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세태 르포

피보다 진한 게 돈? 피 터지는 ‘錢의 전쟁’

상속 분쟁 급증!

  • 박은경 |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피보다 진한 게 돈? 피 터지는 ‘錢의 전쟁’

2/3
‘인지청구’는 혼인 외 출생자가 생부 또는 생모와의 사이에 친자관계가 성립됨을 가정법원에 확인해달라고 청구하는 것이다. ‘상속회복청구’는 상속인 자격 유무와 상관없이 다른 상속인의 상속재산을 침해한 사람(참칭상속인)을 상대로 상속인이 자신의 몫을 돌려줄 것을 청구하는 것. 피상속인의 증여 및 유증(유언으로 재산을 증여하는 것)으로 법률상 보장된 상속인의 상속재산 가액(유류분)이 침해됐을 때 부족분의 한도 내에서 ‘유류분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

유류분반환청구는 법정 상속분을 고려하지 않은 유증에 의해 상속이 이뤄질 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소송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유류분반환청구 접수 건수는 2010년 452건에서 2014년 811건으로 5년 사이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런데 평균 소송물가액(소송에서 목적이 된 물건이나 권리의 가격으로 원고가 청구한 금액)은 같은 기간 2억4305만2780원에서 1억1071만1093원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통해 아무리 작은 금액이라도 끝까지 받아내겠다는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늘었다는 얘기다.

오해, 불만, 거짓말

가족 간 소송을 불사하는 세태의 이면에는 경제적 어려움, 피상속인의 편애, 상속인 간의 해묵은 감정이 도사린 경우가 많다.

2남2녀 중 차남인 40대 후반 이모 씨는 아버지 사후 형제들 간에 상속재산분할이 원만히 이뤄지지 않자 두 여동생을 부추겨 큰형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자식들을 편애한 이씨의 아버지는 장남만 해외유학을 보내주고 병원까지 차려줬다. 아버지 생전에 가장 많은 재정 지원을 받은 큰형이 동생들에게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자 이씨는 큰형이 자신들 몰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더 있지 않을까 의심했다. 조카들에게 탄원서까지 쓰게 하며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이던 오누이들은 법원 조정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오해와 서운함이 쌓여 소송까지 이르게 됐음을 깨달으면서 상속재산 분배에 합의하고 2년 넘게 끌어온 소송을 끝냈다.



50대 후반 전모 씨는 형사고소를 고민 중이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공동상속으로 받은 땅을 오빠 2명이 가로챘기 때문이다. “토지 수용으로 인해 협의분할을 해야 된다”는 오빠들의 말에 아무 의심 없이 도장과 인감증명서를 내준 전씨는 한참 뒤 등기부등본을 뗐다가 공동상속을 받은 땅이 오빠 명의로 변경된 사실을 알았다. 전씨가 이를 따지자 두 오빠는 “조금만 기다리면 돈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차일피일 시간을 끌고 있다.

“차라리 재산을 안 남겼으면…”

상속분쟁이 급증하면서 법률사무소나 상담소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늘었다. 23년 전 재혼해 남편과 전처 사이의 두 딸을 기른 60대 초반 이모 씨는 지난해 가을 남편을 떠나보냈다. 장례식이 끝난 직후 큰딸이 아버지 명의의 통장을 달라고 하자 별생각 없이 내준 이씨는 이후 통장에서 7000만 원이 빠져나간 사실을 알았다. 딸이 자신과 상의하지도 않고 멋대로 남편 돈에 손을 대자 이씨는 두 달 전 변호사에게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상속분을 딸들로부터 지킬 수 있을지 문의했다.

유언장대로 아버지 재산의 3분의 2를 상속받은 40대 초반 권모 씨는 남동생들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안고 상담소를 찾은 경우다. 3남2녀의 장남인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10여 년을 모셨다. 여동생들은 내가 상속받은 재산에 대해 별 불만이 없었다. 반면 남동생들은 똑같은 아들인데 자신들이 차별받았다는 생각에 드러내놓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아무래도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 같아 법적인 문제를 점검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통계(서울본부 면접상담)에 따르면, 유언을 포함한 상속 관련 상담은 2010년 185건에서 2014년 1010건으로 크게 늘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재산상속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자녀들이 미리 자신의 상속분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상담소를 찾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자식들 간에 재산 다툼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 유언 절차, 법정 상속분 등을 알아보기도 한다. 피상속인이 남긴 빚 때문에 한정승인, 상속포기 같은 절차를 상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음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상담부장의 설명이다.

“과거엔 아들한테 재산을 더 줄 수 없겠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딸에게도 재산을 골고루 나눠주고 싶다는 노인이 많다. 아들·딸 구분 없이 못사는 자식, 평소 부모에게 잘하는 딸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식으로 상속에 대한 70~80대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호주제 폐지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반면 40~60대 아들들은 아직도 부모 재산을 자신들이 더 많이 갖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부모 재산은 전부 아들 몫’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모가 아무리 공평하게 재산을 나눠준다 해도 자식들은 서로 자기가 재산 형성에 더 크게 기여했다며 불만을 품고, 손해를 봤다면서 부모를 원망하고 싸우기도 한다. 부모가 재산 대신 빚을 남겨 상속포기, 한정승인을 받는 사람도 많은데 그나마 물려받을 재산이 있다면 행복한 경우다. 상담을 하다보면 ‘차라리 부모가 재산을 안 남겼으면…’ 싶을 때가 많다.”

신동윤 변호사는 ‘피보다 진한 게 돈’인 세태 변화를 이렇게 전했다.

“과거엔 상속재산 다툼으로 가족이 원고와 피고로 재판정에 서면 판사가 ‘형제끼리 이런 걸 법정까지 끌고 오느냐’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변호사들도 가족 간 싸움에 끼어들기를 꺼려 수임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상속재산 분배를 당연한 걸로 여기다보니 법정 분위기도 많이 변했다.”

판사 앞에서 형, 동생, 누나를 ‘××씨’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을 섞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법정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상속재산 분할 협의를 위해 조정위원들 앞에 있을 때도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붓고 울고 불며 난장판을 벌이는 광경이 종종 벌어진다. 김현진 변호사는 “소송이 시작되면 피상속인을 생전에 돌본 간병인, 치매 등의 진단을 내린 의사, 집안 어른 등이 줄줄이 증인으로 불려 나온다. 그 과정에서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나 어머니의 삶이 적나라하게 공개되기도 한다”며 안타까워 했다.

2/3
박은경 |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목록 닫기

피보다 진한 게 돈? 피 터지는 ‘錢의 전쟁’

댓글 창 닫기

2023/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