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미대 실기고사 폐지한 권명광 홍익대 총장

“‘디자인적 발상’에서 나온 실기 폐지, 미래세대 위해 고민 끝 결단”

  • 구가인│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9-05-08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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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편일률적 실기고사 창의적 인재 선발 불가”
    • 긍정 60%, 부정 30%, 사교육계 제자들로부터 원망도
    • 도안사에서 디자이너로, 디자이너 1세대
    • 국내 최초 디자이너 출신 총장
    미대 실기고사 폐지한 권명광 홍익대 총장

    ● 1941년 서울 출생 <br>● 홍익대, 동 대학원 졸업 (도안과 시각디자인), 상명대학교 명예철학박사●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수석부총장, 現 홍익대학교 15대 총장<br>● 한국디자인법인단체총연합회 회장, 광고학회 회장 등 역임<br>●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 대통령상(1968), 서울올림픽 기장(1988), 황조근정훈장(2001)<br>● 저서 : ‘근대디자인사’‘바우하우스’ 등

    서울 홍익대 정문에서 산울림소극장 쪽으로 뻗은 ‘와우산길’은 본 지명보다 ‘미술학원 거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형성된 이 거리에는 90여 개의 미술학원이 밀집돼 있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주 3~5회, 매일 4시간씩 이들 학원에서 실기수업을 한다. 학원수업이 끝나는 밤 10~11시가 되면 이 거리는 ‘홍대입시특구 고양·일산 19호’ ‘강남 81호’식의 수도권 일대 행선지 푯말이 붙은 15인승 귀가 버스로 가득 찬다. 학원비는 한 달에 50만~70만원선. 방학특강은 500만원이 넘을 때도 있지만, 입시철이나 방학 중에는 강원도부터 제주도까지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모여들여 주변 고시원이나 원룸은 웃돈을 얹어야 구할 수 있을 정도다.

    지난 3월 홍익대는 “미대 입시에서 실기고사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무실기 전형 인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2013학년도부터는 실기시험을 아예 없애겠다는 것이다. 홍익대는 대안으로 입학사정관의 심층면접과 학생부, 미술교과 성적 등을 제시했다.

    홍익대 미대는 국내 최대 규모다. 2009학년도 홍익대 신입생 정원은 조치원 캠퍼스를 포함해 966명, 지난해에는 8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 때문에 홍익대 미대의 ‘깜짝 발표’는 미대입시 사교육시장뿐 아니라 미술계 전반에 충격을 줬다. 혁신적인 결단이라는 찬성의견부터 실기는 미술의 기본이라는 반대의견, 의도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는 회의론까지 반응도 다양하다.

    권명광(68) 총장은 이번 미대 실기고사 폐지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한국의 대표적인 1세대 디자이너이자, 홍익대 최초의 미대 출신 총장인 그는 이번 결정이 “오랜 교육적 고민 끝에 나온 결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4월4일 홍익대에서 권 총장을 만났다.

    “현재의 실기고사, 창의적 인재 선발 불가”



    ▼ 홍익대 주변에 미술학원이 정말 많더군요. 홍대 미대입시특구라고도 하던데요.

    “네, 문제예요. 입시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사교육시장이 커졌습니다. 학원에서 테크닉과 기교만을 익혀서 천편일률적인 그림만 나옵니다. 그렇게 잘못된 습관을 대학에 와서 바꾸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건 예술적인 감성과 창의력을 골고루 갖춘 전인적인 인재인데, 그런 점에서 지금의 실기고사는 시대착오적인 선발방식인 거죠.”

    ▼ 그래도 갑작스럽게 실기고사 폐지를 발표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제안자는 누구였나요?

    “특정인이 갑작스럽게 제안한 게 아닙니다. 오랫동안 미술대학 내에서 실기고사 폐지에 대해 검토해왔습니다. 실기고사의 폐단에 대해 모두 동의해서 계속 (시험방식을) 개선해왔죠. 그런데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수 교수 의견을 종합해서 결정한 겁니다. 물론 대학의 결정은 최종적으론 총장 책임이라고 할 수 있죠.”

    ▼ 언론에서는 이번 발표가 최근 문제가 된 입시 비리 때문이라고 해석하던데요.

    “입시비리 때문이라기보단, 창의적인 인재를 뽑고 사교육의 폐단을 줄이려는 게 더 큰 이유입니다. 입시비리 같은 부정한 시도는 항상 있어왔어요. 하지만 대학 역시 그러한 시도를 막기 위해 끊임없이 전형방식을 보완해왔습니다. 채점 방식을 언론에 알리고 공개적으로 채점하거나 타 대학과 공동으로 채점한다던가, 채점위원의 수를 늘리는 등 정말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뽑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요. 그런데 홍대 미대의 입시생 규모가 원체 큽니다. 미대 입학생 수가 카이스트 전체 입학생 수와 맞먹어요. 이렇듯 대규모로 모집하다 보니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고 그 파장도 큰 거죠.”

