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한동훈 ‘개인기’만으로 총선 승리할 수 없다

[Pin Point] 무희생·무감동·무갈등 3無 ‘국민의힘 공천’

  • 유창선 시사평론가

    입력2024-03-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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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당 “200석” 기세 꺾은 ‘한동훈 효과’

    • 낮은 청년·여성 지역구 공천 비율, 체질 개선 요원

    • ‘강성’ 드라이브 거는 野 보며 반대로 가야

    • 공정·전략 공천 긍정적이지만 불충분

    3월 9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경기 성남시를 방문해 지원 유세 및 시민들과 기념 촬영하며 인사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3월 9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경기 성남시를 방문해 지원 유세 및 시민들과 기념 촬영하며 인사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3월 3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최고위원회의 때 발칵 뒤집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친(親)민주당 방송인 김어준 씨가 만든 여론조사업체 ‘여론조사 꽃’ 조사 결과를 본 정청래 최고위원이 “서울 동작갑에서 우리가 10%포인트가량 지는 것으로 나올 것”이라고 전했기 때문이다.

    이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이 다른 우세 지역에서도 역전당하는 것으로 나오자 이재명 대표는 “진짜 진다고 나왔느냐”고 되물었고, 회의 참석자들은 “동작갑과 ‘여론조사 꽃’ 모두 우리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는 곳인데 사실이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사태는 정 최고위원이 “영등포을 조사 결과를 동작갑으로 전한 착오”라고 해명하며 일단락됐지만 뒤숭숭한 민주당의 당시 분위기를 나타내는 장면이다. 2016년 새누리당의 ‘친박 공천’ 과정에서 생긴 ‘옥새를 나르샤’ 같은 장면은 없었지만 이번 민주당의 공천 파동도 ‘역대급’이라고 할 만했기 때문이다. 

    친명횡재·비명횡사

    3월 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입당식에서 김영주 국회 부의장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뉴스1]

    3월 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입당식에서 김영주 국회 부의장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뉴스1]

    아무리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곤 하지만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지난해 10월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것은 ‘정권심판’으로 해석됐고, 이제 윤석열 정부가 22대 총선에서까지 패하면 ‘식물정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국민의힘은 보궐선거 참패 이후에도 변할 줄 몰랐다. 입으로는 “혁신하겠다”면서도 인요한 혁신위가 제시한 혁신안을 대부분 무시하고 지나갔다. ‘친윤-주류’ 중진들의 희생을 호소해도 국민의힘 의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버텼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는 말은 거둬들이고 민생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지만 한번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4월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판세가 여러 차례 출렁인다. 지금 이 시각에도 그럴 것이다.



    회생의 기미가 안 보이던 국민의힘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비결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조기 등판에 따른 ‘한동훈 효과’다. 한 위원장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보여주었다. 그가 전국을 순회하는 동안 지지자들은 모여 환호하며 함께 ‘인증숏’을 찍었다. 보수층이 새로운 기대를 갖고 결집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스마트한 용모, ‘1992’ 맨투맨티를 입고 나타나는 젊은 감각, 상대의 정곡을 찌르는 뛰어난 언변, 기자들의 질문을 피하지 않고 거침없이 대답하는 소통까지. 한 위원장은 야당이 낙인찍은 ‘윤석열 아바타’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또 민주당을 탈당한 이상민 의원, 국회부의장으로 일한 김영주 의원에게 곧바로 손을 내밀고, 과거 운동권 출신인 ‘생선 장수’ 함운경 민주화운동동지회장을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의 대항마로 공천하며 이념적으로 개방적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우세한 환경에서 총선을 ‘한동훈 대 이재명’의 구도로 만든 데 성공함으로써 한 위원장은 죽어가던 국민의힘을 살려놓은 ‘1등 공신’이 된 것이다.

    진보당 계열과 손잡은 민주당

     3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접견하고 있다. [뉴스1]

    3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접견하고 있다. [뉴스1]

    분위기만 갖고 선거를 이길 순 없다. 한 위원장이 내놓은 공천 결과는 그것대로 냉정한 평가를 받을 일이다. 분위기를 넘어 내용이 뒷받침돼야 이길 수 있는 게 선거다. 즉 공천이 본질이다. 지역구 공천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지 않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공천을 가리켜 ‘무희생, 무감동, 무갈등’의 ‘3무(無) 공천’이라고 비판했다. 공천 과정에서 갈등이 없는 게 비판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국민의힘 공천에 희생과 감동이 적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불출마나 경선 패배, 컷오프 등으로 ‘물갈이’ 대상이 된 현역의원은 재적 의원 114명 가운데 32% 정도로 파악된다. 공천관리위원회는 최종 현역 교체율이 35% 안팎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0년 총선 때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현역 교체율이 43%였으니 물갈이 폭이 취약하다는 평이 나올 법하다. 물론 현역 교체율이 높다고 해서 잘된 공천이라는 단순 논법이 성립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식상한 인물들에 대한 물갈이를 하되, 그 자리를 어떤 인물들로 채우는지에 대한 ‘질적’ 평가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국민의힘 공천에서 예상 못 했던 희생, 국민적 관심을 받을 만한 새로운 인재 공천과도 같은 감동 스토리는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특히 지역구 공천에서 청년과 여성의 비율이 지극히 낮은 것은 국민의힘의 체질 개선이 여전히 요원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남을 중심으로 한 중진 현역의원들이 그대로 공천을 받으면서 세대교체 및 체질 개선에 실패했다. 국민의힘은 “많은 지역에서 경선을 했기에 시스템 공천”이라고 설명하지만 신인들은 가산점을 받아도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린 장년의 중진 의원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보수정당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을 새로운 사고와 능력을 가진 인재들을 영입해 국회에 진출시키는 것은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에 부여된 중요한 과제였으나 지극히 미진했다. 이러한 편향된 공천 결과는 남성 중심, 강자 중심 보수정당이라는 인식을 바꿔놓지 못했다.

