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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광우병 사태에서 배울 두 가지 교훈

[금태섭의 IN & OUT]

  • 금태섭 前 국회의원

윤석열 정부가 광우병 사태에서 배울 두 가지 교훈

  • ● 반드시 해야 할 목표를 공개 천명하고 역량을 집중하라
    ● 편 가르지 말고 야당과 비판적 유권자 포용하라
2008년 5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동아DB]

2008년 5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동아DB]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던 시절 가끔 상대편인 보수정당 정치인과 식사하면서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엔 서로 예의를 차리면서 가벼운 농담이나 주고받는데 소주라도 한잔 들어가면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 불거진 광우병 사태에 대한 억울함이다.

“이봐, 금 의원. MBC에서 미국산 소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고 보도한 게 벌써 10년이 넘었잖아. 그때는 진짜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떠들었는데, 어디 지금까지 한 명이라도 광우병 걸린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봐. 허위 보도 하나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웠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답답해.”

한참 얘기를 듣다 보면 이야기는 결국 ‘거짓 선동에 능한 좌파’에 대한 개탄으로 이어지곤 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광우병에 걸린 사람은 없지 않은가. 어차피 심각한 토론을 벌일 일은 아니었기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곤 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분들이 아직도 광우병 사태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기세등등하게 출발한 이명박 정부

500만 표 차이로 압승을 거둔 이명박 정부는 그야말로 기세등등하게 출발했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가격 급등, 거친 언사로 점철된 아마추어적 국정 운영으로 국민 신뢰를 잃었다. 오죽하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농담이 유행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에 비해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와 함께 화려하게 등장한 새 정부는 경제를 성장시키고 실생활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과가 많다는 사실, 다스나 BBK 논란도 잘살게만 해준다면 얼마든지 눈감을 수 있다는 분위기였다. 인수위 시절 3년 끌던 전봇대를 하루 만에 옮긴 추진력을 감안하면 금방이라도 실적을 쌓고 국민의 환호성을 들을 것만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터졌다.

사람들은 원래 먹거리 문제에 대단히 민감하다. 검찰에 근무할 당시 선배들로부터 들은 충고 중 하나가 식품 사건은 극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늘 먹는 음식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는 의혹이 생기면 당장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관련 업계는 초토화된다. 검찰이 수사했던 ‘라면 공업용 우지 파동 사건’, 경찰이 수사했던 ‘쓰레기만두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라면 사건은 8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고 불량 재료를 사용했다는 의심을 받았던 만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제조업체 매출은 끝이 보이지 않게 곤두박질쳤다. 중소기업들은 도산했고, 만두 제조업체 사장 한 분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단순한 불량식품 사건이 이 정도인데 먹으면 뇌에 이상이 오고 목숨도 잃을 수 있다는 미국산 소고기 사태 파장이 어떠했겠는가. 그야말로 폭발적 반응이 터져 나왔다. ‘미국 정부에 잘 보이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팔아먹은 친미 보수정권’에 대한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광화문이 시위대 물결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촛불 들고 하는 시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평소 정치에 큰 관심 없던 일반 시민까지 대규모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시위 장소에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이 출현한 것도 이때였다. 보수 진영에서는 “아기까지 데모에 동원하느냐”고 비난했지만 “아이들의 건강이 걸린 문제인데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냐”는 반박에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 시위 현장은 위험하지 않았다. 과격해 보이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나들이하듯 나와 노래를 따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경찰력도 무기력했다. 평소 상대하던 ‘데모꾼들’이라면 힘으로라도 진압하려 했을지 모르겠지만, 평화롭게 행진하는 시민을 그렇게 다룰 수는 없는 일이다. 빗속에서 광화문을 출발한 수십 만의 인파가 서대문을 거쳐 독립문 네거리에서 다시 시내로 행진해 돌아오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명박 정부 초기 동력은 사라져갔다. 백약이 무효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조급함, 오만함 드러낸 광우병 사태

2008년 5월 22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파문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동아DB]

2008년 5월 22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파문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동아DB]

광우병 사태에서 보수가 못 배운 점이 있다고 얘기한 것은 바로 이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난 후에 미국산 소고기에 광우병 위험성이 없었다는 점이 증명된들 무슨 의미가 있나. 중요한 것은 결과적으로 그 당시 정부가 성과를 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놓쳤다는 사실 아닐까. 광우병 사태 당시 경고한 위험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민주당에서 반성하는 목소리를 찾기는 어렵다. 평범한 시민도 마찬가지다. 유권자의 기억에 남은 것은 그런 사태를 초래한 보수 진영의 조급함과 오만함, 그리고 처리 과정에서 보였던 무능함이다. 이제 와서 PD수첩 보도가 틀렸다고 해봐야 관심 끌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는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했어야 할까. 보수 진영이 집중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그것이다.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에 부딪힌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초기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 촛불시위대가 부르는 아침이슬을 들으며 자책했다’는 대통령의 특별 기자회견 내용이 대표적 예다. 그러나 30개월 이상 된 소고기는 수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에도 시위가 잦아들지 않자 정부 대응은 서서히 강경한 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 대응 방안이 등장했다. 첫째는 사법 절차에 의존해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을 증명하려 한 것이다. 위험성이 높은 소고기가 들어오게 된 것은 미국과 수입 협상을 졸속으로 했기 때문이라는 PD수첩 보도 내용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비롯한 공무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고발이 이뤄졌다. 정책에 대한 비판을 담당 공무원 개인의 명예 문제로 돌리는 것은 억지 논리에 가까웠지만, 검찰은 압수수색과 체포영장 집행을 강행하며 정부의 무고함을 입증하려 애를 썼다. 이러한 노력에 결실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소된 PD수첩 제작진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재판부는 친절하게도 광우병 관련 보도 내용 중 핵심적인 몇몇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판결문에 기재했다. 보수 진영에서 주장하듯 PD수첩 보도에 허위 또는 과장이 있었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법원과 검찰에 의존한 대응책이 효과가 있었을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사법절차를 통한 진위 판명은 장시간이 소요된다. 앞에서 말한 대로 10년이 지난 후에 광우병 환자가 한 명도 안 나왔다고 고함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시간은 야당 편’이라는 한국 정치 시스템의 특징을 놓쳤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광범위하고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있어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여권의 몫이 된다. 별다른 힘이 없는 야당은 정쟁을 벌이며 시간을 끄는 전략으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다. 여야 사이에 다툼이 한참 있은 후에 야당은 대통령과 여당을 향해 “그동안 한 일이 뭐냐?”고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반대로 여권은 이에 대해 답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검찰을 동원해 구체적인 보도 내용의 진위를 밝히려고 한 것은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별다른 효용 없는 방법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보다 ‘무엇을’이 더 중요

