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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34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

나라 잃은 설움보다 경작권 뺏긴 아픔이 더 컸다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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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

동양척식주식회사(위), 조선식산은행(아래)

“방금 은행 밖으로 뛰어나간 중국옷 입은 사내가 창구 안으로 돌멩이 같은 것을 던졌소. 어서 확인해 봐요.”

나카무라가 큰소리로 수위를 다그치자 은행 안의 시선은 일제히 대부할인계 쪽으로 옮겨갔다. 김병조는 그제야 상담을 멈추고 의자 뒤쪽을 살펴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돌멩이가 아니라 붉은색 쇳덩이였다.

“이게 뭐죠?”

“글쎄, 처음 보는 물건인데….”

은행원들은 사내가 던진 쇳덩이를 에워싸고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호기심 많은 은행원은 쇳덩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어루만지며 정체를 추측하기도 했다.



“썩 물러서!”

서무과에 근무하는 퇴역 육군 중좌 오다(小田)가 쇳덩이 주변에 모여든 은행원과 고객을 거세게 밀치며 외쳤다. 오다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져서 입술을 뗐다.

“포…포…폭탄이다!”

은행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고객들과 은행원들은 앞다퉈 출입문 쪽으로 몰려갔다. 오다는 폭탄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안심한 듯 길게 한숨을 한번 쉬고 일어나 출입문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서두르지 않아도 돼요. 지금까지 터지지 않은 것을 보면 불발탄인 것 같소. 하여간 위험하니 모두들 천천히 은행 밖으로 나가시오.”

오다는 은행원들을 폭탄에서 멀찍이 물러나게 한 후, 본정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식산은행에 폭탄 투척 사건이 발생했다고 신고했다. 김병조는 도시마, 이토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죽다 살아난 기쁨을 나눴다. 이후 세 사람은 ‘폭탄 3용사’로 불렸고, 매년 12월28일 ‘폭탄기념일’이 되면 함께 모여 축배를 들었다.

식산은행에서 다시 동척으로

오후 2시15분. 식산은행에 폭탄 투척 사건이 일어난 지 10분이 지났다. 본정경찰서 수사대는 아직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폭탄이 터지지 않은 탓에 세모를 앞두고 남대문통을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식산은행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길 건너편 동양척식주식회사도 평화롭기만 했다.

식산은행을 재빨리 빠져나온 중국옷 차림의 사내는 다시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찾아갔다. 신문지로 말아 싼 뭔가는 왼쪽 옆구리에 그대로 끼고 있었지만, 도드라지게 튀어나왔던 웃옷 오른쪽 호주머니는 홀쭉해져 있었다. 눈빛에는 초조함과 비장함이 감돌았다. 15분 전 그를 내쫓았던 수위는 자리를 비우고, 대신 조선부업협회(朝鮮副業協會) 소속 잡지기자 다카키(高木吉江)가 수위실 책상에 앉아 수첩에다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사내가 다카키를 노려보았다.

“뉘쇼?”

시선을 의식한 다카키가 고개를 들어 사내에게 물었다. 사내는 아무 말 없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신문지를 풀어헤치고 물건을 꺼냈다. 스페인산 10연발 권총이었다. 화들짝 놀란 다카키는 목이 잠겨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사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안전장치를 풀고 다카키의 가슴을 겨눴다.

“사…살려주시오, 내겐 처자식이 있소, 제발….”

탕.

사내가 방아쇠를 당기자, 다카키는 양손으로 가슴을 감싸며 꺼꾸러졌다. 선혈이 우윳빛 대리석 바닥을 적셨다. 사내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다카키는 손으로 가슴에 난 상처를 틀어막고 계단을 올라가는 사내의 등에 대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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