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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구형 무기로 제한적 보복… 이스라엘 대응에 확전 여부 갈려

[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 이세형 채널A 기자·前 동아일보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입력2024-04-1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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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타냐후는 대규모 충돌 바랄 수도

    • 경제난으로 이란 민심 나빠

    • 미국도 대선 앞두고 확전 부담

    • 이스라엘 보복 시 이란 추가 대응 불가피

    4월 1일 이란 수도 테헤란 도심에서 시민들이 이스라엘의 이란 영사관 공습을 규탄하며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거나 발로 짓밟고 있다. [AP뉴시스]

    4월 1일 이란 수도 테헤란 도심에서 시민들이 이스라엘의 이란 영사관 공습을 규탄하며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거나 발로 짓밟고 있다. [AP뉴시스]

    4월 1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이스라엘이 노린 ‘타깃’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예부대로 해외 작전과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쿠드스군’의 고위 지휘관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 준장. 자헤디 준장은 쿠드스군의 시리아와 레바논 작전을 담당하는 지휘관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가자지구를 거점으로 활동해 온 팔레스타인 무장정파)’보다 더 경계하는 레바논의 ‘헤즈볼라(레바논을 거점으로 활동해 온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와의 협력을 담당해 온 인물이었다.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으로 자헤디 준장을 비롯해 최소 13명이 사망했다.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으로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 발발 6개월(4월 7일)을 앞둔 시점이었고, 영사관이 국제법상 해당 국가의 영토로 간주된다는 점 때문에 긴장이 크게 고조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사망한 인물이 국가 최고지도자의 직속 군사조직으로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통하는 혁명수비대의 핵심 관계자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이란에선 격한 ‘반이스라엘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이란의 국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알라의 증거라는 뜻·이슬람 시아파에서 최고 종교지도자를 부르는 호칭) 알리 하메네이는 이스라엘에 “매를 맞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도 “이 범죄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은 4월 6일 이란 중부 이스파한에서 열린 자헤디의 장례식에서 “이스라엘에 가장 가혹하게 대응하고 최대한의 피해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란의 보복

    이란은 영사관이 공격당한 지 12일 만에 반격에 나섰다. 4월 13일 이란은 무인기(드론)와 미사일 총 300여 기를 이스라엘로 발사했다. 작전명은 ‘진실한 약속(True Promise)’.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에 직접 공격을 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군은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 99%를 요격했고, 피해도 경미했다고 밝혔다. 또 중동에 주둔 중인 미군과 영국군이 일부 드론을 격추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공격하기 전 휴교령을 내리는 등 철저한 대비책을 간구했다. 미국, 영국이 이란의 드론을 일부 격추했다는 점에서는 이 나라들과 정보 공유도 적극적으로 진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란은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란 안팎에선 이란이 발사한 드론과 미사일의 상당수가 이스라엘의 방공망을 교란하는 용도였고, 핵심 공격 목표는 이스라엘군의 F-35 전투기들이 배치돼 있는 네바팀 공군기지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실제로 네바팀 공군기지는 이번 공격에 피해를 당했다. 다만, 이스라엘군은 “네바팀 기지는 계속 운영되고 있다”며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이스라엘은 작은 사탄”

    4월 1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무너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 건물에서 응급 구조대가 무너진 잔해 속에서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AP뉴시스]

    4월 1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무너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 건물에서 응급 구조대가 무너진 잔해 속에서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AP뉴시스]

    이란과 이스라엘은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도 오래된 ‘앙숙’이다. 이란의 고위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을 ‘작은 사탄’으로 부를 정도로 반감이 강하다. ‘큰 사탄’은 이란의 또 다른 주적 미국이다. 큰 사탄과 작은 사탄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매우 가까운 우방인 것을 빗댄 표현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사실상 ‘테러국가’로 취급한다. 이스라엘군(IDF)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이스라엘이 주적들을 소개하는 섹션이 있다. 여기에서 이란은 하마스, 헤즈볼라와 함께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스라엘군 홈페이지에는 혁명수비대가 중동의 테러단체들을 지원한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서로 혐오가 담긴 표현을 써가며 비하하지만 처음부터 두 나라가 앙숙이었던 건 아니다. 1948년 건국된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왕따’였다. 아랍계인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세웠다는 점 때문에 아랍권에서는 철저히 이스라엘을 배척했다. 이집트, 시리아와는 전쟁도 치렀다. 아랍권 산유국들로부터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도 어려웠다.

