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호

검찰·국정원의 ‘러 외교관 표적수사’가 우주인 고산 퇴출 불렀다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8-04-08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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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원·검찰, 2006년부터 주한 러 참사관 ‘비밀 내사’
    • 검찰, ‘러 참사관 불법학위 알선책’ 조직도 작성
    • “대한(對韓) 정보활동 자행 중이며 금품 수수”
    • 검찰, 러 국립대학 총장도 ‘공범’ 혐의 지명수배
    • 러 연방 검찰 “자체 수사결과 불법 없다” 통보
    • 러, “한국 검찰 왜 이러나” 불쾌감 표출
    • 귀국한 러 참사관, 본국서 한국 실무 총괄
    • “무리한 수사로 국익 손실” 논란
    검찰·국정원의 ‘러 외교관 표적수사’가 우주인 고산 퇴출 불렀다

    우주인 고산씨(오른쪽)와 이소연씨.

    최근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석연치 않은 사건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한국 최초 우주인으로 선발되어 러시아에서 교육받던 고산씨는 3월10일 러시아 연방우주청에 의해 이소연씨로 전격 교체됨에 따라 우주선을 탈 수 없게 됐다. 사흘 전인 3월7일엔 러시아에 체류 중이던 한국인 3명이 러시아 당국에 의해 강제 출국된 사실이 공개됐다. 또 1월20~25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당선자의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한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은 미국, 중국, 일본 등 다른 주요 3개국으로 간 당선자 특사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국가수반(푸틴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들 사건은 각각 개별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며 각기 그럴 만한 이유가 제시됐다. 고산씨의 경우 2007년 9월 본인 실수로 훈련 교재를 개인화물에 넣어 한국에 보낸 점, 지난 2월 말 임무와 상관없는 우주선 조종 교재를 러시아 우주인에게서 빌려 소지하다 적발된 점이 교체 이유로 제시됐다.

    석연치 않은 사건들

    강제 출국을 당한 한국인 3명은 탈북자를 상대로 선교활동을 한 성직자, 북한 노동자를 고용해온 자영업자, 주러 북한대사관 인사들과 접촉한 사업가로 모두 북측 사람을 만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러시아 당국이 북한 측의 항의를 받아들여 이들을 추방시켰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이명박 당선자의 특사가 푸틴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해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기자에게 “러시아 정부에선 원래 다른 나라의 특사를 대통령이 직접 만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세 사건에는 눈여겨볼 만한 점도 적지 않다. 우선 세 사건은 비슷한 시기에 잇따라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러시아 당국이‘능동적으로’한국의 국익을 저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는 점도 같다. 우주인 교체로 인해 한국 측이 입게 된 유무형의 손실은 실로 크다. 우주인 교체 사실만으로도 200억원이 투입된 이 사업의 상징성과 국민적 자긍심에 작지 않은 흠결이 났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배출’ 프로젝트와 같은 국가적 사업이 우주선 탑승 한달전 우주인이 교체되는, 이런 ‘위험천만한 스케줄’로 진행된 전례가 없다.



    “이소연씨가 불가항력적 이유로 탑승하지 못할 경우 우주인 배출 사업 자체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가시지 않고 있다. 고산씨와 달리 이소연씨는 러시아어를 거의 하지 못하고, 제1탑승자로 선정된 고씨가 이씨보다 더 수준 높은 심화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씨는 심화 훈련 프로그램을 속성으로 이수해야 할 형편이다.”(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연합뉴스 3월12일 보도)

    한국인 3명 추방 역시 뚜렷한 법규 위반 사실이 제시되지 않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재외 한국 국민의 권익 보호에 타격이 된 사건이었다. 특사의 면담 불발도 한국 대통령당선자의 위상에 좋을 게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우주인 교체·한국인 추방 건의 경우 러시아 측이 한국 측에 어느 정도의 ‘호의’만 갖고 있었다면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사안인데 이례적으로 강경하게 처리했다는 시각도 있다. 퇴출 사유가 된 고산씨의 행위는 스파이 활동이 아니었고 그가 보관한 자료도 기밀은 아니었다. 러시아 측도 ‘(고씨의) 의욕과잉에서 온 측면이 컸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교체한 것이다.

