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동네는 국내 사회복지시설·법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모델이다. 그런 꽃동네가 흔들리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 최고 시설의 꽃동네는 지난 27년간 받아온 찬사를 뒤로 한 채 갖가지 의혹에 휘말렸다. ‘꽃동네 스캔들’과 이를 둘러싼 천주교계 내부의 갈등을 들여다봤다.
이성재 의원:그러면 어떻게 하시겠다는 얘기예요? 그 나머지 90억원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도 정부가) 지원금을 주기는 줘야겠다…?
보건복지부 김용문 차관:그래서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부가) 파악하겠습니다.
이의원:한 시설에 후원금 90억 들어오는 것이 어디로 쓰이는지를 1년 동안 못 밝혀내는 이런 정부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습니까. 대한민국이 무슨 아프리카 르완다입니까. 뭐가 무서우세요? 복지부가 어디서 압력받으십니까?
김차관:압력받는 데 없습니다.
이의원:아니, 어디서 압력받지요? 청와대에서 받으십니까?
김차관:아닙니다…. 꽃동네 자료와 관련해서는 위원님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것이 한두 번 나온 것도 아니고, 작년부터 계속 요구한 자료고…저희도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만, 계속 자료 제출을 안 하고 있는 것이 저희들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다만 그 법인이 하나의 종교법인이 되다 보니 후원금을 받으면 일단 종교법인으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의원:아, 그것 법률적으로 사기 아닙니까? 국민들한테는 ‘불쌍한 사람들 위해 쓸 테니까 돈 내주시오’ 그래놓고 (천주교) 청주교구 유지재단으로 들어간다면 법률적으로 사기라는 말이지요. 그런 집단적 사기행위가 있다면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줘야 될 것 아닙니까.
결국 검찰이 나서다
청주지검 충주지청(지청장·김규헌)은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꽃동네 의혹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고, 이후 충북 음성군 주민의 각종 제보와 새로운 증언들이 잇따르자 수사팀을 보강해가며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吳雄鎭·58) 신부의 기부금 횡령 및 부동산투기 등과 관련한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꽃동네의 과거 은행계좌 명세와 오신부의 가족명의 계좌까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조사했으며, 꽃동네 핵심관계자들을 차례로 소환해 조사했다.
그러나 꽃동네측은 일부 실정법 위반에 대해서는 시인하지만 횡령과 부동산 투기 등 검찰 내사가 이루어진 핵심 의혹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수사에 나선 직접적인 계기는 2년 전 충북 음성의 금광 개발을 추진중이던 (주)태화광업에 대한 꽃동네 측의 불법점거에 따른 고소 고발사건, 그리고 지난해 6·13 지방선거 당시 몇몇 후보들에 의해 제기된 꽃동네의 부정투표 의혹인 것으로 알려졌다.
꽃동네에 대한 검찰 수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다. 꽃동네 의혹은 여느 사회복지시설의 후원금 횡령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 종교를 배경으로 한 높은 도덕성과 그에 바탕한 국민의 두터운 신뢰가 꽃동네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 수사가 불러온 파장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꽃동네는 30년 가까이 우리 사회의 ‘밑바닥 인생’을 보살펴온 국내 최대 규모의 복지시설이다. 300명이 넘는 수녀·수사들의 헌신적 봉사활동에 감동한 각계각층으로부터 후원금이 답지했다. 꽃동네 후원은 85만명의 회원들이 매월 10억원 가까이 송금하는 범국민적 모금운동으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한 70대 노인이 100억원대의 땅을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학에 기증했을 정도다.
따라서 충주지청은 물론, 청주지검에서 부장급 검사와 수사관 2~3명까지 파견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선 데는 꽃동네에 지금까지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한 비리 혐의가 있거나 혹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성급한 해석도 나온다.
더구나 의혹의 중심에는 존경받는 성직자인 오웅진 신부가 있다. 그는 일생을 사회사업에 투신, 성자(聖者)에 가까운 추앙을 받는 인물. 뿐만 아니라 오신부와 꽃동네는 천주교의 품에 안겨 있다.
