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호

담배 8000원? 국민은 ‘세금’에 저항하고 ‘경제’에 반응한다!

[봉달호 편의점 칼럼]바보야, 문제는 ‘먹고사니즘’이야

  • 봉달호 편의점주

    입력2021-06-3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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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시할 수 없는 흡연자의 표심

    • “박근혜는 담배 때문에 탄핵받았다”

    • 박정희 몰락의 경제적 이유, 부가가치세

    • 무당층은 내 주머니의 10원이 중요

    • 세금의 많고 적음 아니라 정당성을 묻다

    • ‘공정’ 이슈도 일종의 계급적 불만

    • 40~50대가 변심한 이유, 공시가격 인상

    • 세금을 징벌 수단처럼 생각

    1월 28일 대전 서구에 있는 한 편의점에 담배가 진열돼 있다. 전날 보건복지부는 향후 10년간 담배 건강증진부담금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까지 올린다는 계획을 밝혔다. [뉴스1]

    1월 28일 대전 서구에 있는 한 편의점에 담배가 진열돼 있다. 전날 보건복지부는 향후 10년간 담배 건강증진부담금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까지 올린다는 계획을 밝혔다. [뉴스1]

    편의점 점주들 사이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담배 때문에 탄핵당했다”는 말이다.

    2015년 1월, 박근혜 정부는 기존 2500원이던 담배 가격을 4500원으로 올렸다. 담배 가격 인상 계획이 있자 몇 개월 전부터 사재기 열풍이 불었고, 인상 차익을 노리고 일부러 담배를 팔지 않는 편의점 점주마저 있었다. 담배 가격이 인상된 날 손님들의 구겨진 표정은 편의점 업계 사람들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정치적 풍경 가운데 하나다. ‘내가 이놈의 정부에 어디 표를 주나 봐라’ 하는.

    상식적으로 정부가 통제하는 특정한 재화의 가격을 단박에 2배 가까이 올릴 생각을 감히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 감각이 떨어지고, 어떤 측면에서 ‘곧이곧대로’였으며, 조심성이 없었다는 증거 아닐까 싶다. 물론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사건 이후 누적된 국민의 불신, 잇따른 정책 혼선,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른바 국정 농단 사건이 기폭제가 돼 탄핵당했다. 하지만 급격한 담배 가격 인상도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 이유 가운데 하나이리라. 우리 국민의 흡연율은 조금씩 낮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성인 가운데 20%가량이 흡연자로 추정된다. 그 표심을 뒤흔든 것이다.

    朴 정부는 MB정부가 망가뜨렸다

    2014년 9월 11일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당대표실을 방문 최고위원회의 도중 정부의 담배가격 인상안을 보고하고 있다. [동아DB]

    2014년 9월 11일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당대표실을 방문 최고위원회의 도중 정부의 담배가격 인상안을 보고하고 있다. [동아DB]

    올해 초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담배값 8000원’이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로 떠올랐다. 앞서 1월 27일 보건복지부는 제2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통해 향후 10년 건강정책 방향과 과제를 담은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담배 건강증진부담금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OECD 평균 담배 가격은 7.36달러, 한국 돈으로 8190원쯤이다. 물론 이런 발표가 나온 탓도 있고(보건복지부는 항상 그런 내용의 계획안을 발표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 정부가 너무 많은 재정을 지출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담배 가격 인상을 시도할 것이라는 소문이 크게 번져 그랬다. 그 때문에 KT&G 주가가 일시적으로 오르기까지 했다. 오죽했으면 총리가 직접 나서 ‘그럴 일 없다’고 못 박을 정도로 민심은 요동쳤다.

    그런데 과연 담배 가격을 8000원으로 올릴 정부가 있을까. 박근혜 정부의 전철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간 큰’ 정부도 과격한 방식으로 담배 가격 인상을 단행하지는 못할 것이다.



