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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식민 통치가 오사마 빈 라덴 낳았다

[황승경의 Into the Arte] 영화 ‘포 페더스’

  •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영국 식민 통치가 오사마 빈 라덴 낳았다

  • 약자는 강자에게 짓밟히고 빼앗긴다,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강자의 알량한 염치는 ‘명분’을 만든다. “약한 것이 잘못”이라며, “원래 세상이 그런 거”라며. 빼앗은 강자는 ‘빼앗아서’ 더 강해졌고, 빼앗긴 약자는 ‘빼앗겨서’ 더 약자가 됐다.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서 약자는 염치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남은 저항 수단은 정제되지 않은 폭력. 세상은 이를 ‘테러’라고 말한다.
제국주의 시절 서구 열강은 무력을 앞세워 약한 국가를 집어삼키고 착취를 일삼았다. [미라맥스]

제국주의 시절 서구 열강은 무력을 앞세워 약한 국가를 집어삼키고 착취를 일삼았다. [미라맥스]

9월 8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하자 장남 찰스 3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선왕 조지 6세가 서거한 지 1년 4개월이 지나고서야 대관식을 올린 점을 감안하면 찰스 3세의 대관식 역시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이뤄질 것이다. 그럼에도 벌써부터 대관식에 쓰일 새 국왕 부부의 왕관이 회자되고 있다. 왕관에 박힌 ‘식민 지배의 잔재’ 때문이다.

왕관을 화려하게 꾸민 진귀한 보석들은 모두 과거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곳에서 가져온 것이다. 예컨대 국왕의 왕관에 박힌 컬리넌 다이아몬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산(産)이고, 왕비의 그것 정중앙엔 과거 무굴제국(현 인도)의 보물 ‘코이누르’ 다이아몬드가 빛을 내고 있다. 1850년 당시 세계 최고 다이아몬드 ‘코이누르’는 전쟁 배상금 명목으로 영국 왕실로 넘어왔다. 현재 인도에선 ‘코이누르’ 반환 운동이 거세지고 있다. 더불어 과거 영국이 자행한 약탈과 야만의 역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정신적 구심점이던 여왕이 서거하자 일부 영국연방(英國聯邦) 국가들은 과거 영국의 식민 지배 및 잔혹 행위에 대해 공식 사과를 요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국연방은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국가로 구성된 국제기구다. 정치적 구속력이 없음에도 영국연방이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는 비난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 영국이 식민지 주권 찬탈 과정에서 자행한 무고한 학살과 억압은 오늘날까지도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영국이 1881년부터 1899년까지 18년간 수단에서 벌인 ‘마흐디 전쟁’이 대표적이다.

영화 ‘포 페더스’의 영국군은 자국의 이익과 개인의 명예만을 생각한다. [미라맥스]

영화 ‘포 페더스’의 영국군은 자국의 이익과 개인의 명예만을 생각한다. [미라맥스]

영화 ‘포 페더스(The Four Feathers)’를 통해 아직까지 지속되는 약소민족의 ‘한(恨)’을 살펴보자. ‘마흐디 전쟁’은 ‘아편전쟁’이나 ‘보어전쟁’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세계 4분의 1을 차지한 대영제국이 대패한, 영국군의 명예에 큰 손상을 입힌 전쟁 중 하나로 꼽힌다.

‘포 페더스’는 대영제국을 찬미하지도, 날카롭게 비판하지도 않는다. 영화의 원작은 1902년 발간된 앤드루 메이슨(1865~1948)의 동명소설이다. 앤드루 메이슨은 옥스퍼드대 출신 엘리트 작가다. 30여 편의 소설을 집필했다. 이 가운데 ‘포 페더스’가 일곱 번이나 영화로 제작됐다. 원작 소설은 용기, 비겁함 등을 논하기 위해 ‘마흐디 전쟁’을 배경으로 할 뿐 휴머니즘 시각이나 인본주의 철학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영화 ‘포 페더스’ 포스터. [미라맥스]

영화 ‘포 페더스’ 포스터. [미라맥스]

가해자가 기록한 역사

이 글을 통해 소개하는 영화는 가장 마지막 제작된 ‘7번째 포 페더스’다. 2002년 개봉했는데, 소설이 세상에 나온 지 꼭 100년 된 해여서 더욱 화제가 됐다. 이젠 고인(故人)이 된 히스 레저(1979~2008)가 주연을 맡고 인도를 대표하는 감독 세자르 카푸르가 메가폰을 잡았다. 원작의 주제 ‘고대 이슬람 문화와 근대 서구 문명의 충돌’과는 결을 다르게 잡았다고 전해져 개봉 전부터 관심을 집중시켰다. 많은 관객은 인도 감독이 그리는 영국 제국주의의 그림자를 기대했지만 영화는 처참하게 흥행에 참패했고, 평론가들의 냉담한 비난도 감내해야 했다. 주제 의식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19세기 말 수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영제국의 패권 야욕이 정점에 오른 때다. 당시 영국의 식민 지배 상황을 알아보자. 1776년 미국이 독립하자 영국은 남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집중한다. 1815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1859년에는 인도의 주권을 빼앗고 본격적인 식민 지배를 시작했다.