    한국인 추방 건도 비슷한 성격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에서 체류하던 한인 교민들이 러시아 법규를 위반해 비자 재발급과 재입국이 거부된 경우는 있었으나 강제 출국 조치를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동아일보 3월7일 보도)

    러 당국의 對韓 냉기류

    검찰·국정원의 ‘러 외교관 표적수사’가 우주인 고산 퇴출 불렀다

    미나예프 러시아 참사관과 자슬라브스키 러시아 국립대 총장을 가짜학위 유통 혐의자들의 범죄 조직도 속에 포함시킨 검찰의 ‘사건 체계도’.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 사건의 근저에는 한국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냉기류가 흐르고 있고 그것이 대(對)한국 조치의 직간접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올 수 있다. 최근 한국과 러시아는 자국 이익을 위해 북핵 문제, 우주산업, 무역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 러시아 측은 그 과정에서 한국에 대해 비우호적 태도를 자주 보였으며 한-러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 못했다는 것이 러시아 전문가들의 견해다.

    “러시아와의 우주개발 협력이 문제를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 연말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는 국산 우주발사체 KSLV-Ⅰ호도 당초 핵심부분인 1단 액체로켓을 양국이 공동개발하기로 했지만, 러시아가 기술보호협정 보안규정 준수를 들어 기술이전을 거부하면서 발사 일정이 3년가량 늦춰졌다. 이어 KSLV-Ⅱ호 발사도 2010년에서 2017년으로 미뤄졌다.”(조선일보 3월11일 보도)

    이런 가운데 ‘신동아’는 노무현 정권이 2006년부터 국가정보원과 검찰을 동원해 주한 러시아대사관 참사관을 비밀 내사한 사실을 확인했다. 러시아 측은 이 때문에 ‘한국 사정기관이 부당하게 러시아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며 한국 측에 반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검찰은 러시아 외교관과 러시아 국립대학 총장을 각각 ‘알선책’과 ‘공범’으로 적시한 ‘범죄 조직도’를 만들어 법정에 제출했으며, 국립대 총장에 대해선 지명수배령을 내리기도 했다. ‘신동아’는 검찰이 작성한 ‘조직도’를 입수했다.

    그러나 법원은 2008년 2월 검찰의 관련 기소 내용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 퇴임직전 검찰은 항소했다. 러시아를 불편하게 한 이 사건은 검찰의 항소에 따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이때 부터 한국인 강제추방·우주인 고산씨 퇴출이 있따랐다.

    해당 러시아 참사관은 자신이 한국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된 데 대해 무척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지금 러시아 외교부에서 한국 관련 정책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정당하고 자주적인 수사를 한 것일까, 아니면 국가를 어려움에 처하게 한 것일까. 러시아 외교관 비밀 내사 과정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봤다.

    2006년 3월19일 검찰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극동국립예술아카데미(Far Eastern State Academy of Art) 자슬라브스키 총장과 공모하여 국내 대학 교수와 음대 졸업생 120여 명에게서 25억원을 받고 가짜 석·박사학위를 발급한 혐의(업무방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고등교육법 위반)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서울로얄음악원 대표 도모(여·53)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자슬라브스키 총장에 대해선 지명수배 및 국내 입국시 통보 조치를 취했다.

    ‘러 외교관 비밀 내사’ 내막

    검찰은 또한 도씨를 통해 산 가짜 박사학위를 이용해 대학교수로 임용됐다며 서울 J대 음대 조교수 박모(50)씨 등 5명을 불구속 기소했고, 가짜 박사학위를 한국학술진흥재단에 등록했다며 E대 음대 교수 주모(61)씨 등 16명을 벌금 700만~10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도씨를 통해 러시아 극동국립예술아카데미 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대학교수 10명, 전임강사 1명, 시간강사 9명, 교향악단 단원 1명이었다.