    알다시피 담배는 좀 독특한 재화다. 앞에서 ‘박근혜 정부가 담배 가격을 인상했다’고 했는데 정확히 표현하자면 담배 가격은 담배회사에서 최종 결정하지 정부가 지시해 정해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어불성설인 것이, 담배에 포함된 각종 세금과 부담금만 70~80% 수준이다. 소비세, 교육세, 국민건강부담금, 폐기물 부담금, 부가가치세 등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 포함된 세금은 3000~3300원에 이른다. 정부에서 세금을 기존 2000원에서 3000원으로 올렸는데 어떻게 담배 가격을 2500원으로 유지한단 말인가. 흡연자들도 이런 사실을 다 안다. 그래서 흡연자들은 담배 가격 인상을 자신의 지출이 늘어나는 일이자 일종의 ‘세금 인상’으로 받아들인다. 게다가 그렇게 세 부담(?)을 늘리고도 흡연자에 대한 혜택은 없는 것 같으니, 아니 도리어 흡연자를 옥죄는 정책이 강화되고 있으니, 거기에 반발하는 것이다. 내 돈 내고 내가 산 담배로 세수에 기여하는데 왜 멸시까지 당해야 하느냐. 그렇게 의식의 기저에 쌓이고 쌓인 감정은 나중에 ‘정치’로 표출됐다.

    어쩌면 박근혜 정부는 좀 억울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지자면 이명박 정부에서 담배 가격을 한두 번 정도는 인상했어야 했다. 우리나라 담배 가격은 그동안 꾸준히 인상돼 왔지만 2015년처럼 급격히 오른 적은 드물다. 올리더라도 단계적으로 인상했다. 김영삼 정부 때 800원이던 담배 가격이 1300원으로 올랐지만 두 차례에 걸친 단계적 인상이었고, 김대중 정부에서 2000원으로 오른 것도 세 차례에 걸친 단계적 인상이었다. 담배 가격이 민심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기존 정부는 익히 알고 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담배 가격이 한 번 올랐다. 사실 노무현 정부도 한 차례 더 가격을 인상해 3000원 수준까지 맞춰놓고 다음 정부에 물려줬어야 했는데, 임기 말에 워낙 인기가 시들했던 탓인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흡연자라서 그러는가?’ 하는 세간의 농담까지 있었을 정도다. 이명박 정부는 더 문제가 커서, 임기 중에 한 번도 담배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임기 중에 세계적 금융위기가 있었고, 물가안정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담배를 비롯한 주요 소비재 가격을 통제한 것인데, 그 폭탄은 고스란히 박근혜 정부에 넘어갔다. 그리고 아둔한 박근혜 정부는 폭탄 심지에 곧이곧대로 불을 놓고 말았다.

    부가가치세 신설의 정치학

    정치는 이렇게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가 망가뜨렸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숨통을 틔워주는 구세주 역할을 하게 됐다. 2015년에 그렇게 가격을 대폭 인상하니까 담배 판매량은 20% 가량 줄었지만, 워낙 가격이 높으니 세수는 70% 늘었다. 2015년 이후 우리나라는 계속 초과 세수를 기록하고 있다. 거기에 담배가 기여하는 정도가 10~20%쯤 된다고 한다. 지금 코로나19 시국에 문재인 정부가 마음껏 재정을 휘두를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박근혜 정부가 거름이 되고 희생양이 돼준 탓이라고 사람들은 웃으면서 말한다. 동지가 나를 망치고, 적군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이 ‘정치’의 생리 아닐까. 정치뿐 아니라 세상과 인생사 많은 부분이 그렇다.

    역사도 참 아이러니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도 결국 세금 때문에 무너진 것 아닌가.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이유야 유신헌법을 비롯한 폭압 체제에서 정치적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경제적 배경을 살피자면 1970년대 말 오일쇼크와 함께 부가가치세 신설을 빠뜨릴 수 없다.

