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나도 제주에서 살 수 있을까"...'이주민' 3人의 제주 정착기

더 큰 제주에서의 삶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20-05-22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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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한적한 제주 바닷가 마을에서 목가적인 삶을 꿈꾼다. 하지만 일자리와 자녀 교육 문제 같은 현실의 벽은 높다. 그저 동경의 대상에 머문다. 

    그러나 제주에서 더 큰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 제주에서 개업해 변호사로 맹활약하고, 퇴직 후 ‘인생 2막’을 펼치고, 미국 뉴욕에서 돌아와 제주발(發) 예술 실험에 나선 강전애·권태곤·이나연 씨의 3인 3색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동경의 대상은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

    ‘입도 12년차’ 강전애 변호사
    “자유롭게 살려면 제주가 ‘딱’이죠”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제주에 살다 보니 서울 친구들이 ‘답답하지 않으냐’고 물어봐요. 20분만 나가면 바다가 있고 어디에서든 한라산이 보이는데 답답하긴요. 오히려 편안함을 느껴요.” 

    서울 출신인 강전애(39) 변호사는 ‘입도 12년차’ 제주사람이다. 이화여대 법대를 졸업한 뒤 2009년 2월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1기로 입학하면서 제주에 눌러앉았다. 이주민이지만 여느 토박이보다 활동 폭이 크다. 그는 본업 외에도 제주MBC의 시사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고, 제주관광공사 고문변호사 등 30여 개 위원회에서 위원으로 활동한다. 그를 제주로 이끈 건 역시 제주의 자연환경이었다. 

    “평소 여유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꿈꿨어요. 제주는 날씨와 풍광이 좋고 편안한 느낌이어서 제주대에 입학했죠. 처음엔 로스쿨 과정을 마치면 다시 서울로 가려고 했는데 대학원 2학년 때 교수님께서 ‘제주도에는 여자 변호사가 한 명도 없는데 이곳에서 개업하고 사는 건 어떠냐’고 하시더군요. 살아보니 정말 좋아서 결국 제주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죠.” 



    - 외지인에 대한 텃세는 없었나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어서 그런지 저는 크게 못 느꼈어요. 가끔 읍·면 지역에 정착한 외지인들이 텃세 얘기를 하는데, 요즘은 이주민이 많아져 예전만큼은 아니에요. 여유로움을 찾아 제주에 왔다면 열린 마음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게 중요하죠.” 

    - 제주에 살면 좋은 점이 뭔가요. 

    “출퇴근 러시아워도 비교적 덜하고, 어디에서든 바다와 산을 볼 수 있어요. 집에서도 한라산을 볼 때마다 ‘내가 좋은 곳에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요(웃음). 그리고 제주 사람들은 남의 눈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허세가 없어요. 부자라고 해서 과소비를 하거나 으스대지 않아요. 제 사무실이 입주한 이 빌딩 건물주도 손수 계단청소를 해요.” 

    - 왜 그럴까요. 

    “들어보니 제주 사람들은 남의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안다고 해요. 저 분이 엄청난 부자라는 사실을 굳이 말 안 해도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문화가 살아있다 보니 남 눈을 신경 쓰지 않아요. 자유롭게 살려면 제주가 ‘딱’이죠.” 


    “한 달 정도 제주에 살아보세요”


    - 퇴직 이주자가 아니라면 일자리가 중요할 거 같은데요. 

    “맞아요. 사실 제주 출신 학생들이 고교 졸업하고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면 잘 안내려오려고 해요. 젊은이들 유출은 계속되다 보니 제주도도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죠. 제주특별자치도에서도 젊은이들 유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문제는 일자리예요. 제주 경제가 감귤 농사 등 1차 산업과 관광산업이 주력이다 보니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요. 직장인 평균임금과 4대 보험 가입률이 전국 최저 수준인 것도 이 때문이죠. 그래서 관광과 IT를 접목하는 스타트업을 장려하는 등 제주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요. 1세대 이주민들은 카페와 펜션을 운영했다면, 최근에는 제주시 외곽에 특색 있는 서점이 많이 생겼어요. 서점 투어가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될 정도죠. 이러한 아이디어를 갖고 제주도에서 승부를 걸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 그렇군요. 

    “제주 이주를 꿈꾼다면 우선 한 달 정도 제주에 살아보고 결정했으면 해요. 제주 날씨가 생각보다 바람도 많이 불고 춥게 느껴져요. 한 달 살아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거주지를 선택하는 게 좋아요. 물론 무엇을 하고 살 건지도 중요하겠죠.”



    권태곤 씨의 ‘인생 2막’
    애월 바닷가에서 만난 현무암과 구름의 집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바닷물 사이로 드러난 바위가 누워 있는 사람 같죠? 저 바위 덕에 파도가 심해도 집까지 바닷물이 넘친 적이 없답니다.” 

    2월 21일 제주시 애월읍 하귀1리의 바닷가에서 만난 권태곤(75) 씨는 자택 앞바다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권씨 말처럼 제법 거센 파도는 사람 모양 바위에 가로막혔다. 그는 바다 내음 섞인 공기를 한껏 들이쉬고는 “제주 공기는 정말 깨끗해요. 바닷바람 덕에 습도도 적당하죠. 오랜 천식도 이제 깨끗이 나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권씨가 제주에 터 잡은 것은 2014년 1월이다. 은퇴 후 호주와 남아메리카, 유럽 등 전 세계를 여행했는데, 바닷가 소박한 오막살이가 인생의 마지막 꿈으로 남았다. 제주도 여행 때 하귀리를 찾았다가 첫눈에 반해 제주에 오게 됐다는 것. 