꽃동네 신화는 걸인 최귀동 할아버지(왼쪽·1990년 작고) 와 오웅진 신부와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꽃동네와 오웅진 신부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극단을 달린다. 오신부의 손을 한번 잡아보기 위해 멀리서 꽃동네를 찾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종교에 기대 ‘복지사업’을 하는 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그 배경에는 양적으로 팽창하는 꽃동네를 중심으로 10여 년간 쌓여온 의혹과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한 지역언론 기자는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결국 터질 게 터졌을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귀띔한다. 문제점은 이미 오래 전 노출됐지만 수습할 길이 없어 수수방관해오다 마침내 고름이 터졌다는 얘기다.
위법인가, 관행인가
‘꽃동네 위기’를 초래한 첫 번째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끊임없는 확장정책. 꽃동네가 공룡처럼 비대해졌다는 것은 사회복지계와 천주교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문제다. 둘째는 이같은 성장을 이끌어온 강력한 1인 보스체제. 세 번째는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침묵의 카르텔’이다. 버림받은 이들을 먹이고 재우는 데 급급하다 보니 복지시설을 둘러싸고 제기된 문제를 공론화하고 시정할 겨를이 없었다.
꽃동네 의혹에 대한 고소·고발 및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볼 때 검찰의 수사방향은 크게 다음의 네 가지로 추측된다. 첫째 국가 보조금과 민간 후원금을 오신부 가족에게 빼돌린 사실이 있는지 여부, 둘째 오신부의 가족 및 수도사 명의로 집중적으로 땅을 산 것과 꽃동네의 땅투기 의혹과의 연계성, 셋째 꽃동네를 운영하면서 실정법을 위반하고 이용자들의 인권을 침해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 넷째 후원 형식을 빌려 관련업자들에게 탈세를 부추긴 사실 여부이다.
이런 행위는 대규모 민간 사회복지시설 및 재단, 사립학교재단 등에서도 왕왕 일어나는 고질적 병폐다. 따라서 위법이냐 아니냐를 칼로 무 베듯 갈라놓기 어렵다는 데 검찰의 고민이 있다. 꽃동네는 사회복지시설과 종교단체라는 두 가지 성격을 함께 갖고 있다. 따라서 그간 종교단체에 적용해온 무감사(無監査) 관행과 면세 혜택 등을 감안하면 위의 4가지 의혹은 별다른 문제가 아닌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화상환자 은폐 의혹
우선 꽃동네의 ‘어두운 역사’부터 살펴보는 것이 지금의 꽃동네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러 의혹에 대한 꽃동네의 반론은 뒤에 소개하기로 한다.
1993년 초, 음성 꽃동네 심신장애자 요양원에 18명의 장애인이 목욕을 하기 위해 모였다. 그런데 이들을 목욕시키려고 뜨거운 물을 받아둔 대형 고무통이 터지는 사건이 생겼다. 이들은 워낙 중증 장애인들이라 제대로 피하지도 못한 채 80℃가 넘는 뜨거운 물세례를 받았다. 결국 김정옥(여·당시 31세)씨 등 12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문제는 꽃동네측이 이 사건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수습하려 한 것. 이 때문에 그후 1년 동안 김씨를 포함한 10명의 화상 환자가 화상에 의한 합병증으로 죽어갔다. 꽃동네는 이들을 내부 묘지에 매장했다.
이 사건은 1994년 2월 한 자원봉사자의 제보에 의해 밝혀졌다. 더욱이 꽃동네는 결핵 환자 병동에서 비닐로 주변을 가려놓고 환자를 치료한 사실이 밝혀져 꽃동네 또한 감금 위주의 수용과 ‘비밀주의’에서 여느 복지시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당시 경찰과 보건사회부는 진상 조사를 한다며 법석을 떨었으나, 조사 결과 “사고사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군청에만 알리는 ‘실수’가 있었지만, 사건을 고의로 은폐한 의혹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건 제보자가 꽃동네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인권 침해 사례들도 함께 공개했지만, 이내 흐지부지됐다. 당시는 ‘꽃동네 신화’가 절정을 향해 가던 시기였다. 결국 꽃동네의 주민등록 담당수사만 입건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이를 기화로 꽃동네에 대한 의혹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꽃동네측은 이 사건을 재론하는 것이 꽃동네를 음해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꽃동네 윤시몬 수녀는 “10년이나 지난 일을 다시 끄집어내는 의도가 뭐냐”고 반문하면서 “과거에 일어난 일로 현재의 꽃동네를 일방적으로 재단해선 안 된다”고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국내 사회복지시설의 대명사로 떠오른 꽃동네는 1990년대 들어 적극적인 확장정책을 펼쳤다. 언론은 연일 꽃동네의 미담을 발굴해 보도했고, 그 뜻에 동참해 후원금을 내는 회원들도 늘어갔다.