    이 같은 검찰 수사 결과는 당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등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가짜 러시아 석·박사 무더기 적발…현직 교수도 10명 포함’ ‘교수·강사들 ‘러시아 음대 박사’ 샀다’ ‘아직도 가짜 박사학위 사는 교수님들’ ‘러시아 허위박사 백태’ ‘간판 중시 사회가 낳은 ‘가짜 박사’ 코미디’…. 대학 측은 해당 학위 취득자에 대해 징계에 착수했고, 교육인적자원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허위 외국박사 학위를 가려내기 위한 교육부 훈령개정안을 내기로 하는 등 후속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올 2월19일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이 기소한 도씨와 학위 취득자 등 이 사건 피고인 20명 전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공소 사실 전체를 뒤엎는 판결이었다.

    검찰·국정원의 ‘러 외교관 표적수사’가 우주인 고산 퇴출 불렀다

    “한국 검찰 수사 결과와는 달리 러시아 국립대는 가짜학위를 수여하지 않았다”고 밝힌 러시아 신문 기사. 러시아 극동국립예술아카데미의 박사학위 사본(아래).

    판결문에 따르면 검찰이 밝힌 ‘불법 가짜 석·박사학위들’은 모두 ‘합법적인 진짜 학위들’이었다. 극동국립예술아카데미가 도씨를 통해 수여한 박사학위는 통상적인 박사 학위(Ph.D.·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전공과목 60학점 이상 취득하고 외국어 시험과 박사학위 종합 시험에 합격한 뒤 박사학위 논문 심사가 통과됐을 때 수여되는 학위)가 아니라 ‘연주학 박사학위(DMA·Doctor of Musical Art)’였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선 논문 등 학문적 업적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일정수준 이상의 연주 실력’만을 평가해 DMA 학위를 수여하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대학원 과정에서 비정규과정의 한계로 일부 부실한 학사운영이 있었다 하더라도 러시아 극동국립예술아카데미가 수여한 학위는 러시아 교육 당국이 학위를 공인한 만큼 가짜 학위가 아니며, 피고인들이 이들 학위를 한국학술진흥재단이나 대학 측에 제출한 것은 업무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법원은 “도OO이 극동국립예술아카데미와 교육협력계약을 체결해 한국 수강생들이 이에 따라 서울과 러시아를 오가며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수업을 받는 등 소정의 대학원 과정을 이수한 것은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라고 했다.

    이 같은 판결이 나오자 “검찰이 러시아의 대학교육 제도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무리하게 수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2006년부터 주한 러시아대사관의 미나예프 알렉산드르 프로코피에비치(55) 정무참사관을 가짜 학위 유통의 공범으로 내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러 참사관 ‘사건 체계도’ 입수

    법원에 제출된 2006년 2월24일자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검찰은 범죄 혐의자의 조직도를 사진과 도표로 정리한 ‘사건 체계도’(그림 참조)에 미나예프 참사관을 포함시키면서 그의 사진, 생년월일, 직위, 혐의사실(비자 등 편의제공)을 함께 기록했다. 이 ‘사건 체계도’에서 블라디보스토크 극동국립예술아카데미 자슬라브스키 총장은 ‘주모자’로 표기돼 있다.

    또한 검찰은 ‘대상자별 혐의내용’ 수사 보고서에서 미나예프 참사관에 대해 내사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다음은 검찰 수사 보고서 주요 내용이다.

    ‘혐의 내용’

    미나예프 주한 러 대사관 정무 참사관은2002년 1월 주한 러 대사관 정무 참사관으로 부임한 후 국내 정·관·학·재계 인사들에게 접근, 광범위한 친러 인맥 형성과 동 인맥을 바탕으로 활발한 대한(對韓) 정보활동을 자행 중인 자로

    2005년 5월25일경 하바로프스크 국립문화예술대 총장 방한시 도○○ 서울로얄기획원장의 초청으로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 18층 한식당 잠보에서 도○○, 국립문화예술대 총장과 ○○○ 교수 등을 만나

