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호

캐슬린 스티븐스 신임 주한미국대사

한국말 하고 김치 담그며 한미동맹 더 맵게! 더 강하게!

  • 하태원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입력2008-10-07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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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슬린 스티븐스 신임 주한미국대사

    ● 1953년 미국 출생<BR>● 프레스콧대 졸업, 하버드대 석사<BR>● 1975년 평화봉사단 서울근무<BR>● 1984년 주한미대사관 정무과 근무<BR>● 1995년 주 벨파스트 영사관<BR>● 1998년 주 포르투갈 미국대사관<BR>● 2005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BR>● 2007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선임고문

    1975년 9월 충남 예산역. 22세 미국 여성이 자기 몸보다 커 보이는 이민가방 두개를 이고 지고 기차에서 내린다.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이 여성은 난생 처음 경험하는 한국 가을의 매력에 푹 빠진다. 벼가 익으며 황금벌판으로 바뀌어가는 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올라간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오렌지색의 감, 한들한들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의 향연….

    33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한국의 가을 속으로 그가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는 29대 주한미국대사라는 중요한 임무를 띠고서. 그는 조선과 미국이 1883년 수교한 이래 125년 만의 첫 여성대사다. 9월22일 부임하는 캐슬린 스티븐스(55·한국명 심은경) 대사.

    한미 공동의 집

    9월8일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취임선서식을 한 그는 한국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대사답게 유창한 한국말로 “9월은 한국인들이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고 하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 시작되는 특별한 때”라고 말한 뒤 한미관계 발전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군사안보동맹으로 시작한 한미동맹은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인 평화체제, 모든 한국인의 삶의 질과 인권상황 개선 등을 다음 단계의 새로운 목표로 삼고 있다”며 “한미자유무역협정(FTA)과 비자면제 프로그램 추진, 북핵 문제 해결 등 양국의 현안 해결과 관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4월9일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의 취임 포부를 소상히 밝혔다. 그는 △ 안보동맹을 현실에 맞게 전환 △ 자유시장경제의 증진 △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 한미 간 인적교류 확대를 4대 목표로 제시했다.

    새로운 동맹비전과 관련, 스티븐스 대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양국이 합의한 용산기지 이전이나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에 대해 “매우 시기적절하고 현명한(sensible) 움직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 같은 변화는 한국의 경제적 발전과 군사 분야의 전력 향상을 반영한 것이고, 동북아시아 지역은 물론 세계무대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서울에 대사로 부임하면 한국 정부와 군부 관계자, 그리고 의회와 긴밀히 협력해 기존에 합의된 전환(transformation)을 성공으로 이끌겠다”고 밝혔다. 물론 기존의 한미군사동맹을 강화시키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억지력을 유지하는 것은 가장 주요한 우선순위”라는 얘기다.

    중동에서 지속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지속적인 참여 독려도 스티븐스 대사가 강조하는 부분. 그는 아프가니스탄에 한국 병력 파병을 요청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아프간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한국의 새 정부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경제협력 관계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문제와 관련, 스티븐스 차기대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미국이 최근 15년간 체결한 FTA 가운데 통상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미 의회의 비준 동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국과 맺은 두 번의 인연

    1990년대 초 1차 북핵위기 발발 이후 지금까지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는 북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에 대한 의욕도 감추지 않았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북핵 폐기를 이룬 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밝혔다.

    스티븐스 대사는 “북한과 미국이 관계정상화를 논의하는 단계에서 북한 주민의 실질적인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고 탈북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인적교류의 확대를 통한 양국 간 교류협력의 증진 역시 최초의 여성 대사가 중점적으로 노력을 기울일 분야다. 비자면제 프로그램(VWP)의 내년 초 실시 여부가 주요 관심사다.

    스티븐스 대사에게 1975년 첫 인연을 맺은 한국은 ‘기적’이기도 하다. 그는 8일 취임선서식에서 “믿을 수 없는 사실이겠지만 1975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액(GDP)은 600달러 수준으로 북한 GDP 수준과 비슷했다”며 “당시 한국인의 생활은 힘들다 못해 가혹할 정도의 가난에 시달렸다”고 회고했다.

    예산중학교 영어선생님이었던 스티븐스 씨가 기억하는 한국 중학교의 겨울 수업장면은 이렇다.