그러다 보니 유명세도 톡톡히 치렀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병든 노인을 꽃동네 근처에 유기하는 일이 빈번해진 것. 그래서 매일 새벽 자원봉사자들이 조를 짜서 순찰을 돌아야 했다. 이는 꽃동네의 위상이 그만큼 공고해졌다는 의미다.
1993년 가평 꽃동네 노체자애병원 기공식에 참석한 당시 영부인 손명순 여사(오른쪽에서 두번째)
당시 오웅진 신부는 “국내에 5개, 해외에 5개의 꽃동네를 건설하고, 후원회원이 100만명을 돌파하면 북한 동포 돕기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공공연하게 자신의 목표는 노벨상이며, 음성에 아시아 최대의 성당을 짓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마침내 꽃동네는 음성과 가평을 합쳐 4000여 명을 수용하는 대형시설로 성장했다. 복지시설의 대형화와 그에 따르는 방만한 사업 추진은 천주교계 내부에서도 끊임없는 논란거리가 됐다. 하지만 오신부를 드러내놓고 비판할 수 없었다. ‘좋은 일’이라는 대의명분이 워낙 뚜렷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꽃동네의 확장에 제동을 걸고 나선 이가 이성재 전 의원이다. 장애인이자 인권 변호사 출신인 그는 사회복지시설의 대형화에 따른 폐해를 우려하면서 “꽃동네 후원금 사용 내역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기왕에 줘오던 정부 보조금마저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꽃동네에 관한 의혹은 이 전 의원과 또 한 사람의 국회 내 ‘복지통’인 김홍신 의원(한나라당)에게 포착됐다.
이 전 의원은 거창 꽃동네 건설비로 20억원의 예산이 책정되고 연간 50억원의 국고 보조금이 꽃동네에 지급된다는 사실을 알고 후원금 사용처를 투명하게 밝히라고 요구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꽃동네에 대한 복지예산은 계속 증액되더군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조차 후원금 사용처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자 오기가 발동했습니다.”
두 의원이 주도한 사회복지사업법 2차 개정안도 대형시설인 꽃동네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이 법안은 복지시설 한 곳의 입소자 수를 최대 300명으로 제한했다. 결국 국회에서는 꽃동네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이성재 의원은 예산 삭감을 밀어붙였다. 당시 이의원의 보좌관은 이렇게 기억한다.
“국회가 들썩거렸습니다. 수많은 국회의원에게서 항의 전화가 왔어요. 천주교 신자인 김대중 대통령도 진노했다고 합니다. 꽃동네는 국회도 함부로 못 건드릴 곳이었어요.”
삭감됐던 예산안은 국회에서 다시 살아났고, 그후로도 꽃동네에 대한 복지예산은 매년 꾸준히 증액됐다. 최근 꽃동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평소 꽃동네에 애정을 가지거나 김종호 의원 같이 꽃동네의 성장을 지켜봐온 20여 명의 국회의원들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국민에게 알려지면 오갈 데 없는 4000여 요양자들의 불안과 걱정이 염려된다”는 내용의 대정부 호소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인권침해 의혹과 ‘비밀주의’
꽃동네에 대한 의혹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거창 꽃동네를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1998년 충청북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성재·김홍신 의원은 오웅진 신부를 증언대로 불러냈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성직자인 오신부를 강도 높게 감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 결국 의혹을 검증하기보다는 오신부에게 변명의 기회를 준 셈이었다.
