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호

강태진 서울대 공대학장 ‘세종시 수정’ 공개

정부, 제2 서울대 공대 신설 ‘세종 우주도시’ 검토 중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9-11-09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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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사체 개발 우주연구원 설립
    • 나로호 실패 후 독자기술 절감
    • 대한항공·GS 참여 논의
    • 퓨처랩·수백 개 벤처기업 입주
    • “정부, 2월 ‘세종시 원안 추진’ 제동”
    강태진 서울대 공대학장 ‘세종시 수정’ 공개

    ‘지난 3월20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중앙)과 강태진 서울대 공대학장(오른쪽)이 국가교육과학기술회의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취임일인 9월29일 “정말 이 문제 해결에 제 명예를 걸겠다”고 했다. “과천 같은 도시를 만들 것이냐, 송도 같은 도시를 만들 것이냐에 대해 세심하고 넓은 고려를 해야 한다. 여러 관계자와 의논해 가능한 한 빨리 해답을 내놓겠다”고 했다.

    ‘세종시 수정’ 문제가 2009년 하반기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굴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내년 6월 지방선거, 2012년 대선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메가톤급이다. 야당은 ‘원안대로’를 강력히 주장한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 자유선진당 류근찬 원내대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등 야당 대표들은 10월5일 “세종시 건설 문제에 대해 국토균형발전 차원과 국가의 약속이행 차원에서 원안을 지키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정운찬 해임결의안’도 만지작거린다.

    세종시 건설을 위한 ‘행정도시건설특별법’은 9부2처2청의 이전을 못 박고 있다. 여권의 이전반대론자들은 “서울의 대통령과 세종시의 장관들이 국무회의를 어떻게 하나. 매번 장거리 이동하거나 화상회의 해야 한다. 엄청난 비효율과 국가역량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도 “대안 없이 철회할 경우 극심한 국론분열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당사자인 충청지역의 관심도 엄청나다. 세종시 관련 문제가 아니면 관심거리가 안 될 정도다.

    정부 여당은 ‘정운찬발(發)’로 ‘세종시 수정’이 쟁점화한 만큼 수정작업에 속력을 내겠다는 태세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법개정을 검토 중이다. 당초 ‘고시변경’만으로 9부2처2청의 이전 계획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석연 법제처장은 10월14일 “장관고시를 변경하는 것만으로 이전 부처를 대폭 축소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임동규 한나라당 의원은 정부 부처 이전을 백지화하는 대신 신재생에너지 산업도시, 국제교육도시, 연구과학도시, 국제의료도시로 개발하는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청와대도 공식입장을 밝혔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10월14일 “세종시와 관련해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전국적인 여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총리실 내에 자문기구를 두고 광범위하게 여론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했다. ‘여론 향배’를 전제로 했지만 ‘총리실 자문기구 설치’에 방점이 찍힌다. 원안대로 할 거면 기구를 설치할 이유가 없다. 수정 문제를 매듭지을 것임을 강력 시사한 것이다. 정 총리는 이미 “세종시 원안에 문제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안(案)’에 관심 폭발

    세종시 수정과 관련해 ‘정부안(案)’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극비리에 검토하고 있는 세종시 수정 내용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만 이전한다. 대신 서울대 공대를 이전하고 대기업을 유치해 첨단과학도시로 발전시킨다”는 구상 정도만 여권에서 흘러나왔을 뿐이다.

