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호

美 MBA 필독서 ‘프라이싱 전략’ 저자 박사 존 호건

“한국 제품 제값 받으려면 ‘마인드 게임’부터 배워라”

  • 조인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ij1999@donga.com

    입력2007-01-08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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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와 공급, 비용과 마진이라는 전통적 가격 산출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대의 트렌드와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복합적으로 읽어내는 기술, 차별화된 독점 상품이라도 상황에 따라 가격을 낮춰 공급할 수 있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요즘 글로벌 기업들은 ‘CPO(가격결정 전담임원)’까지 둔다는데….
    美 MBA 필독서 ‘프라이싱 전략’ 저자 박사 존 호건
    ‘프라이싱(Pricing) 전략’, 다시 말해 ‘가격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는 예나 지금이나 기업의 매출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다만 예전에는 수익 달성 목표를 정해놓고 그에 맞춰 ‘하부구조’인 가격을 정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 글로벌 기업들의 가격책정과정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예전보다 심리적인 요소가 많이 반영된 측면이 크다. 예를 들어 1000만원짜리 TV는 거들떠보지 않다가도 990만원으로 가격을 낮추면 손님의 발걸음이 늘어나는 백화점 전자매장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한국 기업들의 가격정책은 상품 수준이 업그레이드된 데 비해서는, 아직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지는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는 물론, 몇몇 고가 제품이 라인업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디지털기기의 가격 사정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세계적인 가격전략 전문가로 손꼽히는 미국의 존 호건(John Hogan) 박사를 만나 기업의 가격정책에 관한 최신이론, 점점 커지고 있는 가격전략수립의 중요성, 한국 기업들의 가격정책에 대한 조언 등을 들어봤다. 현재 전략 컨설팅사 모니터그룹 계열사인 SPG(Strategic Pricing Group)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인 그는 그동안 컬럼비아대, 시카고대, 보스턴칼리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마케팅과 가격전략 과목을 가르쳤다.

    1987년 그가 현 SPG 사장 토마스 네이글 박사와 함께 펴낸 책 ‘프라이싱 전략(The Strategy and Tactics of Pricing)’은 지난 20년간 미국 유명 경영대학원의 필수교재로 채택돼왔다. 지금까지 4번의 개정판을 찍었는데, 최근 찍은 4판은 모니터그룹 한국본사의 송기홍 부사장과 공저(共著)한 것이다. 호건 박사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출신인 송 부사장의 도움에 힘입어 한국 기업 가격정책에 관한 케이스 스터디에도 밝은 편이라고 한다.

    한국산, 아직 상대적으로 저가



    ▼ 한국 기업 얘기부터 해보죠. 현대자동차가 미국시장에서 지금보다 선전하려면 먼저 차의 수준에 걸맞은 ‘제값’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요.

    “한국에서 현대차는 고가 이미지가 강하지만 미국시장에서는 약간 애매한 상태입니다. 전반적으로는 경쟁 차종인 일본차의 비슷한 모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요. 지금 인기를 끌고 있는 장기 품질보증, 즉 10년 10만마일 무상 애프터 서비스 정책도 장기화하면 수익성을 침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도요타의 렉서스처럼 프리미엄 브랜드만 론칭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프리미엄 마켓도 이미 덩치가 커져버렸어요. 미국 전역으로 서비스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만도 엄청난 돈이 들어갈 겁니다.

    현대의 품질은 이미 정상급이에요. 전반적인 가격을 제품수준에 맞게 높여 받으려면 20년 전 첫 미국시장에 진출할 때 심어준 중저가 이미지를 빨리 없애야 합니다. 이를 위해 생각해볼 만한 것이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품)’입니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동원해봅시다. 대도시에 몇 개의 매장을 열어 화려하고 우수한 제품만 만들어 판매하는 겁니다. 매장 판매부터 서비스까지 모두 멤버십으로만 이용하도록 하면 비록 판매대수는 수천대에 불과하더라도 전체 브랜드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게 커질 수 있어요.”

    ▼ 디지털 가전 등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이미 고가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삼성이나 LG가 유럽이나 중국시장을 공략할 때 일부 기종의 휴대전화나 LCD TV를 고가에 팔면서 수익률을 올린 사례는 많아요. 하지만 이것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진정한 의미의 프리미엄 프라이싱 전략과는 다소 거리가 있죠. 프리미엄급뿐 아니라 엔트리(초기 진입), 매스(중기 대량생산) 단계의 모델에서도 상황은 비슷해요. 한국 제품들은 각 단계 안에서만 놓고 보면 아직도 상대적으로 싸다고 평가받습니다.