    권씨는 서울시 공무원 출신으로, 은퇴 후 건강 유지와 취미 생활 겸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100m도 숨찼지만 조금씩 거리를 늘렸고, 이내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 권씨는 마라톤 클럽 창설과 각종 마라톤 대회 조직까지 나섰다. 

    권씨는 전원주택과 귀농, 캠핑카 분야의 은둔 고수다. 2007년 인터넷 카페 ‘세상에 이런 집이’를 개설했다. 부지 구입과 인테리어 등 건축 관련 노하우를 공유한다. 회원 수 14만5000여 명(2월 27일 기준)에 달하는 ‘다음 우수카페’다. 

    그는 제주 여행에서 만난 ‘바다에 꼭 붙은 집터’를 충동구매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거실에 부엌과 화장실, 방 1칸짜리의 아담한 ‘현무암 집’(66㎡)을 지었다. 설계와 자재 선정 모두 권씨가 직접 했다. 현무암을 외벽에 붙여 투박하면서도 바람에 강한 집은 제주 풍경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색 타일을 깨 모자이크처럼 이어 붙인 현관 바닥부터 철근을 잘라 만든 대문까지 모두 그의 작품이다.


    ‘바다에 꼭 붙은 집터’ 충동구매

    갑작스러운 제주살이를 걱정하던 아내도 막상 집이 지어지자 만족했다. 경기도에 사는 두 딸 가족들도 별장 삼아 권씨 집을 곧잘 찾는다. 2016년에는 두 번째 집 ‘구름의 집’을 지었다. 지중해 연안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아 벽면을 흰색과 푸른색으로 칠하고 지붕에는 황토색 기와를 얹었다. ‘현무암 집’의 바다 풍경을 가리지 않도록 1층을 비운 필로티(pilotis) 구조다. 

    지금도 4층 규모 새 집 내장 공사가 한창이다. 옥상에 오르자 한라산을 뒤로하고 바다를 품은 풍경이 일품이다. “임대 수익을 기대하는 거냐”고 묻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이 나이에 그렇게 돈 벌어서 무슨 소용 있겠어요. 여행객이나 제주 이주를 고려해 제게 자문하는 손님들이 묵을 곳으로 쓸 생각입니다.” 

    권씨는 이제껏 제주살이를 묻는 이들에게 무료로 자문에 응했다. 그는 제주 정착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제주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기에 좋은 곳입니다. 내가 행복한 만큼 제주살이를 적극 권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제주에서 글로벌 지향하는’ 이나연 켈파트프레스 대표
    “문화 불모지라는 ‘결핍’이 예술인 성장시킨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이나연(38) 켈파트프레스 대표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다 성인이 될 무렵부터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에 살았다. 그는 한국 서울에서 대학을, 미국 뉴욕에서 대학원을 다녔다. 뉴욕에 살 때는 미술, 패션, 여행 분야 잡지에 글을 썼다. 뉴욕은 ‘예술가의 수도’로 불리는 곳인데도, 정작 이 대표는 제주에 계속 돌아오고 싶었단다. 하지만 제주에는 미술비평 전공자가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2014년 10월 제주시 구도심에 ‘아라리오 뮤지엄’이 개장했다. 이 대표는 이곳에 큐레이터로 취직해 금의환향했다. 그는 “대도시에 살다 제주에 오니 여유로워진 느낌이 있었다. 뉴욕에서는 소수자로 살았는데, 고향인 제주로 돌아오니 많이 환영해 주더라”고 회고했다. 지금은 제주시 구도심에 있는 셰어하우스에 살며 제주와 서울을 오간다. 

    이 대표는 2017년 문화예술 잡지 ‘씨위드’를 창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제주발 예술 실험에 나섰다. ‘씨위드’ 발행지는 제주다. 그러나 ‘로컬 매거진(Local Magazine)’은 아니다. 한글판과 영어판이 각각 발행된다. 

    “공간에 따른 제약을 극복하고자 일부러 제주에서 잡지를 만들었어요. ‘씨위드’에서는 제주 작가들이 뉴욕 및 런던 작가와 동등하게 페이지를 배분받아요. 잡지에서는 제주라는 ‘로컬’이 뉴욕 같은 글로벌 대도시와 동등해지죠. 제주 작가들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방식이에요.”


    “제주를 ‘헤드쿼터’ 삼아 글로벌 지향”

    이 대표는 자신이 제주에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예술계에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계 안팎으로 ‘제주에 가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여행지 제주’와 ‘삶의 터전 제주’는 다르다고 반박할지 모른다. 일자리를 찾아야 제주의 밑바탕에 뿌리내릴 수 있다.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이들에게 제주 이주(移住)는 ‘섬나라 동화’일 뿐이다.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난관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일자리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제주에는 갤러리나 미술관 같은 물리적 공간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지면 전시회’ 콘셉트로 ‘씨위드’를 만들어 오히려 제주 작가들의 활동 반경을 넓혔어요. 나의 영역을 일궈나가면서 더 많은 시도를 해볼 수 있어요. 제주는 그런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대도시는 꽉 차 있다. 과포화된 공간에는 상상력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제주는 비어 있다. 결핍은 예술가들에게 채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다 보니 제주 이주민 중에는 예술가와 창작자가 많다. 이 대표는 “문화 불모지라는 제주의 결핍이 오히려 문화예술인을 성장시킨다”고 했다. 

    한편으로 예술은 소통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이 대표의 말처럼 “시각예술은 번역이 필요치 않은 세계 공용어”다. 글로벌 매거진이라는 플랫폼만 있다면 그곳이 뉴욕이건 제주건 문제 될 게 없다. ‘제주스러움’이 예술계의 주류로 곧장 직행할 수 있다. 이 대표가 “제주를 헤드쿼터(headquarter) 삼아 글로벌을 지향하겠다”는 포부를 품은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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