    박정희 정부는 1977년 7월 1일, 부가가치세 실시를 단행했다. 기존의 영업세, 물품세, 특별소비세 등을 망라해 대체하면서 ‘부가가치세’라는 새로운 세금을 도입한 것이다. 기존의 세금을 그저 이름만 바꾼 정도다. 복잡한 세제를 오히려 간소화한 것이다, 이렇게 아무리 정부에서 떠들어도 국민 눈에는 그저 ‘새로운 세금’의 등장으로만 보였다.

    ‘이대남’과 ‘이대녀’는 원만히 연애할까?

     4·7 재·보궐선거 다음 날 서울 종로구 동숭길 예술가의 집 앞에서 관계자들이 선거 벽보를 철거하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4·7 재·보궐선거 다음 날 서울 종로구 동숭길 예술가의 집 앞에서 관계자들이 선거 벽보를 철거하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박정희 정부가 부가가치세를 날림으로 도입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미 5~6년 전에 세제 개혁안이 입안됐고, 먼저 부가가치세를 도입한 국가들의 사례를 분석하며 국내외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했다. 오죽하면 시행 시기를 6개월 늦추면서까지 실무에도 만전을 기했다. 당시 부가가치세 도입이 적절했느냐, 우리나라 세무 행정 능력상 그런 세금을 운용할 능력을 갖췄느냐 하는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그 나름대로 꼼꼼한 답사와 준비 과정을 거친 셈이다. 사전 시뮬레이션과 대민(對民) 홍보도 철저히 했다.

    그럼에도 부가가치세 제도가 실시되자마자 커다란 역풍을 맞았다. 왜 그랬을까?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1979년 부마항쟁이 어디서 발생했는지 살펴보면 된다. 박정희 정부의 정치적 지지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시위가 촉발했다. 당시 그곳은 우리나라에서 상공업이 가장 발달한 지역이었다. 청년과 중산층이 폭넓게 거주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박정희 정부는 똑똑히 알고 있어야 했다.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역시 자기 아버지가 왜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 경제적 배경 또한 잊지 말았어야 했다.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세상 모든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은 ‘세금’에 저항한다. 국민은 ‘경제’에 무엇보다 먼저, 본능적이고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덧붙이자면, 박정희 정부를 몰락으로 몰고 간 부가가치세가 지금 우리나라 세수의 4분의 1 가량을 차지하는 ‘재정의 기둥’이 된 것도 어쩌면 역사의 아이러니다.)

    지난 4·7 재·보궐선거(재보선) 결과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형식적인 결과로는 야당이 압승했다. 그것을 흔히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고 해석한다. 맞는 말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여당에 180석을 몰아주고, 그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는 25개 구(區) 가운데 24개 구청장을 민주당에 몰아준 서울시민이 이번에는 야당인 국민의힘에 60% 가까운 지지를 보냈다. 이것을 ‘심판’이 아니고 다른 어떤 말로 대체할 수 있을까? 서울 민심은 전국 여론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민심은 정권의 무엇을 심판한 것일까? 무엇에 등을 돌리고, 무엇을 ‘고쳐달라’ 아우성쳤던 것일까?

    선거가 끝나고 ‘이대남’이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20대 남자’들이 문재인 정부에 가장 극적으로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 재보선에서 이대남은 72.5%가 야당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대남의 야당 지지율은 60대보다 높았다. 이 정도면 거의 몰표 수준.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화나게 만들었을까?

    게다가 똑같은 연령층인데 20대 여성들의 야당 지지율은 40% 수준이었다. 물론 보수 야당에 대한 ‘이대녀’들의 평소 지지도는 20% 안팎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이번 재보선에서 야당에 상당한 표를 던진 셈이지만, 어쨌든 20대 남성과 여성의 극단적인 정치적 차이가 화제가 됐다. 이렇게 달라서야 이대남과 이대녀는 원만한 연애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세상이 웃으며 걱정할 정도로.