    이런 이스라엘에 중동의 대국이며 동시에 주요 산유국이고, 또 아랍이 아닌, 이란은 지역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나라였다. 아랍은 아랍어를 쓰는 아랍인이 살며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에 붙는 명칭이다. 이란은 아랍 국가들과 같은 중동, 이슬람권이지만 민족이 다르다. 언어도 아랍어가 아닌 페르시아어를 사용한다. 중동 주요국 중 튀르키예와 더불어 드물게 이스라엘과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맺었던 나라가 이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과 제약 없이 무역을 했고, 왕래도 가능했다. 당연히 이란산 석유도 이스라엘에 공급됐다. 이란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의 경제활동에도 문제가 없었다.

    1979년 2월 ‘이란 이슬람 혁명’이 터지면서 이란과 이스라엘 관계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당시 이란에서는 세속주의와 친미 외교를 추구하던 팔레비 왕정이 부정부패와 무능한 국정 운영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그리고 시아파 지도자인 루홀라 호메이니를 앞세운 이슬람주의 세력이 권력을 잡았다. 이란 국왕이었던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1919~1980)는 혁명 세력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이란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조하는 신정공화정 국가가 된다.
    이때부터 이란의 이스라엘에 대한 태도도 완전히 바뀐다.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으로서 이슬람 혁명과 이슬람주의를 중동 전역에 확산하겠다는 방침을 국가 핵심 전략으로 정한다. 이란이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의 시아파 무장정파와 정치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저항의 축’ 또는 ‘시아벨트 전략’도 이런 의도에서 비롯됐다.

    이런 영향력 확장 전략을 강조해 온 이란에 비록 국경을 맞대고 있지는 않지만 국민 다수가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은 그냥 놓아둘 수 없는 존재였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메카, 메디나와 함께 이슬람의 ‘3대 성지’로 여겨지는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고, 수도로 정했다는 점은 좌시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이스라엘이 세워지는 과정에서 비록 종파는 다르지만 같은 무슬림인 팔레스타인인들이 대거 추방됐다는 점도 이슬람주의를 국가 정신으로 내세우고, 나아가 ‘이슬람권의 중심 국가’로 성장하길 원하는 이란으로서는 문제 삼을 필요가 있었다.

    해외 작전을 담당하는 혁명수비대 내 최정예 부대 이름을 쿠드스군이라고 지은 것도 이스라엘을 겨냥한 행보다. 쿠드스가 아랍어로 예루살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는 의도를 담은 것이다.

    지금껏 간접 충돌만 벌어져

    두 나라 사이에는 간접적 충돌만 있었다. 두 나라 모두 중동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을 지닌 나라로 평가받지만 대규모 충돌, 나아가 전면전은 없었다.
    이란은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이용해 이스라엘을 괴롭혀왔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지 않은 이란에 반이스라엘 성향의 무장정파를 이용한 크고 작은 국지전은 이스라엘을 항상 긴장시키고 지치게 만드는 전략으로 제격이었다.

    무장정파를 배후에서 이용하면 이란 병력 감소도 방지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스라엘에는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와 하마스의 ‘지휘 본부’ 격인 이란 군대(쿠드스군)가 활동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물론 이스라엘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주둔 중인 이란군의 미사일 배치 같은 이상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공습을 감행했다. 이란의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인사들도 암살해 왔다. 정보기관 ‘모사드’가 중심이 돼 비밀스러운 작전을 이용해 이란의 유력 인사를 암살해온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같은 ‘공작 활동’에 대해 특별히 인정도, 부인도 안하는 전략을 취해 왔다. 하지만 중동 외교가와 전문가 그룹에선 “이스라엘의 소행이 맞다”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2020년 11월 이란의 유명 핵과학자인 모센 파흐리자데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원격조종 기관총으로 살해한 게 대표적 예다. 2010년에는 역시 핵 물리학자인 마수드 알리 모하마디가 자신의 집 인근 주차장에서 원격조종 폭탄을 실은 오토바이가 폭발해 숨졌다. 2011년에는 혁명수비대에서 미사일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하산 테라니 모가담 장군과 그를 보좌하던 인력들이 역시 폭발 사고로 사망했다. 2012년에는 우라늄 농축 업무를 담당하던 핵과학자 무스타파 아흐마디 로샨이 사망했다. 그의 차량에 오토바이가 한 대 붙어 자석 폭탄을 붙였다. 이 폭탄이 폭발해 아흐마디 로샨은 목숨을 잃었다.

    미국이 사살한 가셈 솔레이마니 전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AP뉴시스]

    미국이 사살한 가셈 솔레이마니 전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AP뉴시스]

    2020년 1월 미국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국제공항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당시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무인기(드론)를 사용해 암살할 때도 모사드가 다양한 정보를 미국에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은 노골적으로 이란에서 공작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모사드는 2018년 1월 테헤란의 비밀 창고에서 약 5만5000쪽의 문서, CD 183장 분량의 이란 핵개발 자료를 탈취했다. 당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이 미국과 핵 합의를 체결하고도 이런 자료를 숨겨왔다”고 말했다.