하지만 이의원은 “꽃동네 관련 의혹을 국정감사에서 거론하는 게 볼썽 사나우니 천주교 안에서 스스로 해결해달라고 부탁했고, 오신부도 그러마고 철석같이 약속했다”며 “그 약속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꽃동네의 투명화 노력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의원이 16대 국회에 진출하지 못하자 그후로는 꽃동네 문제를 공론화한 정치인이 없었다.
꽃동네 운영은 수도회인 ‘예수의 꽃동네 형제·자매회’의 몫이다
한 보건복지부 공무원의 고백이다. 앞서 언급했듯 1999년에 개정된 사회복지사업법 41조에 따르면 복지시설의 수용인원은 300명을 초과할 수 없다. 따라서 꽃동네 같은 대형시설은 위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셈. 사실 법 개정 이전에 이미 법정 최대 수용인원을 넘어선 꽃동네에 대해서는 관할 지자체가 지도·감독했어야 했지만 수수방관했다.
1990년대 후반 몇몇 국회의원과 장애인 관련 시민단체들에 접수된 꽃동네 관련 의혹에는 복지시설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인권침해 사례도 상당수 포함됐다. 꽃동네가 운영하는 농장과 신축 건물 공사에서의 강제노역이 그 한 예. 당시 이성재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도움을 준 제보자는 “정신병동의 알코올 중독자나 정신박약 형제들 대부분에게 복숭아 밭일을 시켰는데, 그곳에서 거둬들인 복숭아는 국회의원과 관료들에게 선물로 보냈다. 꽃동네 홍보용이었다”고 밝혔다. 꽃동네 농장에서 키우던 사슴도 논란거리가 됐다.
이에 대해 당시 꽃동네측은 “환자들에게 적당한 노동은 치료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그후에도 건물 신축이 늘어나면서 건설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입소자들을 공사에 동원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같은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는 꽃동네 안에 외부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공간이 많기 때문. 정신요양원 같은 중증 장애인을 수용한 시설이 대표적이고 공개된 영역이 전체의 절반 정도에 그친다. 복지시설의 비밀주의는 꽃동네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신체 기증 서약률 93%
다음은 1998년 10월30일 충청북도 국정감사장에서 김홍신 의원과 오웅진 신부가 묻고 답한 내용이다.
김의원:다음은 장기기증에 관한 것인데, 제가 거기에서 (사는 이들이) 시신을 기증한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장기기증을 권고하십니까?
오신부:저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고, 앞 못 보는 사람을 위해서 장기 기증을 하는 것을 저는 시간만 있으면 사람들에게 권고합니다.
김의원:그러면 본인들도 그렇게 권유하면 진정으로 받아들입니까?
오신부:스스로 찾아와서 자기는 글을 못 쓰는데 (대신) 써달라는 분도 있고, 자기들은 세상에서 좋은 일을 못했는데 죽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니 이런 기회를 준 저에게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장기와 안구 기증은 꽃동네가 자랑해온 사랑의 실천이었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세상에 기증하는 신체는 어떤 행위보다 성스러운 것이라고 평가받았다. 1997년 꽃동네 회지에 따르면 당시 꽃동네 가족들의 장기 및 신체 기증 서약률은 93%, 안구 기증 서약률은 약 60%에 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반발도 있었다. 몇몇 자원봉사자는 “자신의 의사도 제대로 표시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신체 기증을 요구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처사”라며 항의하고 나섰다. 실제로 저능아, 정신박약자, 치매환자 등이 장기 기증에 대해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천주교 마산교구 늘푸른 사제모임에서 2000년도에 발행한 꽃동네 문제에 대한 보고서에는 당시 “정신병동 자원봉사자들에게 할당하는 식으로 기증 서약서에 지장을 찍어오라고 했다”는 자원봉사자의 의혹 제기가 실려 있다. 2000년 국립장기기증센터(KONOS)가 출범하기 전까지 무려 2000여 명의 꽃동네 사람들이 안구를 기증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오신부는 “장기 기증은 하느님이 보기에 기쁜 일이다”며 “의사표현 능력이 없어도 다 통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신앙의 힘”이라고 했다. 종교의 영역을 세속의 눈으로만 단정짓지 말라는 얘기다.