    도○○으로부터 국내 교수·강사들 대상 러 대학 석·박사 학위 매매알선 사업과 신속한 비자발급을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고 양주와 액수미상의 금품을 수수한 후 이를 응락하고

    2005년 10월19일 같은 장소인 한식당 잠보에서 재차 도○○을 접촉, 러 대학 학위매매 사업 관련 지원약속에 대한 대가로 오찬과 양주 등 선물을 제공받은 혐의가 있는 등 내국인 도○○과 연계해 주재국 범죄행위에 가담, 비엔나 협약을 위반한 혐의가 있는 자임

    이에 대해 피고인 측 방희선 변호사는 기자에게 “검찰의 이 같은 수사 보고서는 국가정보원의 내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측이 사전에 미나예프 참사관-자슬라브스키 총장-도모씨 연계 혐의를 내사해 그 결과를 검찰 측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방 변호사는 그 근거로 국정원 직원 A씨가 이 사건 최초 제보자 격인 B씨(여·모 대학 교수)와 나눈 대화를 녹취해 검찰에 제공한 녹취록을 공개했다.

    검찰·국정원의 ‘러 외교관 표적수사’가 우주인 고산 퇴출 불렀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

    국정원·검찰의 ‘러시아 잡기’ 공조

    녹취록은 검찰의 미나예프 참사관 혐의 보고서가 나오기 두 달 전쯤 작성된 것이었다. 그런데 제보자 B씨의 남편은 당시 여권 실세의 측근 인사였다. 녹취록을 보면 국정원 직원 A씨는 배석자인 C씨와 함께 B씨로부터 사전에 얻은 제보내용을 재확인하고 있다. B씨가 말하는 내용이 국정원 측을 거쳐 검찰의 수사 보고서 내용으로 그대로 옮겨졌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국정원 직원 A씨 : 블라디보스토크 총장이 자슬라브스키죠?

    제보자 B씨 : 난 그건 모르겠어요. 키가 자그맣고 통통하고 그분은 음악한다고 하더라고요. 하바(하바로프스크)에는 박사학위가 없고 블라디(블라디보스토크)는 있고. 여기서 박사학위를 받게 만들어서….

    A씨 : 그래서 저희들이 블라디보스토크 파견관한테 블라디보스토크 대학에 확인해 보도록 했는데 거기 대학에서도 그래요. 이거는 자기들이 박사학위증으로 준 게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들이 그렇게 확인했고 그래서 그렇게 되면 그건 분명히 박사학위가 아니거든요.

    B씨 : 근데 러시아라는 나라가 자존심도 있고 귀족적인데 이중성이 있다고 하거든요. 거지 근성도 있고 해서 돈으로 처발라야…

    C씨 : 도○○씨가 여기 주한 러시아대사관에 자주 만나는 사람 있죠?

    B씨 : 미나예프라는 분도 만났는데…. 그 사람(미나예프)을 만나서 대사관을 뭐 어떻게 하면은… 머리가 막 돌아가는 거예요. 올해 5월인가 총장이 왔었잖아요. 그때 식사를 했잖아요. 도○○이 총장하고 미나예프하고… 근데 그게 결국은 다 도○○이 사업하느라고 만났는데….

    러시아 측은 러시아 국립대학 총장이 한국 검찰에 의해 불법 학위 매매 혐의로 지명수배된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하게 됐다. 러시아 측은 재판과정에서 주한 러시아대사관 외교관이 공범 혐의로 한국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한다.

    러시아 검찰은 1년여에 걸쳐 이 사건에 대해 자체 수사를 벌였다. 그 결과 러시아 검찰 측은 “극동국립예술아카데미가 한국 피의자들에게 수여한 학위는 러시아의 관련법을 준수한 정상적인 창작연주전공 박사학위이며, 이 대학 총장은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수사 결과를 서울중앙지법에 통보했다.