    네타냐후는 전면전 바란다?

    두 나라의 전면전은 지금까지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다. 중동에서 가장 뛰어난 공군력을 지닌 나라이기도 하다. 이란은 사정거리 2000㎞ 수준의 탄도미사일을 대거 보유한 ‘미사일 강국’이다. 공격용 드론도 러시아에 수출할 만큼 경쟁력이 높다. 지상군도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헤즈볼라와의 오랜 충돌에서 확인됐듯 전투 경험과 노하우가 수준급이다. 이란 역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 집단 ‘이슬람국가(IS)’ 퇴치 작전을 수행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아 왔다. 전쟁을 치를 기초체력은 충분하다.

    현시점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과의 대규모 충돌을 내심 원할 수 있다. 가자지구 전쟁 장기화와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석방이 지연되면서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과 텔아비브(이스라엘의 제2도시이며 경제중심지)에서는 ‘총리 퇴진’을 외치는 대규모 시위가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가자지구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네타냐후 총리는 개인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아왔다.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전시 내각’을 유지해야 면책특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란과의 전면전 혹은 대규모 충돌이 발생한다면 전시 내각은 자연스럽게 지속된다. 현재 연정을 이루고 있는 극우 세력과의 연대도 지금보다 강화할 수 있다. 나아가 중도 보수층의 지지 역시 더 이끌어낼 수 있다. 이미 일각에선 네타냐후 총리가 이런 상황을 고려하고 이란 영사관 공격을 감행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이란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의 행태가 괘씸하지만 전면전은커녕 직접적인 대규모 충돌도 부담 가는 부분이 너무 많다. 일단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제재로 이란은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당연히 일반 국민, 특히 젊은 층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크다.

    히잡을 쓰지 않은 한 이란 여성이 2022년 10월 26일 서부 쿠르디스탄주 사케즈로 향하는 도로에서 차량 위에 올라 당국의 탄압에 항거한다는 의미로 두 손을 치켜들었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간 후 의문사한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사 아미니의 묘지가 있는 사케즈로 향하는 도로는 추모 인파와 차량 행렬로 가득 찼다. [X 캡처]

    히잡을 쓰지 않은 한 이란 여성이 2022년 10월 26일 서부 쿠르디스탄주 사케즈로 향하는 도로에서 차량 위에 올라 당국의 탄압에 항거한다는 의미로 두 손을 치켜들었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간 후 의문사한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사 아미니의 묘지가 있는 사케즈로 향하는 도로는 추모 인파와 차량 행렬로 가득 찼다. [X 캡처]

    2022년 9월, 22세(당시 기준) 쿠르드계 여성인 마사 아미니가 히잡을 착용하지 않아 경찰에 체포됐다 사망한 뒤 이란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른바 ‘히잡 시위’다. 당시 많은 여성이 이란 정부의 지나치게 보수적이며 억압적인 정책인 ‘히잡 단속’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란은 아프가니스탄과 더불어 히잡 착용을 법으로 의무화한 나라다.

    시위가 지속되면서 히잡 착용에 대한 불만뿐 아니라 경제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주변국의 무장정파 지원 등 이란의 영향력 확장을 목표로 한 안보 정책에 대해서도 “왜 우리도 살기 힘든데 다른 나라의 안보에 개입하고, 막대한 돈을 지원하느냐”는 반대 목소리가 불거진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대규모 충돌을 벌인다는 건 민심 이반을 초래할 수 있다. 이란으로서는 미국이란 변수도 생각해야 한다. 가자지구 전쟁 수행 방법을 놓고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가 벌어졌다지만, 여전히 양국은 핵심 우방국 관계다. 미국은 1979년 이후 이란을 주적으로 여겨왔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격 충돌한다면 미국은 이스라엘 편을 들게 분명하다.

    이란은 지금처럼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이용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전략을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 미국도 이스라엘의 확전 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대한 중동이 조용한 게 본인의 재선에 도움 된다고 판단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 뒤 네타냐후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스라엘의 반격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도 확전을 막기 위한 의도다.

    이제 공은 이스라엘에

    이란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공격이 마무리됐다고 밝히고 있다. 확전, 나아가 전면전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음을 다시 한 번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다시 반격해 온다면 역시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 공격 강도 역시 높일 가능성이 높다. 이란 전문가인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는 “이란은 확전과 전면전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이스라엘이 재반격하면 이번 공격보다 훨씬 더 강도 높게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격에 사용된 드론과 미사일은 상당수가 구형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스라엘이 재반격하면 신형 무기도 대거 투입해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좀 더 정확히는 네타냐후 정권에 이번 사태의 결말이 달려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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