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호

Interview

“나부터 ‘음란마귀’ 씌어야”

저예산 에로영화 ‘달인’ 공자관 감독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16-11-09 13: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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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40~50대 남성은 기억하리라.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욕망과 현실의 불일치로 마냥 고달프고 번민하던 시절. 발랑 까지지도, 시대의 아픔을 한껏 사유하지도 못한 얼치기 청춘들에게 몇 안 되는 해방구 중 하나가 ‘에로비디오’였음을.

    1990년대~2000년대 초반. 후줄근한 ‘추리닝’ 바람으로 찾던, 살림집을 겸한 자그마한 동네 비디오 대여점. 젊은 여주인이 “신작 테이프니까 빨리 반납해”라고 성마르게 재촉이라도 하면 낯이 확확 달아오르던 기억. 혹여 ‘취향’을 들킬까, 별반 보고 싶지 않은 영화까지 섞어 ‘1(일반영화)+1(에로영화)’ 혹은 ‘2+1’으로 빌리기도 하고, 연체료 독촉을 우려해 부랴부랴 몰아보던 경험이 있을 터.

    그러다 막강한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다. 화양연화(花樣年華)의 한 시대를 풍미한 비디오 대여시장은 2000년대 중반 무렵부터 쇠락했다. 인터넷이 PC통신을, 빵집이 쌀집을 밀어냈듯. 자연스럽게 한국 에로영화계도 2005년 이후 시장 자체가 전멸하다시피 했다.



    ‘약 빤’ 영화

    그러나 욕망은 본래 ‘아날로그적’일 수밖에 없다. 조금 촌스러워도 따스함을 되새김질케 하는 작금의 ‘복고’ 바람이 정보기술(IT)의 급속한 발달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동(反動)이듯. 그래서일까. 비디오 대여점을 ‘폭망’케 한 인터넷TV(IPTV)·케이블TV의 주문형 비디오(VOD) 시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에로영화의 부활을 알린다. 고예산 상업영화가 스크린을 통해 각광받는 한켠에서 19금(禁) 저예산 에로영화가 최근 2~3년 새 ‘안방극장’을 달구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린다.

    그 중심에 공자관(40) 감독이 있다. 공 감독은 2013년 개봉작 ‘젊은 엄마’를 통해 에로영화계 스타 감독으로 떠오른 데 이어, 지난해 11월 발표한 ‘친구 엄마’로 저예산 에로영화의 핑크빛 약진을 이끌고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밀크픽처스’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11월 말 개봉 예정인 ‘특이점이 온 영화’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밀크픽처스는 지난해 설립한 자신의 제작사다.

    ▼ 작품 제목부터 ‘특이’하다.

    “‘약 빨았다’와 비슷한 뜻이다. 요즘은 그걸 ‘특이점이 온다’는 인터넷상 은어로 표현한다. 영화는 3부짜리 옴니버스 형식이다. 가끔 극장판도 내는 일본 판타지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를 떠올리면 된다. 미국이라면 ‘환상특급’ 같은. 1화에서 SM(사디즘과 마조히즘)과 스와핑(파트너 교환 성행위), 2화에선 퀴어(성소수자를 포괄하는 뜻), 3화는 패륜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공 감독의 이름 또한 특이하다. ‘아들 자(子)’, ‘벼슬 관(官).’ 가명이나 예명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본명이다.

    서울 태생인 그는 단국대 연극영화과(95학번) 출신. 4학년 때인 2001년 에로영화 전문 제작사 (주)클릭영화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1년가량 조감독 노릇을 하다 이듬해 7월 ‘위험한 연극’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같은 해 잇따라 선보인 ‘야망’ ‘깃발을 꽂으며’까지 에로비디오 한 편당 3000~4000장의 판매 실적을 냈다. 평균치를 넘는 실적이지만 2003년 10월 퇴사했다.

    “에로영화계가 몰락하고 있었다. 입사 당시엔 비디오 한 편당 1만 장씩 팔려 ‘대박’을 쳤는데, 퇴사 무렵엔 1000~2000장이 고작이었다. 사무실에 나와도 할 일 없는 날이 많아 회사 분위기도 나른했다.”



    “도제식 시스템 싫었다”

    ▼ 영화학도로서 충무로 진출은 꿈꾸지 않았나.

    “거기서 감독 ‘입봉’을 하려면 연출부 막내로 들어가 한 감독 밑에서 10년가량 연출부·조감독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런 도제식 시스템이 싫었다. 바로 연출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게 클릭영화사다. 좀 자만했던 것 같긴 하다.”

    그러나 할 일이 마땅치 않은 건 퇴사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닥치는 대로 일하며 ‘연명’하는 프리랜서 생활의 연속.