두 번째 대응은 좀 더 위험한 것이었는데, 지지층을 결집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언론도 큰 역할을 했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7월 7일 나온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은 대통령과 여권에 노골적으로 편 가르기를 요구하고 있다. ‘1150만 표로 돌아가야’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을) 찍지 않은 850만 표의 일부 골수를 의식하지 말고, 그를 찍었던 1150만 표의 마음을 다시 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의 1장 1절은 적군이 누구이며 아군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분간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진보세력은) 이명박 대통령이 제아무리 나긋나긋 유화적으로 나간다 해도 그를 ‘타도 대상’으로 칠 뿐 협력 대상으로 여길 사람들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 초보적인 피아 식별조차 없었다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꿈 깨야 한다”고 질타한다.

개인적으로 이 칼럼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떻게 850만 명이나 되는 국민을 ‘골수’로 지칭하고 ‘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물론 정치를 하다 보면 선거를 앞두고 표 계산도 해야 하고 지지층 마음을 살만한 정책도 내놓아야 한다. 비판적인 유권자 마음을 돌리는 일은 이미 지지를 결정한 사람을 투표소로 나오게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힘이 들더라도 국민 전체를 바라보고 이끌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지지자만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판적 국민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대의제 기본을 망각한 것이다.

그 칼럼이 이명박 대통령이나 핵심 인사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광우병 사태와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이명박 정부의 태도는 확연히 변했다. ‘이념을 떠난 실용주의’를 표방하던 대통령의 말씀이 달라졌고, 그 나름 합리적이고 유연한 사람을 기용하던 초기의 인사 경향도 어느 결에 강경하고 무조건적 충성심을 보이는 인사를 중용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갔다. 겉으로는 정권이 강해지는 것 같았지만 자신감을 잃어서 그러는 것이라는 인상도 짙었다.

그러면 1150만 명의 지지자를 바라보는 정치는 효과가 있었을까. 이것 역시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노골적으로 적 취급을 당한 야당과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제 마음 편하게 비협조적 자세로 돌아섰다. 인터넷에는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거림이 넘쳐났다. 아무리 괜찮은 정책을 내놓아도 일부(!) 극심한 저항 때문에 시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전략이다. 원래 스스로 뭘 하기보다는 남 하는 일을 방해하고 망치는 것이 훨씬 쉬운 법이다. 이명박 정부는 ‘적들’이 할 일을 매우 쉽게 만들어준 것이다.

이미 과거 일이 된 광우병 사태를 다시 되돌아보는 것은 지금 비슷한 위기 상황을 맞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사태로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하는 위기를 맞았고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실패한 정부가 되는 길로 접어들었다. 윤석열 정부도 출범 100일 만에 20%대 지지율을 경험했다. 당황스럽다고 해서 손쉬운 해법만을 찾다가는 역시 같은 길을 걷게 될 위험이 있다. 두 가지 충고를 건네고 싶다.

스스로 ‘적’을 만들지 말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7월 2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윤석열 정권 경찰장악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DB]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7월 2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윤석열 정권 경찰장악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DB]

8월 8일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DB]

8월 8일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DB]

우선 첫째로 반드시 해야 할 목표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광우병 사태에서 관건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아니었다. 국정 목표를 이루는 데 써야 할 시간과 노력을 엉뚱한 곳에 소비하면서 정권 초기의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확고한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면 아까운 시간을 놓치게 된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기억나는 것은 광우병뿐이다. 자칫하면 윤석열 정부 초기는 ‘만 5세 입학’이나 ‘경찰국 신설’ 같은 것을 놓고 논란을 벌이다가 시간을 흘려버릴 수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 것들은 신속하게 넘기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앞에 내세워야 한다. ‘어떻게’ 보다 ‘무엇을’ 얘기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10년이 지난 후에 “그때 경찰국 신설이 맞았어”라는 말이나 하고 싶은가.

둘째로는 야당과 비판적인 유권자를 포용하고 가야 한다는 점이다. 여론의 비판을 받다 보면 억울한 심정이 들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이러나저러나 반대만 하는 사람을 빼놓고 지지자를 결집해 돌파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실패로 가는 내리막길이다. 스스로 ‘적’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인내하면서 설득하는 과정을 계속해야 한다. 비판적 유권자 입에서 “내 생각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정부가 하는 일이 좋은 결과를 낳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극심한 반대로 정책이 좌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정부의 실패는 대한민국의 불행이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광우병 사태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로 이어졌지만 그것을 진보 진영의 승리라고 할 수는 없다. 정부가 실패하면 우리 모두가 실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 성공적인 정부로 남기를 바란다.

신동아 9월호 표지.

신동아 9월호 표지.



신동아 202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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