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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외계 고릴라’ 세계관… MZ세대 스타 ‘용진이 형’

꿋꿋한 #No Back 경영人 ‘신세계 정용진’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화성에서 온 외계 고릴라’ 세계관… MZ세대 스타 ‘용진이 형’

  • ● 색깔 거침없이 드러내는 ‘부회장님’
    ● ‘제1의 신세계’ 향한 디지털 피보팅 순항
    ● ‘제이릴라’ ‘용지니어스’… ‘나’를 브랜드화하다
    ● “경영자는 결국 실적으로 평가받는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2010년 3월 주주총회를 거쳐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라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을 이끌고 있다. [신세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2010년 3월 주주총회를 거쳐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라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을 이끌고 있다. [신세계]

“대한민국 재벌 3세 중 가장 트렌디한 CEO 겸 인플루언서.”

“일론 머스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집 센 부회장님.”

정용진(54) 신세계그룹 부회장에 대한 최근 평가는 대략 이랬다. 정 부회장은 한동안 공식석상에서나 볼 수 있던, 베일에 싸인 재벌 3세였다. 2019년부터 SNS에 본격적으로 일상을 공유하면서 이미지가 차츰 달라졌다. 정 부회장은 현재 77만4000여 팔로어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로 등극했다. 여러 측면에서 독특한 오너 경영인으로 불린다.

경영인 이전의 인간 정용진은 ‘친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SNS 계정에 일상을 공유한 후로 MZ세대에 친근하게 인식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SNS 계정에 일상을 공유한 후로 MZ세대에 친근하게 인식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정 부회장의 본업은 경영인이다. 그런데 경영 능력을 논하기 전에 대중은 그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궁금했다. 이마트를 비롯해 트레이더스, SSG닷컴, 스타벅스 등 신세계그룹 계열사의 주 고객층으로 분류되는 30~40대 남녀를 대상으로 ‘정용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지 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 부회장은 좋게 말해 젊고 감각적이며 친근하지만, 나쁘게 말해 신중하지 않은 중년 남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MZ세대인 1980~90년대생은 SNS상에서 정 부회장을 ‘용진형님’ ‘용진이 오빠’라 부를 정도로 친근감을 드러낸다. 그의 인스타그램(yj_loves) 게시물 아래에는 이들의 호의적인 댓글이 줄줄이 이어져 흡사 연예인 계정을 방불케 한다.



경기 성남시에 거주하는 미혼의 30대 프리랜서 남성 박모(38) 씨는 “재벌은 사람 아닌가. 맛집 다니며 먹은 음식 찍어 올리고, 노브랜드 신제품을 홍보하려고 애쓰는 걸 보면 친근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인플루언서로서의 삶을 더 즐기는 것 같다. 철없는 어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나쁠 건 없다”고 덧붙였다.

인간적 면모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논란의 아이콘이 된 것을 우려하는 이도 적지 않다. 일반인들에게 정용진 부회장을 화두로 던졌을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단어가 ‘멸공’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멸공’(滅共·공산주의를 멸망시키자)이란 단어를 해시태그(검색 주제어)로 걸었다. 이런 행태를 두고 일각에서는 “(당시) 정부가 친중·친북 행보를 보이는 것을 정 부회장이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급기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1월 7일 자신의 SNS에 “21세기 대한민국에 ‘#멸공’이란 글을 올리는 재벌 회장이 있다. 거의 윤석열 수준”이라는 글을 올리며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정 부회장은 곧바로 조 전 장관의 글을 캡처해 “이분 진짜 #리스펙”이라며 맞받아쳤다. 공교롭게도 1월 8일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이마트 이수점을 방문해 여수멸치와 약콩 등을 샀고, 인스타그램 계정에 ‘#멸치’ ‘#콩’ 등의 해시태그를 달았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정 부회장과 윤 대통령이 주고받는 식의 게시물을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당시 원내대표는 1월 10일 그가 이마트를 방문해 멸치와 콩을 산 데 대해 “모 유통업체 대표의 철없는 ‘멸공’ 놀이를 말려도 시원찮을 판인데 따라 하는 것은 자질이 의심된다”고 비난했다. 일부 네티즌은 이마트·스타벅스 등 신세계그룹 계열사 불매운동을 벌였다.