    방 변호사는 미나예프 참사관의 이 사건 연루 혐의와 관련해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러시아의 박사학위는 모스크바 소재 교육당국에서 정상적인 학위라는 점을 공증받도록 하고 있는데, 극동국립예술아카데미가 발행한 학위의 경우 러시아 측은 한국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주한 러시아대사관에 학위 공증업무를 대리해줬다. 수수료는 3만원 정도로 통상적인 행정업무일 뿐이었다. 이런 정황상 미나예프 참사관이 금품을 수수하고 학위알선 매매에 가담했다는 혐의는 말이 안 된다.”

    “양주 선물한 적 없다”

    도모씨는 기자에게 “미나예프 참사관과 두어 차례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학위 문제와 관련해 그에게 부탁할 만한 사안 자체가 없었다. 금품을 준 적은 없고 저렴한 술을 선물로 제공하기는 했다”고 말했다. 도씨는 미나예프 참사관과 관련된 자필 해명서를 ‘신동아’에 보내왔다.

    “나는 2004년 5월경 음악저널이 주최하는 차세대음악제에서 연주를 한 뒤 리셉션장에서 미나예프 참사관을 처음 소개받았다. 주변에 30여 명의 사람이 있어 인사만 했다. 며칠 후인 5월30일 프라자호텔의 일식당에서 나와 미나예프 참사관, 러시아 대사 보좌관, B씨 등 7명이 식사를 했다. B씨가 러시아 사하공화국 오페라단의 한국 초청 공연 건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B씨의 공연 건 때문에 만난 자리였으므로 식사비는 B씨가 지불했다. 다만 나는 미나예프 참사관에게 시가 1만5000원 상당의 보드카 1병을 선물했는데, 주고받기에 부담이 없는 수준이었으며 외교관의 품위 유지나 윤리와 관련해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러시아 대사 보좌관이 동석하는 점은 사전에 몰라서 그에게는 선물을 주지 못했다.”

    국정원 직원이 “저희들이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 영사관) 파견관한테 블라디보스토크 대학에 확인해보도록 했는데 거기 대학에서도 이거는 자기들이 박사 학위증으로 준 게 아니다라고 얘기했다”고 한 것과 관련, 방 변호사는 “러시아 대학의 교육체계를 잘 모르는 한국 영사관 파견관이 대학 측에 통상적 의미의 박사학위를 한국 수강생에게 준 적 있느냐는 취지로 질의하니 대학 측은 ‘그런 적 없다’고 대답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항소까지 하다니!”

    검찰·국정원의 ‘러 외교관 표적수사’가 우주인 고산 퇴출 불렀다

    러시아 근해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

    검찰 측에 “한국 수강생이 받은 학위는 극동국립예술아카데미가 수여한 학위가 아니다”라는 사실 확인서를 제출했던 김모 영사는 이후 문서를 통해 “내가 직접 학교 측에 확인한 것은 아니며, 나는 다른 영사가 확인했다는 내용을 내 명의로 공증만 해줬다”고 물러섰다는 것이다.

    러시아 측이 한국 검찰의 수사에 대해 내심 곤혹스러워하고 불쾌해 했다는 것은 러시아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전통과 자부심이 있는 나라인 만큼 국립음악대학이 불법 학위 장사를 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는 것. 러시아 검찰이 한국 법원에 “극동국립예술아카데미가 수여한 학위는 불법 학위가 아니다”라는 수사결과를 통보한 직후 일부 러시아 언론은 “아카데미는 죄가 없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검찰·국정원의 ‘러 외교관 표적수사’가 우주인 고산 퇴출 불렀다
    미나예프 참사관은 2007년 1월 러시아로 귀국하기 전 지인인 한 러시아 소식통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 검찰이 나에 대해 부당하게 내사했다”는 소회를 밝혔다고 한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미나예프 참사관은 “23년 동안 남북한에서 부끄럼 없이 일 해왔는데 누명을 쓰고 돌아가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 한국이 러시아 외교관을 이렇게 대접할 수 있느냐”면서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했다. 미나예프 참사관은 귀국 후 현재까지 러시아 외교부 한국과장으로 재직하면서 한국 관련 정책 실무를 총괄하고 있다.

