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호

‘거물 단골’ 세브란스병원의 비밀

“‘범털 처리’ 전문? 우리는 환자 중심의 병원일 뿐”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07-01-05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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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장, 안과질환 전문 의료진 막강
    • 진단서, 서울대병원은 까칠? 세브란스는 매끈?
    • “진단서에 없는 병 만들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 박근혜 전 대표 입원은 하나님의 은총?
    • 특실A 하룻밤 175만원…최첨단 회의공간도 갖춰
    • 특실병동은 병원장실에서 직접 관리…프라이버시 보호 철저
    ‘거물 단골’ 세브란스병원의 비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안상태 전 나라종금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 김운용 전 IOC위원, 로비스트 최규선….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지난 2년 동안 보석 또는 형집행정지를 받고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던, 또는 현재 입원 중인 거물급 정재계 인사들이다. 같은 기간 다른 종합병원을 찾은 거물급 인사는 권노갑(삼성제일병원), 임동원(서울대병원) 정도다.

    12월 중순, 기자가 세브란스병원을 찾던 날도 휠체어를 탄 김우중 전 회장과 마주칠 수 있었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형집행정지 기간이 끝나 교도소에서 통원치료 중이라고 했다. 왜 구속된 거물급 인사들은 아프면 너나없이 세브란스를 찾는 것일까.

    세브란스병원 의사와 직원 등 병원 관계자들을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왜 ‘범털’들이 세브란스를 찾느냐”고 물었다. 대부분 “우리 병원이 좋아서 찾는 걸 뭐라고 하겠냐”는 반응이었다. 한 직원은 “심지어 ‘범털 처리 전문병원’이라는 말까지 있는데, 억울한 측면이 있다. 그런 분들 외에도 우리 병원을 찾는 사회 저명인사는 많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있지 않냐”며 답답해했다.

    줄잇는 거물들

    “박근혜 전 대표가 테러를 당한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사고를 당한 후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것은 우리로선 ‘하나님의 은총’이란 말이 나올 정도의 행운이었다. 사고 장소가 신촌로터리였기에 가까운 우리 병원으로 온 것인데, 덕분에 100억원 이상의 광고효과를 봤다고 추정한다. 뉴스 시간마다 새로 지은 병원이 비춰졌고, 박 전 대표의 치료과정을 전하면서 우리의 뛰어난 의술을 확인시켜준 덕분이다.”



    그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사고 이전에는 다른 병원을 다녔지만, 세브란스병원의 얼굴 상처 치료 결과에 만족한 나머지 손 관절 치료까지 이 병원에서 받고 있다는 것. 2006년 지방선거 때 유권자들과 악수를 너무 많이 해서 생긴 부상이다.

    연세대 의대 박형우 교수는 거물급 인사들이 세브란스를 찾는 이유를 오랜 역사에서 맺어진 인맥과 이들의 주요 질병인 심장 및 안과질환 등에 우수한 의료진이 포진한 데에서 찾았다.

    “세브란스가 명성을 얻게 된 요인의 하나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박정희 정권 당시 납치를 당하는 등 죽음 직전까지 간 경험이 있다. 그러니 국립병원인 서울대병원에 가는 것을 꺼렸을 것이다. 집도 신촌과 가까운 동교동인데다, 장인이 연세대 의대 출신이어서 일찍부터 이곳을 이용했다. 특히 세브란스병원에 오래 근무한 국내 최고 권위의 당뇨병 전문의 허갑범 박사가 DJ의 주치의였다. 1997년 대선 때 DJ의 건강 문제가 쟁점이 됐는데, 어느 병원에서도 선뜻 건강진단서를 끊어주려 하지 않을 때 진단서를 발부해 그의 건강이상설을 잠재운 사람도 허 박사다.”

    박지원 전 실장과 정대철 전 대표도 DJ와의 인연으로 이 병원을 찾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실장은 구속되기 훨씬 전부터 이곳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거물 단골’ 세브란스병원의 비밀
    세브란스병원에서 레지던트를 지낸 개업의 A씨는 “세브란스병원 안과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분과체계를 갖췄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는다. 아프면 아픈 분야의 의료진과 시설이 뛰어난 곳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박지원, 최규선씨 역시 녹내장을 치료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본 뒤에 세브란스를 찾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김운용 전 위원도 망막이 떨어져 한밤중에 세브란스 응급실로 실려온 적이 있다고 한다. 떨어진 망막을 치료하는 것은 안과에서 가장 큰 수술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그 후 김 전 위원은 세브란스 단골이 됐다.