    ▼ 이번 발표에 대해 반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많은 교수가 입시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 현재 실기고사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공감해요. 그래서 이번 발표에 대해 이해하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새로운 제도가 나오면 늘 30%는 긍정적으로 보고, 30%는 부정적으로 보고, 나머지 30%는 설득에 의해 긍정적으로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수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100% 의견이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죠.”

    ▼ 새롭게 내놓은 선발방식 역시 객관성 확보가 관건일 텐데요.

    “무엇보다 고등학교 학생부 성적을 중요시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미술교육이 약화됐다는 점입니다. 1970년대만 해도 학교 미술교육이 살아 있었는데 미대 입시가 치열해지면서 미술교육이 사교육시장으로 전부 넘어간 거죠.”

    홍익대 측은 선발방식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미술 전문가 출신 입학사정관의 수를 늘릴 예정이며 학생부와 면접 평가 방식의 표준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미 홍익대는 2009학년도 입시에서 자율전공학생 71명을 선발한 바 있다. 이들은 석고 데생을 하는 대신 50분에 걸친 선묘 테스트와 두 차례의 면접을 봤다. 권 총장은 “학생들이 가진 미술에 대한 생각과 관심사를 나눌 수 있어서 암기식 실기고사 채점보다 교수들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 이번 발표에 대해 ‘실기는 미술의 기본’이라면서 비판하는 쪽도 있습니다.

    “물론 생각한 것을 손으로 제대로 그리는 건 중요하죠. 그래서 그러한 기본기는 입학 후에 철저히 가르칠 겁니다. 다만 한창 생각이 성장하는 시기에 사고력이나 창의력을 개발하기보단 입시경쟁에 몰두해서 미술의 테크닉과 기교만을 암기하는 걸 막자는 거예요. 그렇게 암기식으로 배우면 생각이 굳어버립니다.”

    긍정 60%, 부정 30%,제자들로부터 원망도

    ▼ 다른 나라 미대 입시는 어떤가요?

    “우리와 같이 실기시험을 보는 곳은 극히 드물어요. 미국 학교에선 보통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라고 하는데 이런 방식을 쓸 경우 본인 작품의 진위를 판가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이미 한국 사교시장엔 미국 유학준비생을 대상으로 한 포트폴리오 준비학원이 있고요.”

    ▼ 정부가 입학사정관제 지원 사업을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실기 폐지안이 발표됐습니다. 총장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 입시 방식도 또 달라질 거라고 보는 분들도 있던데요.

    “대학의 정책이나 문화는 개혁이나 혁신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보단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변해가는 겁니다. 정부 정책에 편승해서 입시계획을 내놓은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논의를 거친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단시간에 성과를 거두기보단 또 오랜 시간이 걸려 발전하고 확산되는 거고요. 새로 내놓은 제도가 정당성과 당위성을 가진 것이라면 학교 책임자 혹은 정권이 바뀌는 것과 관계없이 계속 유지될 겁니다.”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홍익대 동문 혹은 제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은 없느냐는 질문에 권 총장은 “직접 받진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이 사교육을 걱정할 일은 아니다. 대의가 중요한 만큼 (동문들도) 결정에 동의할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도안사에서 디자이너로, 디자이너 1세대

    미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홍익대는 선망의 대상이다. 규모가 클 뿐 아니라 동문 파워 역시 세다. 권 총장은 홍익대 미대에 대해 “일찍부터 미술 쪽에 비중을 두고 특성화시킨 대학”이며 “역사와 전통에 더해 졸업생의 사회활동이 대학의 명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명성을 높인 졸업생 중엔 권 총장 역시 포함된다.

    권 총장은 한국의 대표적인 1세대 디자이너다. 오랫동안 함께 작업했던 후배 디자이너이자 제자인 건국대 명계수 교수는 권 총장에 대해 “후배 디자이너들에겐 ‘신’ 같은 존재다. 작품 양이나 업적에서 다른 디자이너들이 감히 이루기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서울 선린상고와 홍익대 공예과 도안과를 졸업한 뒤 한일은행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권 총장은 당시 26세의 나이로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일찍이 디자인계의 주목을 받았다.

