사 현장 10곳 중 8곳의 감리 인원이 법정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감리 인원을 제대로 배치하지 않은 채 부실 시공을 방치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한준 사장이 기자회견에서 털어놓은 LH 조직 내부 부실의 단면도 관심을 받았다. 그는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구조 설계 견적인데, (LH 내부) 구조견적단 자리를 건축 도면도 못 보는 토목직이 맡고 있었다”고 밝혔다. 설계 담당이 도면을 해석하지 못할 정도로 전문성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元 “LH, 가장 강도 높은 수술 받게 될 것”

    8월 27일 국토교통부는 검단신도시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에 대한 처분 결과를 발표했다. GS건설 컨소시엄과 협력업체 등 시공자에 대해 총 10개월의 영업정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원희룡 장관은 이러한 중징계에 대해 “1등 기업이 이래선 안 된다는 경종을 울리기 위해, 정신 제대로 차려야 된다는 신호를 확실히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국토교통부는 GS건설의 83곳 현장 점검 결과에 대해서도 발표했다. 철근 누락이나 콘크리트 강도 등에 이상이 없었다고 밝혔다. LH나 국토교통부로서는 다소 멋쩍은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LH 관련 현장에 부실 공사가 집중된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이에 대해 GS건설과 관련한 리스크가 해소됐다는 논조의 리포트까지 나왔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영업정지의 무게와 영향력은 부담이지만 검단신도시에서 발생한 구조적 결함이 GS건설이 담당하고 있는 타 현장엔 없었다는 점은 중요하다”며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LH에 대한 처분과 대대적 혁신안에 쏠리고 있다. LH는 2021년 LH 전·현직 직원들의 투기 논란을 일으킨 뒤 여러 혁신안을 내놓으며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이번 부실 시공 논란으로 다시 벼랑 끝에 서게 됐다.

    LH를 관리 감독해야 할 국토교통부도 비난 여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 장관은 이를 의식한 듯 GS건설에 대한 영업정지 처분을 발표한 다음 날인 8월 28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LH는 앞으로 가장 강도 높은 수술을 받게 될 것”이라며 “국토교통부는 LH보다 더 큰 이권 구조에 포함될 수 있으므로 더욱 강도 높은 잣대로 조직을 수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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