    혹자는 이것을 ‘젠더 이슈’로 해석한다. 문재인 정부가 노골적(?) 페미니즘 정책을 펼쳐 20대 남자들의 반발을 샀고, 그것이 표심으로 분출됐다고. 물론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말이 나와 이야기하자면, 정치인도 그렇고, 정치권을 주로 취재하는 언론사 기자들도 그렇고, 정치평론가들은 물론이고, 정치에 관심 많은 소셜미디어 이용자들도 그렇고, 많은 것을 너무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 울타리 안에 있으니 국민이 정치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것 같고, 세상만사가 정치나 이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가까운 예로, 우리 편의점에 일하는 직원과 이야기하다가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고 있어 살짝 놀란 적이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무지해서가 아니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바쁜 민초들이 당대표가 무엇인지, 원내대표는 또 무엇인지, 알아 뭣 하겠는가.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한창 달구는 정치 이슈에 대해 말해도 “어? 그런 일이 있었어?”라고 되묻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것을 정치 무관심이라고만 탓하지 마시라. 이들이 바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30~40%를 차지하는 이른바 ‘무당층’을 의미하고, 여론조사에조차 응답하지 않는 ‘숨은 민심’을 상징하며, 선거는 결국 이들의 선택이 향방을 좌우해 왔다.

    무당층은 정치를 큰 흐름으로만 해석한다. 그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도만 알지 자세한 내막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데 무당층도 잊지 않고 꼭 기억하는 정치적(?) 순간이 있으니, 바로 ‘내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혹은 내 주머니 안으로 들어오는) 10원짜리 하나’이고,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라 생각하는 선거에서 대체로 그것은 선택의 기준이 된다. 강조컨대 국민이 ‘무식해’ 그런 것이 아니다. 삶이 고단하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일만 해도 벅차기 때문이다.

    겉은 ‘젠더’ 속은 ‘미래에 대한 불안’

    4월 28일 국토교통부는 올해 아파트 공시가격이 전국 평균 19.05%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4월 28일 국토교통부는 올해 아파트 공시가격이 전국 평균 19.05%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우리가 흔히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이슈도 헤아려 보면 경제적 배경을 깔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낙타들이 사막을 지나며 거대한 모래 먼지를 일으키는데, 그 먼지만 가리키면서 “저거다, 저것이 문제다!”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둔하거나, 다른 목적이 있거나, 둘 중 하나 아닐까.

    다시 주제로 돌아와 보자. 이대남이 정말 젠더 이슈 때문에 야당을 선택했을까? 물론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없지 않은’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젠더 이슈는 정말 남성이 여성에 비해 역차별받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런 역차별을 시정(?)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의학에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대체로 대증(對症)요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열 오르면 해열제 먹고, 상처가 쓰리고 아프면 진통제 먹고. 물론 그래서 증상은 다소 완화되겠지만, 과연 그것이 원인이고 해결책일까? 정치 또한 그렇다.

    겉으로 보았을 때 이대남의 불만은 ‘젠더’로 보이지만 사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몸통 아닐까 싶다. 그것이 모래 먼지를 일으켜 젠더로 이슈화되는 것뿐이다. 따라서 젠더 문제를 자꾸 언급하며 건드린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20대 남자들의 미래에 대한 특별한 불안과 불만을 해결하면 자연 돌아설 문제 아닐까 싶다. 결국 돈 문제, 집 문제, 직장 문제, 결혼 문제… 이른바 ‘먹고사니즘’인 것이다.

    먹고사니즘이 어디 이대남뿐일까. 지난 선거에 40~50대가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린 것은 대체로 아파트 공시가격 때문 아닐까 싶다. 공시가격이 오른다고 당장 집값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집값이 오른다고 당장 그것을 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판다 해도 ‘더 오른’ 다른 집을 사는 수밖에 없는데, 가진 것이라곤 단지 집 한 채밖에 없는 서민으로서는 ‘공시가격 인상 = 세금 인상’으로 다가올 따름이다.

