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 경쟁력 확보는 ‘국민소득 2만달러’로 진입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기술 인력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과학기술을 살리지 않고서는 절대로 선진국 문턱을 밟을 수 없다. 그 첫걸음은 이공계 출신들의 공직 진출 확대다.
우리나라는 현재 선진국의 뒤를 바짝 뒤쫓아가기에는 역부족이고,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게는 자칫 추월당할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 지정학적으로도 우리나라는 선진산업사회 일본과 세계 최대의 성장동력을 보유한 거대 후발개도국 중국 사이에 끼여있는 처지다.
흔히 21세기를 지식정보화시대, 또는 국경 없는 기술경쟁력의 시대라고 한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그 나라 국민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요즘 거론되고 있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 모든 분야를 선진화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술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다.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먼저 우리가 이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전통기술을 지켜야 한다. 자동차, 반도체, 가전, 그리고 조선산업 등 현재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분야에서 끊임없는 기술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선점한 경쟁력이 계속 유지될 수 없다.
나아가 새로운 첨단분야에서 기술경쟁력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집중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집단의 총수가 “5년, 10년 후에 우리를 먹여살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라”고 독려했다는 보도는, 바로 이런 사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개발이 몇몇 뛰어난 인력에 의해서만 이뤄질 순 없다. 연구기술 인력의 적극적인 연구 노력과 함께 기업의 과감한 투자, 정부의 정책적 지원, 국민들의 연구기술 인력에 대한 존중 등이 어우러져야 한다.
그러나 근년에 드러나고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우리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풍토가 제대로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즉 우수한 실력을 가진 이과계 학생들은 의대나 한의대에만 몰리고 있고, 서울대 공과대학 박사학위 지망생이 정원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은 우리 사회에서 연구기술 인력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과학기술은 오랜 기간 많은 투자를 해야만 비로소 실생활에서 응용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한다. 개인, 기업, 교육계 등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투자를 많이 하고도 실용화하지 못함으로써 커다란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속성상 국가 과학기술정책이 입안되는 단계에서부터 고도의 판단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정책의 입안은 과학자나 기술자가 아닌 공무원이 책임을 지게 되므로, 공무원은 과학기술자가 아니라해도 세계 기술개발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수준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참여정부는 12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을 세우고 집중적으로 노력할 것을 약속한 바 있는데, 이를 보더라도 앞으로 공무원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지식수준은 더욱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공무원의 과학적 마인드와 관련해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자 한다.
합리적 사고,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회
참여정부의 12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과학기술 중심사회’란 어떤 사회를 말하는 것일까? 세계 일류기술을 보유한 사회, 이 기술을 바탕으로 수많은 일류기업들이 발전하는 사회, 국민들이 과학과 기술을 존중하고 과학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회, 과학자와 기술자가 존경받는 사회. 이러한 사회가 분명 과학기술 중심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족한 것일까?
과학기술 중심사회란 국민들이 합리적 사고,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회이다.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거나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에서만 과학과 기술은 꽃필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존중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과학적 사고란 무엇일까? 조선 후기 우리 조상들은 공리공론이 아닌 실질과 사실, 기술을 중시하는 학문인 실학을 발전시킨 바 있다. 실학을 발전시키고 서양의 과학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산업사회로의 변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실학은 우리의 귀중한 자산이다. 실학의 기본 정신은 과학적인 사고, 바로 실사구시(實事求是)하는 정신이다.
전문성을 갖춘 이공계 출신이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공직에서 능력을 펼쳐야 할 뿐 아니라, 주요 사회적 갈등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풀어가려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사람 사는 곳에는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갈등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갈등을 무조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갈등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실사구시하는가, 즉 갈등을 과학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문제가 생기면 과학적으로 따지려고 하지 않고 ‘힘겨루기’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과학적, 합리적으로 분석하면 갈등은 줄어들지만, 힘겨루기를 하면 갈등은 커지게 마련이다. 또 사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보다는 선동이 앞선다. 그 결과 한쪽은 이기고 다른 한쪽은 진다. 결국 관련자들의 사회적 지식이 늘어나고, 신뢰가 쌓이고, 사회가 성숙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증오만 남게 된다. 이러니 다른 사안이 불거지면 또다시 죽기살기 식으로 싸워야 한다. 집회를 하고, 삭발투쟁을 하고, 단식투쟁을 하고, 점거농성을 해야만 한다.