영국은 막대한 경제적 이권을 가져다주는 식민지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호주처럼 ‘가성비’가 떨어지는 식민지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또 살인적인 기후, 폐쇄적인 지형에 말라리아 등 온갖 풍토병이 가득한 중앙아프리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중동과 붙어 있는 북아프리카, 특히 이집트엔 19세기 초부터 남다른 관심을 표했다. 고대 이집트의 문화재를 약탈해 야금야금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옮겼다. 이집트가 1841년 오스만투르크로부터 독립할 때도 적극 중재했다. 1859년 수에즈운하 건설 토목공사 시작 시기와 맞물려 본격적으로 이집트를 향한 야욕을 드러냈다.

영화 ‘포 페더스’ 스틸컷. [미라맥스]

영화 ‘포 페더스’ 스틸컷. [미라맥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그림자

1882년 이집트가 영국 수중(手中)으로 들어가자, 같은 이슬람 국가로서 이집트와 호형호제(呼兄呼弟)하던 수단은 큰 충격을 받았다. 영국은 유난히 이슬람교에 대한 신앙이 깊은 수단인의 동요를 예상치 못했다. 수단은 오랫동안 오스만튀르크 지붕 아래 이집트에 편입됐던 국가다. 당시 유럽인은 수단과 이집트를 한 나라로 착각했다. 이를 보여주는 예시가 하나 있다. 1871년 수에즈운하 개통 축하 작품으로 초연된 오페라 ‘아이다’다. 대본을 만들 때만 해도 여주인공 아이다는 고대 이집트와 전쟁을 벌인 이웃 나라 공주로 설정됐는데, 수단이라는 나라에 대해 전혀 몰랐던 작곡자 베르디는 수단을 건너뛰고 에티오피아를 선택했다.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는 적잖이 떨어져 있어 전쟁을 자주 펼칠 만한 거리가 아니다. 127년 후인 1998년이 돼서야 디즈니가 아이다를 오페라에서 뮤지컬로 재탄생시킬 때 에티오피아는 수단(정확히는 수단의 북동부 지역 ‘누비아’)으로 변경됐다.

이집트가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할 무렵 수단의 지도자 무함마드 아마드는 자신을 구세주로 공식 선언한다. 영국인의 가혹한 착취와 학대에 신음하던 수단인에게는 한 줄기 빛이나 다름없었다. 수단인은 사생결단 각오로 외세에 달려들었다. 영국은 힉스 대령을 이집트군 사령관으로 임명해 수단 정벌에 나섰지만 방심한 이집트군은 샤이칸 전투에서 대패한다. 무함마드를 추종한 수단인은 ‘마흐디국’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무장투쟁에 나선다. 영국은 중국의 ‘태평천국운동’ 진압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찰스 조지 고든(1833~1885)을 수단에 급파한다. 그러나 지역 정세에 어두웠던 고든의 군대는 오히려 마흐디군에 겹겹이 포위돼 진퇴양난에 빠진다. 당시 고든의 혈투는 영화 ‘카르툼’(1966)에서 자세히 조명된다. 물론 이 영화는 철저하게 영국의 시각으로 그려진 것이다.

애국심이 불러온 집단최면

영화 ‘포 페더스’에서 해리의 친구들은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애국심에 사로잡혀 있다. [미라맥스]

영화 ‘포 페더스’에서 해리의 친구들은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애국심에 사로잡혀 있다. [미라맥스]

영화 ‘포 페더스’ 속으로 들어가 보자. 때는 1885년의 영국. 사관학교를 졸업한 젊은 장교 5총사 해리(히스 레저), 잭(웨스 벤틀리), 윌러비(루퍼트 펜리 존스), 트렌치(마이클 쉰), 캐슬톤(크리스 마셜)은 애국심으로 한껏 고무된 상태다. 주인공 해리는 사랑하는 약혼녀 에스니(케이트 허드슨)와 약혼을 앞뒀다.

평화로운 시간은 잠시뿐. ‘마흐디 봉기’를 잠재우기 위해 갓 훈련을 마친 젊은 장교들에게도 참전 명령이 떨어진다. 영국 교회(성공회)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영국에 세계를 다스릴 임무를 부여하셨다”며 침략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중세 시대 십자군전쟁의 연장선이다. 교회는 ‘기사도’를 기독교 신앙과 결합해 ‘신사도’로 치환했다. 목숨보다 명예를 중히 여겨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게끔 조장했다. 이를 거부할 경우 ‘겁쟁이’로 낙인찍어 사회적 멍에를 씌웠다.

당시 영국군은 ‘조국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 가장 고귀하다’는 집단 최면에 빠져 있었다. 조국의 명예를 더럽히는 자가 누구든 전쟁으로 응징하려 했다. 먼저 선전포고만 하면 ‘정의’로 포장되던 시절이다. 학살, 감금, 착취 등 추악한 행동조차 조국을 위하는 일이라면 명예로운 일로 용인됐다. 약탈은 양심에 일말의 가책조차 받지 않도록 정당화되곤 했다.

