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은 허리 휘는데 은행은 ‘돈잔치’

[금융 인사이드] 5대 은행 2024년 이자수익 50조 원 예상… ‘역대급’ 실적

  • 손희정 이투데이 기자 sonhj1220@etoday.co.kr

    입력2024-12-1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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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끌·자금난에 대출 수요 급증, 최대 실적 경신

    • KB ‘5조 클럽’ 유력, 신한 4조 원 눈앞

    • 예금금리는 내리고, 대출금리는 올리고…

    • 당국 “차주는 고통받는데… 성과급 부적절”

    • 금융권 “고수익 유지 어려워, 상생금융은 부담”

    2024년 3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13조8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 창구 모습. [뉴스1]

    2024년 3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13조8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 창구 모습. [뉴스1]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2024년 3분기까지 16조 원이 넘는 ‘역대급’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들의 총 이자수익은 무려 38조 원에 달한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과 자금난으로 가계·기업 대출이 크게 증가한 결과다. 특히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에 따라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올리며 예대마진(대출이자-예금이자)을 키웠고, 이러한 고금리 장기화는 차주의 고통을 키웠다. 이에 ‘이자 장사’로 역대급 실적을 낸 5대 금융그룹을 향한 세간의 눈초리가 싸늘하다.

    순이자마진 줄었지만, 대출자산 늘어 손실분 상쇄

    5대 금융그룹이 2024년 3분기까지 16조 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렸다. 가계와 기업대출 규모가 불어나며 전체 이자수익이 크게 증가해 실적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금융그룹의 2024년 3분기 기준 누적 순이익은 16조5805억 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 같은 기간(15조6560억 원)에 비해 5.9% 늘어난 수치로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구체적으론 KB·하나·NH농협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신한은 일회성 이익을 뺀 경상 기준으로 최대 순이익을 달성했다. 우리는 3분기 만에 2023년 연간 실적(2조5063억 원)을 초과 달성하며 ‘연간 순익 3조 원’ 고지에 근접했다.

    그룹별로는 KB가 4조3953억 원으로 2024년 ‘5조 클럽’ 달성이 유력하다. 2023년 같은 기간보다 0.4% 증가한 수치다. 신한은 4.4% 늘어난 3조9856억 원, 하나는 8.3% 증가한 3조2254억 원을 달성했다. 우리는 9.1% 늘어난 2조6591억 원, NH농협은 13.2% 증가한 2조3151억 원을 기록했다.

    ‌금융그룹이 금리 등락과 관계없이 매년 역대 최대 실적을 내놓을 수 있는 배경으론 은행의 안정적 이자수익이 꼽힌다. 5대 금융그룹의 2024년 3분기 누적 이자수익은 37조6157억 원으로 2023년(36조7100억 원)대비 9057억 원이 증가했다.

    KB가 3분기까지 벌어들인 이자수익은 9조5227억 원으로 2023년(8조9583억 원) 대비 6.3% 늘었다. 신한도 8조313억 원에서 8조4927억 원으로 4614억 원(5.75%) 늘어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NH농협은 6조4083억 원으로 0.83% 증가했으며, 우리는 6조6150억 원으로 소폭 상승(0.23%)했다. 다만 하나는 2023년 같은 기간(6조7650억 원) 대비 2.78% 감소한 6조5770억 원을 기록했다.

    ‌시장금리 하락으로 순이자마진(NIM)은 줄었지만 가계대출을 중심으로 대출자산이 늘며 손실분을 상쇄했고, 실적도 떠받쳤다. NIM은 금융사가 자산을 운용하며 벌어들인 수익에서 자금 조달 비용을 뺀 금액을 운용 자산의 총액으로 나눈 값이다. 이는 은행의 수익성을 평가하는 대표 지표로, 은행의 이익 구조를 보여준다.

    KB의 NIM은 2023년 3분기 1.84%에서 2024년 3분기 1.71%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신한(1.6%→1.56%) △하나(1.68%→1.41%) △우리(1.47%→1.40%) △농협(1.82%→1.77%)도 일제히 NIM이 하락했다.

