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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구

캐슬린 스티븐스 신임 주한미국대사

한국말 하고 김치 담그며 한미동맹 더 맵게! 더 강하게!

  • 하태원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캐슬린 스티븐스 신임 주한미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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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중학교 영어선생님이었던 스티븐스 씨가 기억하는 한국 중학교의 겨울 수업장면은 이렇다.

땔감이 없어 칠판에 분필로 글을 쓰는 손이 곱아 장갑을 낀 채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교실을 가득 메운 13세 시골소년 70명이 내뿜는 열기는 영하의 교실을 훈훈하게 녹였다. 스티븐스 대사는 “하지만 교실 안에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넘실거렸다”며 “얼마 안 가 한국에는 달구지가 다니는 비포장도로에 아스팔트가 깔렸고, 초가지붕은 TV 안테나가 달린 기와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국생활에 적응해갈 즈음 그는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얻는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은행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은행창구에 간 스티븐스 대사는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 이름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듣고 ‘예쁜’ 한국 이름을 하나 짓겠다고 결심한 것. 동료 교사들에게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하나 부탁했더니 동료들은 스티븐스 대사의 패밀리 네임에서 ‘심’이라는 성을, 캐슬린이라는 퍼스트네임에서 ‘은경’이라는 이름을 따내 심은경이라는 이름 석 자를 만들었다.

캐슬린 스티븐스 신임 주한미국대사

9월22일 부임하는 스티븐스 신임 주한 미대사(왼쪽)는 힐 차관보(오른쪽)와 유사한 동맹비전을 갖고 있다.

‘예산댁’ 심은경 씨는 내친김에 김치 담그는 법도 배웠다. 한국문화의 상당 부분이 녹아 있는 김치를 먹을 줄 아는 것은 기본이고, 한국의 대표 문화상품인 김치를 담글 줄 안다면 한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아닌가 하는 판단에 따른 것.

첫 한국생활 2년은 스티븐스 대사의 인생 항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도 했다. 서울의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치러진 외교관 시험에 응시해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스티븐스 대사는 “예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신촌에 있는 여인숙에 머무르면서 시험을 치고 간 기억이 난다”며 “그때 시험을 치른 곳이 카페테리아인데 아직도 그때 그 모양으로 남아 있더라”고 회상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을 한국어로 소개한 스티븐스 대사는 1983년 외교관 신분으로 다시 한국을 찾은 뒤 1989년까지 근무하면서 경험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꿈틀대던 민주화 열기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있다. 스티븐스 대사는 “20년 전인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 개최와 민주주의 발전을 축하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흥분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인과 결혼했다 이혼했는데 슬하에 아들 제임스(21)씨를 두고 있다. 매사추세츠 주 니덤의 올린 공대에 재학 중인 제임스 씨는 졸업을 앞두고 있어 어머니의 한국행에 동행하지 못한다.

스티븐스 대사가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기적을 달성한 한국의 국가발전에 남다른 박수를 보내는 것은 유년시절의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남서부인 텍사스 주 서부에서 태어나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스티븐스 대사는 “주말이면 시내에 있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으며 내가 알고 있는 세상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미지의 세계를 찾아 여행을 떠나곤 했다”고 소개했다.

순탄치 않았던 주한 미 대사의 길

그는 “예산에서 일하는 동안 자녀를 고등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소를 팔고,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선생님들을 위해 밭에서 딴 딸기를 정성스레 선물하는 한국의 부모를 보면서 내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스티븐스 대사가 서울에 부임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그를 차기 주한미국대사로 지명한 뒤 8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정식 임명을 받을 수 있었고, 4월 상원 인준청문회를 통과한 뒤에도 5개월 동안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4월22일 상원 외교위원회를 통과한 스티븐스 대사에 대한 임명동의안은 공화당 보수파인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무부의 입장 변화를 요구하며 인준 유보 방침을 천명하는 바람에 본회의 처리가 지연됐다.

캐슬린 스티븐스 신임 주한미국대사

30여 년 전 스티븐스 대사(오른쪽)가 충남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시절 동료들과 함께 여행 중 찍은 사진.

북한인권법 제정을 주도할 정도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브라운백 의원은 스티븐스 대사의 지명 이후 그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논의했지만 스티븐스 대사가 “나는 북한대사 지명자가 아니라 한국대사 지명자”라고 말해 분노를 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스티븐스 대사의 인준이 지연된 것은 워싱턴 내에 팽배해 있는 ‘반(反)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 전선’ 탓이라는 분석도 많다. 반 힐 차관보 전선이란 힐 차관보가 북한과의 핵협상 과정에서 지나치게 양보하는 등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외교를 펼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대북 강경파들의 연합. 스티븐스 대사는 힐 차관보의 수석 부차관보로 일했고, 스티븐스 대사를 천거한 사람도 다름 아닌 힐 차관보라는 점 때문에 일종의 미운 털이 박혔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의회 소식통들도 “브라운백 의원이 스티븐스 대사 지명을 반대한 것은 그에 대한 개인적 신뢰 차원을 떠나 부시 행정부와 국무부가 대북협상에 치우쳐 북한 인권 문제를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것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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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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