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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칩 미술가 순례 ⑨

김동유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경계를 허물다

  • 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김동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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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란 전통적으로 현실의, 대상의 대체적 존재다. 요즘 들어서는 그림의 종류도 다양해져서 곳곳에 시뮬라크르(Simulacre)가 서 있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키치(Kitsch)가 원본을 대체하기도 한다. 복제가 복제를 낳는 원전 상실의 시대다. 재현되는 모든 것은 지난 시절의 회화보다 더 정교하게, 더 진짜처럼 만들어진다.

복제란 ‘재현’이라는 단어로 대체되기도 한다. 재현은 그림과 같은 것이다. 실체 또는 대상을 그림으로 그리면 그 실체를 대신하는 것이 되고 이것은 재현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우리는 재현된 세계, 복제의 세계 즉 가상현실로서의 그림을 만나는 것이다.

회화의 존재에 대한 회의는 인류 역사상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문제다. 그 문제를 그림을 통해 가장 명징하게 드러낸 이는 르네 마그리트다. 그가 그린 ‘두 개의 수수께끼(Two Mysteries)’를 보면 파이프가 그려져 있고 다시 파이프가 그려진 캔버스(canvas)가 이젤 위에 놓여 있다. 이젤 위의 그림에도 파이프가 그려져 있는데 다른 점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쓰여 있을 뿐이다.

그는 여기서 보이는 것은 실재하는 파이프가 아니라 단지 그림일 뿐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캔버스의 그림은 물감덩어리일 뿐이고 실제 파이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래서 재현된 그림 속 파이프는 ‘실재’ 파이프가 아닐뿐더러, 그림 속 그림의 파이프가 아니라고 적힌 파이프도 파이프가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기존의 감각과 지식으로 부재하는 파이프의 외피를 보면서 실재하는 파이프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마그리트 유의 미술에 대한 회의와 의문은 시각예술의 진화와 변화에 적잖이 반영됐다.



김동유의 회화도 마그리트처럼 그림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했다. 그의 초기 작업은 매우 사실적인 눈속임 회화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의 초기 작업은 이미지를 채집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상적인 레코드 재킷이나 통속적인 성냥갑 등 조악한 도안과 원색의 컬러로 빛나는 디자인(?)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제작해왔다.

진짜와 가짜

유치하고 알록달록한 색채로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을 선택한 것은 미술이 갖는 사전적 의미의 숭고함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사람 냄새 나는 일상적인 물건들을 통해 미술의 영역을 고상하고 숭고한 곳으로부터 끌어내리려는 시도였다.

김동유

대나무숲. 53×45.5cm, silkscreen on canvas, 2004

그의 초기 작업은 회화의 재현적 의미를 부정하고 제거하는 것이었다. 1989년 첫 개인전에서 그는 회화적 이미지를 사진적 이미지로 대체하면서 그 이미지를 부정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대상과의 관계에서 유사성과 닮음 그리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이미지의 독특한 시각 현상들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는 사진 콜라주된 얼굴 이미지와 비교적 단순하게 그려졌지만 착시현상에 의해 대상의 특징을 잘 살린 그려진 얼굴들을 병치시켰다. 허상으로서의 그림을 보여주고자 애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얼굴은 이중초상화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의 이런 회화에 대한 반어법적 태도는 방법을 달리하면서도 지속된다. 1990년대 초 대학원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기 전에 ‘3개의 팔레트’를 제작한다. 팔레트를 찍어서 퍼즐처럼 하나의 팔레트로 만든 이미지와 실재 팔레트, 그리고 그려진 팔레트 등 3개의 이미지를 병치시켜 어느 것을 팔레트라고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실 그의 사진 이미지 조합과 기법의 차용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몰두했던 사진작업과 연관이 있다. 그는 사진을 매개로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보는 방식’에 대한 실험을 했고, 그것들을 사진·회화·디자인에 적용하는 일에 몰두했다. 이런 태도는 현대미술의 불모지인 대전의 한 청년에게는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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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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