    검찰은 러시아 가짜 학위 사건에 대한 법원의 무죄판결 사흘 뒤인 올 2월22일 공소 사실 전체에 항소하는 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종료 3일 전이었다. 이후 러시아 정부의 한 고위 인사는 한 러시아 소식통과 만난 자리에서 “항소까지 하다니! 한국 검찰을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은 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한국 검찰이 항소했다는 것은 ‘러시아 국립대학이 불법 가짜 학위 장사를 했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는 의미이며, ‘러시아 검찰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의미다. 러시아 측으로서는 주요 국가기관인 국립대학과 검찰의 신뢰성이 외국에 의해 연거푸 불신을 받은 셈이다. 처지를 바꿔서 외국 정부가 ‘한국 국립대학은 가짜 학위 장사하는 범죄 집단이고, 한국 외교관은 알선 브로커이며, 한국 검찰은 믿을 수 없다’며 한국 국가기관에 대해 지속적으로 내사하고 사법처리하고 판결이 나와도 불복한다면 한국 측은 이 나라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갖게 되겠는가.”

    노무현 정권이 국정원과 검찰을 동원해 러시아 외교관을 비밀 내사하고 러시아 대학의 학위 매매 의혹을 기정사실로 사건화한 것은 노 정권이 표방한 ‘자주’의 단면이라는 시각도 있다. 러시아든 어느 나라든 걸리면 소신껏 자주적으로 수사하고 처리한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 실제로 노 정권 상층부에선 검찰이 이 사건을 크게 공론화한 것에 대해 만족해했다고 하며, 이 사건을 담당한 검찰 간부는 8개월 뒤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됐다. 피의자 도모씨는 “검찰로부터 ‘우리의 목표는 미나예프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에서도 미나예프 참사관 면담 건과 관련해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다. 검사는 내게 ‘미나예프에게 돈을 주고 대사관에서 학위 공증을 한 것 아니냐’며 마구 몰아쳤다. 나는 ‘그런 적 없다’고 답했다. 검사는 ‘우리는 꼭 미나예프를 잡고 싶다’고 해서 나는 ‘그렇게 잡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라고 했다. 검사는 ‘미나예프 건에 대해 말해주면 당신 사건 편하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나는 ‘뭘 알아야 말할 것 아니냐’고 일축했다.”(도씨 해명서)

    우주산업과 천연가스

    외교관 비밀 내사 및 국립대 총장 지명수배건은 한-러 양국 간 외교 문제로 비화될 휘발성을 갖고 있었는데, 겉으로 표면화하지 않은 대신 내적으로 한-러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는 시각이 있다. 방희선 변호사는 “외국의 내정과 관련된 수사의 경우 더욱 철저한 증거주의가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위험수위를 넘나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학위의 ‘질’ 문제와 학위의 ‘불법성’의 문제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학위 요건의 충족 문제는, 비록 그 학위가 질적으로 낮다고 하더라도 당사국의 재량 사안이다. 상대국 정부가 ‘적법한 학위였다’고 공식 문서로 통보해도 ‘못 믿겠다’고 한다면 이는 국가 사법권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했다.

    일부 러시아 전문가는 “현실적으로 우주산업 기술 이전, 에너지 자원 확보, 북핵 문제 등 한국 측은 앞으로도 러시아 측의 협조를 받아내야 할 일이 많다. 자국 법원조차 승복시키지 못하는 사안을 두고 상대국 국가기관을 사법적으로 단죄하겠다는 태도를 계속 고수하면서 상대국과 협조가 제대로 되겠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항소권 등 검찰의 고유 권한도 국익 우선과 상대국의 사법 판단에 대한 존중의 테두리 속에서 절제되어 행사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윤성학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연구소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내건 자원외교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선 러시아와의 공조가 긴요하다”고 했다. 다음은 윤 교수의 설명이다.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는 점점 더 국가적으로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천연가스 최대 수입국인 중동 카타르는 ‘2012년 이후엔 장기공급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한국 측에 이미 통보한 상태다. 카타르는 유럽으로 수출할 계획이다. 대체할 수입처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러시아는 2010년까지 사할린 가스전에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천연가스관을 연결할 예정이다. 블라디보스토크 항에서 동해 해저를 통과해 한국으로 가스관을 연결하면 한국은 선박 운송비가 비싼 중동 대신 러시아 극동지역의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값싸고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 오히려 더 득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2012년 APEC 개최를 앞두고 대규모 도시개발이 계획되어 있다. 이재오 대통령당선자 특사는 사할린 가스를 한국에 가져오는 대신 한국 건설 회사들이 블라디보스토크 재개발에 참여하는 ‘빅딜’을 러시아 측과 비공개로 논의한 것으로 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윤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우주산업, 에너지 등에서 실용외교를 하려면 우선 러시아 측과의 불필요한 마찰 요인을 제거해야 하며 집권 초기 우호적 관계에서 협력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러 국립대, 문제 많다”

