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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두 서강대 총장 & 유화선 파주시장

삼성에서 키운 리더십으로 대학, 지자체에 새 바람

  • 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손병두 서강대 총장 & 유화선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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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 있는 사람’

손병두 서강대 총장 & 유화선 파주시장

유화선 시장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손병두 총장을 알아온 터라 지금도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손 총장을 찾는다.

그와 손 총장은 7년 남짓 한솥밥을 먹었다. 유 시장은 비서실 과장을 지내고 1980년 말 삼성전자로 옮겨 전략기획부장까지 올랐다. 그해 손 총장은 제일제당 이사로 승진한다. 그런데 탄탄대로를 걷던 손 총장이 2년 뒤 돌연 삼성을 떠난다. 손 총장은 부인에게 빵집을 차려주고 혼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나이 마흔둘에 청바지 입고서 혼자 유학을 떠나는 총장님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남들은 잘 나가던 총장님의 인생이 끝장났다고 말했지만, 더 큰 세계로 모험하듯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오리라는 확신이 들었죠.”

당시 상황을 회고하는 손 총장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사람은 의리가 중요해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요즘 세태와 달리 유 시장은 의리 있는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발걸음도 하지 않은 우리 빵가게를 자주 들여다봤다고 아내가 말했어요. 사과 상자를 들고 오기도 하고, 선물보따리를 들고 나타나기도 했대요.”



손 총장은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한국생산성본부 상무이사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유 시장이 일을 저질렀다. 삼성전자 부장 자리를 차버리고 ‘한국경제신문’ 중견 기자 모집에 덜컥 응시한 것이다.

사실 언론인의 꿈은 오래전부터 그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빚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서울대 신문대학원에 입학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공부를 계속하려고 휴학했는데, 제대 후 곧장 삼성에 입사하면서 대학원 공부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는 오랜 꿈을 이룰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지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들은 그가 높은 연봉의 안정된 직장을 버리는 것을 극구 말렸다. 그는 결국 손 총장을 찾아갔다.

“유 시장에게 왜 신문사에 가려 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여태껏 사기업에서 일했으니 이젠 공공부문인 언론계에서 한번 일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해보라고 용기를 주었죠.”

유 시장은 손 총장의 명쾌한 격려에 힘을 얻어 12년간 몸담았던 삼성과 이별하고, ‘나이 많은 신입기자’로 언론사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이들의 인연은 손 총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몸담으면서 공적인 관계로 이어진다.

“더 잘하려면 유학 가라”

유 시장은 마흔 가까운 나이에 신문사에 입사해 10년 이상 터울이 지는 어린 기자들을 ‘선배’라고 부르며 어렵게 자리를 잡아갔다. 기사 작성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엔 좋은 기사를 골라 원고지에 베껴 쓰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히토쓰바시대에서 2년간 초빙연구원으로 지낼 기회를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일본 알기 열풍이 불었는데, 그가 이런 주제와 관련된 기사를 쓴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는 또 손 총장을 찾아갔다. 손 총장은 자신의 2년여 유학생활 얘기를 들려주며 “더 잘하려면 가라”고 조언했다.

손 총장의 격려에 힘입어 유 시장은 1990년 일본 유학을 떠났다. 2년간 공부 열심히 하고 책도 내고 번역도 하면서 학자로서의 생활에 충실했다. 그리고 귀국해 ‘한국경제신문’ 경제부장이 됐다. 김영삼 정권이던 당시 관료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한국의 경제관료’라는 기획 시리즈를 기획해 경제계와 언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8년 편집국장 자리에 오른 그는 ‘알기 쉽게, 읽기 쉽게’를 신문제작 방침으로 내건다. 가로쓰기 편집을 시작하고, 국내 신문으로서는 처음으로 ‘Money’ 섹션과 ‘Cyber ’섹션을 발행했다.

그가 한국경제신문에서 투자한 와우(WOW)TV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긴 것은 2000년 8월이다. 당시 와우TV는 누적된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영자가 적자를 내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고 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원칙을 염두에 두고, 그는 우선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신용보증기금에 대출을 의뢰했다. 보증기금측은 사장인 그에게 직접 보증을 설 것을 요구했다. 그는 결국 자신을 담보로 내걸고 10억원을 대출받았다. 와우TV는 ‘합리경영,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모토로 노력한 끝에 6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그는 그 후로도 ‘일등만이 살아남는 일류경영’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가 와우TV 경영에 한창 재미를 느끼고 있을 때인 2004년, 지인으로부터 고향인 파주시장 보궐선거에 나가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는 이번에도 곧장 손 총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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