일련의 사태는 이마트 노조가 성명서로 정 부회장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일단락됐다. 이마트 노조는 1월 12일 “기업인 용진이형은 멸공도 좋지만 본인이 해온 사업을 먼저 돌아보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이에 정 부회장은 자신의 SNS에 “나로 인해 동료와 고객이 한 명이라도 발길을 돌린다면 어떤 것도 정당성을 잃는다. 저의 자유로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저의 부족함”이라며 사죄의 글을 올렸다. 이마트 노조도 그의 성명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논란에도 꿋꿋한, 고집 센 ‘노빠꾸’ 부회장

정치적 발언을 스스럼없이 내뱉고, 자신에 대한 비판도 여유롭게 되받아치는 재벌 3세의 다소 특이한 행태에 대중은 생소하다는 반응이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40대 직장인 남성 김모(42) 씨는 “초등학교 때 배웠던 반공 사상을 대형마트 오너가 SNS에서 재차 거론할 줄 누가 알았겠나. 처음에는 ‘실수겠지’ 싶었는데 계속 관련 단어를 끄집어내니 꼭 통제되지 않는 재벌 3세의 표본을 보는 듯했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한동안 논란이 됐던 단어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6월 이후 또다시 이를 연상케 하는 ‘#멸사봉공’(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해 힘씀)이란 단어를 끄집어내 다시금 논란이 됐다. 6월 초 그는 야외 골프장 필드 위에서 지인들과 ‘No Back’이라고 적힌 재킷을 단체로 입고 사진 찍어 올리며 ‘#노빠꾸는 #멸사봉공이다’라는 멘트를 올렸다. 팔로어들은 댓글에 ‘멸공’ ‘섬멸’ ‘반공’ 등의 단어를 써 올리며 화답했다.

정 부회장의 이런 행동을 두고 고집스럽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40대 직장인 여성 박모(40) 씨는 “오해를 살 만한 문구라는 걸 알면서, 자사 매출에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도 꿋꿋하게 논란이 되는 글을 올리는 걸 보면 고집이 대단한 사람 같다. 마치 주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돌발 행동을 일삼는 미국의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를 보는 듯하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트렌디한 소비를 즐기고 SNS상에 공유하는 것이 일상인 MZ세대와 스스럼없이 소통하는 동시에 정치색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대기업 오너 경영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재벌 3세 가운데서도 정 부회장은 MZ세대 사이에 영향력이 커졌다. 이제는 SNS에 적극적인 인플루언서가 됐고, 그만큼 구설에 자주 오른다. SNS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화제성이 높을수록 리스크도 크다. 스스로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는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SNS를 즐기는 소통형 CEO로서의 면모만 놓고 평가하기엔 정용진 부회장 어깨에 짊어진 책무가 가볍지 않다. 정 부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뿌리를 같이하는 범(汎)삼성가의 일원이다. 태생부터 재벌가의 자제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으며, 가업인 신세계그룹 경영에 참여한 지도 벌써 30년 가까이 됐다.

정 부회장은 1968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딸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건희 삼성그룹 2대 회장이 외삼촌이며, 이재용 부회장이 동갑내기 사촌이다. 그는 1987년 경복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다니던 중 미국으로 건너가 브라운대 경제학과에 입학, 1994년 졸업했다.

그는 스물일곱이던 1995년, 신세계그룹 전략기획실 전략팀 대우이사로 입사하면서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다. 기획조정실 그룹총괄담당 상무, 신세계백화점 경영지원실 상무이사를 거쳐 2006년 서른여덟에 신세계백화점 경영지원실 부회장에 올랐다.

그는 2010년 3월 주주총회를 통해 ㈜신세계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라 실질적인 경영인 지위를 획득했다. 이후 2011년 5월, ㈜이마트가 ㈜신세계로부터 법인 분할하며 대표에 선임돼 마트 부문을 맡았다. 정 부회장은 2013년 2월 ㈜신세계와 ㈜이마트의 사내이사직을 사퇴한 뒤, 전문경영인에게 각 사의 경영을 맡기고 현재는 그룹의 전체 경영을 총괄하는 부회장으로서 일하고 있다.

한편 그의 여동생 정유경 사장은 2009년 12월 신세계그룹 부사장에 올라 그룹 내 백화점과 패션 부문을 맡았다. 이후 2015년 12월 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에 올라 지금까지 해당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제1의 신세계’ 꿈꾸는 경영인

입사 27년. 어느덧 정용진 부회장은 신세계그룹에서 인생의 절반이란 시간을 바쳤다. 20대 파릇한 청춘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유통 생태계의 거대한 변화를 직면하고 중년의 경영자로서 그룹의 생사를 건 혁신을 꾀고 있다.

올해 초 정용진 부회장은 그룹 임직원은 물론 업계에 메시지를 던졌다. 1월 그룹 내 홍보 채널인 ‘신세계그룹 뉴스룸’을 통해 밝힌 신년사에서 그는 “우리의 목표는 제2의 월마트, 제2의 아마존도 아닌 ‘제1의 신세계’”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과거 오프라인 중심의 유통 대기업이던 신세계그룹이 앞으로는 온라인 유통까지 섭렵하는 것에 방점을 찍겠다는 선언이다.