    “(1960~70년대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초기엔 도안사라고 불렸어요. 땜장이, 미장이, 환장이처럼 ‘장이’관점에서 본 거죠. 그러다가 디자인, 디자이너라는 개념이 들어왔죠. 그래서 제 경우엔 누가 도안사라고 부르면 디자이너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한 적도 몇 번 있어요.”

    디자이너로서 정체성을 갖게 된 첫 세대인 그는 개척자로서 자부심과 책임감도 컸다. 젊은 시절 “디자인이란 첨단의 것인 만큼 늘 새로운 것을 접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음식을 먹을 때도 일부러 신식 레스토랑을 찾아갔다”는 그는 “디자인의 전문 영역을 확대하고 새로운 세대를 양성하기 위해” 은행을 그만두고 대학으로 적을 옮겼다. 당시 대학 강사로서 그가 손에 쥔 한 달 수입은 3만원, 은행에서 받던 월급 15만원의 5분의1 수준이었다. 권 총장은 모교인 홍익대와 중앙대, 건국대 등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현장에서는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 광고전문가로서 꾸준히 활동했다. 지난 40여 년간 그가 남긴 디자인 작품은 1000여 점. 1970년대 이후 국내 대기업들의 CI(Corporate Identity) 붐도 그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는 국내 대기업 중 최초라고 할 수 있는 쌍용그룹의 CI를 비롯해 대웅제약, 동아그룹, 코오롱그룹, 칠성사이다, 문화방송, 한국전력공사 등의 CI를 만들었다.

    ▼ 장르와 영역을 뛰어넘어 굉장히 다양한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작업량도 많고요.

    “제가 디자인을 시작한 시기만 해도 디자인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었어요. 겨우 참고했던 게 남대문시장에 나온 잡지 정도죠. 그런데 그렇게 앞선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더 쉽게 분야를 개척하고 실천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오히려 혜택을 본 셈이죠.”

    ▼ 디자인이란 게 결국 창작인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땐 어떻게 해결하나요?

    “하하, 그건 경우에 따라 다르죠. 사람마다 다르고, 젊을 때와 나이 들어서가 또 달라요. 사전에 철저히 계산해서 표현하기도 하지만 어떨 땐 생각이 안 풀려도 그냥 막 시작하면 우연찮게 좋은 작품이 나오기도 하죠. 글쎄… 이 나이가 되면 경험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봐요(웃음).”

    ▼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게 좋은 디자인이죠. 되도록 단순하면서도 차별화하는 게 중요하고요. 그리고 시대가 지나도 어울릴 수 있는 것, 요새 자주 등장하는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은 디자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

    인터뷰 초반 다소 경직된 분위기에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자의 물음에 답하던 권 총장은 디자인 이야기가 나오자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목소리와 표정도 활기를 띤다. 그는 디자이너를 아라비안나이트의 ‘세헤라자데와 같은 이야기꾼’이라고 말한다. 세헤라자데가 절체절명의 처지에서도 끊임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내놓아야 하듯, 디자이너 역시 기업의 이윤을 높여야 하는 부담을 가진 채 대중이 좋아하도록 흥미로운 디자인을 끊임없이 내놓아야 한다는 것. 그는 더불어 “디자인이 사회 속에서 탄생하는 만큼 디자이너 역시 사회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대 실기고사 폐지한 권명광 홍익대 총장
    ▼ 많은 작품 중에서도 특히 아끼시는 게 있습니까.

    “디자인의 비극은 일회적이라는 거죠. 실용적인 목적에서 제작됐기 때문에 사용되지 않은 디자인은 의미가 없어요. 제가 한 디자인이 기업에 이윤을 주고 성공한 사례는 많지만 개중에는 사라진 게 많죠. 사실, 그런 게 많이 아쉽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게 너무 빨리 바뀝니다. 우선 CI 하나만을 놓고 봐도 새로운 사장이 취임하면 이미지 쇄신한다면서 전혀 다른 모양으로 바꿉니다. 이건 마치 신임 도지사가 기존의 가로수를 모두 뽑고 자기가 좋아하는 나무를 심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사실 그 CI는 그 디자인을 고안한 디자이너의 철학과도 결부된 것입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디자이너에게 로열티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것까진 아니더라도 CI를 교체할 때 한 번쯤 디자이너에게 알려줘도 좋을 텐데… 그런 점에서 속상할 때가 있죠.”

    ▼ 디자이너에 대한 사회적 존경이 부족하다는 말씀이군요.

    “네, 그런 게 없어요. 상징이라는 건 기업의 브랜드 가치의 일부인데 그 중요성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한 예로 코카콜라의 CI는 변하지 않아요. 10년을 주기로 아주 조금씩 변화를 줄 뿐이죠. 반면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그러한 상징을 재산 가치로 키워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큰 문제죠.”