힘겨루기 갈등 해결의 한계
만일 우리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문제를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면, 결과는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NEIS 논란의 핵심은, 인권보호라는 보편적 가치와 정보화라는 사회발전의 추세가 서로 충돌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모든 분야에서 정보화는 세계적 대세다. 정보화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해도, 앞으로 나아가면서 그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천부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잘못 공개될 경우 개인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정보는 집적하면 안 된다.
이런 원칙을 확인하면서 서로 주장을 달리하는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하고 합의했다면, 그렇게 심각한 갈등이 일어났을까? 아마도 문제 해결 과정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인권존중 의식이 생기고 정보화에 대해 좀더 충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최고의 핫이슈가 되어버린 원전수거물센터에 대해서도 따져보자. TV토론에서 한쪽의 전문가는 “원전수거물은 대단히 위험하므로 이 센터를 유치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의 전문가는 “원전에서 발생하는 플로토늄은 먹어도 해가 없다”고 주장하면 국민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는 것인가.
원전수거물(방사능 오염물질)의 위험성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기술로 어느 정도까지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외국에서는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설명하고, 또 상충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토론하면서 부지를 결정했다면,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농성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현재 핵발전소의 수거물 보관 시설은 앞으로 얼마나 더 쓸 수 있는지, 우리나라 전력수급을 전망해볼 때 핵발전소를 더 지어야 할 것인지 함께 계산하고 토론하면 우리는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다. 원자력에 대한 국민적인 이해도 높이고 수거물 처리 방안에 대해 보다 합리적인 해결책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갈등이 있는 경우 대개 서로 의존할 수 있는 공통된 통계자료가 없다는 것 또한 문제다. 갈등 당사자들은 각각 다른 통계자료를 제시한다.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공동 인프라가 없는 것. 그러다 보니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통계부터 새로 만드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개별 사안에 대해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실질을 따져보고, 토론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간다면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 침소봉대하여 선동을 하는 사람들의 발언권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반면 진지하게 노력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 실사구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또 이들이 존경받게 될 것이다. 먼저 결론을 내린 뒤 그에 맞추어 자기 주장을 하는 사람이 비난받고, 객관적인 통계를 놓고 자기 주장을 정리하는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이런 풍토가 조성되면 과학자, 기술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더 높은 전문성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진정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추구한다면 크고 작은 문제를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상생(win-win)의 태도로 풀어나가면서 ‘과학하는’ 사회풍토를 조성해가야 한다.
지난해 3월말 기준 행정부 소속 공무원은 총 8만8074명이다. 이 중 행정직 공무원은 6만6341명(75.3%)이고, 기술직 공무원은 2만1733명(24.7%)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행정직 대 기술직의 비율이 약 3 : 1인 것이다.
