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대형 건설사나 버티지, 중소 건설사는…”

[부동산 인사이드] 주택시장 침체에 양극화 심화하는 건설업계

  • 나원식 비즈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3-12-0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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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좀체 나아질 기미 없는 국내 주택경기

    • 해외 사업 비중 높은 건설사 웃고, 낮은 건설사 울고

    • 해외·비주택 사업으로 침체기 버티는 대형 건설사

    • 올해 1~10월 453곳 폐업… “중소 건설사는 못 버텨”

    길어지는 주택시장 침체에 건설업계 양극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Gettyimage]

    길어지는 주택시장 침체에 건설업계 양극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Gettyimage]

    “불미스러운 사고와 경영환경의 급격한 악화로 창사 이래 어느 때보다도 도전적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수익성과 성장성이 높은 영역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명확히 재편하겠다.”

    10월 GS건설의 새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허윤홍 미래혁신대표가 서면을 통해 밝힌 경영 구상이다. GS건설은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로 어려움에 빠졌다. 국토교통부가 사고에 대한 처분으로 10개월의 영업정지를 추진하는 데다가 전반적 주택경기 악화까지 겹치면서 실적도 떨어지고 있다. 연초 대비 주가도 반토막이 났다.

    GS건설은 붕괴 사고 단지와 별개로 자체 건설 현장 83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했다. 그 결과 추가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부실시공 리스크 확산에 대한 우려는 일정 부분 벗어났다고 평가받는다. 다만 해당 사고의 여파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직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모양새다.

    더 큰 문제는 국내 주택경기가 좀체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GS건설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고금리와 원자잿값 인상 등으로 주택사업 수익성이 눈에 띄게 악화했다. 또 주택시장이 올해 하반기 들어 반등하나 싶었지만 대내외 여건 악화로 다시 침체할지 모른다는 전망이 늘고 있다.

    해외 사업 실적에 엇갈린 喜悲

    4월 29일 GS건설이 시공하던 인천 검단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GS건설은 부실시공 논란에 휘말리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5월 2일 촬영한 지하주차장 붕괴 현장. [뉴스1]

    4월 29일 GS건설이 시공하던 인천 검단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GS건설은 부실시공 논란에 휘말리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5월 2일 촬영한 지하주차장 붕괴 현장. [뉴스1]

    주택시장 침체는 GS건설에 직격타가 될 수밖에 없다. 올해 GS건설의 실적은 3분기 누적 기준 건축·주택 사업 매출액이 6조3170억 원가량이다. 전체 매출 8조3770억 원의 약 75%를 차지한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이 부실시공과 경기 악화 등으로 타격을 받으니 회사 전체 경영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허 신임 CEO가 취임 첫 메시지로 포트폴리오 재편을 강조한 이유로 풀이된다.



    매출 쏠림은 GS건설뿐 아니라 국내 건설사 대부분에 해당하는 이야기라 문제가 크다.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올해 주택사업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당장 주택경기가 나아질 가능성이 크지 않기에 국내 주택사업 규모를 줄이고 해외 사업이나 신사업 비중을 늘리려고 한다. 당분간 해외 사업이나 플랜트 등 비주택사업에서 자리를 잡은 건설사들은 실적 방어를 하겠지만 그러지 못한 건설사의 경우 어려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올해 발표되는 건설사 실적에서 이러한 분석이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올해 3분기 주요 건설사들의 실적을 보면 공통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해외 사업에서 성과를 낸 건설사들은 수익 저하를 만회하며 실적 방어를 하고 있는 반면 주택사업 비중이 높거나 부실시공 여파에 시달리는 경우 눈에 띄게 수익성이 악화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국내 주요 상장 건설사들의 실적을 보면 대체로 매출액은 전년보다 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종은 특성상 수년 전부터 지속해 온 사업에서 순차적으로 매출이 발생한다. 당장 사업을 수주하더라도 수년 뒤 공사가 본격화해야 매출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현재 시장이 침체했더라도 과거 수주를 충분히 해뒀다면 매출액이 당장 감소하지는 않는다.

    즉 건설사 실적에서 매출은 그간 쌓아둔 곳간에서 나오고, 신규 수주가 향후 매출 흐름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건설사들의 매출이 대체로 늘었더라도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각기 다르다. 해외 사업이 탄탄할 경우 영업이익을 늘리며 견조한 실적을 기록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수익성 악화가 두드러졌다.

    먼저 현대건설은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이 20조8150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15조1560억 원보다 37.3% 늘었다. 이 중 해외 매출이 8조710억 원가량으로 38.8%가량을 차지한다. 비교적 높은 비중이다. 국내와 해외 사업 매출 증가율이 각각 45%, 26.8%를 기록하며 고른 성장을 보인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를 통해 현대건설은 올해 영업이익 6425억 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5006억 원)보다 더 나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삼성물산도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건설사로 꼽힌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14조6320억 원으로 전년(10조5670억 원)보다 38.3% 증가했다. 올해 해외 매출은 6조 9780억 원가량으로 전체의 47.7%에 달한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8990억 원으로 전년(6340억 원)보다 증가했다.