    가령 60인치 PDP TV가 5000달러라면 일반적인 보급형 40, 50인치 TV에 비하면 다른 어느 나라제품보다 비싼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일본제 60인치 TV와 비교하면 아직도 한국산이 쌉니다. 다만 엔트리나 매스 단계 모델에 치중하던 예전에 비해 요즘 들어 프리미엄급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국 소비자에게 ‘고가 제품’이라는 인상을 준 것 같습니다. 차별화된 상품에서 나오는 부가가치를 가격으로 이전하는 기술은 아직도 좀더 발전될 여지가 있어요.”

    ▼ 차별화된 상품에 비싼 가격을 매기는 전략은 너무 단순하지 않습니까.

    “차별화된 제품이라도 ‘침투가격(Penetration Price)’, 다시 말해 시장에서 부담없이 받아줄 만한 가격정책을 쓸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경쟁사보다 우월한 장비,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개발한 IT기업이 높은 가격을 매기지 않는 것은 경쟁사가 그 제품을 모방하기 전에 얼른 수요자가 자사 상품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죠. 단기적으로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경쟁사의 진입을 원천봉쇄할 수 있기 때문에 요즘은 이런 ‘역발상 프라이싱’이 먹히는 경우도 많아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자사 운영체제인 ‘윈도’를 싸게 파는 것은 이런 가격정책으로 효과를 본 대표적인 사례죠. IT기업 중에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컴퓨터는 싸게 팔아도 프로그램 업그레이드나 부품보조 서비스, 바이러스 관리 따위의 유지·보수에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는 추가수익 개발논리도 이런 정책을 세우는 데 일조했죠.”

    ‘역발상 프라이싱’이 통한다

    ▼ 가격결정의 기본원칙, 즉 수요-공급 곡선에 좌우되지 않는 최근의 프라이싱 기법으로는 어떤 게 있습니까.

    “자동차 회사들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마쓰다 ‘미아타’나 크라이슬러 ‘PT크루저’가 미국에서는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많은데도 이 회사들은 경쟁 차종보다 가격을 올리지 않아요. 더 큰 파급효과를 노리기 때문입니다. 대표상품들이 어쨌든 한 푼이라도 싸면 더 많이 팔릴 것이고, 그래서 거리에 자사 차가 많이 오가면 회사로서는 ‘움직이는 자동차 전시장’을 얻게 된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리게 됩니다.

    인기 콘서트티켓 가격결정도 이와 비슷하죠. 티켓을 못 구한 사람이 넘쳐나도 콘서트 주최측은 인기 없는 다른 콘서트보다 가격을 비싸게 책정하지 않아요. 콘서트에 오는 사람은 해당 가수의 음반을 구입하거나 같이 온 친구들에게 음반을 사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격이 너무 높아 고소득자나 마니아만 티켓을 사게 되면 그런 효과가 줄게 되니까요.”

    ▼ 글로벌 기업들이 가격전략을 대하는 시각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습니까.

    “원래 프라이싱은 마케팅이나 재무, 영업과 같은 경영학의 독립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제품의 질이 가격과 정비례하지 않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독립전략으로서 프라이싱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때 프라이싱의 상위영역으로 여겨지던 마케팅은 그 효과분석이 덜 계량적인 반면, 잘 적용된 프라이싱은 기업 이윤을 즉각 늘려주거든요.

    요즘 미국의 잘나가는 소비재나 IT 기업 중에는 가격전략 전담임원(Chief Pricing Officer·CPO)을 둔 곳도 많아요. 대부분의 CEO는 고가 정책을 유지하면서 시장점유율도 높이고 싶어하는데, 가격에만 포커스를 맞춰 장기전략을 짜는 CPO들은 CEO가 좀더 냉정하게 선택하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합니다. SPG와 모니터그룹의 관계처럼 대규모 전략 컨설팅사들 역시 가격전략을 전담하는 자문서비스그룹을 파트너로 두는 추세입니다.”

    ▼ 렉서스 같은 프리미엄 자동차나 루이비통 같은 명품패션 브랜드 상품이 한국에서는 유달리 더 비싸게 팔리고 있는데요.

    “가격전략의 성패는 고객의 심리를 얼마나 잘 꿰뚫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가격전략은 ‘마인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죠. 렉서스나 루이비통이 비싼 가격을 붙이는 것은 ‘비싸야 잘 팔린다’고 인식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 회사들이 구매고객의 정서에 대한 리서치를 많이 하고 나서 그런 가격을 매겼다고 봐야 할 겁니다.

