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호

‘시’처럼 살다간 배우 윤정희, 파리에서 영면하다

[Who’s who] 별세 11일 만에 장례식…위령미사는 2월 1일까지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3-01-30 13:56:2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배우 고(故) 윤정희 씨. [박해윤 기자]

    배우 고(故) 윤정희 씨. [박해윤 기자]

    배우 고(故) 윤정희 씨의 장례식이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치러진다. 19일 윤 씨가 향년 79세 일기로 별세한 지 11일 만이다.

    장례는 고인의 배우자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와 딸 백진희 씨, 프랑스에 거주하는 지인들만 참석해 파리 인근 성당에서 비공개로 진행된다. 유족은 장례를 마친 뒤 고인의 유해를 뱅센 묘지에 안치한다.

    이날 오전 6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성당에서는 국내에 있는 고인의 유족 일부의 뜻에 따라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미사가 열렸다. 이 성당은 고인이 생전 한국에 올 때마다 방문했던 곳이다. 미사에는 신자 70여명이 참석했다. 고인을 비롯해 10명의 신자를 합동 봉헌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미사는 2월 1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처음 만났을 때 서로 누군지 몰랐어요”

    고인은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조선대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1966년 오디션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데뷔작은 1967년 개봉한 영화 ‘청춘극장’이다. 그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안개’(1967년), ‘장군의 수염’(1967년), ‘물망초’(1969년), ‘그 여자를 쫓아라’(1970년), ‘독 짓는 늙은이’(1970년), ‘분례기’(1971년), ‘신궁’(1979년), ‘저녁에 우는 새’(1982년), ‘만무방’(1994년) 등에 출연했다.

    이를 포함해 고인이 출연한 영화는 330여 편에 달했다. 당시의 거의 모든 유명 감독들이 찾는 배우였다. 덕분에 여러 차례 여우주연상·인기여우상을 수상했다. 함께 활동한 문희·남정임 씨와 여성 배우 트로이카로 불렸다.



    고인은 학구파 배우로도 유명했다. 1971년 중앙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에서 한국 여성 배우들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해 파리 제3대학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다. 유학 중에도 방학 때는 귀국해 영화를 촬영하면서 학업과 영화 이력을 병행했다.

    생전의 윤정희 씨가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왼쪽)와 인터뷰에 나선 모습. [박해윤 기자]

    생전의 윤정희 씨가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왼쪽)와 인터뷰에 나선 모습. [박해윤 기자]

    1976년에는 세계적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1972년 독일 뮌헨에서 처음 만났다. 고인은 당시 주연을 맡은 신상옥 감독의 영화 ‘효녀 심청’의 홍보를 위해 이곳을 찾았고, 백씨는 작곡가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이 공연되던 오페라 극장을 찾았다고 한다. 고인과 백씨는 2007년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새 음반 발매 기념 독주회 맞춰 나란히 한국 찾은 백건우 ·윤정희 부부’)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처음 만났을 때 저는 뉴욕에서 유학하고 있었고 아내는 한국에서 배우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누군지 몰랐어요. 그러니까 순수하게 이성으로 끌린 거죠.”(백건우)

    “독일 유학생들과 맥주집에 모였는데, 말없이 구석에 앉아있던 남편이 조용히 다가와 장미꽃을 건넸어요. 주위에 있던 유학생들도 놀라고 저도 놀랐죠. 솔직히 말하면 좋았고요(웃음).”(윤정희)

    세 번의 대종상 여우주연상 수상

    결혼 뒤 영화 출연이 줄어든 고인은 1994년 엄종선 감독의 ‘만무방’에 출연하며 두 번째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16년 만인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로 복귀해 자신의 본명(손미자)과 같은 ‘미자’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 작품으로 고인은 세 번째 대종상 여우주연상은 물론, LA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같은 해 LA비평가협회 남우주연상 수상자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등에 출연한 할리우드 스타 마이클 패스벤더였다. ‘시’는 고인이 처음으로 프랑스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게 한 작품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시’는 고인의 유작이 됐다. 2010년 즈음부터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였고 2017년에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2019년 백건우 씨 인터뷰를 통해 알려졌다.

    2020년에는 고인의 후견인 지정을 놓고 고인의 동생과 백 씨 부녀 사이에 법적분쟁이 발생했다. 1, 2심은 동생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딸 백진희 씨를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했다. 대법원의 판단이 남았으나 고인이 별세한 만큼 사건을 추가 심리하지 않고 각하할 전망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