    이 같은 ‘서울대 공대 이전, 대기업 유치, 첨단과학도시’ 안은 여러 언론에서 ‘정부 수정안’의 대략적 ‘아웃라인(outline)’인 것으로 ‘크로스 체크’됐다. 그러나 그 ‘첨단과학’의 내용을 채워 넣어줄 구체적 콘텐츠와 조성 방식은 알려진 게 없다. ‘신동아’ 취재 결과 알맹이가 매우 빈약한 현재 단계에서 내용적으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정부는 우주발사체 개발목적의 ‘우주연구원’을 세종시에 조성하는 방안을 서울대학교와 논의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서울대 측으로부터 제출받아 검토 중인 ‘우주연구원’ 문건도 나왔다. 또한 미국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미디어랩’과 같은 최첨단 ‘퓨처랩’과 수백 개 벤처기업을 입주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었다. 대한항공, GS 등 대기업의 참여 문제도 정부 내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세종시 수정 문제와 관련해 정부와 접촉해온 강태진(姜泰晋·57)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우주연구원’을 굉장히 호의적으로 보고 있다. 우주연구원은 연말 발표되는 세종시 수정안에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강태진 학장은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된 ‘서울대의 세종시 이전’ 혹은 ‘서울대 공대의 세종시 이전’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한 의견부터 들어봤는데 “이뤄질 수 없다”고 일축했다. 다음은 강 학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정운찬 총리 취임을 계기로 정부 여당이 세종시 수정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학장께 확인해봐야 할 일이 있습니다. 행정기관을 세종시로 이전하는 대신 서울대학교를, 혹은 서울대 공대를 이전하는 방안이 여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는데 들어보셨나요.

    “네.”

    ▼ 서울대 공대 교수들은 현실성 있는 방안으로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국립대인 서울대와 관련된 법률도 있을 것이고. 서울대나 서울대 공대를 옮긴다는 게 사실 의아한 부분이 많습니다.

    “아이고, 서울대 공대를 옮긴다는 건 이뤄질 수 없는,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고요.”

    ▼ ‘이전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공대 교수는 한 명도 없나요.

    “그럼요.”

    ▼ 법률적으로 불가능하나요.

    “법적인 문제와 관계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 그렇다면 왜 이뤄질 수 없는 일이죠.

    “그건 시설 때문에…. 공대 관악캠퍼스에 설치한 연구시설이 방대해요. 그걸 세종시로 옮기는 건 불가능하죠.”

    강태진 서울대 공대학장 ‘세종시 수정’ 공개

    정부가 검토 중인 서울대의 ‘우주융합신기술공동연구원’ 보고서(오른쪽). 지난 8월25일 오후 5시 전남 나로우주센터에서 나로호가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다.

    ▼ 떼어서 실어 나르면 되지 않나요.

    “한마디로 옮기는 거나 새로 만드는 거나 큰 차이가 안날 정도예요. 서울대 공대를 옮긴다는 발상은 의미가 없습니다.”

    ▼ 서울대 전체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방안은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고 일고의 가치도 없어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도 있는데, 그렇다면 여권에서 흘러나온 ‘서울대 공대의 세종시 이전’은 터무니없는 ‘작문(作文)’이었을까. 강 학장의 설명에 따르면 그건 아니었다. 강 학장은 “세종시에 제2의 서울대 공대를 짓는 방안이 정부와 서울대에서 긍정적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기존 ‘서울대 공대 관악캠퍼스’는 그대로 존치하되 세종시에 전혀 다른 기능의 ‘제2 서울대 공대’를 조성한다는 얘기였다. 결국 ‘제2 서울대 공대 신설’이 ‘서울대 공대 이전’으로 와전된 것이다.

    “정부, 굉장히 호의적”

    취재 결과 세종시에 제2의 서울대 공대를 조성하는 방안은 노무현 정권 때는 없었던 내용으로 지난해 말부터 이명박 정권이 검토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제2의 서울대 공대 조성은 세종시의 ‘우주도시’ 프로젝트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즉, 제2의 서울대 공대는 주(主) 프로젝트인 ‘우주연구원’을 지원하는 하위 프로젝트로 조성된다는 것이다. 최근 여권에서 ‘서울대 공대 이전’ 안이 나오고 있는 점은, 이명박 정권이 세종시의 ‘우주도시’ 프로젝트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방증이 된다. 강 학장과의 대화내용이다.

    ▼ 세종시에 제2 서울대 공대를 설치하자는 건 어떤 맥락에서 나왔나요.