좀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6급 이하 공무원의 경우 기술직 공무원 비율은 23.7%이다. 5급 31.0%, 4급 29.1%, 3급 24.0%, 2급 18.2%, 1급 9.7%로 상위직으로 올라갈수록 기술직 공무원의 비율이 크게 감소한다( 참조). 기술직 공무원이 주요 정책결정을 담당하는 고위직 공무원으로 살아남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과학기술 업무를 담당하는 10개 정부 부처 기술직 공무원의 현황을 살펴보면, 3급 이상 공무원의 경우 38.5%, 4∼5급 공무원의 경우 50.4%, 6급 이하 공무원의 경우 39.4%가 기술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0개 과학기술 관련부처 중 건설교통부, 농림부, 보건복지부, 산업자원부, 중소기업청, 특허청 등의 1∼3급 기술직 공무원의 비율은 해당 부처의 4∼5급 기술직 공무원의 비율보다 낮다. 과학기술 관련부처에서조차 기술직 공무원은 상위직으로 갈수록 생존율이 낮은 것이다.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우선, 현행 공직분류 제도는 행정직 중심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기술직 공무원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일반직의 10개 직군 57개 직렬 중 공안직은 7개 직렬, 행정직은 12개 직렬(2개 직렬은 사문화)이다. 그러나 기술직 공무원들은 ‘전문성 강화’라는 이유로 8개 직군(광공업, 농림수산, 물리, 보건의무, 환경, 교통, 시설, 정보 통신) 38개 직렬로 세분화되어 있다. 총 비율이 24.7%밖에 안 되는 기술직 공무원들이 직렬별로 세분화됨으로써 직렬당 공무원 수가 적어져 승진 인사이동 때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적게 뽑고 활용도 못하고
둘째, 기술직 공무원들이 임명될 수 있는 직위는 기술직 단수직위, 기술직 복수직위, 행정기술 복수직위인데 이 중에 실제 기술직 공무원이 보임되는 비율은 평균 85.3%로 나타나고 있다(중앙인사위원회, 2002).
이를 직급별로 살펴보면 6급 이하 90.7%, 5급 72.5%, 4급 66.3%, 3급 50.3%, 2급 32.4%이다. 즉 상위직으로 갈수록 기술직 공무원이 보임되는 비율이 급격하게 낮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과학기술 관련부처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는 과학기술 관련부처의 상위직에도 행정직이 주로 임용되어 전문성이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기술관련 부처인 산업자원부의 경우 전체 국장 30명 중 기술직은 단 한 명이라고 하니, 다른 부처들의 사정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5급 기술직 공무원을 선발하는 기술고등고시는 행정고등고시 및 외무고등고시와 마찬가지로 매년 1회 실시된다.
지난 20년간(1981∼2000년) 5급 공채 합격자 현황을 보면, 행정직(행정·외무·사법고시)이 1만1843명을 선정한데 반해, 기술직(기술고시)은 단 881명의 합격자만 냄으로써 그 비율이 불과 6.9%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2002년 대학졸업자 수는 인문·사회계가 9만7963명으로 40.9%, 이공계(자연 및 의약계)가 10만8051명으로 45.1%인 것을 감안할 때, 기술고시 합격자 수가 너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고시 이외에 개방형 직위제도나 특별채용 등을 통해 이공계 인력을 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특채의 경우 민간 경력을 50% 정도만 인정하고, 박사학위 취득 이후의 연구종사 경력만 인정해, 보수 등 처우에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수한 민간인력이 공직에 들어오기를 꺼리는 실정이며, 일단 임명됐다 하더라도 맡은 일에 전력을 다하기보다는 적절한 자리가 생기면 옮겨버리는 경우가 왕왕 일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술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조차도 적극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큰 문제다. 기술고시 합격자는 주로 중앙부처 본부 또는 소속기관에서 기술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그런데 정책적 업무보다는 일선 집행업무 부서에 많이 배치되어 있다. 2000∼02년까지 3년간 기술고시 합격자 131명 중 절반에 가까운 58명이 조달청, 산림청, 특허청 등 집행 업무를 위주로 하는 외청에 배치되었다.
또한, 이공계 출신들은 채용된 이후에도 정책·관리능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채용 당시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해도, 과학기술 분야의 빠른 기술발전에 도태되지 않도록 새로운 기술로 재충전하여야 한다. 이는 교육훈련을 통해서 가능한데, 그것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행정직 공무원들의 경우 행정고시 동기와 선후배가 업무 수행에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이에 비해 기술직 공무원들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행정직 공무원, 또는 다른 직렬의 공무원들과 함께 교육훈련을 받는 기회가 전무하다. 때문에 부처간 업무 협조를 원활하게 하는 일은 요원한 일이다. 이렇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채 이들의 관리능력 부족을 문제삼아 고위직 진급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효과적인 인력관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선진국은 공무원 2/3가 기술전문직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을 달성하기 위해서 참여정부는 이공계 출신의 공직진출을 확대하고, 이공계 출신 공무원이 주요 국가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넓힐 예정이다.
