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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노래 속의 맹자 사상

仁義, 萬物一體, 與民同樂, 終身之憂…

  • 홍호표 동아일보 어린이동아팀장, 공연예술·커뮤니케이션학 박사 honghopyo@hanmail.net

조용필 노래 속의 맹자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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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노래 속의 맹자 사상
주인공은 ‘선택의 자유’와 ‘자유의 선택’을 놓고 고민한다. 주어진 수많은 재화 가운데 고를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재화의 과다에 관계없이 자유 자체를 찾는 ‘자유의 선택’을 할 것인가. ‘초라한 골목’에 쪼그리고 앉은 주인공은 결국 그리던 도시가 허상임을 깨닫는다. 원래 자유가 있던 고향, 즉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려는 ‘꿈’을 갖는다. ‘욕심의 꿈’이 ‘순정의 꿈’으로 바뀐 것이다. 이는 자유의 선택으로 나타난다.

자유의 선택은 맹자적인 것이다. 속박과 제한이 없는 자유란 천심(天心)이 현실에 두루 적용되는 상태다. 천심은 동심(童心)과 통한다. 동심이 살아 있는 곳은 고향이다. 고향은 측은지심이 절로 이는 곳이다. 고향을 선택하는 것은 마음의 자유를 선택한 것이다.

선택의 자유는 순자(荀子)적인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악으로 보는 순자적인 것은 이익의 조화를 꾀한다는 점에서 물질문명의 토대를 이루고 예(禮)로써 규격화한다. 순자적 선택이 하늘인 줄 알고 그 길을 걷던 주인공은 다시 맹자적 선택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희망의 종착지라 생각한 ‘도시’가 실제로는 욕심이 빚어낸 허상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서는 표현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고 하고,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뜨거운 눈물’과 ‘슬픈 노래’는 맺힌 마음의 표출이다. 그 한은 남을 원망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천심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발현된 것이다.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중화(中和), 천하의 근본인 중(中)이 중심이 되고 결과적으로 화(和)를 이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정(情)은 맹자적 바탕에서 발현된 것이다.

본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은 마지막 부분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에서 절정을 이룬다. 눈은 감각기관이다. 눈을 감으면 일단 시각이 멈춘다.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의 경우 논리적으로 고향의 향기를 ‘들을’ 수는 없다. 그것은 감각기관을 통해 듣는 것이 아니다. 감각기관이 생존에 필요한 기능 외에 불필요한 기능을 정지한 곳, 그곳에 바로 ‘고향’이 있고, 그게 바로 주인공이 돌아가기를 꿈꾸는 그곳이다.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조용필의 자작곡 ‘아이마미’는 ‘아름답고 이성적이고 마음씨 고운 미인’의 머리글자를 따서 붙인 제목이다. 꿈속에서 아이마미를 보고 깨어나 현실에서 아이마미를 찾고자 한다. ‘어둠 속에 있을까’ ‘꿈 속에나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이마미는 이상적인 여성일 수도 있고 이상향의 세계일 수도 있다.

아이마미는 꿈속에 있건, 어둠 속에 있건 ‘존재한다’. 여기서 어둠은 감각기관이 작동하는 현실이다. 잠든 상태에서 나타나는 꿈속은 감각기관과 의식의 작용이 멈춘 상태, 즉 존재와 존재자가 일치하는 상태를 상징한다. 의식이 일시 잠든 세계와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는 ‘차이’가 있다. 꿈속에는 있었는데 깨어보니 없다. 그런데 주인공은 꿈속의 현실인 ‘아이마미’를어둠의 현실에서 재현하려 하고 있다.

‘친구여’(하지영 작사, 이호준 작곡)는 떠나간 친구를 그리워하는 노래다. 친구는 어린 시절 친구일 수도 있고 함께 음악활동을 했던 동료일 수도 있다. ‘친구여’에서 ‘꿈’은 살아 있다. 살아 있는 것은 성(性)을 갖췄다.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꿈이 포근하게 잠들어 꿈꾸는 곳’이 하늘이다. 그 꿈은 더 이상 의식이 잠들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서의 꿈이 아니다. 깨어 있고 잠잘 수 있는 꿈, 즉 살아 있는 꿈이다. 꿈은 이제 생명을 지닌 현실의 일부로 만물일체에 들어온다.

하늘에서 잠자는 이 ‘꿈’은 성의 작용이 없다면 잠을 잘 수 없다. 현실에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곳은 어머니 품밖에 없다. 이 꿈이 미래의 꿈을 표현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어떤 경우에도 ‘꿈’은 생명을 갖는다. 그 꿈은 ‘내 몸’과 친구의 몸에 깃들어 있다. 친구가 현실에 같이 있을 때는 미래의 꿈이었지만, 친구가 가버린 상태에서는 하늘에서 ‘잠자고’ 있는 것이다.

가사는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로 이어진다. 잠들고 꿈을 꾸는 것은 성의 작용이지만 ‘추억’은 정(情)의 작용이고 의식 속에 쌓인다. ‘친구여’에서는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로 표현된다. 조용필식 ‘꿈’은 잠 잘 수 있지만, 의식은 흐를 수밖에 없다. 잠과 꿈은 작용을 멈출 수 없지만 의식의 작용은 멈출 수 있다. 정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인공은 ‘조용히 눈을’ 감아 시각을 정지하고 감각기관의 무화(無化)로 본성에 따라 ‘꿈’에 이르려 한다.

조용필의 히트곡에서 꿈은 현실에서의 꿈이고 현실은 꿈을 전제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현실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의 노래는 종교적 의미에서 현실과 분리된 내세가 아니라 바로 인간이 살고 있는 현세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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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호표 동아일보 어린이동아팀장, 공연예술·커뮤니케이션학 박사 honghop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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