    “지난해 말 우리 공과대학에서 정부에 ‘우주연구원’을 세우자고 건의했어요. 그 문제와 연관이 있어요.”

    ▼ 우주연구원의 설립목적은 무엇인가요.

    “‘나로호(KSLV-Ⅰ)’같은 우주발사체를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거죠. 그러려면 인력을 양성하고 기술을 축적할 연구기관이 있어야 됩니다.”

    ▼ 세종시에 세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죠.

    “우주연구원은 연소실험, 로켓실험을 할 수 있는 너른 공간이 필요해요. 관악 캠퍼스에서는 만들 수 없어요. ”

    ▼ 전남 외나로도에 세우는 게 낫지 않나요.

    “거기는 발사장이고 연구기능은 다른 거죠.”

    ▼ 우주발사체와 관련해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있는데….

    “정부는 2018년 자주적 기술로 로켓을 우주에 발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현재의 연구 인프라만으로는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힘이 부칠 수 있다고 봐요. 올해 나로호 발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1974년, 75년경 박정희 대통령이 창설한 미사일개발팀에서 육성된 인재들이에요. 지금은 인력양성에 구멍이 나 있잖아요.”

    ▼ 우주연구원 요청에 대한 정부 입장은 어떻습니까.

    “굉장히 호의적입니다.”

    ▼ 우주도시 프로젝트는 세종시 수정과 연계 된다고 봐야 하는 거죠.

    “그러겠죠.”

    ▼ 정부는 연말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겠다고 하는데 우주도시도 거기에 포함되나요.

    “그럴 것입니다.”

    ‘일본 우주개발’ 벤치마킹

    나로호 발사 실패 후 이명박 정권은 독자적인 우주발사체 기술 확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서울대 측의 제안은 이런 욕구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었다. 강 학장은 “미래 성장동력으로서 우주개발의 잠재가치는 매우 크다. 정부는 확실히 알게 됐다고 본다”고 했다. 2007년 2510억달러 규모인 세계 우주산업시장은 향후 45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서울대 측이 정부에 제출한 ‘우주융합신기술공동연구원’ 문건은 이 기구의 설립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우주기술은 국방안보기술과 직결되는 미래 성장형 과학기술

    ●우주 선진국들은 우주기술에 대한 기술이전 거부

    ●특히 목적이 분명한 정부출연 연구원과는 기술이전은 물론 기술교류를 꺼림

    ●그러나 우주기술은 그 중요성 때문에 반드시 확보해야 함

    ●일본은 도쿄대 소속 ISAS 설립/활용하여 우주 및 발사체기술에서 자립(현재는 NASDA와 함께 JAXA로 통합)

    ●우주융합신기술공동연구원을 설립함으로써 자주적인 우주 및 발사체 기술 확보

    강태진 서울대 공대학장 ‘세종시 수정’ 공개

    미국 MIT 전경(왼쪽). MIT 미디어랩의 차세대 감정로봇 넥시(오른쪽).

    이 문건은 ‘우주융합신기술’에 대해 “전자, 컴퓨터, IT, 바이오, 신소재, 그린에너지, 항법, 영상, 기상, 환경, 수학, 물리 등 최첨단기술이 융합됐다”면서 “국가주도,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송중계, 위성통신, 극한 환경, 우주실험, 신약개발, 태양전지판, 내비게이션, 휴대폰망 표준시각, 위성지도, 첩보, 일기예보, 국토 그린모니터링, 궤도역학 등 활용분야가 무궁무진하고 경제적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문건은 국내의 현 우주기술 수준에 대해 “위성의 보유 및 운영 기술에만 집중되어 있고 연구 인력이 부족하며 원천기술 확보에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발사체 기술 확보 불가”