1999년까지 꽃동네의 공중보건의로 일했던 한 의사는 장기 기증 의혹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 부랑자의 신체를 기증했는데, 대학이 해부하고 나서도 시신을 돌려주지 않더군요. 병원측에서 행정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비록 연고자도 없는 시신이었지만 꽃동네에선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수소문 끝에 시신 일부를 찾아와 정중히 장례를 치렀습니다. 이런 걸 보면 꽃동네에서 기증활동이 비상식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닌 듯해요.”
어쨌든 복지시설이 행하는 장기기증과 시신기증 문제는 최근까지 의혹이 제기되어왔고, 또 논란을 불러일으킬 여지도 큰 영역이기 때문에 꽃동네는 이 문제를 신중하게 다뤘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2000년 신순근 신부가 꽃동네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꽃동네 수용자들의 신체 기증은 철저하게 통제됐다.
2000년 2월 꽃동네 회장직에서 물러난 오웅진 신부는 2002년 2월 다시 회장직에 복귀했다
군수 후보로 나선 박모 후보도 막판에 부자재투표 개표에서 역전패하자 꽃동네 거소투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경찰은 대리 기표 의혹을 산 수녀 6명을 입건해 조사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수녀들은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몇몇 시민단체들은 의혹을 규명하려 했으나, 무효표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과 일부 수사가 수용자 대신 주소를 써주고 발송했다는 것 외에는 분명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꽃동네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부정투표 의혹이 거듭 제기됐다.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가평 꽃동네 투표함에서 동일 필적의 투표용지 100여 장이 한꺼번에 나와 선거관리위원회가 무효표로 처리했다. 조사 결과 한글을 모르거나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지체 부자유자들을 위해 꽃동네 직원이 대신 투표해 일괄 우송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꽃동네의 음성지역 투표권자는 1000여 명. 선관위는 거소투표가 야기했던 논란을 막기 위해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는 꽃동네 주민들을 외부 투표장으로 불러내 투표하게 했다. 그 결과 맹동면 투표소 무효표가 인근면의 3배에 달해 의혹을 부채질했다. 장애인에 대한 엄격한 투표 비밀주의 확보는 앞으로 논쟁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음성 꽃동네는 보유 토지가 100만평에 가깝고 수용자가 2300여 명에 달한다. 병원과 대학이 있고, 매년 60만명 이상이 봉사활동을 위해 꽃동네를 방문한다. 꽃동네가 인구 8만명의 음성군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더구나 대형 사회복지시설의 수장은 지역 내에서 도덕적 권위를 확보, 지도층 인사로 인정받는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신용호 사무국장은 “수용자의 ‘머리 수’는 큰 무기”라고 말한다. “복지시설 관장은 자신이 장악한 투표권을 이용해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장애우를 이용한 복지시설의 투표부정은 비일비재하다”는 것. 대전 한마음사회복지법인측이 2000년 4·13총선과 10·26 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30명의 시각장애인들의 투표를 대리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음성군 공무원들은 “정치권과 중앙 부처마저 부담스러워 하는 꽃동네를 우리가 지도·감독하기는 어렵다”고 고백한다. 언젠가는 꽃동네가 제출한 시설운영 신고서류가 미비해 도의원이 보완을 요구했더니 지자체 고위관계자가 “다음 선거에 나오지 않을 셈이냐?”며 겁을 줬다고 한다.
1996년에는 꽃동네가 맹동면 통동리 일대 땅을 묘지로 사용하기 위해 무단으로 형질을 변경하는 바람에 군청이 사후 수습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꽃동네 관할 지자체 공무원에게 국고 보조금 감독 상황에 대해 물었다가 “감히 꽃동네를 어떻게 건드느냐”는 대답을 들었다. 국고 보조금에 대한 감독권한을 사실상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꽃동네가 음성군에 보조금 사용내역을 보고하면 서류상 계수가 일치하는지만 확인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이같은 지적에 대해 꽃동네측은 “투표 문제는 이미 경찰조사에서 무혐의 처리된 이야기”라며 언급을 피했다. 또한 “오신부의 사회활동으로 얻은 혜택은 4000여명의 입소자들에게 돌아간다”고 반박했다.