특히 올해는 정 부회장에게 큰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전환이라는 숙제를 끝내고 실적으로 이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 그는 신년사에서 “올해 온전한 ‘디지털 피보팅’(pivoting·급속도로 변하는 외부 환경에 대응해 기존 사업 아이템을 토대로 미래 사업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만이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승자가 되기 위한 유일한 해법”이라며 “지난해 이를 위한 준비와 계획을 모두 마쳤고, 이제 ‘오프라인조차 잘하는 온라인 회사’가 되기 위한 실천만 남았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은 최근 1년 동안 공격적인 M&A를 진행하면서 단순한 유통 대기업을 넘어섰다. 2021년 2월 SK와이번스 프로야구단을 인수해 3월 ‘SSG랜더스’ 프로야구단을 창단하는 것으로 첫 스타트를 끊었다. 이후 4월에는 SSG닷컴이 온라인 패션 플랫폼 ‘더블유컨셉코리아’를 인수했다.

지난해 6월에는 이마트가 G마켓과 옥션, G9 등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와 지분 양수도 계약(SPA)을 체결했고, 11월에 최종 인수를 완료했다. 이 과정에서 이마트는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기 위한 특수목적회사 ‘에메랄드 SPV’를 설립해 이베이코리아 지분 100%를 가진 아폴로코리아유한회사의 지분 80%를 3조5600억 원에 취득했다. 이에 앞서 7월에는 이마트가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지분 17.5%를 추가로 인수해 총 67.5% 지분을 확보했다. 각 회사 인수 후인 올해 2월 이베이코리아는 ‘G마켓글로벌’,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SCK컴퍼니’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인수합병은 정용진 부회장이 목표로 하는 ‘신세계 유니버스’ 구축과 관련이 있다. 앞서 신년사에서 정용진 부회장은 “신세계만의 디지털 생태계인 ‘신세계 유니버스’를 만들어 그룹의 콘텐츠와 자산을 모두 연결해 고객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며 임직원에게 변화를 주문했다.

일견 유통 사업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SSG랜더스 인수와 관련해서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랜더스 구장을 만들려는 이유는 고객의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는 회사가 되기 위해서”라며 인수 목적을 분명히 했다. 이어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고객이 우리의 공간에서 다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이 유일한 명제”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이 전에 없이 명료한 경영 메시지를 던지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룹 규모를 키워나가는 것에 대해 전문가 대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경영학)는 “이미 오프라인 유통시장은 한계에 접어들었고,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파격 할인 영업 방식으로는 기업이 지속 성장하기가 어려워졌다”면서 “유통 대기업도 온라인으로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데, 신세계그룹은 기존의 SSG닷컴만으로 한계가 있다 보니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통해 전열을 정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SSG랜더스 인수와 관련해 “대기업이 스포츠 산업에 뛰어드는 일은 과거에도 있어왔다. 무리한 확장이라면 기업에 화가 될 수 있지만 본업의 영역을 잘 챙긴다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캐’로 당당히 ‘나’를 브랜드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자신의 이미지를 활용한 부캐릭터 사업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에 문을 연 프리미엄 베이커리 ‘유니버스 바이 제이릴라’(왼쪽)와 상표권을 출원한 ‘용지니어스’ 캐리커처가 찍힌 티셔츠. [뉴스1, 정용진 인스타그램]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자신의 이미지를 활용한 부캐릭터 사업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에 문을 연 프리미엄 베이커리 ‘유니버스 바이 제이릴라’(왼쪽)와 상표권을 출원한 ‘용지니어스’ 캐리커처가 찍힌 티셔츠. [뉴스1, 정용진 인스타그램]

정용진 부회장은 인수합병을 통한 기업의 양적 성장을 시도하는 동시에 자신의 이미지를 활용한 부캐릭터 사업에 나서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질적 성장도 꾀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본인의 이름과 외모를 꼭 닮은 부캐릭터 ‘제이릴라’를 상표로 출원해 사업에 접목하는 독특한 시도로 주목받았다. 제이릴라는 정용진 부회장의 이니셜인 ‘J’와 고릴라의 ‘릴라’를 합성한 이름으로 정 부회장의 외모를 연상케 한다. 그는 SNS에 고릴라 캐릭터 ‘제이릴라’의 캐리커처와 이를 활용한 가면, 티셔츠, 인형 등 여러 굿즈를 공개해 왔다.