해리는 전도유망한 장교지만 오직 가문의 명예를 위해 군인의 길을 택했다. 군 생활이 싫던 그는 참전 직전 퇴역해 소속 부대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만다. 잭을 제외한 3명의 친구는 격분해 해리에게 비겁자의 상징 ‘흰 깃털’을 보내며 절교를 선언한다. 약혼녀 에스니마저 흰 깃털을 보낸다. 영화 제목이 포 페더스(Four Feathers), ‘깃털 4개’인 이유다. 해리는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가족마저 그와 의절한다. 해리는 목숨을 바쳐 전장에 나간 친구들을 보며 크나큰 죄책감에 빠짐과 함께 땅에 떨어진 명예를 되찾을 방도를 강구한다. 방법은 단 한 가지. 직접 수단으로 가 비겁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길뿐이다.

해리는 위험천만한 사막 횡단에 나선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며 천신만고 끝에 영국군 막사에 도착한다. 세간의 눈을 피해 아랍인으로 변장하고 노역하며 친구들을 도울 적당한 기회를 엿본다. 용병 출신 흑인 파트마가 해리를 첩자로 의심하지만 사연을 듣곤 이내 오해를 푼다. 첩보 끝에 마흐디군의 위장 전술을 알게 된 해리는 이를 영국군에 알리고자 파트마를 영국군 진영으로 급히 보낸다.

해리의 간절함은 아무 소용이 없다. 파트마가 진실을 아무리 외쳐도 영국군은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귀를 닫는다. 결국 영국군은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을 맞이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적의 유인책에 걸려들기까지 한다. 결과는 완패. 후퇴하는 와중에 캐슬톤은 전사하고 잭은 총기가 폭파하며 기절한다. 살육의 현장에서 윌러비를 발견한 해리는 자신이 받았던 네 깃털 중 하나를 돌려주며 자신의 명예를 되찾는다. 피가 낭자한 전장의 폐허 속에서 겨우 잭을 구해 내지만 이미 잭은 시력을 잃어버렸다.

또 다른 친구 트렌치를 구하기 위해 해리는 수용소에 잠입하는 일도 마다치 않는다. 결국 해리는 트렌치에게도 흰 깃털을 돌려주는 데 성공한다. 감옥은 사막의 열기와 맹렬한 적으로 사방이 막혀 있어 지옥이나 다름없다. 해리는 천신만고 끝에 탈출에 성공해 트렌치와 함께 고국의 품에 안긴다. 해리의 영웅담은 영국에서 전설이 된다. 아무도 해리를 경멸하거나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해리는 에스니에게 깃털을 돌려주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영화는 여기까지의 이야기만 보여준다.

영화는 국가,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스스로의 이상이라는 상충되는 요구 사이에서 충돌하는 개인을 다룬다. 소설에 비해 진일보했으나 여전히 실추된 명예를 되찾는 과정을 그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피해자’인 마흐디는 그저 ‘적’으로 그려질 뿐이다.

마흐디의 저항은 영국군의 강함 앞에 무기력하게 분쇄된다. [미라맥스]

마흐디의 저항은 영국군의 강함 앞에 무기력하게 분쇄된다. [미라맥스]

제국주의 상흔은 아직도…

영화 뒤의 일은 이렇다. 전쟁에서 승리한 마흐디는 강력한 원리주의 이슬람 국가가 된다. 14년이 흐른 후 허버트 키치너 이집트군 사령관은 신무기 ‘맥심 기관총’을 앞세워 마흐디의 수도 옴두르만으로 쳐들어간다. 구식 머스킷 총과 창칼로 무장한 마흐디군은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한다. 총탄의 굉음과 먼지 속에 1만 명이 고통 속에서 궤멸하고 만다. 영국군 사망자는 48명에 불과했다.

키치너 사령관은 이 싸움에서의 대승에 더해 보어전쟁과 인도 전선에서도 활약하며 제1차 세계대전 때엔 육군 원수에 올랐다. ‘옴두르만 전투’의 수혜자가 된 유명 인물이 하나 더 있다. 영국의 국민 영웅 윈스턴 처칠이다. 옴두르만 전투에 초급장교로 참전했고, 이 승리는 출세가도의 원동력이 됐다. 당시 처칠은 이 전쟁을 ‘현대문명의 위대한 승리’로 여겼으며 후일 회고록에선 마흐디군을 ‘사나운 야만인’으로 규정했다.

18년간 영국에 저항한 마흐디국은 현재 이슬람교에 대한 혐오·차별 문제에 영감을 준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서구에 대한 적개심이 커질수록 무함마드의 저항 의식을 숭상했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 오사마 빈 라덴(1957~2011)이다. 그는 4년간 수단에서 은신하며 이슬람 원리주의를 탐독했고, ‘9·11 테러’를 일으켜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마흐디는 ‘제국주의의 흔적’으로 남아 현재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



신동아 2022년 11월호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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