    대우건설도 해외 사업이 강한 건설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대우건설의 3분기 누적 매출액은 8조8896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3% 늘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5132억 원에서 5846억 원으로 13.9% 증가했다. 비주택사업 매출 증가세도 눈에 띈다. 3분기 누적 주택 부문 매출이 전년보다 19.6% 증가했는데, 토목과 플랜트에서 각각 31.1%, 25.4%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국내 주택사업에 의존도가 높은 건설사는 영업이익 감소세가 상대적으로 가파르다. DL이앤씨의 연결 기준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액은 5조6581억 원으로 전년 5조2406억 원보다 8%가량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2424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3767억 원에 비해 35.6% 급감했다. 올해 DL이앤씨의 해외 매출은 8172억 원가량으로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4%에 그친다. 국내 주택사업의 수익성이 악화하며 직격타를 맞은 셈이다.

    GS건설은 올해 3분기까지 1950억 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의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 해외 매출 비중이 19.6%에 그친 점도 수익성을 더 가파르게 악화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체급으로 불황 견디는 대형 건설사

    고금리, 원자잿값 인상 등으로 주택시장 침체가 길어지고 있다. 사진은 9월 15일 서울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건축 현장. [뉴스1]

    고금리, 원자잿값 인상 등으로 주택시장 침체가 길어지고 있다. 사진은 9월 15일 서울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건축 현장. [뉴스1]

    문제는 단기간에 해외 사업을 확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찍부터 해외에서 강점을 보인 건설사들이 이미 시장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국토교통부의 해외건설통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액은 9월 말 기준 총 235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두 건설사가 각각 58억 달러, 56억 달러가량을 기록하며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대우건설이 약 17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그다음 순위(상장사 기준)를 차지했다.

    10월 윤석열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할 당시 국내 기업들이 대규모 수주에 성공했는데, 이때도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현대건설은 연결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과 함께 24억 달러 규모 플랜트 사업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삼성물산은 사우디 국부펀드(PIF)와 스마트 건설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통해 해외 사업에 강점이 있는 건설사들의 올해 신규 수주 실적도 순조롭게 쌓이고 있다. 곳간을 탄탄하게 채워 넣고 있는 셈이다. 삼성물산은 올해 3분기 누적 수주액이 14조 5590억 원으로 연간 목표치의 78.4%를 채웠다. 특히 해외 수주액이 7조5700억 원으로 국내 수주액(7조9890억 원)에 육박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현대건설은 연결 기준 3분기 누적 수주액이 국내 13조430억 원, 해외 12조6260억 원이다. 국내 수주액이 크게 줄었지만 해외 수주액으로 만회했다. 이미 연간 목표치의 88.2%를 달성했다.

    대형 건설사들은 해외 사업이 아니더라도 플랜트나 토목, 신사업 등 비주택사업을 확대하는 식으로 각기 주택시장의 침체기를 견딜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GS건설은 허윤홍 CEO가 2019년 당시 신사업부문 대표(사장)로서 신사업 부문 지휘봉을 잡은 뒤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한 결과 지난해 매출 1조 원을 넘어선 바 있다. 아직 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성장세가 눈에 띈다.

    DL이앤씨 경우 비주택사업 수주에 공을 들이면서 성과를 내고 있다. DL이앤씨의 3분기 누적 수주액은 10조6369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3% 증가했다. 특히 플랜트 사업 부문만 2조4171억 원을 기록하며 같은 기간에 두 배 이상 늘렸다는 점에서 향후 경영 전망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이 10월 발간한 보고서 ‘주요 건설기업의 신규사업 추진현황 분석’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 주요 15개 건설사가 발족한 신규 사업은 총 99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산연은 올해 기준 시공능력평가액이 1조 원을 상회하는 종합건설사들이 이처럼 사업다각화에 나선 배경으로 건설 수주 불확실성과 자금경색을 꼽았다. 저성장 국면이 지속될 경우 국내총생산(GDP) 내 건설업 비중이 감소할 뿐만 아니라 경영 여건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경기 불황 지속 시 중소 건설사 줄도산”

    대형 건설사와 달리 주택사업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중소 건설사의 경우 갈수록 실적이 악화하리라는 우려가 많다. 중소 건설사는 대개 다른 사업을 추진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건설업계에서 폐업 사례가 줄줄이 이어지는 상황이 설득력을 더한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종합정보망(KISCON)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 29일까지 폐업한 종합건설사는 모두 453곳에 달한다.

    수익성 악화가 이유다. 9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건설업 전체의 매출액 증가율은 올해 1, 2분기에 각각 7.2%, 12.3%를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수준을 보였지만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2분기 6.5%에서 올해 2분기 3.3%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통상 시장 침체기엔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한다는 점도 문제다. 한정적 자금이 수익성이 좋은 사업으로만 쏠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주택시장에서도 대형 건설사들은 나름대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중소 건설사의 경우 갈수록 수익성이 더 악화하는 추세다.

    부동산 리서치 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올해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가 분양한 71개 단지의 1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은 20.31대 1이다. 반면 10위권 밖 중소 건설사의 경우 131개 단지에서 1순위 평균 경쟁률이 4.13대 1에 그쳤다. 청약 시장에서도 양극화로 인해 중소 건설사들이 자금난에 빠질 가능성이 더욱 커진 셈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 경기가 악화하더라도 지나치게 장기간 침체 흐름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규모가 큰 건설사는 기존에 수주한 사업으로 버티거나 다른 사업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중소 건설사는 사정이 다르다”며 “주택경기가 나아지지 않으면 중소 건설사의 경우 회복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줄도산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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