꽃동네의 부실 회계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문제. 후원금 사용처와 대규모 수련시설인 사랑의 연수원 건설비용도 제대로 밝혀진 바 없다. 회계장부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꽃동네의 자금 흐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회복지법상 국고지원 시설은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지도·감독토록 규정하고 있지만, 꽃동네는 20년이 넘도록 단 한번도 제대로 된 감사를 받은 적이 없다.
꽃동네의 회계가 복잡한 이유는 꽃동네가 사회복지법인이 아니라 천주교 청주교구 유지재단, 즉 청주교구가 직접 운영하는 교회 조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복지시설에는 사회복지사업법이 적용되지만, 종교재단의 복지시설은 실제로는 종교법인처럼 운영되기 때문에 복지부가 끼여들 여지가 적다.
더구나 현도사회복지대학은 교육부 소관이며, 사랑의 연수원은 청소년수련시설법에 의해 별도로 관리된다. 그러다 보니 장부상으로는 꽃동네가 각 시설별로 쪼개져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전체 후원금 규모도 산출하기 어렵다( 참조). 한마디로 ‘연결재무제표’가 존재하지 않는 것. 그렇기 때문에 1년 예산조차 ‘100억에서 400억원 사이’로 추정될 만큼 편차가 크다.
“생각보다 훨씬 깨끗합니다. 다른 종교법인 복지시설과 비교해보세요.”
10여 년간 꽃동네 자문 회계사로 활동한 오창걸 회계사(삼일회계법인)는 이렇게 자신했다. 특히 청주교구 유지재단에서 관리하는 돈은 국가로부터 명확하게 감시·통제받지 않기 때문에 공공연한 시비가 일어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왜 오신부는 국고 및 후원금 횡령 의혹을 받는 것일까. 이성재 전의원은 “계좌추적을 전부 다 했다면 후원금이 복지시설을 위해 쓰이지 않고 다른 용도로 사용됐다는 것을 검찰도 파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꽃동네의 자문 변호사나 회계 관계자들은 이런 의혹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용처를 지정한 목적 후원금이 아닌 경우, 오신부에게 직접 들어온 돈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종교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법적 논쟁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국고 보조금이나 후원금에는 꽃동네의 300여 수녀, 수사들의 인건비도 포함돼 있는데, 이 분들은 무보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결국 오신부가 유용했다는 돈은 이들의 인건비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니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사회복지시설을 명분으로 들어온 후원금은 그 시설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더구나 청빈의 의무를 지켜야 할 사제가 이유야 어떻든 가족의 명의를 빌어 땅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꽃동네를 믿고 후원해온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천주교 내부에서도 비판의 소리가 높다. 서울대교구의 한 신부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 것은 아니라 해도 가족의 명의를 차용한 사제의 모습은 대단히 실망스럽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한 인건비를 모아 사적으로 운용했다는 반론에 대해 일부 수도자들은 “그런 논리라면 꽃동네 활동이 어떻게 성스러운 봉사활동이 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검찰이 수사를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이른바 횡령 및 땅투기 의혹. 하지만 현실적 견지에서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사립학교재단의 행태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서울교구의 한 신부는 “성직자는 자기 집과 땅을 마련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만일 오신부 이름으로 땅이 등기되어 있다면 남모를 사정과 뜻이 있을 것이다”며 오신부를 옹호했다.
그러나 그 지역 출신인 오신부가 가족과 수도회 수사 명의로 100만평 이상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과 국정감사를 전후로 근저당권을 설정했다가 다시 푼 것은 의혹을 낳기에 충분하다.