    우주융합신기술공동연구원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해 △세계적 수준의 선진 우주국으로 발돋움 △초정밀 복합위성 응용연구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육성(미국 GPS는 2006년 150억달러 세계시장을 창출하는 등 미국 슈퍼 파워의 원동력) 등의 효과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건에 따르면 우주융합신기술공동연구원은 발사체기술연구부, 위성체설계연구부, 위성응용기술연구부, 위성추적 및 관제기술연구부로 구성된다. 우주융합기술공동연구원과 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간 관계설정에 대해선 전자가 후자에 핵심 원천기술과 전문 인력을 공급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 1992년 소형 위성 우리별 1호를 발사했고 2008년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가 국제우주정거장에 다녀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협조로 개발해 나로우주센터에서 쏘아올린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는 예정된 궤도에 진입하는 데 실패했다. 한국의 우주기술은 이웃 중국, 일본에 크게 뒤져 있고 일부 기술에서는 북한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 학장은 “서울대는 세종시에 퓨처랩을 설립하는 방안도 정부에 제안했다. 정부가 퓨처랩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MIT의 미디어랩을 벤치마킹한 퓨처랩은 바이오메디컬공학, 미디어아트공학, 나노바이오공학, 에너지환경공학 등 최첨단 융·복합기술을 아우르는 대규모 연구기관으로서 국가의 신성장산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원안’과 ‘수정안’ 손익계산은?

    ▼ 제2 서울대 공대 건설은 우주연구원이나 퓨처랩 프로젝트와 맞물려 있는 건가요?

    “우주연구원과 퓨처랩이 세종시에 설치되면 관악캠퍼스와는 별개의 제2 서울대 공대도 함께 신설해 학부, 석·박사 교육도 따라가주어야 해요. 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연구하면서 인재가 육성되는 거죠.”

    ▼ 학부생도 받겠다는 건가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세종시 원안에는 행정기관 이전만 있지 일류대학 유치가 없죠. 그러나 세종시가 제대로 되려면 서울대나 카이스트 같은 일류대학이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이런 취지에서 제2 서울대 공대 설치를 정부에 건의했는데 그게 일각에서는 ‘서울대 공대 관악캠퍼스의 세종시 이전’으로 잘못 알려진 거죠.”

    고려대학교와 카이스트는 세종시에 대학을 짓기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태다. 고려대는 2014년 개교목표로 132만㎡ 터에 6개 대학과 7개 대학원을 설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카이스트는 2014년 목표로 31만㎡ 터에 연구중심병원을 설립한다는 구상이다.

    ▼ 우주연구원과 퓨처랩 조성에 드는 투자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2000억원 정도로 추산됩니다.”

    ▼ 우주연구원, 퓨처랩, 제2 서울대 공대의 인력 규모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나요.

    “5000~6000명 정도로 보고 있어요. 우주연구원, 퓨처랩, 공대가 들어서면 재료, 광학, 컨트롤, 전자, 전기, 메디컬 등 수백 개의 관련 벤처기업이 함께 입주할 거예요. 대기업도 따라옵니다. 대한항공 연구기관(우주항공)과 GS 연구기관(소재)이 참여하는 문제가 정부 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는 세종시로 이전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의 교육개발연구원, 교육과학평가원, 과학문화재단, EBS 등 20여 개 기관 7000여 명이 몽땅 이전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듣고 있어요.”

    ▼ 정부와 서울대가 논의 중이라는 내용을 종합하면, ‘9부2처2청의 행정부처 이전’ 원안 대신 ‘2부(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우주연구원, 퓨처랩, 제2 서울대 공대, 2개 대기업 연구기관, 수백 개 벤처기업, 20여 개 교육과학기술 공공기관 설치’ 수정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건데요. ‘원안’과 ‘수정안’의 손익계산이 어떻게 되나요? 이 정도 수정안으로 충청지역에서 만족할까요.

    “허허, 내용을 좀 아는 사람들은 이걸 더 좋아할 걸요.”

