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호

데친 두부에 얇게 썬 오이, 청어알젓 삼합은 술안주로 그만

[김민경 ‘맛 이야기’] 요모조모 쓸 데가 넘치는 든든한 맛의 조력자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3-01-2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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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칠맛을 돋우는 오징어 젓갈. [gettyimages]

    감칠맛을 돋우는 오징어 젓갈. [gettyimages]

    설 명절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리고 우리집 냉장고엔 명절 음식과 양가 엄마들이 바리바리 싸주신 반찬들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냉장고에 들어가지 못한 것들은 서늘한 베란다에 뒀다. 연휴 내내 내리 몇 끼를 먹었는데 아직도 먹을 것들로 그득 차있는 나의 부엌 풍경을 보고 있으면 한숨부터 나온다. 해마다 “올 명절에는 음식 안 한다. 딱 식구들 먹을 것만 할란다”라고 판박이처럼 말씀하는 양가 엄마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자식들 먹일 생각에 몇날 며칠을 할머니 걸음으로 장을 보고, 부엌에 종일 서있었을 일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래도 남은 음식에는 좀처럼 손이 가질 않는다.

    나물비빔밥의 감칠맛 돋우는 오징어젓

    평소에는 없어서 못 먹는 명절 음식이지만 나흘 정도 먹고 나면 색다른 조력자가 필요하다. 이럴 때 요긴한 게 젓갈이다. 나물을 넣고 밥을 비빌 때 젓갈과 김을 부숴 곁들인다. 오징어젓, 낙지젓처럼 양념이 진하고 씹는 맛이 있는 게 어울린다. 젓갈이 양념을 대신하는 역할이니 잘게 다지고, 밑간을 조금 더 하면 좋겠다. 젓갈은 이미 짭짤하니 간은 더할 필요 없지만 고운 고춧가루, 매실청 혹은 물엿, 다진 마늘 등을 넣어 맛을 보태면 더 진해진다. 이런 건 생략할지라도 통깨 듬뿍과 참기름은 꼭 넣자. 나물비빔밥의 감칠맛을 확 돋워준다. 사실 젓갈은 맨밥에 넣고 대강 섞어 먹기만 해도 맛이 넘친다. 그럴 때면 깻잎이나 상추, 부추, 아주 곱게 썬 양파, 송송 썬 오이고추를 함께 넣어 살살 섞어 먹으면 산뜻하니 참 좋다. 때로는 잘게 썬 해초를 넣고 김가루와 참기름을 곁들여 바다의 맛을 즐겨도 좋다.

    맨밥에 비빌 때는 청어알젓도 추천! 청어알젓은 따끈하게 데친 두부나 기름에 지진 두부, 얇게 썬 오이를 곁들여 삼합으로 먹는 술안주로 이름을 날린 바 있다. 명란보다 굵은 알이 톡톡 터지는 느낌, 한결 진한 바다의 풍미로 깨나 개성이 넘치는 맛이다. 초밥이나 초간단 김말이 밥이나 주먹밥, 찐 양배추나 호박잎으로 돌돌 말아 만든 쌈밥 등에 올리거나 속에 넣어 먹으면 색다른 맛을 만들어낸다. 쌈밥처럼 채소랑 짝을 이루기로는 민물새우로 만든 토하젓을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맛이 나는 쌈장을 대신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구수함과 감칠맛을 가졌기 때문이다. 혹 비릿한 맛을 즐긴다면 갈치속젓, 곱게 간 꽁치젓도 곁들여볼만하다.

    생채소 볶아 나물 비비고 젓갈 한 숟갈이면 맛밥

    젓갈은 볶음밥을 만들 때도 무척 유용하다. 젓갈을 즐기지 않는 이들도 모른 채 꿀떡꿀떡 먹을 수 있는 맛밥이 된다. 소금, 간장, 굴소스 대신 젓갈로 간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양파, 대파, 당근 같은 생채소를 준비했다면 기름에 먼저 볶아 향도 내고 살캉살캉하게 익힌다. 남은 나물로 볶음밥을 하려면 먹기 좋게 썰어 프라이팬에 먼저 볶는다. 나물에는 기름이나 수분이 충분하니 마른 팬에 그저 볶으면 된다. 밥을 넣고 재료와 잘 섞은 다음 준비한 젓갈을 넣고 골고루 섞으며 볶는다. 젓갈 양념이 밥에 골고루 묻어 볼그스름해지도록 섞는 게 중요하다. 간도 좋고, 감칠맛도 쑥 올라간다. 구운 생김에 싸 먹으면 더 맛있다.

    기름에 지진 전을 다시 데워 먹을 때나, 고기 산적이나 해물 숙회, 조림 등을 먹을 때도 젓갈은 좋은 곁들임이 된다. 고춧가루 양념이 된 젓갈은 말할 것도 없고, 새우젓도 조화롭다. 새우젓에 고춧가루 조금, 아삭함이 느껴질 정도로 채 썬 마늘과 송송 썬 쪽파는 넉넉하게, 통깨는 취향껏 넣자. 여러 가지 알싸한 풍미와 씹는 맛이 다양해져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아주 좋다. 청주나 막걸리 한 잔 보태고자 한다면 꼴뚜기나 창란 등으로 담근 젓갈에 잣이나 호박씨를 넣고 꿀과 곱게 다진 마늘을 섞어 곁들이자. 남은 명절 음식에 젓갈 반찬 하나 보탰을 뿐인데 꽤 맛깔스러우면서도 단출한 술상을 차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요리하고 남은 자투리 재료를 잘게 썰고 젓갈도 쫑쫑 썰어 다함께 섞어 기름에 지글지글 구우면 짭조름한 장떡이 된다. 해물로 만든 젓갈이 익으면 의외로 식감이 좋고, 간도 딱 맞아 간장도 필요 없다. 젓갈은 그 하나로도 완벽한데 정성들여 만든 수많은 음식을 끌어주고 밀어주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하는 멋진 도우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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