    정맥혈관을 찾아라

    박창일 세브란스병원장은 거물 인사들이 몰리게 된 주요인으로 심장질환 전문가 정남식 교수를 꼽았다. 김우중 전 회장, 최순영 전 회장, 정몽구 회장,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정 교수로부터 심혈관질환 치료를 받았다.

    “김우중 전 회장은 연세대 총동문회장이지만 주치의가 서울대병원에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어느 병원으로 갈 것인지를 놓고 망설인 것으로 안다. 세브란스에는 정남식 교수, 김성순 교수 등 30여 명의 의료진이 포진한 심혈관센터가 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다들 굉장히 위험한 상태였는데 치료를 잘해 고비를 넘겼다. 특히 200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말 위험한 상태였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삐쳐서 입원했다’고 보도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때 우리는 정말 비상상태였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과 관련한 일화를 들려줬다. 정 회장은 당초 의사인 사위와 관련이 있는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지만 가장 중요한 심장검사를 받지 못했다. 심장검사를 하려면 정맥혈관을 찾아 바늘이 큰 주사(20게이지)를 놓아야 하는데 손이 퉁퉁 부어 있어 혈관을 못 찾은 것이다. 그래서 세브란스를 찾았는데 담당 간호사가 단번에 정맥혈관에 주사를 놓아 심장 정밀검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것.

    한 전공의는 세브란스 특유의 환자 중심 진료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세브란스는 전통적으로 환자 중심 병원이다. 환자 정보에 대한 보안은 어느 병원보다 철저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시절부터 자주 드나들었지만 일절 소문이 나지 않았다. 내가 레지던트 때 현직 장관이 수술을 받았는데, 보안 유지를 원하기에 담당의사와 관련 의료진이 모두 일요일에 출근해 수술을 했다. 그렇듯 환자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병원은 드물 것이다. 우리는 비단 거물뿐 아니라 일반 환자들에게도 그렇게 한다. 환자가 원하면 검사도 새벽에 해준다. 덕분에 레지던트들은 죽어나지만 그래도 그것을 당연한 임무로 여긴다.”

    ‘환자 중심 진단서’

    설득력 있는 얘기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일부 범털의 경우 구속될 때나 재판을 받을 때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가도 입원한 후에는 멀쩡하기 때문이다.

    가령 진승현 전 MCI코리아 대표는 모 병원에서 뇌종양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수술을 받았는데, 진단서를 끊어주고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진씨와 특수관계였으며 진단서도 허위였음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병원들이 엄격한 진단을 거쳐 진단서를 끊어주는지 의문스러워하는 이가 많다.

    정몽구 회장의 경우 보석 사유가 병 때문만은 아니지만 보석청구 사유 중에는 ‘돌연사 위험이 있다’는 대목도 있다. 하지만 수술 후 퇴원한 그가 출근도 하고 해외에도 나가자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 회장 주치의인 정남식 박사는 “겉으로 건강해 보인다고 해서 왜 교도소로 보내지 않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명사들은 명예를 중시하고 자존심이 강해 교도소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돌연사의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일할 때 받는 스트레스와 교도소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성격이 다르다. 정 회장은 지금도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리해가면서 외국에 가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왜 보석 또는 형집행정지를 위해 서울대병원 등 다른 종합병원보다 세브란스를 찾는 경우가 훨씬 많을까. 연세대 의대의 한 교수는 “서울대병원 의사들은 공무원이다. 진단서나 소견서에서도 병을 ‘까칠’하게 해석하는 데 비해 세브란스는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환자 중심으로 해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경향이 전혀 없다고 부인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의 말을 풀어보면 ‘없는 병을 만들어 진단서에 쓸 수는 없지만, 진단 결과를 놓고 의사가 좋게 해석해줄 여지는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세브란스 출신 의사 A씨의 얘기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를 당해 보험처리용 진단서를 써줄 때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계산법은 없다. 보통 ‘6∼8주’ 하는 식이다. 이때 16주를 주면 허위진단이지만, 합법적 범위 내에서 6주를 주느냐, 8주를 주느냐는 의사의 재량이다. 나는 내가 치료하는 환자를 중심으로 진단서를 끊어주지, 보험회사를 중심으로 끊어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선배들로부터 환자 중심의 교육을 받았다.”