    세종시 원안에 따르면 세종시 총면적 중 행정부처가 들어설 면적은 100분의 1 정도다. 이주대상 공무원의 수는 목표 인구의 50분의 1 수준인 1만2000명 선이다. 원안은 ‘정부 분할에 따른 엄청난 국가적 비효율만 초래할 뿐 자족도시로서 필요한 경제동력이 전무하고 고용도 창출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매일경제 2009년 7월14일 보도)

    강태진 서울대 공대학장 ‘세종시 수정’ 공개

    세종시 사업현장.

    ▼ 검토되는 수정안에 따르면 세종시 인구는 어느 정도 될까요.

    “당장 20만 도시는 될 거예요. 그러나 50만 도시가 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봐요.”

    ▼ 세종시에 가장 시급한 건 뭐라고 보나요.

    “우선 KTX 철로를 아산에서 세종시까지 끌어와야 해요. 장기적으로는 서울과 세종시를 논스톱으로 잇는 ‘슈퍼하이웨이’가 구축되면 자동차로도 40분이면 왕래할 수 있어요.”

    세종시 건설에 참여한 한 민간기업 대표 A씨는 여권 일각에서 나온 ‘첨단과학도시’ 수정안에 대해 “구체성이 없고 평이하다. 대선 공약인 과학도시벨트의 복사판 같다. 행정기관 이전 철회의 대안이 되기에 부족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정부와 서울대 측이 논의하는 내용에 대해선 “현실성이 철저히 검증되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면서도 “방향 자체는 긍정적으로 본다. 국론분열의 행정도시에 ‘세종’이라는 성군의 이름이 어울리지 않았는데 ‘세종 우주도시’ 콘셉트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조합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주산업’이 테마가 될 수 있다면 대의명분이 확실하고 파급효과가 큰 고부가가치 분야여서 좋아 보인다. 첨단 신기술 융·복합의 퓨처랩도 민간기업들의 연계투자를 유인하는 효과나 성장동력으로서 설득력을 지닌다”면서 “서울대 공대와 대기업까지 들어온다면 지역개발이 촉진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DC 프로젝트’

    이런 가운데 “정운찬 총리 후보의 9월 ‘세종시 수정’ 언급 이전인 지난 2월 이미 정부는 ‘세종시 원안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국토해양부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2월25일 미국 보스턴 MIT 하얏트호텔에서 ‘세종시 투자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 참석한 B씨에 따르면 미국 측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주최 측 대표인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명의로 세종시 투자 의향이 있는 미국 측 주요 인사들에게 초청장이 발송됐다. B씨는 “당시 미국의 주요 대학, 병원, 기업과 관련된 투자그룹들에선 세종시 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미국의 투자그룹들은 9부2처2청이 이전하는 세종시 개발을 한국판 ‘워싱턴DC 프로젝트’라고 극찬했다. ‘새로운 수도’에 준하는 성격에다 미국의 최신 교육-의료시스템이 접목된다면 상당한 부가가치를 낼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평당 27만원에 수용된 비교적 저렴한 땅값도 미국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비쳤다. 투자설명회는 50여 명의 투자그룹 관계자가 참석하는 등 성황리에 열렸다.”(B씨)

    그러나 행사추진 과정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한다. 초청자인 정 장관이 행사 1주일을 앞두고 참석을 취소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야 한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등 국토부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관계자들이 보스턴 행사를 진행했다. 일반적인 투자설명회에선 주최 측은 MOU 체결 등 외자유치 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세종시 투자설명회의 경우 정부 당국은 이 행사가 비교적 성공리에 끝났음에도 보도자료 배포 등 국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방지했다고 한다. 이 투자설명회 내용은 이날 행사현장에 직접 찾아와 취재한 미주 한인(韓人)신문인 ‘보스턴한인연합신문’에만 상세히 보도됐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정부 내부의 입장차이 때문이었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당시 국토해양부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세종시를 ‘원안’대로 조성한다는 전제하에서 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투자설명회를 준비했다. 이 무렵 ‘정종환 장관이 세종시를 제대로 잘 만들어 2010년 지방선거에서 충남지사 등으로 출마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그런데 세종시 투자설명회 개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정부의 다른 일각에서 ‘제지’하는 바람에 투자설명회를 추진한 측이 오히려 행사 의미를 축소하는 앞뒤가 잘 맞지 않아 보이는 일이 발생한 것으로 안다.”