    더불어민주연합은 ‘겨레하나’ 활동가 출신으로 한미연합 군사훈련 반대 집회에 참여해 온 전지예 전 서울과학기술대 총학생회장을 비례대표 1번으로 정했던 바 있다. 논란이 일자 그는 출마를 포기했다. 야권은 비례위성정당을 만들며 당선 안정권으로 분류되는 비례 20번 안에 진보당 3명, 새진보연합 3명, 시민단체 측 4명을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 이후 진보당 계열과는 선을 그어온 이제까지의 민주당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원래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국회로 진출시킨다는 것이 비례대표의 취지인데, 야권의 비례대표 후보 공천은 과도한 이념적 지향이 나타난다는 논란에 갇히게 됐다. 게다가 대개 선거 때면 여야가 중도화 경쟁을 벌이는데도 야권은 조국혁신당까지 등장해 너나 할 것 없이 강성 지지층의 입맛을 맞추는 데 여념이 없는 모양새다.

    한동훈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 대해 “부패 세력들, 종북 세력들이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을 숙주로 대한민국을 장악하는 것을 막겠다”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예전 같으면 ‘색깔론 재현’이라는 역풍을 맞을 얘기겠지만 이번에는 어느 정도 여론의 공감을 얻을 법하다.

    ‘한동훈 효과’ 표로 연결 못 한다면…

    2월 26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2월 26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물론 국민의힘이 이번 공천에서 보여준 긍정적 면도 적잖다.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야유를 들은 ‘이재명 공천’과는 달리, ‘한동훈 공천’은 불공정 논란에 휩싸인 적이 없다. 자신의 계파가 없으니 무리해서 챙겨줘야 할 사람이 없었다. 윤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라는 태생적 인연 때문에 ‘윤심 공천’에 대한 우려가 컸는데, 용산도 공천에 대한 간섭·개입을 자제하며 선을 지켰다. 우려했던 ‘검사-용산 낙하산 공천’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는 국민의힘에서 불공정 공천에 대한 논란의 소지를 없앰으로써 극심한 공천 파동을 겪은 민주당과 대비되는 효과를 거뒀다.

    ‘이기는 공천’을 위한 전략적 구상이 돋보였다는 점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 이재명 대표가 현역으로 있는, 국민의힘 열세 지역 인천 계양을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공천한 데 이어 역시 열세 지역인 서울 중·성동갑에 윤희숙 전 의원을 공천했다. ‘이재명 대 원희룡’ ‘윤희숙 대 전현희’라는 빅 매치를 만들었다.

    민주당의 ‘텃밭’인 마포을엔 함운경 공천이라는 승부수를 던지고, 박진 전 외교부 장관(서대문을), 이용호 의원(서대문갑)을 재배치함으로써 열세 지역인 마포·서대문·은평의 판세를 바꾸려 하고 있다. 부산·경남에서는 민주당 현역의원 지역구를 공략하기 위해 김태호 의원(경남 양산을)·서병수 의원(부산 북강서갑)·조해진 의원(경남 김해을)을 재배치했다. 21대 총선에서 절대 열세 지역이던 경기 수원시에도 방문규 전 장관(경기 수원병)과 이수정 경기대 교수(경기 수원정)를 전략 공천하는 등 공격적 공천을 했다. 열세 지역을 포기하지 않으며 승리 가능한 인물을 내보내는 공천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한동훈 위원장 개인의 바람몰이만으론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분위기를 표로 연결하고 굳힐 수 있는 각별한 대책이 국민의힘에는 필요하다. 그것은 국민이 집권여당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데서 만들어질 수 있다.

    단지 이재명 대표를 비난하고 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어떠한 대한민국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 한 위원장의 ‘개인기’로 민주당에 부정적 낙인을 찍는 데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통합의 리더십으로 미래를 고민하는, 성숙한 집권여당의 모습을 보여야 승리를 위한 요소를 갖출 수 있다.

    신동아 4월호 표지.

    신동아 4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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