    디자인의 생명은 창의력이다. 그런 점에서 권 총장은 창의력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 창의력, 상상력이라는 말이 구호처럼 번지지만 정작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언급은 없다”면서 “추상적 개념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우선시되고 그에 맞는 풍토를 조성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초의 디자이너 출신 총장

    “디자이너가 된 걸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권 총장은 디자인 불모지였던 한국에 디자인 문화저변을 확대시키는 데 큰 구실을 했다. 그는 한국디자인법인단체총연합회(KFDA) 회장을 비롯해 여러 디자인 및 광고 관련 단체의 협회장을 맡았다. 시각디자이너인 서기흔 경원대 교수는 권 총장에 대해 “한국에서 디자이너가 존경받는 직업이 되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갖고 실천을 통해 그 소망을 이뤄낸 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국내 최초의 디자이너 출신 총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홍익대 내에서도 미대 출신으로는 첫 번째 총장이다.

    ▼ 홍익대가 워낙 미대로 유명하고 총장도 미대 출신이다 보니 다른 계열 학생들이 소외감을 느끼진 않나요.

    “그렇지 않아요. 예컨대 우리 학교 공대는 그 규모나 연구 실적이 서울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우수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융합을 중시하잖아요. 차를 만드는 데 기술력이 전부가 아니라 디자인도 좋아야 하는 거죠. 산업과 예술이 만나기에 우리 대학만큼 좋은 조건도 없습니다. 또 최근 교육을 지나치게 시장에 맡기다 보니 여러 대학의 독문과나 불문과 등이 사라졌잖아요? 경쟁력이 없다고 퇴출시킨 거죠. 하지만 우리 학교는 그런 학과가 모두 살아 있어요. 인문학이 살아 있는 겁니다. 미대, 공대, 경영대, 인문대 등 종합대학으로서 특성을 잘 갖추고 있는 거죠.”

    ▼ 대학이 기업화하는 것에 비판적이신 것 같습니다.

    “근래 들어 몇몇 총장으로 인해 대학이 기업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대학은 기업과는 엄연히 다르죠.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지만 대학의 목적은 교육과 연구니까요. 심지어 일부 대학은 조직을 팀제로 바꾸고 기업의 첨단 지원을 받는가 하면, 학생을 소비자로 보고 있어요. 하지만 난 그런 생각에 반대예요. 학생은 소비자가 아니라고요.”

    ▼ 우리나라에서는 CEO형 총장이 대세 같은데요.

    “그것도 트렌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한때 미국도 학교 기금 때문에 CEO형 총장을 선호했는데 최근 바뀌고 있어요. 하버드 드루 길핀 파우스트 총장은 역사학을 전공한 분이죠. 예일대의 리처드 레빈 총장도 인문학 쪽 전공자고요. 세계적인 트렌드가 더 이상 CEO형 총장을 선호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 혹시 학생들에게 특별히 강조하시는 부분이 있나요?

    “21세기는 다양화의 시대잖아요. 과거에는 대학이 특정한 이념이나 비전을 가지고 학생을 이끌어갔지만 지금처럼 의식과 문화가 다양해진 세상에서 젊은 세대에게 한쪽으로 치우친 비전이나 생각을 심어주는 건 의미가 없다고 봐요. 각기 자신이 학교에서 배우고 느낀 것을 통해 자기 철학이나 비전을 세우고 그를 통해 더 창의적으로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나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천적 지혜’와 ‘파르헤시아’

    홍익대의 총장 임기는 3년. 2006년 9월 취임한 권 총장은 오는 9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 인터뷰 막바지, 총장으로서 어려웠던 점에 대해 묻자 “학생과 직원, 교수 등 다양한 집단끼리의 갈등요소를 모아서 조율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답한 권 총장은 “실기고사 폐지 역시 사회적 책무성을 느끼고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인 만큼 앞으로 좋은 결실을 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저는 많은 꿈을 이룬 행복한 사람 중에 하나예요. 사회에서나 홍익대에서 이렇게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 건 많은 제자와 후배의 덕이라고 봅니다. 앞으로는 제가 할 수 있는 연구를 계속하면서 사회에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메우려고 합니다. 저를 도와준 그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많이 해주고 싶어요.”

    다독가이기도 한 권명광 총장은 인터뷰 내내 다양한 사상가의 철학과 경구를 인용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가 특히 좋아하는, 늘 마음에 품고 다니는 경구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와 미셸 푸코의 ‘파르헤시아(parrhesia)’를 꼽았다. 푸코가 말년에 혼신으로 몰두했던 화두, 파르헤시아는 그리스어로 ‘진실의 용기’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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