이성재 전의원은 “오신부가 꽃동네에 대한 자신의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가족 명의로 해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청주교구가 꽃동네와 자신을 영원히 분리할 수 없게 만든 장치라는 해석이다. 만일 오신부가 사제를 그만두게 된다면 문제의 땅은 그의 가족 소유가 되며, 가족 명의로 땅을 가지고 있는 이상 오신부의 지위는 굳건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꽃동네 자문 변호사와 회계사들은 이같은 행태가 통상적인 땅 매입 과정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대학 설립하고 골프장 지으려는 단체가 토지를 구입하면서 현지인이나 회사 임원, 혹은 가족의 이름을 빌리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일단 땅은 여러 사람 명의로 사뒀다가 본격적으로 건물을 지으면서 명의를 이전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가령 단일재단 명의로 대규모 토지를 구입할 경우 땅값이 크게 오르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거든요. 더구나 문제의 땅은 등기권리증을 재단이 소유했기 때문에 재단 땅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땅을 사고 팔면서 차익을 실현한 것도 아니고….”
이런 시각 때문에 꽃동네의 땅투기 의혹 수사는 농지의 불법 전용과 부동산거래 실명제법 위반 등 경미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등기권리증을 재단이 가지고 있고 근저당권을 설정했다고 해서 땅이 재단 소유라는 주장은 너무 빈약한 논리라는 지적이다.
꽃동네의 방만한 확장이 초래한 문제점들이 계속 불거지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천주교에서도 오신부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됐다. 특히 오신부를 중심으로 한 청주교구에서 무리하게 거창 꽃동네 설립을 추진한 데 따른 반발이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물론 거창을 관할하는 마산교구를 중심으로 꽃동네 확장 반대 움직임이 일었다. 다른 교구의 반발은 예견된 것이었다. 1989년 가평에 꽃동네를 만들 때의 반발은 봉사활동을 선도해야 할 교계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대의’에 밀렸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 마산교구의 백남해 신부는 “천주교 교구들은 각기 독립성을 유지하는 엄격한 지방자치체제인데도 꽃동네는 다른 교구의 뜻에 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거창 꽃동네를 추진해 갈등을 빚었다”고 했다.
광주교구의 한 신부는 꽃동네의 문제점을 담은 탄원서를 바티칸으로 보냈고, 1999년 마산교구에서는 꽃동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책자를 발간했다. 오신부는 거창 꽃동네 설립을 지지하는 100만명의 서명을 들고 거창을 찾았지만 냉담한 지역 여론을 꺾지 못했다. 결국 경상남도가 꽃동네에 군유림을 제공하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사건 후유증은 2000년 초까지 계속되어 1월말의 청주교구 사제서품식 때 절정에 달했다. 천주교 지도부는 오신부를 꽃동네 회장에서 물러나도록 권고했다. 한 천주교 관계자의 말.
“당시 국정감사 등에서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고, 상당수 평사제들이 오신부에 대해 연판장을 돌리는 사태로까지 악화됐습니다. 더구나 청주교구를 20년간 이끌며 꽃동네와 함께해온 정진석 서울대주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예요. 이 때문에 천주교 지도부에서 오신부에게 사퇴압력을 강하게 넣은 것으로 압니다.”
그러자 오신부는 “꽃동네 회장은 사퇴하되 수도회(예수교 꽃동네 형제자매회)로 물러나 종신서원하겠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그러나 꽃동네 운영의 주체인 수도회로 돌아간다는 것을 ‘완전한 사퇴’로 보기는 어렵다. 한 신부는 “당시 일부 신문에서는 ‘오신부가 수도하기 위해서 수도회로 돌아갔다’고 썼지만, 수도회의 설립자이며 20년간 지도신부였던 사람이 다시 수도회로 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초법적인 발상인지는 웬만한 교회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라고 했다.
‘종신서원’의 미스테리
결국 오신부는 꽃동네에서 퇴임한 것이 아니라 회장직을 포기한 대신 수도회 내의 지위를 더욱 강화한 셈이 됐다. 꽃동네와 오신부는 절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을 따름이다. 교회측도 이쯤에서 ‘정리’를 끝냈다.
2001년 오웅진 신부는 자신이 설립한 수도회에서 종신서원을 했기에 영원한 꽃동네 사람으로 남았다. 이제는 교회법도 꽃동네와 오웅진 신부를 가를 수 없다. 오신부의 뒤를 이어 꽃동네 회장이 된 신순근 신부가 잠시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도 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신신부는 “꽃동네는 카리스마를 가진 한 사람이 건설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 같은 교구신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오신부는 지난해 슬그머니 회장으로 복귀했다. 꽃동네측은 “신회장이 다른 복지시설로 발령이 났고, 꽃동네 운영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오신부를 다시 회장에 천거했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물러난 지 불과 2년 만에 회장으로 복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결국 천주교 내부의 꽃동네 개혁은 성공을 거두지 못한 셈이다.