    ‘김태촌 폐암수술 사건’

    그러나 정남식 교수는 세브란스가 환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단서를 끊어준다는 얘기를 강하게 반박했다.

    “터무니없는 얘기다. 환자를 위한다는 것은 잘 치료한다는 것이지 잘 봐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누가 봐도 합당한 대로 하는 것이다. 의학 교과서에 ‘이런 상태에는 이런 위험이 있다’고 다 나와 있다. 의사는 거기에 맞춰 진단서를 쓰는 것이다. 진단서를 유(柔)하게 쓴다는 얘기는 우리를 모독하는 것이다.”

    정 교수는 “과거에도 세브란스 진단서에 대해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지만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1990년대 초에 폭력조직 서방파 두목 김태촌이 세브란스병원에서 폐암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암수술을 받은 환자답지 않게 건강한 모습으로 나다니자 조작 의혹이 제기된 것. 함승희 검사가 직접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서류를 조작하려면 최소한 37명이 공모해야 한다. 수술에 참여한 모든 의료진, 간호사, 의무과 직원들이 똑같이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는가.”

    병원에서 진단서를 제출한다고 해서 판사나 검사가 그것을 그대로 믿고 수용하지는 않는다. 필요한 경우 관련 전문의에게 사실 확인을 의뢰한다. 다른 종합병원에서 진단서를 다시 끊어올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박지원 전 실장에게 병보석을 허가한 재판부도 미국에서 온 안과 교수 1명과 전문의 1명에게 의견을 물어본 후 이를 참고해 최종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서초동에서 만난 변호사 B씨는 “진단서는 결정을 내리는 데 참고자료에 불과하지만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진단서를 검증하는 과정이 있기는 해도 끼리끼리 통하는 의사 사회에서 어느 의사가 내린 진단을 사실이 아니라며 번복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방희선 변호사는 “진단서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현재의 사법구조상 거물들이 잘 풀려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돈과 권력으로 전문성이 있는 변호인단을 꾸려 보석이나 형집행정지로 풀려날 수 있는 근거자료를 충분히 만들어 제출하고, 변호사들이 담당판사와 검사를 설득하기 때문에 관철될 가능성이 일반인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

    “병원 진단서 자체가 보석이나 형집행정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최종 판단은 판사나 검사가 한다. 따라서 문제가 있다면 이를 허가한 과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지, 진단서를 내준 병원에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모든 의사가 다 양심적으로 진단서를 끊어준다고는 믿지 않는다.”

    특A실 하루 입원료 175만원

    세브란스 관계자들은 거물들이 세브란스를 찾는 또 하나의 이유로 ‘뛰어난 시설’을 꼽았다. 2005년 5월 개원한 세브란스 본관 20층엔 특실병동이 있다. 또한 수술용 로봇 등 첨단 의료기기도 많이 들여와 의료의 질을 한층 높였다. 20층 특실은 병원장실에서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홍보실 직원들도 누가 다녀갔는지 잘 모른다.

    병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에 내리자 특실병동 입구를 지키는 보안요원이 용건을 묻는다. 보안요원들은 하루 24시간 병동을 지키면서 방문자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하고, 병실에 문의해 확인한 후 들여보낸다고 한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원하는 저명인사들이 이용하기에 알맞은 곳이란 느낌이 들었다.

    ‘거물 단골’ 세브란스병원의 비밀

    본관 20층에 있는 특A실. 널찍한 실내에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병실이란 느낌을 주지 않는다.

