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호

프리츠커 프로젝트

가회동성당

‘수평적 친교’와 ‘수직적 신성’ 스며든 화이부동의 공간

  • 글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사진 · 지호영 기자 f3young@donga.com

    입력2017-02-21 17: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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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 57
    ● 완공 2013년 11월
    ● 수상 2014년 한국건축문화대상 국무총리상,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과 시민공감건축상, 대한민국한옥공모전 올해의 한옥상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1막과 2막 서두를 장식하는 ‘대성당들의 시대’는 이렇게 노래한다. 대성당들은 별에 닿기를 원했던 인간의 역사를 유리와 돌에 새긴 것이라고. 사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이전 중세의 대성당들은 ‘돌에 새겨진 백과사전’이었다. 종교의 차원을 뛰어넘어 예술과 과학의 총화였다. 그리고 근대 이후 그 성당들은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서구적 풍경의 핵심 요소가 됐다.


    가수 비와 배우 김태희의 결혼식장으로 화제에 오른 가회동 성당은 성당에 대한 이런 통념에 도전한다. 양편으로 한옥이 즐비한 북촌길 한쪽에 위치하지만 사실 건물만 보면 성당임을 알아채기 힘들다. 성당이나 교회당 하면 떠오르는 십자가도 금방 눈에 띄질 않는다. 길가를 지나치는 사람들 첫눈에 띄는 건물은 기와 담장으로 둘러싸인 단아한 기와집으로 외부 손님을 맞는 사랑채다. 북촌 하면 떠오르는 한옥을 건물 전면에 배치해 이곳을 오가는 무수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품에 안아준다.



    오르막길에 세워진 성당 정문을 거쳐 그 사랑채 안마당에 들어서야 비로소 성당의 진면목이 눈에 들어온다. 지붕 꼭대기에 작은 십자가를 단 사제관과 그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선 성전이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단층으로 구성된 목조 한옥 공간이 ㄴ자 형태, 지상 3층의 석조 양옥이 ㄱ자 형태를 이룬다. 그래서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를 이룬다.



    성당의 전경(前景)이 나무로 이뤄진 전통적이고 수평적인 친교(親交)의 공간이라면 후경(後景)은 돌로 이뤄진 현대적이고 수직적인 신성(神聖)의 공간이다. 그렇다고 둘이 딱 부러지게 나뉘는 것은 아니다. 돌을 깔아놓은 안마당에서 현대적 신성의 공간에 들어서려면 22단의 돌계단(성지마당)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반대로 전통적 친교의 공간에 들어서려면 섬돌 하나 위로 올라서면 된다. 그렇게 안마당이 태극이 되어 휘돌면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가치를 실현한다.

    이는 성전 옥상에 목조바닥을 깐 ‘하늘마당’에서 다시 확인된다. 수직적 신성의 공간에서 다시 수평적 한옥의 숲이 회오리치는 풍광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북촌 8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 공간이 주변 민원으로 이곳에서 결혼하는 신랑 신부 등 제한된 사람에게만 공개되는 점은 못내 아쉽다).



    이런 스밈의 미학은 건물 도처에서 발견된다. 돌계단과 만나는 성전 외부와 성전 내부는 한옥과 공명하는 목재로 지어졌다. 한옥 돌담의 벽돌 구조는 성전과 사제관의 전체 벽면 구조에 은은히 반영됐다. 성전 출입문 역시 한옥 대문 구조를 본떴다. 한옥 사랑채 한구석을 지키고 있는, 최초의 한국인 신부 김대건 동상은 갓과 도포 차림이다.


    북촌은 한국에서 첫 미사가 이뤄진 공간이다. 1794년 조선에 입국한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그해 부활절(4월 5일)에 역관 최인길의 집에서 조선인 신도를 모아서 최초의 정식 미사를 봉헌했다. 이듬해 주문모 신부 수배령이 내려지자 신부 복장을 하고 대신 잡혀간 최인길 등 3명이 순교하는 을묘박해가 발생한다. 그 6년 뒤 신유박해 때 주문모 신부와 그를 숨겨주며 평신도회장으로 활약했던 강완숙 등 7명이 순교한다. 북촌 일대의 이들 순교자 10명은 2015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한 124위의 ‘복자’(福者·성인 다음 반열에 오르는 ‘공경할 만한 신도’를 일컫는 가톨릭 용어)에 포함됐다.



    이로 인해 가회동 성당은 가톨릭 성지순례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에 맞춰 신축된 성당은 신도, 순례객, 관광객이라는 3차원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설계를 맡은 건축사무소 오퍼스의 우대성 대표의 말이다. “작은 필지의 한옥이 옹기종기 모인 북촌에서 부지가 1100평이나 되는 성당은 자칫 주변을 압도할 수 있기에 그 존재를 너무 드러내선 안 된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변과 어울리면서도 외부 손님을 맞을 수 있는 사랑채 공간을 앞세우고 신도들의 공간을 뒤로 돌렸습니다. 또 각종 부대시설을 지하화하기 위해 화강암 암반을 깎느라 상당한 출혈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가회동 성당은 그런 배려와 겸손의 실천을 통해 ‘나무와 돌에 새겨진 역사책’이 됐고 은근과 끈기의 신앙이 스며든 한국적 풍경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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