    물건을 구입할 때 고객의 심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참고가격(Reference Price)입니다. 가격은 다르고 제품의 질은 비슷해 보이는 42인치 PDP TV 2대가 서로 다른 매장에 있다고 합시다. 소비자 A는 2500달러짜리를 먼저 본 뒤에 2200달러짜리를 봤습니다. 이 경우 A는 ‘2200달러라니, 괜찮은 가격이야’라고 생각해서 이 TV를 구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소비자 B는 2200달러짜리를 보고 나서 2500달러짜리 제품을 봤다고 쳐요. B는 2500달러 제품이 ‘비싸다’는 이미지만 갖게 되며, 결국 두 제품을 모두 안 살 확률이 높습니다.

    美 MBA 필독서 ‘프라이싱 전략’ 저자 박사 존 호건

    ‘프라이싱 전략’ 4판을 공저한 모니터그룹 한국본사 송기홍 부사장과 호건 박사.

    참고가격을 통한 제품 마케팅은 시즌에 따라 가격변동폭이 큰 IT 제품이나 의류 관련 상품 판매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노트북컴퓨터의 소비자가격을 2000달러라고 써 붙여놓고 그 옆에 ‘원 출고가 3200달러’(사실인지는 몰라도)라고 표기해놨더니 판매율이 급증했다는 식의 사례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 비싼 가격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선후관계를 바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판매량을 희생하더라도 높은 마진을 얻고 싶을 때 기업들은 ‘상층흡수가격 전략’을 씁니다. 가격이 얼마든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소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합니다. 가령 스포츠 마니아들은 자전거나 라켓을 구입할 때 최첨단, 최신형 제품을 사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돈을 들입니다. 카누 할 때 쓰는 노의 경우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보급형 제품은 35달러에 불과하지만 특수재질로 만든 것은 350달러나 합니다. 기능적 장점은 차치하더라도 그것을 소유하면 ‘전문가급 카누 마니아’임을 알리는 징표가 되기 때문에 마니아들은 선뜻 돈을 치르게 됩니다.

    가격전략은 ‘마인드 게임’

    그렇다고 해서 소비자를 단순히 ‘봉’으로 여겨 무작정 높은 가격을 매겨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상층흡수가격 전략을 쓰려면 높은 가격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 포지셔닝과 이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면밀하게 조사해 최적의 가격대를 찾아내는, 그야말로 고객의 정서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노하우와 기술이 필요하죠.”

    ▼ 적정 이윤이나 가격의 공정성에 시비를 거는 사람도 많은데요.

    “공정성을 따지는 소비자가 가격의 어떤 실체적 부분이 비싼지 싼지를 냉정하게 판단한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이 역시 소비자의 심리상태에 영향을 받는 측면이 큽니다. 어떤 사람들은 응급약품 가격이 비싸다고 불평하는데, 이는 예전에는 ‘돈을 들이지 않고도 건강하게 잘 지냈다’는 생각 때문에 그러한 지출이 부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전부터 그냥 살던 집’이라고 생각하면 집세 인상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새 자동차나 보석을 구입할 때, 또는 해외여행 상품을 구입할 때는 약값이나 집세 인상비율과 비슷한 폭으로 가격이 올라도 그다지 거부감을 갖지 않아요.

    일반적인 소비자, ‘적정 이윤’을 외치는 소비자도 기업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업으로선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알면 가격정책을 수립하기가 더 쉬워지죠. 그래서 건설 시공업체에서는 ‘원자재 등 가격인상요인이 있어 분양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많이 개발하죠. 집 주인이 집세를 올릴 때도 적은 비용이나마 들여서 집을 손질했다는 점을 알리면 세입자는 전처럼 ‘당했다’고만 생각하지는 않게 됩니다.”

    ▼ 시대에 따라 변하는 대표적인 프라이싱 전략이 있다면.

    “소매시장이라면 양극화 소비 패턴을 우선 잘 연구해야겠죠. 아주 비싸거나 아주 싸야 잘 팔립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제품 그 자체만 사는 게 아니고 ‘얼마나 더 싸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도 함께 삽니다.

    이렇게 보면 ‘훌륭한 제품을 합리적 가격에 판다’는 모토를 내세우는 ‘타깃’(미국의 유명 소매점 체인 브랜드), ‘좋은 제품을 낮은 가격에 판다’고 맞서는 월마트를 당해내기 힘들 겁니다. 물론 월마트도 ‘코스트코’ 같은 대형 도매점(Wholesale club)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월마트가 그런데도 선전한다면 그건 ‘묶음 판매 비율’과 관련 있을 겁니다. 휴지 한 개를 살 수 있는 곳과 24개 묶음을 의무적으로 사야 하는 곳은 사정이 다를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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