    병동 복도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고, 인테리어, 조명, 방문 등이 특급호텔 수준이다. 병동 입구엔 간호사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는데, 모두 5년차 이상의 중견 간호사라고 한다. 또한 4년차 이상의 전공의가 역시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특실은 모두 18개. 2개인 A실은 실평수가 46평 정도로 널찍하며 4개의 방으로 되어 있다. 하루 입원료는 175만원. B실은 12개가 있으며, 환자실과 거실로 나뉘는데 크기는 특실의 절반 수준이다. 하루 입원료는 80만원. C실은 4개가 있으며 원룸 형태다. 하루 입원료는 70만원이다.

    병실로 들어서자 창문을 통해 서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동쪽으로 창이 난 병실은 연세대 캠퍼스가 정원 격이 된다. 멀리 무악산과 남산이 심신의 피로를 풀어준다. 남서쪽으로 창이 난 병실에선 가까이는 신촌 일대의 전경이, 멀리는 한강을 지나 영등포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직원 말로는 날이 맑으면 인천 앞바다까지 보인다고 하는데, 약간 과장인 듯하다. 대신 야경이 남산타워에서 보는 것 못지않게 장관이다.

    최고급 병실인 A실은 ‘엘림’(2001호)과 ‘베데스다’(2006호)로 불린다. 엘림과 베데스다는 예수가 병을 고치는 기적을 이룬 곳의 지명. A실은 환자용 침실과 보호자 침실, 거실, 회의실로 나뉘어 있다. 복도에서 들어오는 문이 3개로 환자용 침실과 거실, 회의실 출입문이 따로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병실 내에서도 보안이 가능한 구조다.

    환자실에는 환자용 침대와 안락의자가 나란히 있다. 침대는 병원에서 흔히 보는 병상침대와는 디자인부터 다르다. 특히 환자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대가 눈에 안 띄게 감쪽같이 설치돼 있다. 또한 침대 머리맡의 각종 의료기기 연결기구들은 벽 속에 설치돼 미닫이문을 닫으면 보이지 않는다. 환자가 누워서 볼 수 있는 50인치 PDP TV가 설치돼 있고, 환자용 화장실엔 고급 비데와 월풀 욕조가 있다.

    대리석 거실 바닥엔 카펫이 깔려 있다. 70인치 대형 PDP TV가 눈에 띈다. 소파와 탁자, 그리고 찻잔세트가 세팅되어 있는데 언뜻 보기에도 고급스럽다. 찻잔은 영국제 본차이나 제품이고, 소파와 탁자 도 외국산이라고 한다. 벽지와 조명 등 인테리어도 세련미가 풍겼다. 옷장엔 귀중품을 보관하는 금고도 있다.

    거실 한켠에 있는 간이주방엔 전열기,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등이 구비되어 있어 간단한 취사가 가능하다. 보호자실엔 간이침대와 오디오 시설이 있다.

    8개의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회의실엔 빔 프로젝터와 노트북컴퓨터가 있고, 무선랜과 유선랜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조명시설과 TV는 물론, 커튼과 블라인드 등 실내 시설 대부분은 리모컨으로 작동되는 홈네트워크 시스템이다. 널찍한 소파에 앉으니 병원이 아니라 고급 빌라를 방문한 듯했다.

    평균 가동률 65%

    환자실과 거실로 나뉜 B실은 보통 호텔 객실 수준이다. 소파, 욕실 등 모든 게 A실과는 차이가 났다. 물론 A실도 하루 175만원을 내는 호텔 객실과 비교하면 썩 고급스럽다고 할 수는 없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환자들이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때문에 이곳을 찾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집에 있는 것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호텔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환자들도 이 부분에 만족한다”고 설명했다.

    특실용 식단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일반병동과 같은 식단에 환자가 원하는 반찬을 한두 가지 더 준비하는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주방장이 병실에 들러 원하는 음식을 물은 뒤 고객 입맛에 맞게 추가해주기 때문에 반응이 좋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신선한 생선이 먹고 싶다고 하면 그 고객만을 위해 따로 준비해 제공한다는 것. 그래서인지 특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외식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박창일 신촌세브란스 병원장 인터뷰

    “특실이 잘돼야 서민 의료 서비스도 좋아진다”


    ‘거물 단골’ 세브란스병원의 비밀
    ▼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특실을 만든 이유라면.