최근 꽃동네 문제가 복잡하게 엉킨 것은, 동서고속도로 ‘꽃동네 IC(가칭)’ 설치와 고속전철 오송역 건설이 불러온 음성지역 개발붐에 편승해 꽃동네가 땅투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다. 그러나 갈등이 불거지게된 결정적인 계기는 (주)태화광업과의 지리한 금광개발 고소·고발 사건이다. 이와 관련해 꽃동네측은 검찰 수사의 순수성을 의심하고 있다.
이는 꽃동네의 확장정책이 (주)태화광업의 광업권과 충돌한 사건이다. 꽃동네측은 “이 광산이 꽃동네 인근 맹동지역 농민들의 수박농장 밑으로 파고들면서 지하수를 고갈시켜 농사를 망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금광 채굴이 환경파괴를 야기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주민과 꽃동네 입소자들을 동원, 금광 갱도를 막고 나섰다.
이에 대해 태화광업측은 “꽃동네가 경제성과 합법성을 가진 금광 채굴을 물리력을 동원해 방해하고 나선 것은 금광을 탈취할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갱도가 꽃동네와 2km 이상 떨어져 있는 다른 지층이므로 지하수 고갈과 무관하다”고 맞섰다.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작년 꽃동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음성군에서 만난 한 주민은 “태화광업과 꽃동네가 하나같이 자기들 욕심 채우려는 것은 별반 다를 바 없지만, 문제는 꽃동네측의 타협 없는 확장욕”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현재 꽃동네가 받고 있는 의혹과는 전혀 무관한 사건이라는 지역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2월4일 충주환경운동연합은 기자회견을 열고 “중앙 환경연합이 당시 부정투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꽃동네에서 1700명의 회원이 총회를 열고 이어 금광개발 반대 시위를 한 것은 꽃동네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회복지 개혁의 신호탄?
“꽃동네에서 비상식적인 인권유린과 비리가 행해진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꽃동네의 시설과 여건은 어느 곳보다도 뛰어납니다. 개혁대상이 돼야 하는 것은 꽃동네가 가진 구시대적인 복지 마인드겠죠.”
오랜 기간 애정을 가지고 꽃동네를 지켜본 신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꽃동네 문제의 해결 방향을 주시하면 새 정부의 복지정책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꽃동네 의혹은 종교재단이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불거진 사소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이유에서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있다. 이성재 전의원은 “오신부가 권력층과 오랜 기간 교우하면서 정치적인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꽃동네가 외풍을 타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꽃동네 의혹의 진실과 상관없이 천주교가 지금껏 사회복지 분야에서 헌신해온 성과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천주교의 복지시설 운영 실적은 다른 종교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참조). 현도사회복지대학 이태수 교수는 “천주교가 서울시립 은평의 마을 위탁경영에 나선 이후 그곳 입소자들의 인권이 얼마나 크게 개선됐는지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종교재단과 관련이 있다고 해서 사회복지시설 운영을 목적으로 모아진 후원금이 불투명하게 관리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많은 사회복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부문화가 정착되려면 자금의 투명성부터 확립돼야 한다. 종교재단 얘기라고 쉬쉬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론화해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꽃동네에서 오랜 동안 봉사활동을 했던 한 젊은 사회사업가는 이렇게 충고했다.
“꽃동네가 변하지 않으면 한국의 사회복지체계도 변화할 수 없습니다. 전국민이 꽃동네를 믿고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왔는데, 무엇이 두려워서 재벌기업 오너처럼 가족 명의로 토지를 편법으로 매입합니까. 꽃동네가 국민에게 받은 만큼만 가진 것을 나눈다면 꽃동네를 향한 국민의 성원은 화수분처럼 흘러넘칠 겁니다.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을 때 바로 고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