    세금 가운데 가장 민감한 세금이 재산세다. 소득세야 대체로 급여나 수입에서 원천 징수되고 있으니 빠져나가는지조차 잘 모른다. 인상된다 해도 체감지수가 그리 높지 않다. 서민이 상속세나 양도세를 경험할 기회 또한 별로 없다. 그런데 재산세는 가정의 ‘살림’에서 직접 빠져나가는 돈이다. 게다가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10억 원 가까운 아파트를 갖고 있으면서 그깟 재산세 몇십만 원 올랐다고 뭘 그렇게 징징거리느냐 비아냥대는 사람마저 있지만, 국민은 세금의 많고 적음에 반응하는 게 아니다. 세금 자체에 저항하는 것이고, 그 ‘정당성’을 묻는 것이다.

    이대남의 지지? 그저 한낱 신기루

    차제에 이야기하자면 이 정부 사람들은 세금을 무슨 징벌 수단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무슨 일만 있으면 그저 “세금 왕창 부과해 통제하면 된다”는 식의 발언을 쉽게 내뱉는다. 부동산 문제도 그렇게 해결하려 든다. 필자가 배운 것이 없어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조세 이론 어디에 세금의 역할 가운데 ‘징벌적 효과’를 규정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세금은 결코 벌금이 아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국가관 자체가 대결적이고 폭력적이다 보니 세금도 그렇게 인식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 식의 안이하고 거친 대응으로 노무현 정부가 민심을 잃었고, 문재인 정부도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코로나19만 아니었으면 광화문광장이 서민들의 촛불로 연일 들썩이지 않았을까.

    국민은 경제에 반응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명제는 어느 시대, 어느 정권에나 유효하다. 아무리 정치가 요란해도 먹고살 만하면 국민은 여당을 밀어줬고, 아무리 특정한 정치세력이 민주-개혁-인권을 목 놓아 외쳐도 먹고살기 힘들면 국민은 표를 주지 않았다. 검찰개혁 백번 하면 뭐 하나. 선거에 이긴 세력은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겠지만 사실 국민은 그걸 보고 찍은 것이 아니다. 이것을 ‘국민 폄하’나 ‘정치 혐오’라 오해하지는 마시라. 그저 배부른 돼지를 만들라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경제 문제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공정’이라는 이슈도 따지고 보면 먹고살기 팍팍함으로부터 나오는 일종의 계급적 불만 아닐까.

    덧붙여 말하자. 이대남이 야당에 몰표를 줬다고 국민의힘이 좋아할 이유 또한 하등 없다. 앞선 선거에서 180석을 몰아준 유권자도 대한민국 국민, 이번 선거에 60%의 지지율을 야당에게 몰아준 유권자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똑같은 국민이 손바닥 뒤집듯 시기에 따라 전혀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그래서 선거는 어쩌면 도박과 같다지만, 평소 국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기 삶이 어떻게 영향받고 있는지 조용히 곁눈으로 봐오던 민심이 쌓이고 쌓여, 국민은 투표로 그 마음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심은 현명하고도 무섭다. 국민의힘에 대한 이대남의 지지? 그거 한낱 신기루일 따름이다.

    1년 후 봄날 치러질 대선도 ‘먹고사는’ 문제가 좌우하게 될 것이다. ‘조국의 시간’인지 떡국의 시간인지, 페미니즘인지 페르시아인지, 대다수 국민 눈에는 한낱 모래 먼지일 뿐이고 곁가지일 따름이다. ‘성(城, bourg)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즉 ‘부르주아지’들만 정치나 이념이 세상을 결정한다고 믿으며 으스댄다. ‘믿을 것이라곤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프롤레타리아의 어원이 바로 그것이다)’ 성 밖 프롤레타리아들의 현실적 먹고사니즘이 자신의 운명을 좌우하는 줄도 제대로 모르면서.

    #담배가격 #세금 #부가가치세 #공시가격 #이대남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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