    “손가락 빨 순 없지 않나. 영상과 무관한 일도 했다. 일당 5만 원짜리 아파트 소독, 주차장 청소 일로 월 60만~70만 원 번 적도 있다. 딱 교통비와 휴대전화 요금 충당할 정도. 게임산업이 성장할 땐 성인 게임용 실사영상을 찍는 등 각종 성인 콘텐츠도 만들었다. 모 감독이 그러더라. ‘넌 그때 (물만 주면 살아가는) 선인장처럼 버텼다’고.”

    그렇게 4년을 보낸 공 감독이 기성 제작사 청년필름(주)을 통해 2007년 가을 내놓은 작품이 코믹 에로물 ‘색화동’이다. 에로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처한 현실과 애환을 자전적 스토리에 담아 그려냈다. 개봉 전인 2006년 말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됐고 전국 7개관에서 스크린 상영도 했지만, 흥행엔 재미를 못 봤다. 그때 공 감독은 깊은 상념에 빠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나를 찾는 건 에로영화를 원하기 때문 아닌가, 근데 왜 날 찾지 않지? 영화란 게 절대 쉽지 않구나…그런 자문자답을 해가며 영화인으로서의 능력, 영화와 연출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영화적 자양분은 TV”

    ▼ ‘공자관표 영화’의 연출 원칙은.

    “정해놓고 하진 않는다. 다만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지 결과론적으로 볼 때, 쉽게 하면 결과도 볼품없고, 좀 더 수준 높은 걸 추구하면 결과 또한 수준이 높더라. 관객은 그걸 귀신같이 알아챈다. 이건 경험칙이다. 에로영화는 여배우의 미모와 보여주는 강도 면에서 하드코어 포르노와 경쟁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가짜 섹스인 데다, 음모(陰毛)조차 보여서는  안 되니까. 그래서 현실에 발붙인 설정을 해야 관객이 공감한다. 그런데도 파격적 설정만 있고 개연성과 스토리의 완성도는 턱없이 떨어지니까 한국 에로영화 수준이 낮다고 비판받는다. 대다수 연출자가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려는 진취적 노력보다 어떻게 하면 돈 좀 만질까, 비즈니스에만 빠져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근작 5편과 ‘특이점이 온 영화’의 시나리오를 작가와 공동으로, 혹은 혼자서 직접 썼다.”

    공 감독이 지금껏 연출한 작품은 비디오와 개봉 영화를 합쳐 18편이다.

    ▼ 작품 대다수가 곧장 IPTV행(行)이니 서운할 때도 있겠다.


    “전혀. 에로영화계에서 일하면서 내가 TV용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확실히 가졌다. 내 영화적 자양분은 거의 어린 시절 이불 덮고 누워 가족과 함께 본 ‘주말의 명화’ ‘토요명화’에서 접한 작품들이다. 그래선지 꼭 스크린 상영용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 저예산 에로영화의 제작비는 보통 어느 정도인가.

    “높았다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 2016년 현재 홍보·마케팅비를 포함해 편당 1억 원이 채 안 든다.”

    ▼ 제작기간은.

    “내 경우엔 3개월쯤. 프리 프로덕션에 한 달 반, 촬영 2주, 후반 작업에 한 달쯤 걸린다. 다른 감독은 한 달 내지 한 달 반 만에도 제작하더라.”



    영등위의 ‘문제아’

    ▼ 편당 수익은.

    “수익 나면 3000만~4000만 원. 못 내면 ‘똔똔’ 혹은 1000만~2000만 원쯤 적자다.”

    ▼ 배우들의 출연료는.

    “주연 여배우의 경우 많으면 편당 3000만 원대, 적으면 1000만 원대 초중반. 남자 배우는 그보다 낮다.”

    ▼ 작품 소재와 아이디어는 어디서 찾나.

    “시류에 편승하거나 역행한다. ‘엄마’ ‘젊은’이 많으면 거기서 탈피하고, ‘엄마 시리즈’가 유행이면 되레 그걸 해보자고 할 수도 있고. 인터넷 서핑도 자주 한다. 언론 보도에서부터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다른 이들의 생각을 많이 읽으려 한다.”

    ▼ 캐스팅은 어떻게 하나.

    “‘특이점이 온 영화’에선 성인물 연기 전문배우들을 썼다. ‘친구 엄마’ 땐 ‘신삥’들을 썼고. 통상 캐스팅은 배우 섭외 전문 매니저에게서 소개받는 방식을 취한다. 근데 요즘 관객은 늘 새로운 여배우가 벗길 원한다. 예전과 달리 특정 여배우에 대한 팬덤 문화가 형성되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부 여배우가 ‘나는 출연하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했다’ ‘속아서 했다’는 식으로 여러 매체를 통해 질질 짜면서 변명하는, 잘못된 선례를 남겨서다. 마치 어릴 때 사창가로 끌려가서 일하다 빠져나온 듯이. 이러니 신인 캐스팅이 몹시 힘들다. 물론 그들이 얼토당토않은 변명을 하게 만든 왜곡된 사회구조가 더 문제다. 뒤에선 할 짓, 못할 짓 다 하면서 앞에선 성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행태 말이다. 정말 우리 모두 한번 탈탈 털어볼까….”

