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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 속 위기의 사랑’ 4

파괴, 흔들림, 환상… 상처 받은 남자의 일그러진 사랑

  • 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파괴, 흔들림, 환상… 상처 받은 남자의 일그러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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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 흔들림, 환상… 상처 받은 남자의 일그러진  사랑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닉은 헬레나에게 여러 번 마음을 고백하지만 그녀에게 닉은 소심하고 한심한 샌님에 지나지 않는다. 헬레나는 그의 마음을 거절할 뿐 아니라 조소하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사고를 당하고 만다. 실력 있는 외과의사인 닉은 여자의 사지를 절단해 집 안에 가둬둔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는 이른바 ‘말이 안 되는’, 혹은 윤리적으로 위험한 여러 가지 생각이 배치되어 있다. 가령 닉은 헬레나의 팔다리를 잘라내 살아 있는 토르소로 만들어버린다. 그녀는 그를 바라볼 수는 있지만 만지거나 저항할 수도 없고 게다가 달아날 수도 없다. 닉은 헬레나에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혀주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 그리고 창녀를 불러 섹스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닉이 헬레나에게 하는 행동은 남자들이 자신이 소유하고 싶은 여자에게 하고 싶은 도착적 충동의 축적물이라 할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상식적이고 도덕적인 슈퍼에고가 할 수 없는 리비도의 요구를 닉이 하는 셈이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에 드러나 있는 욕망은 여자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하는 것이다.

가두고 싶은 욕망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로 번역됐지만 ‘헬레나를 가두다(Boxing Helena)’라는 원제는 남자의 왜곡된 사랑을 훨씬 선명하게 보여준다. 남자는 자신이 당한 고통만큼을 돌려줌으로써 둘 사이 감정의 균형을 잡고자 한다. 의외로 사랑이란 자신이 가진 애정뿐 아니라 고통마저 공유하려 한다. ‘당신’을 사랑하면서 입은 자존심의 상처를 더 큰 상처를 통해 회복하고자 한다. 그것이 복수심이라 불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복수가 사랑의 반증인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혹은 변심한 여자에 대한 복수심은 사랑에 대해 평범한 기대를 가진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하지만 이는 사랑의 깊은 속내 중 하나다.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듯, 증오는 처분되지 않은 감정으로 인해 가열된다. 복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 증오가 무너뜨리는 대상이 실은 스스로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증오가 파괴하는 것은 사랑했던 상대가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이다. 상대방에 대한 증오는 대가로 자기 자신을 요구한다. 증오심은 쾌감을 키우는 뼈와 살이 아니라 자멸을 가속화하는 독으로 내면화한다. 캐서린의 유령에 시달리는 히스클리프, 여자를 괴롭히지만 결국 스스로 더 큰 아픔을 겪는 남자의 모습이 그렇다.

‘폭풍의 언덕’과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에는 도덕이나 윤리적 질서 너머에 있는 사랑이 그려져 있다.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사랑의 음울한 이면이 이 모순적 충동 속에 융해되어 있는 셈이다. 자기애를 뜻하는 나르시시즘은 사랑의 대가를 요구한다. 내가 상대를 사랑한다면 나르시시즘은 늘 그 이상을 돌려받기 원한다. 하지만 사랑이야말로 아무리 받아도 부족한 이상심리 아닐까. 증오로 뒤바뀐 사랑에 만족이 있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대를 객관적 타자로 상정한 사랑은 끝없이 외로운 여로다.

가두고 싶은 것, 어쩌면 사랑은 이 욕망과 뒤섞이곤 한다. 사랑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사랑은 달라지고 만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영생을 누리는 악마가 된 드라큘라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은 세상을 구원한다지만 한 사람의 영혼을 폐허로 만들 수도 있다. 누군가를 폐허로 만들 수도 있기에 사랑은 위대한 아이러니이며 역설인 것이다. 결국 목숨까지 앗아가야 만족하는 큐피드도 있다.

유혹을 기다리는 ‘남자’

김지운 감독, 이병헌 주연의 ‘달콤한 인생’은 바람에 흔들리는 수양버들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바람과 함께 화면은 점점 밝아진다. 그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다가온다.

“어떤 제자가 있었습니다. 제자는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흔들리는 것은 바람입니까, 나무입니까? 스승이 말하길, 지금 흔들리는 것은 바로 네 마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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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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