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문창극도 골든타임 놓쳐

  • 정해윤│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4-07-18 17: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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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극은 ‘최초의 언론인 출신 총리’가 될 뻔했다. 요즘 신문 산업도 어렵고 방송 광고도 정체 상태다. ‘한국의 저널리스트는 그 공공적 역할에 비해 처우나 위상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문창극 총리 발탁은 직업인으로서 기자 직군에 남달리 받아들여진 측면도 있다. 몇몇 언론사의 간부급 기자들은 사석에서 “문 선배가 총리가 되면 기자 일에 대한 사회적 평가도 달라지고, 나쁠 게 없지 않으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후배가 선배 끌어내려

    결과적으로, 문창극은 후배 기자들의 손에 의해 총리 자리에서 끌려 내려왔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관피아’니 ‘법피아’니 ‘철피아’니 하는 전관예우가 기승을 부린다. 언론계엔 이런 게 눈곱만큼도 없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이번에 확인된 셈이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자는 ‘선후배 으리’를 내세워 기자 출신 고위 공직 후보자의 부조리를 눈감아줘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자신과 이념적 성향이 다른 선배라는 이유로 편파적으로 비난해서도 안 된다.

    진보-보수로 양분되어 서로 으르렁대는 살벌한 우리 언론계 지형에서 선배 기자에 대한 인간적 배려를 기대하는 건 애초 무리였다. 다만, 언론은 누군가를 비판할 때 공정한 태도를 견지해야 하고 반론권을 보장해주어야 하며 해당 비판 기사에 불리한 증거를 고의로 누락해선 안 된다. 이것은 저널리즘의 기본에 해당한다. 그러나 문창극 관련 보도에서 이런 기본이 지켜졌는지 지극히 의문이다.



    문창극 낙마는 인터넷에 공개된 문 후보자의 교회 강연을 KBS가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6월 11일 ‘뉴스 9’에서 최영철 앵커는 “오늘 9시 뉴스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검증 보도로 시작합니다. 교회 장로인 문창극 후보자가 교회 강연에서 일제의 식민 지배와 이어진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란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라고 오프닝 멘트를 했다. 이 멘트만 봐도 KBS 기사의 일방적 프레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어진 기사도 ‘문창극은 친일파’라는 프레임에 부합하는 발언 내용 위주로 편집해 내보냈다.

    말기 암에 걸린 기독교 신도가 “내 병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며 삶을 더 진지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본다. 신학적(神學的) 논리 체계는 이성적 논리 체계와 다르다. 종교에서 하나님은 만물을 주재하는 절대자다. 따라서 모든 불행과 고난을 하나님의 의지로 돌리는 논법이 어느 정도 용인된다. 문창극 측은 적어도 이렇게 반론을 펼 수 있다.

    KBS에 소개되지 않은 문창극의 연설 내용을 보면 그가 이런 취지로 연설한 측면이 있다.

    “우리 민족에게 고난을 주신 것도,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민족을 단련시키기 위해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고난을 주신 다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번 길을 열어주셨어요, 중요 시기마다. 그럼 길을 왜 열어주셨느냐?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이 나라를 써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길을 열어주신 겁니다.”

    그러나 영향력 1위 매체 KBS는 문창극에게 유리한 연설 내용, 논리, 반론을 쏙 빼고 보도했다. 이후 진보 성향 언론들은 KBS가 만든 ‘문창극 친일파’ 프레임에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문창극 후보가 서울대 강의에서 ‘위안부 문제로 일본에 사과받지 않아도 된다’고 발언했다”는 후속 보도가 이어졌다. 이 발언의 경우, 심지어 동영상이나 녹취록도 없으므로 실제 맥락을 파악하는 데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언론은 친일 1탄, 2탄 이렇게 취급하며 몰아갔다.

    골든타임은 조난 상황뿐 아니라 왜곡된 정보가 확산되는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복잡계 과학자들은 “정보의 확산은 임계점을 지나면서 거듭제곱의 법칙으로 빠르게 진행된다”고 주장한다. 최선의 방법은 사태 초기에 즉각 대응하는 것이다.

    문창극은 친일파 낙인의 무시무시함을 간과했는지 “청문회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대통령과 여당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확실해진 시점에야 절박하게 해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태를 되돌릴 수 없었고 불명예스럽게 사퇴하고 말았다.

    MBC는 문창극 강연 동영상 전체를 보여주며 시청자에게 판단할 기회를 제공했다. 동아일보 김순덕 칼럼은 KBS 보도의 윤리적 문제점을 조목조목 입증했다. 아직 자정 기능이 작동한다는 방증이었다. 그러나 JTBC의 뉴스는 별 설득력 없는 근거들을 들이대며 모기업인 중앙일보 출신 문창극 저격에 열을 올렸다. 동료의 정도, 직업적 윤리도 사라져가는 우리 언론의 자화상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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