    ▼ 촬영 현장에선 요즘도 ‘공사’(남녀 배우의 신체 주요 부위를 스타킹이나 살색 테이프로 가리는 것)를 하나.

    “지금도 똑같다. 가짜로 하는 거니 공사를 안 할 순 없다. ‘특이점이 온 영화’의 경우 좀 세게 찍었는데, 남자배우가 발기하기도 했다.”

    ▼ 심의 문제로 영등위와 승강이가 적잖았을 듯하다.

    “대다수 연출자는 고분고분한데, 난 뭔가 시도를 많이 하니까. 음부와 음모가 노출되면 안 된다는 등급 심사규정에선 벗어나지 않되 ‘에코(eco) 에로’를 만들어보자며 배우들 주요 부위에 자몽, 멜론, 수박 등을 가져다두고 애무하는 신을 넣었다. ‘달콤해’ ‘맛있어’라는 애드리브가 절로 나오더라. 얼마나 자연친화적인가.

    그런데 ‘제한상영가’를 주더라. 기껏 머리 쓰고 돈 들여 만들었는데 그렇게 하면 열 받는다. 성인들 보라고 만들었는데, ‘청소년이 볼까 봐 우려된다’는 얘기는 왜 하나. 한때 영등위원장 면담 요청 공문을 보낸 적도 있다. 영등위한텐 내가 문제아지.”

    공 감독은 클릭영화사 시절, 경찰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여중생 사건에 울분을 느낀 한국 청년이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외치며 주한미군 사령관과 부시 대통령의 부인을 몸으로 사로잡아 자신에게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든다는 내용의 ‘깃발을 꽂으며’를 제작할 때 주한미군 측이 유감 성명을 냈기 때문. 물론 해프닝으로 끝났다. 



    ‘유교 탈레반’ 국가

    ▼ 공 감독의 페이스북을 보면 세상사에 대해 시니컬한 태도가 묻어난다.

    “환경 문제에선 더 그렇다. 내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엄청 깐다. 인천 계양구 경인 아라뱃길 인근에 집이 있는데, 여름에 물이 얼마나 더러운지…4대강 사업도 완전 실패작이라고 본다.”

    ▼ 에로영화계 밖으로 진출하고픈 생각은.

    “수평적으로 왔다 갔다 하고 싶다. 고예산 상업영화 연출 제안이 들어오면 맡을 수도 있다. 근데 아마 그런 제안이 오더라도 제작자가 내게 원하는 건 에로적인 영화일 거다. ‘간신’이나 ‘인간중독’ 같은 유. 물론 에로적 정서가 없는 스릴러나 코믹 영화를 연출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다시 저예산 에로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물 흘러가듯.”

    ▼ 롤모델이라 할 만한 감독이 있나.

    “글쎄…김기덕 감독? 저예산이라서(웃음). 같은 저예산이라도 홍상수 감독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김 감독 작품이 짐승 같은 본성의 영화라면, 홍 감독 작품은 선비 같다. 내 취향은 전자 쪽이다,”

    ▼ 그 선비 같은 홍 감독이 배우 김민희와 염문이….

    “아니, 한참 어리고 예쁜 여자가 사귀자는데, 안 넘어갈 남자가 어디 있나. 부럽구먼.”

    ▼ 연출자이자 경영자로서 목표와 포부는.

    “밀크픽처스가 콘텐츠 제작사로서 나름의 브랜드와 정체성을 지니고, 그 자산가치를 인정받아 코스닥 상장까지 가능한 회사로 일구는 게 경영자로서의 목표다. 연출자로선 밀크픽처스를 성인 종합엔터테인먼트그룹으로 키우고 싶다. 영상뿐 아니라 가십이건, 야설이건 직접 생산한 성인 콘텐츠를 공급하는 거다. 결국 포르노를 합법화, 양성화, 산업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해진다. 그걸 허용하지 않는 ‘유교 탈레반’ 국가다 보니 여기저기서 ‘몰카’나 찍어대고, 지검장이란 사람이 길거리에서 자위행위까지 하는 거지.”

    파격적 설정만으로 보면, 공 감독의 영화는 ‘막장’이란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그런데 말이다. 세상엔 ‘막장 영화’보다도 더한 실화가 넘쳐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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