지식정보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과학기술 정책을 펴야 한다. 또 이를 감당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 인력의 공직임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선진국들은 이미 전체 공무원의 3분의 2 정도가 기술 전문직이라고 한다.
현재 정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안을 살펴보자.
정부는 매년 신규 채용하는 5급 공무원 중 이공계 비율을 확대하여 현재 일본의 1종 시험 비율과 같이 신규 채용 인원의 50%를 이공계로 할 예정이다. 정책 결정의 핵심 역할을 하는 5급 이상 공무원을 먼저 늘리는 방법을 신규 채용에서 찾자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 일각에서는 4급 이상 공무원들의 직급을 통합하되, 이공계 출신이 최소한 30% 이상 되도록 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01년도에 1종 시험 합격자 중 사무계(행정, 법률, 경제, 인간과학 I·II) 행정관은 258명, 기술계 행정관은 250명(49.2%)을 선발했다. 그러나 2002년도에는 그 수가 역전되어 사무계는 270명, 기술계는 335명을 선발했다.
민간기업에서는 이미 이공계 출신이 최고경영진으로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100대 기업의 대표이사를 분석한 결과(‘월간 현대경영’ 2002년 5월호), 138명의 대표이사 중 53명(38.4%)이 이공계 출신이라고 한다. 또 10대 그룹 임원 중 이공계 출신은 53%에 이른다고 한다.
연구직을 제외한 5급 이상 공무원을 신규 채용할 때 절반 이상을 과학기술 분야 전공자로 충원하되, 필답고사에 의한 기술고시 채용인원을 점진적으로 줄여가자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특채, 개방형, 계약직 등 다양한 채용방식을 활성화하여 이미 우수한 성과를 낸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공직에 임용하자는 것이다.
기술사나 관련분야의 석·박사 등 필요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을 공개 경쟁을 통해 대폭 특별채용함으로써 신규 채용의 내용을 개선하여야 한다. 필답고사를 통해서는 이미 이룬 개인적 성과나 업무 수행능력을 평가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처럼 기술발전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 필답고사로 확인할 수 있는 지식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이미 널리 알려져 한물간 기술일 뿐이다.
나아가 중·장기적으로는 일본의 1종 시험과 같이 행정고시와 기술고시를 통합하고, 기술직 공무원의 선발권을 부처별 특성에 맞게 분권화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행정직과 기술직의 복수직위는 대다수 행정직이 점유하고 있다. 복수직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직무분석을 통해 기술업무의 비중이 높은 직위는 기술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과학기술적 업무성격이 강한 직위에는 기술직을 우선 임용, 기술직 임용의 비율 할당제 도입도 필요하다. 인사 담당 부서나 예산 관련 부서 등도 복수 직위화하여 기술직들이 임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그동안 주로 행정직이 임용되는 것으로 인식되어온 부처들인 재정경제부, 행정자치부, 중앙인사위원회, 기획예산처, 국무조정실, 교육부 등에 기술직 공무원을 배치하고, 인사·조직부문 등의 직위에도 기술직 임용을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의 대상이다.
구호보다는 실천을
1970년 우리나라는 국내 총생산(GDP)이 80억달러, 수출액이 8억3000만 달러에 지나지 않는, 아주 보잘것 없는 국가였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간의 노력으로 2002년에는 국내총생산이 4770억달러, 수출액이 1624억달러에 이르렀으니 지난 32년 동안 GDP 규모 면에서는 약 60배, 수출액으로는 약 200배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이런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이후 ‘기술입국(技術立國)’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집중적으로 노력한 정부의 정책 덕분이었다.
때문에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구축하자는 정부의 주장은 타당하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과학기술은 단지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을 이끌고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밑바탕이 되어왔다.
‘과학기술 중심사회’의 구축이라는 정책목표가 한갓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우선 정부부터, 그리고 공무원부터 과학적·합리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가 이런 정책의 변화를 가져와 21세기 지식정보사회로의 진입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