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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원전”으로 시작한 재후(災後) 시대

제4장 그래도 원자력이다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사요나라 원전”으로 시작한 재후(災後)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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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하나를 더 하고 지나가자.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 후 한국수력원자력도 유수의 보험회사와 새로 가동하게 된 원전의 보험 가입을 논의했다. 앞에서 설명했듯 한국 원전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 원전보다 안전성이 높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모든 원전에 수소제거기를 설치한다.

보험회사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놀라 보험료를 올리려 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우리 원전은 안전성을 강화한 것이라 사고 위험이 줄었다”고 주장했다. 덕분에 한국수력원자력은 과거와 같은 기준으로 새로 가동한 원전의 보험 가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발전소 폐쇄 로드맵 발표

2011년 12월 21일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 폐쇄 로드맵을 발표했다. 도쿄전력과 경제산업성 에너지자원청, 산업안전청이 공동으로 작성한 이 로드맵에 따르면 사고를 낸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4개 호기는 2011년 12월 16일부로 상온정지 상태에 도달했다고 보고, 이후로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 안정화에서 후쿠시마 제1발전소 안전상태 유지관리에 노력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피해가 가장 작은 4호기에서는 2년 안에 4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에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전량 인출하고, 이어 3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에서도 모든 사용후핵연료를 꺼내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1호기와 2호기에서는 3·4호기에서 사용후핵연료를 인출한 경험을 토대로 다시 계획을 짜 그 후에 사용후핵연료를 꺼내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사고가 난 4개 원전에서 사용후핵연료를 꺼내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일이 끝나면 용융사고가 발생한 1~3호기의 원자로에서 녹은 핵연료를 꺼낸다. 그리고 3개 원자로를 해체하기로 했다.



핵연료를 꺼내고 원자로를 해체하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다. 1979년에 노심 용융사고를 일으킨 스리마일 섬-2호기가 아직도 ‘물통’상태로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사고 원전들은 앞으로 30년 이상 그대로 서 있어야 한다. 그 사이 다시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당하면 안 된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 사회를 ‘전후(戰後) 시대’라고 한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맞고 패망했으니 원폭은 일본을 전전(戰前) 시대와 전후시대로 나누는 기준이 된다. 히로시마에는 세계 최초로 투하된 원자폭탄을 맞고 희생된 사람들을 영원히 기리기 위한 ‘히로시마 돔’이 세워져 있다.

패전 이후 일본은 눈부시게 성장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이 과정에서 이를 악물고 노력한 것이 원자력계였다. 그 결과 세계 3위의 원자력발전 대국이 되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P-5)이 아니면서도 재처리 공장을 가진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롯카쇼무라에 재처리 공장을 짓기 전 일본은 실험용 재처리 시설을 지었다. 이 시설을 도입하기 위해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상당한 노력을 했다. 미일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허가받은 것이다.

1977년 일본은 도카이 2발전소가 있는 이바라키현의 도카이무라(東海村)에 프랑스 기술을 토대로 한 최초의 실험용 재처리 시설을 지었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을 지낸 장인순 박사는 1990년 일본을 방문했다가, 1977년 도카이무라의 연구용 재처리 시설을 완공했을 때를 찍은 기념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장 박사의 기억이다.

“플루토늄 추출에 성공했다는 결과가 나오자 화면에 나오는 일본 연구진은 펑펑 눈물을 흘렸다. 군인도 아닌 순수 과학자들인 그들이 왜 울겠는가. 플루토늄 추출이 확인되었을 때 그들의 뇌리에는 1945년 원폭 투하로 죽어간 친지와 동료들과 힘들었던 그들의 젊은 시절, 그리고 패전한 조국의 고통 등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다테마에(建前·진심을 감춘 얼굴)’ 속에 있는 일본인들의 ‘혼네(本音·속마음)’를 보는 것 같아 전율이 느껴졌다.”

이렇게 건설해온 일본 원자력 신화가 쓰나미 피해에 잘못 대처함으로써 한순간에 무너졌다. 2만 명 이상이 희생된 쓰나미 피해만 해도 감당하기 힘든데 원전 사고까지 겹쳤으니 일본인들의 어깨는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사요나라! 원전”

“사요나라 원전”으로 시작한 재후(災後) 시대

2011년 4월 11일 도쿄에서 일어난 반핵시위. 후쿠시마 사고로 일본에서는 반핵운동이 거세지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에 이어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가 겹친 지금을 작가이자 도쿄도 부지사로 활동하던 이노세 나오키(猪瀨直樹) 씨는 일본인들이 전후 시기와 다를 바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며, ‘재후(災後) 시대’로 명명했다.

재후 시대는 고통으로 시작한다. 고통은 분규를 일으킨다. 일본은 원자폭탄을 맞고 패망했기에 핵무기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그런데도 원전을 건설할 때 반핵 목소리가 한국에서보다 높게 나오지 않았다. 일본에도 히로세 다카시 씨 등 유명한 반핵운동가가 있지만 이들은 한국에서만큼 많은 국민을 동원하지 못했다. 반핵 시위는 북핵 위기에 당면한 한국이 오히려 드셌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는 일본에서 반핵시위가 재점화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2011년 11월 13일 후쿠오카(福岡)시 주오(中央)구 마이즈루(舞鶴)공원에서는 일본 전역에서 1만5000여 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모든 원전 폐쇄와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를 주도한 아오야기 유키노부(靑柳行信) 씨는 “대지가 방사능에 오염되는 일이 없도록 같이 열심히 하자”고 이야기했다.

이 집회에 한국 대표가 참여했다. 한국에서 날아온 한일 100년 평화시민 네트워크의 이대수 운영위원장은 “일본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나면 한국도 영향을 받는다. 더 이상 원전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집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반(反)원전’ 구호를 쓴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을 했다. 일본에서 “사요나라(안녕) 원전”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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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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