    “우리 병원의 의료수준이 세계적으로 뒤떨어지지 않는데도 부유층이 일본이나 미국으로 치료받으러 가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그 돈이 우리에게 와야 그걸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재투자할 수 있지 않겠나. 현재 식대로만 1년에 40억원 적자가 난다. 우리 병원에는 진료하지 않고 의학연구를 하는 기초의학 교수가 100명이 넘는다. 새로운 기계를 들여올 돈은 또 어디서 마련하는가. 게다가 우리는 전국 병원 중 유일하게 어린이병원, 정신병원, 재활병원을 모두 운영한다. 다들 적자가 뻔한 병원이라 다른 데서는 만들지도 않는다. 실제로 한 해 적자가 수십억원이다. 그렇다고 없앨 수는 없지 않은가.

    5인실, 6인실로는 적자를 메울 수 없다. 1인실이나 특실을 운영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50억원짜리 고급 의료기기를 사면 특실이나 1인실 환자가 그 기계를 사용하는 비율은 5%도 안 된다. 나머지 95%는 5, 6인용 병실에 있는 서민이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한다. 결국 특실이 잘될수록 서민이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는 셈이다. 20층에 5, 6인실을 만들면 12개 정도 나온다. 7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데 그러면 하루 수입이 70만원이다. 반면 특실은 50%만 차도 수입이 800만원쯤 된다. 그 수익이 다 병원과 환자들을 위해 재투자된다.”

    ▼ 주로 어떤 사람들이 특실을 이용하나.

    “모 재벌회장이 응급한 상황에 처해 왔다가 특실에 입원한 적이 있다. 원래 외국 병원에 다니던 분인데 이곳에 만족해서 외국으로 안 나가고 여기에서 신장이식수술을 받았다. 그분 처지에서도 외국 병원 1인실에 있는 것보다 우리 병원 특실에 있는 게 훨씬 싸고 편하다. 오는 목적은 건강검진이 많다. 요즘은 모 기업 임원들이 돌아가면서 정기검진을 받으러 온다. 그 외 장기입원을 요하는 환자와 암 치료 등을 위해 한 달에 한두 번씩 오는 분들이 있다.

    이처럼 외국 병원을 이용하는 국내 상류층을 끌어들이기도 하지만,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의 상류층도 타깃이다. 얼마 전에도 중국에서 당 고위간부 아들이 치료를 받고 갔다.”

    ▼ 이른바 ‘범털’들이 서울대병원보다 세브란스에 몰린다. 그 이유가 이곳이 환자에게 더 유리하게 진단서를 끊어주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상식 밖의 얘기다. 의사마다 진단서 끊어주는 ‘개성’이 있을 수는 있지만 학회에서 정한 룰을 벗어날 수는 없다. 룰 안에서도 조금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 때문에 (교도소에서) 못 나올 사람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환자 중심의 병원이다. 돈 없는 환자가 왔을 때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어떻게든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환자 중심’의 의미다.”

    ▼ 최근 국제병원평가위원회가 다녀간 것으로 아는데.

    “우리가 JCIA(국제병원평가위원회)에 평가를 요청해 얼마 전에 조사를 마치고 돌아갔다. 두 달 후에 결과가 나오는데 인증을 받을 것 같다. 윤리, 의술, 시설 등을 모두 합쳐서 평가하는데, 국내 병원으로는 처음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세브란스의 수준을 개관적으로 검증받을 기회라고 생각한다.”


    병원 관계자는 특실의 평균 가동률은 65% 안팎이고, 그중에서도 A실은 50%가 안 된다고 한다. 아직 홍보가 덜된 탓도 있지만, 이곳을 고정적으로 찾는 환자들을 위해 미리 병실을 비워둬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실을 나서는데 홍보실 직원이 “세간에 알려진 오해가 있다”고 했다. 보석이나 형집행정지로 세브란스에 입원했던 환자들은 정몽구 회장 외엔 대개 특실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박지원 전 실장, 김우중 전 회장, 최순영 전 회장은 모두 심혈관병동에 입원했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심혈관병동에 있다가 공사 때문에 잠시 특실 B실에 있었다는 것. 정치인 중에 특실을 이용한 경우는 박근혜 의원이 유일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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