    땔감이 없어 칠판에 분필로 글을 쓰는 손이 곱아 장갑을 낀 채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교실을 가득 메운 13세 시골소년 70명이 내뿜는 열기는 영하의 교실을 훈훈하게 녹였다. 스티븐스 대사는 “하지만 교실 안에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넘실거렸다”며 “얼마 안 가 한국에는 달구지가 다니는 비포장도로에 아스팔트가 깔렸고, 초가지붕은 TV 안테나가 달린 기와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국생활에 적응해갈 즈음 그는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얻는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은행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은행창구에 간 스티븐스 대사는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 이름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듣고 ‘예쁜’ 한국 이름을 하나 짓겠다고 결심한 것. 동료 교사들에게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하나 부탁했더니 동료들은 스티븐스 대사의 패밀리 네임에서 ‘심’이라는 성을, 캐슬린이라는 퍼스트네임에서 ‘은경’이라는 이름을 따내 심은경이라는 이름 석 자를 만들었다.

    캐슬린 스티븐스 신임 주한미국대사

    9월22일 부임하는 스티븐스 신임 주한 미대사(왼쪽)는 힐 차관보(오른쪽)와 유사한 동맹비전을 갖고 있다.

    ‘예산댁’ 심은경 씨는 내친김에 김치 담그는 법도 배웠다. 한국문화의 상당 부분이 녹아 있는 김치를 먹을 줄 아는 것은 기본이고, 한국의 대표 문화상품인 김치를 담글 줄 안다면 한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아닌가 하는 판단에 따른 것.

    첫 한국생활 2년은 스티븐스 대사의 인생 항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도 했다. 서울의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치러진 외교관 시험에 응시해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스티븐스 대사는 “예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신촌에 있는 여인숙에 머무르면서 시험을 치고 간 기억이 난다”며 “그때 시험을 치른 곳이 카페테리아인데 아직도 그때 그 모양으로 남아 있더라”고 회상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을 한국어로 소개한 스티븐스 대사는 1983년 외교관 신분으로 다시 한국을 찾은 뒤 1989년까지 근무하면서 경험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꿈틀대던 민주화 열기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있다. 스티븐스 대사는 “20년 전인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 개최와 민주주의 발전을 축하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흥분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인과 결혼했다 이혼했는데 슬하에 아들 제임스(21)씨를 두고 있다. 매사추세츠 주 니덤의 올린 공대에 재학 중인 제임스 씨는 졸업을 앞두고 있어 어머니의 한국행에 동행하지 못한다.

    스티븐스 대사가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기적을 달성한 한국의 국가발전에 남다른 박수를 보내는 것은 유년시절의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남서부인 텍사스 주 서부에서 태어나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스티븐스 대사는 “주말이면 시내에 있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으며 내가 알고 있는 세상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미지의 세계를 찾아 여행을 떠나곤 했다”고 소개했다.

    순탄치 않았던 주한 미 대사의 길

    그는 “예산에서 일하는 동안 자녀를 고등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소를 팔고,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선생님들을 위해 밭에서 딴 딸기를 정성스레 선물하는 한국의 부모를 보면서 내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스티븐스 대사가 서울에 부임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그를 차기 주한미국대사로 지명한 뒤 8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정식 임명을 받을 수 있었고, 4월 상원 인준청문회를 통과한 뒤에도 5개월 동안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4월22일 상원 외교위원회를 통과한 스티븐스 대사에 대한 임명동의안은 공화당 보수파인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무부의 입장 변화를 요구하며 인준 유보 방침을 천명하는 바람에 본회의 처리가 지연됐다.

    캐슬린 스티븐스 신임 주한미국대사

    30여 년 전 스티븐스 대사(오른쪽)가 충남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시절 동료들과 함께 여행 중 찍은 사진.

    북한인권법 제정을 주도할 정도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브라운백 의원은 스티븐스 대사의 지명 이후 그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논의했지만 스티븐스 대사가 “나는 북한대사 지명자가 아니라 한국대사 지명자”라고 말해 분노를 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스티븐스 대사의 인준이 지연된 것은 워싱턴 내에 팽배해 있는 ‘반(反)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 전선’ 탓이라는 분석도 많다. 반 힐 차관보 전선이란 힐 차관보가 북한과의 핵협상 과정에서 지나치게 양보하는 등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외교를 펼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대북 강경파들의 연합. 스티븐스 대사는 힐 차관보의 수석 부차관보로 일했고, 스티븐스 대사를 천거한 사람도 다름 아닌 힐 차관보라는 점 때문에 일종의 미운 털이 박혔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의회 소식통들도 “브라운백 의원이 스티븐스 대사 지명을 반대한 것은 그에 대한 개인적 신뢰 차원을 떠나 부시 행정부와 국무부가 대북협상에 치우쳐 북한 인권 문제를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것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스티븐스 대사의 경험 부족을 지적하기도 했다. 산적한 현안이 미해결 상태로 있는 주한미국대사 자리에 초임 대사를 앉히는 것은 위험 부담이 있다는 지적이다. 전임인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의 경우 러시아대사와 나토대사를, 힐 차관보 역시 폴란드대사 등을 역임한 베테랑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했던가. 결국 스티븐스 대사의 인준은 힐 차관보가 의회에 나와 북한 인권문제 해결에 대해 공개약속을 한 뒤에야 가능했다.