    B씨는 이어 “정부의 일각에선 이때 ‘세종시 원안 추진’에 부정적 기류였고 ‘미국과의 계약체결’ 등 세종시 사업이 되돌릴 수 없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도록 현상 유지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종, 오산-대덕에 흡수?

    “세종시로의 정부부처 이전이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미국 투자그룹들의 평가는 냉랭해졌다. “워싱턴DC 프로젝트에서 단순 부동산개발 프로젝트로 전락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초 세종시 투자를 적극적으로 검토했던 미국 바이오의약 회사인 티슈진사, 프로모젠사는 오송첨단복합의료단지로 투자처를 변경했다. 지난 9월3일 정우택 충북지사는 미국을 방문해 티슈진사, 프로모젠사와 ‘2011년까지 오송에 바이오의약 R&D 시설을 설립하기로 한다’는 6000만달러 투자규모의 MOU를 체결했다.

    오송첨단복합의료단지의 해외투자 유치에 관여하고 있는 한 민간기업 대표는 “오송과 세종시는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대덕단지와 세종시는 20분 거리에 인접해있다. ‘9부2처2청 이전 무산’ 등 세종시 사업이 지지부진하게 흐를 경우 사업진척이 빠르고 KTX 인프라(서울 34분)가 갖춰진 오송이 ‘새로운 중심도시’가 될 것이다. 세종시는 오송과 대덕단지로 기능이 분할-편입돼 주변부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오송단지는 인구 30만명 규모 첨단의료도시로 개발될 계획이다. 내년 식품의약품안전청, 보건산업진흥원, 국립의료원 등 6개 기관이 입주하고 200여 개 바이오기업이 들어설 예정이다.

    위험한 비밀작전

    세종시 수정안은 여론 폭발력이 큰 사안이다. 정부로서도 공개에 신중할 수밖에 없고 세세한 부분까지 완성도를 높이려 할 것이다. 검토 과정에서 내용이 바뀔 여지도 있다. 정부 내의 여러 곳에서 각기 다른 수정안을 검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는 국론분열 최소화를 위해서라도 빨리 내놓아야 한다. 혼자만 쥐고 있지 말고 공유하며 다듬어나가는 게 좋아 보인다. 정부안이 전혀 안 나온 상태에서 세종시 논란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정부안과 원안을 놓고 저울질해보고 따져보는 데서 비로소 생산적 논의가 가능하다.

    ‘신동아’의 취재 보도는 ‘세종시 수정’ 논의의 ‘발전적 전개’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 현 정권은 최종안을 ‘비밀작전’ 하듯 꼭꼭 숨기다 ‘긴급조치’처럼 발표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수정안 연말 발표설’이 공공연히 나오는 가운데 두 달도 안 남은 10월 하순 현재까지 수정안의 ‘실오라기’ 하나 내비치지 않고 있다. 현 정권의 이런 태도는 위험해 보인다. 국민에 대한 ‘일방통보’로 비칠 수 있다. 법률 하나를 만들 때도 여러 번의 공청회를 거친다. 공개 토론과 검증은 ‘오류 확률’을 줄여주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세종시 수정안을 ‘여론의 검증’ 없이 정권 내부의 코드 맞는 인사들끼리 논의해 결정짓겠다고 한다면 이만큼 자기 파괴적인 일도 없다. 현 정권은 자신이 검토하는 유력 안들에 대해 “이건 어떻습니까”라고 공중(公衆)의 지성(知性)체계에 물어 ‘중간평가’를 받아보는 게 좋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정파적, 지역적 이해관계를 떠나 공정하게 판별해내는 지성체계가 분명히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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