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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⑥

우리 편은 좋은 사람 나머지는 나쁜 사람?

‘선조실록’은 왜 수정됐나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우리 편은 좋은 사람 나머지는 나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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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의 수정은 ‘광해군일기’의 편찬에 의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이어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겪으며 적절한 착수 시점을 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인조 19년(1641) 2월에 올린 이식(李植)의 상소로 다시 수정 논의가 시작됐는데 선조 병신년(선조29년·1596년)까지의 기록은 그의 손에서 개수(改修) 작업이 대체로 마무리됐다. 효종이 즉위한 뒤에도 ‘선조실록’ 수정에 대한 논의는 계속됐다. 이때에도 인조대 실록을 먼저 편찬할 것인지 ‘선조실록’을 수정할 것인지를 놓고 고심하다가 이번에도 ‘인조실록’을 먼저 편찬하기로 함으로써 ‘선조실록’ 수정은 뒤로 늦추어졌다. 결국 ‘선조실록’ 수정은 ‘인조실록’이 완성된 효종 4년 이후에야 추진될 수 있었다.

어디를 수정했나

‘선조실록’ 수정은 기록의 보완과 사론(史論)의 수정이라는 두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수정을 위한 ‘범례’를 확정했다. 이는 이식의 ‘간여본(刊餘本·문집을 편찬하고 남은 필사본)’에 잘 나타나 있다. ‘선조실록’ 원본과 수정본의 기사를 비교하다보면 일반적인 보완 기사와는 달리 몇몇 사건을 중심으로 보완됐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전체 분량으로 보면 수정본이 원본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이는 수정본이 원래의 사초를 이용할 수 없었다는 한계와 ‘수정’이라는 특수한 목적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수정실록은 선조시대의 중요한 사건에 대해 필요한 기사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편찬됐다.

보완된 기록은 선조대의 주요 사건인 동서분당(東西分黨)·기축옥사(己丑獄事)·임진왜란에 대한 기사들이다. 동서분당과 기축옥사는 당론과 관련이 있으므로 그렇다 치고, 임진왜란은 의병 활동의 비중이 높아졌다.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에도 의병과 조정의 대립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의병장 곽재우(郭再祐)가 도주했던 감사(監司) 김수(金?)를 처단하려고 한 일부터, 이후 군공을 세운 의병장에 대한 포상의 배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군데서 그 갈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의병들의 활동 자료를 보완한 것은 임진왜란 극복의 원동력을 수정 담당자들이 어떻게 이해했는지 하는 관점과 관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조가 이어져 해전에서의 승리로 임진왜란의 전세를 바꾼 이순신에 대한 기록도 수정본에서 많이 보완됐다. 그러니까 우리가 의병 활동, 이순신 장군의 승전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주로 선조수정실록의 기록을 통해서다.

사론의 수정

사론이란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를 말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수정 편찬자들은 사론에 가장 주의를 기울였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광해군 때 편찬된 ‘선조실록’에서 왜곡이 가장 심하다고 알려진 부분도 이 사론이었다. 사론 중 해당 인물이 죽었을 때 기록하는 졸기(卒記) 등을 근거로 몇몇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원)은 ‘선조실록’, (수)는 ‘선조수정실록’의 기록이다.

① 유성룡(柳成龍·남인) : (원) 왜(倭)와 강화(講和)를 주장하고, 근친(覲親) 중에 술을 마셨다. → (수) 학행과 효우(孝友)가 있었고 부친의 간병을 극진히 했다.

② 이이첨(李爾瞻·대북인·편찬자 본인) : (원) 영특하고 기개가 있었으며 간쟁하는 기품이 있었다. → (수) 선조실록 편찬 때 자신의 일만 기록했다.

③ 한준겸(韓浚謙·북인·유교7신) : (원) 겉은 관대했지만 속은 음험했다. 사류(士類)를 공격했고 유성룡 다음으로 나라를 망친 죄인이다. → (수) 당시에 위인(偉人)이라 칭송했고 주로 외직(外職) 생활을 했으며 실록의 서술은 모함이다.

④ 기자헌(奇自獻·북인·편찬자 본인) : (원) 과묵했으며 바르고 아부하지 않았다. → (수) 음험하고 흉악했다. 헛된 명예를 만들어 후세를 속이려 한 것이다.

⑤ 이정구(李廷龜·서인) : (원) 사부(詞賦, 漢詩)에 재능이 없어 인망(人望)이 부족했다. → (수) 중국 사신 전담, 문사(文詞)로 당시에 명망이 있었다. 선조실록의 거짓이 심하다.

우리 편은 좋은 사람 나머지는 나쁜 사람?
오항녕

전주대학교 인문대학 역사문화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조선시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곡서당(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을 공부했으며, 국가기록원 팀장으로 기록관리도 공부했다.

‘조선의 힘’(역사비평사), ‘기록한다는 것’(너머학교), ‘조선초기 성리학과 역사학’(고대 민연) 등 10여 편의 저·역서가 있으며, 그 외 논문 50여 편이 있다.


필자가 조사해보았더니 ‘선조실록’의 사론을 ‘선조수정실록’에서 수정한 인물이 40명인데, 위에서 보듯 대북인(大北人) 또는 편찬에 참여했던 사람 몇몇을 빼곤 모두 깎아내렸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편찬자 자신인 이이첨이 스스로 “영특하고 기개가 있었으며 간쟁하는 기품이 있었다”고 평가한 데 이르면 낯간지러운 점도 없지 않다. 기자헌에 대해, “과묵했으며 바르고 아부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과묵하고 아부하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방납(防納)을 하면서 대동법을 무력화했던 인물이고 보면 바르다는 평은 옳지 않은 듯하다.

또한 인간이라면 서인이나 남인, 소북인(小北人) 중에서도 능력 있고 존경받는 인물이 없을 리 없고, 또 누구나 장단점이 있는 것이 사람일진대, 원본에서 보여주는 대북인 정권 담당자들의 자찬과 배타성은 사실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이런 점 때문에 결국 실록 수정 논의가 제기되었고, 실록 수정의 명분이 그른 것이 아니었음을 ‘선조실록’ 자체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동아 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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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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