    그러나 이와 상반되는 견해도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검찰 수사나 항소는 국내법이 정하는 절차에 따르면 된다. 검찰은 오직 사건만 보고 항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진행하면 되는 것이지, 다른 것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 러시아 외교관 내사 건도 단지 내사만 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러시아 국립대학 총장을 지명수배한 것도 실체적 진실 규명에 필요한 조치였다면 문제가 안 된다. 러시아 측도 3심제의 한 과정인 검찰 항소에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교육과정을 부실하게 이수한 외국 박사가 양산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안이며, 그 과정에 불법이 없었는지 들여다보는 일은 검찰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국정원과 검찰이 주한 러시아대사관 외교관의 비리 혐의를 내사해왔다는 점은 처음 듣는 얘기며 그 내용을 알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국정원 측은 ‘신동아’의 사실 확인 요청에 대해 “국정원이 미나예프 참사관을 내사하고 그 결과를 2006년 2월 검찰에 이첩한 것은 사실이다. 미나예프도 우리측이 자신을 내사해온 점을 알았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보안’으로 분류해 자료를 검찰에 넘겼는데 어떻게 공개가 됐는지”라고 밝혔다.

    검찰 측은 “1심 법원이 이 사건과 관련해 사실을 오인하고 법리를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항소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 관계자의 태도는 단호했다.

    “1심 판결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국립대학 총장이 가짜 학위 불법 매매 사건의 공범이라는 사실, 이 대학 측이 한국인 수강생들에게 수여한 박사학위는 가짜 학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러시아 검찰 측에서 보낸 수사결과 문건도 문장의 의미가 애매하다. 번역하는 데 애를 먹었다. 결론적으로 이 대학이 수여한 학위는 DMA조차 아닌 것으로 우리는 해석한다. 재판부가 이들 학위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판단한 부분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2심에선 판결이 달라질 것이다. 그 러시아 대학은 ‘학비를 정상적 절차에 따라 받으면 국고에 귀속된다’는 이유로 학비도 편법으로 받을 만큼 문제가 많은 대학이다. 국립대학이라면서 남의 나라인 한국에 와서 제대로 인가도 받지 않고 박사학위 강좌를 개설했다. 그런 일은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이 관계자는 “주한 러시아대사관 참사관을 내사한 첩보 문건이 어떻게 법정에 제출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사할 때 참사관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의 핵심과 관련해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왜 노무현 정권의 국정원은 러시아 외교관을 그렇게 집요하게 뒷조사했고, ‘대한(對韓) 정보활동을 자행 중’이라는 표현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며, 왜 노무현 정권의 검찰은 러시아 외교관을 잡기 위해 애를 썼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또 다른 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권 차원의 결단 필요

    최근 불거져 나오는 사건들은 한-러 관계가 내면적으로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이제는 국익 논란과 검찰권 논란이 맞서는 문제, 한-러 관계의 상처의 근원일지도 모르는 문제에 대해 정권 차원의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됐다. ‘신동아’ 보도를 통해 한-러 양국이 서로 불쾌해 하면서도 덮어두고 있던 문제가 공론화하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검찰은 검사 동일체의 원칙과 3심제의 취지에 맞게 이전의 태도를 계속 견지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을 찾아보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신속한 판단을 내려야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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