    스티븐스 대사의 한국행에는 보이지 않는 도우미 2명의 힘도 작용했다.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브라운백 의원을 적극 설득한 것이 가장 큰 힘이 됐다. 미국의 평화봉사단을 창설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으로, 평소 평화봉사단 활동을 지원해온 케네디 의원은 한국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한 스티븐스 대사의 경력을 높이 산 것으로 전해진다.

    캐슬린 스티븐스 신임 주한미국대사

    스티븐스 신임 주한미대사가 9월8일 라이스 미국 국무부 장관 앞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가운데는 아들 제임스씨.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청문회 때, “캐슬린은 한국어를 구사하는 최초의 미국대사가 되는 데 손색이 없다”며 그를 소개하는 역할을 했던 케네디 의원은 브라운백 의원에게 스티븐스를 지지해달라고 여러차례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6·25전쟁 참전용사 출신인 존 워너 상원의원 역시 “상원이 8월 휴회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동안 유보돼온 스티븐스 주한미대사 지명자의 인준이 매듭지어지길 희망한다”며 “캐슬린은 주한 미대사라는 중책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지지발언을 했다.

    스티븐스 대사가 인정할지 모르지만 그의 뒤에는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27대 주한미국대사이기도 한 힐 차관보는 2004년 8월 대사 취임 직후 한미관계를 떠받칠 4개의 기둥론을 펼쳤다.

    그가 구상한 21세기 한미관계를 떠받칠 4개 ‘기둥(pillars)’의 첫째는 안보기둥. 둘째 기둥은 ‘글로벌 이슈에 대한 전략적 대화’의 필요성. 셋째 기둥이자 가장 강력한 기둥은 한미 민간차원의 인적 유대. 마지막 기둥은 한미 간 경제 및 상업적 파트너십이었다.

    현 시점에서 다시 평가해보면 지난 4~5년간의 한미관계는 힐 차관보가 세운 비전 속에서 일정한 진전이 있었고, 힐 차관보의 ‘문하생’인 스티븐스 대사가 이야기하는 한미 공동의 집 역시 힐 차관보의 비전과 유사하다.

    한국 사람들과의 허심탄회한 만남을 강조하고 대중 속으로 향하는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힘을 강조하는 것 역시 두 사람이 닮은꼴이다.

    대사 취임 선서를 한 스티븐스 대사의 첫 공식 외부활동은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였다. 9월10일 오전 국무부에서 스티븐스 대사는 만면에 웃음을 띤 얼굴로 한국 특파원들을 환영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마음고생을 다 털어낸 듯 “이제 비로소 한국에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살인의 추억’ 보며 한국 적응 준비

    그는 “전통적인 주한미국대사의 역할을 뛰어넘어 한국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정부 관료들과 만남을 뛰어넘어 보통 한국인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대사 지명 이후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한국어 공부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같은 한미관계에 미묘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힘들겠지만 솔직하고 분명한 생각을 밝히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읽고 쓸 줄 안다면 오해를 줄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이내믹’한 한국이 자신이 떠난 1989년 이후 더욱 역동적인 발전을 했다는 사실 역시 한국어를 공부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했다는 것. 스티븐스 대사는 “신문을 찬찬히 읽으면서 한국민이 생각하는 방식이나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가 크게 바뀌었음을 알게 됐다”며 “한국은 다양하고 기발한 의견과 생각들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소개했다.

    최신 영화 역시 스티븐스 대사에게 새로운 한국의 변화상을 알게 해주는 좋은 교재가 됐단다. 그는 “브레이크 댄스 그룹인 비보이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살인의 추억’을 감명 깊게 봤다”고 밝혔다.

    스티븐스 대사에게는 만만치 않은 도전도 기다리고 있다. 쇠고기 협상과정이나 독도에 대한 미 국무부와 지명위원회의 ‘주권미지정’ 분류 파문 등에서 보듯이 한미 간에는 늘 긴장이 감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FTA 비준, 비자면제 프로그램 시행을 위한 준비, 2사단의 평택지역 후방배치 문제, 궤도를 이탈할 조짐을 보이는 북핵 문제 등 현안도 산적해 있다.

    이른바 ‘좌파정권’ 10년과 달리 한미동맹의 복원을 정책 우선순위로 추진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구상에 대해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추석이 지나 찬바람이 불 즈음 서울 중구 정동의 대사관저에 짐을 풀게 될 스티븐스 대사가 어떤 활동을 벌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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