    두 달 만에 대출금리 22회 올려… 예대마진 확대

    그런데도 은행의 대출 규모는 탄탄한 성장을 보였다. 2024년 3분기 KB은행 원화 대출(가계+기업)은 362조 원으로 2023년 말 대비 5.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도 각각 10.2%, 5.1%, 9.4% 늘어났다. 농협은행만 0.1% 소폭 감소했다. 업계는 은행들이 2024년에 역대 최대 이자수익을 경신할 걸로 보고 있다. 이자수익 증가 추세를 고려하면 5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통상 기준금리 하락기에는 은행의 핵심 수익원인 예대마진이 축소되면서 이익도 줄어든다. 그러나 5대 은행의 이자수익은 금리 변동과 상관없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 금리 상승기에는 대출금리를 신속히 올리고 예·적금 금리는 느리게 올린 반면, 금리 하락기에는 대출금리는 천천히 내리고 예·적금 금리는 빠르게 낮추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2024년 10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3년 2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통화정책 기조를 바꿨지만, 은행권은 최근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을 이유로 대출금리를 올리면서 수익성 악화를 방어했다. 금리를 올리면 손쉽게 대출 수요를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5대 은행이 2024년 7~8월 사이에 금리를 인상한 횟수는 총 22회다. 신한은행이 7회로 금리 인상 횟수가 가장 많았고, 우리은행 6회, KB국민은행 5회,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은 각각 2회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 기간 은행들이 끌어올린 누적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대 1.4%포인트에 달한다.

    문제는 대출금리를 올리면서 예금금리는 내렸다는 점이다. 기준금리 인하 전부터 시장 기대감을 반영해 예금금리가 떨어지자 예대금리차는 더 벌어졌다. 이는 은행들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예대금리차가 커질수록 은행에는 이익이, 가계에는 이자 부담이 커진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2024년 9월 신규 취급액 기준 5대 은행의 가계대출(정책서민금융 제외) 예대금리차는 평균 0.734%포인트로 확대됐다. 5월부터 3개월 연속 줄며 7월(0.43%포인트) 저점을 찍더니 가산금리 인상이 본격 적용된 8월(0.57%포인트)부터 두 달 연속 오른 것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이후 은행권이 수신 금리를 잇달아 내린 점을 고려하면 예대금리차가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은행의 예대금리차가 확대되자 당국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024년 11월 5일 임원회의에서 “기준금리 인하로 경제주체가 금리 부담 경감 효과를 체감해야 하는 시점에서 예대금리차 확대로 희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에 나섰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024년 11월 1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해 “기준금리가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더 내려갈 수도 있는데도 기업이나 가계가 부담하는 대출금리는 내려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대마진 차이가 이렇게 크게 오래 지속하게 되면 가계와 기업에 큰 부담이 된다”며 “예대마진을 줄이는, 대출이자를 낮추는 방향의 움직임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은행권은 예대금리차 확대에 대한 당국의 비판이 억울하다는 태도다. 가계대출 수요를 줄이기 위해서는 높은 금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금금리 인하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때문”이라면서 “대출을 늘리지 않기 위해 금리인상뿐 아니라 만기·한도 추가 조치 등 모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왜 은행이 이익내면 비판하는지 고민해야”

    2024년 10월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2024년 10월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5대 은행의 이자 장사를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시선은 차갑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2024년 10월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융권의 역대급 실적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삼성전자가 이익을 내면 칭찬하지만, 은행이 이익을 내면 비판한다. 그 차이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날을 세웠다.

    이어 “은행은 과연 혁신이 충분했는지, 혁신을 통해 이익을 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면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는데, 이익을 바탕으로 성과급을 주는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은행권과 상생과 혁신을 이야기하겠다”고 덧붙였다.

    야당도 은행권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은행 대출 가산금리 산정 내역을 공개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은행마다 각기 다르게 적용되는 가산금리의 세부 항목과 기준을 법으로 명확히 규정해 금리 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이를 통해 서민의 이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은행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상생금융 시즌2’가 나올 가능성에 은행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24년에도 호실적을 기록한 만큼 상생 금융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금융지원책 마련에 착수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은행연합회, 시중은행 등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실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2023년에도 이자 장사 논란이 거세지자 은행권은 이자 환급 등 2조1005억 원 규모의 ‘은행권 민생금융지원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2024년 10월 말 기준으로 은행권은 개인사업자가 낸 이자에 대한 환급으로 총 1조4768억 원을 집행했다. 전체 이자 환급 예상액 1조5035억 원의 98.2%다. 자율 프로그램도 9월까지 4561억 원을 집행해 목표액의 약 76%를 완료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가 지속해서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NIM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은행이 지금처럼 높은 수익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상생금융이 다시 추진되면 결국 정례화될 가능성이 있어 상당한 부담”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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