인스타그램 제이릴라 계정은 ‘#범우주힙스터’ ‘#지구초보’ ‘제이릴라의 지구 체험기’라는 말들로 소개돼 있다. 이를 토대로 그가 ‘화성에서 온 외계 고릴라’라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정 부회장은 제이릴라와 찍은 사진을 SNS에 자주 올리면서 “나랑 하나도 닮지 않았다”며 시종일관 관계성을 부정하고 있다. 그가 부정할수록 닮음을 긍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져 팔로어들의 웃음을 유발한다.

이마트는 2020년 9월 정 부회장을 캐릭터화한 제이릴라와 여자친구 샤이릴라에 대한 상표출원을 했다. 신세계그룹은 이들 캐릭터를 활용한 커피, 과자 등 식음료 부문에 활용할 것을 예고했다. 이후 신세계푸드는 2021년 11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 SSG푸드마켓 1층에 제이릴라를 콘셉트로 한 프리미엄 베이커리 ‘유니버스 바이 제이릴라(UNIVERSE BY JRILLA)’를 오픈해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섰다.

명칭대로 이곳은 ‘우주여행’을 콘셉트로 인테리어를 우주선처럼 꾸몄다. 입구에 서 있는 우주복을 입은 대형 제이릴라 피규어, 제이릴라 형태를 본뜬 케이크와 형형색색의 베이글 등으로 유명세를 탔다. 우주와 태양계를 모티프로 만든 60여 베이커리 제품, 투명 진열장에 우주 광석처럼 놔둔 독특한 진열 방식 등 틀을 깬 시도 역시 화제가 됐다.

그룹 오너의 자기 캐릭터화는 대한민국 기업 정서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오너가 어떤 인물이냐에 따라 자칫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는 시도다. 그러나 정 부회장이 몇 년 동안 SNS 활동을 해오며 친근감을 쌓아온 덕택에 제이릴라 캐릭터는 대중에 거부감 없이 스며들었다. 또 그룹 오너 외모를 희화화해 캐릭터를 만드는 일은 다소 언짢을 수 있음에도 정 부회장 스스로 이를 즐기는 뉘앙스를 풍긴 점도 긍정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정 부회장을 전면에 내세운 제2의 제이릴라도 그룹 차원에서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3월 식음료를 비롯한 숙박, 광고, 스포츠, 연예오락 등에 ’YONGENIUS(용지니어스, 용진+지니어스)’ 상표권을 출원했다. SNS상에 평소 중식을 자주 요리하는 정용진 부회장은 요리하는 모습을 경쾌하게 본뜬 캐리커처와 용지니어스 영문 글자를 프린팅한 티셔츠를 자주 입고 등장한다.

또 신세계그룹은 정 부회장의 이니셜 ‘YJ’를 활용한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마트는 지난해 9월 ‘YJ 박스’를 SSG닷컴에서 한정 판매했다. 정 부회장이 선별한 이마트 PB 상품을 모은 기획 세트다. 9만9000원에 출시된 500세트가 반나절 만에 품절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외 SSG랜더스 구단주로서도 활약하는 그는 지난해 6월 SNS상에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구단주 맥주’ 시안을 공개해 기대감을 높였으나 출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캐릭터 마케팅은 기업 매출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년 캐릭터 이용자 실태조사 발표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캐릭터 상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85.1%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평소 상품을 구매할 때 캐릭터가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사람도 62.4%에 달했다.

신세계그룹은 캐릭터, 굿즈 등을 활용해 소비자의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것이 결국은 돈이 된다는 것을 어느 기업보다 잘 안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 메이저 커피 브랜드 가운데 하나이던 스타벅스가 현재 시장 우위를 점하게 된 것도 적극적으로 굿즈 이벤트를 활용해 소비자 충성도를 높인 덕이다. 따라서 지난해 신세계그룹은 스타벅스코리아 지분을 추가로 사들여 경영권을 확대했고, 굿즈 디자인팀을 구축해 라인업을 다양화하고 있다.

제이릴라, 용지니어스 등 정 부회장을 모티프로 한 캐릭터 역시 앞으로 소비자의 신세계그룹 충성도를 높일 비기가 될는지 모를 일이다. 정 부회장의 자기 캐릭터화 사업에 대해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그룹 내 여러 비즈니스 가운데 하나를 지원하는 의미로 SNS에 공유하는 것이지 (정 부회장) 본인이 나서서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전사적으로 디지털 피보팅을 추진하는 가운데 나온 넥스트 비즈니스의 하나로 봐달라”고 설명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쿠팡이 OTT 플랫폼인 ‘쿠팡플레이’ 사업을 하는 것도 쿠팡에 대한 소비자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다. 각 기업은 고객 충성도를 높일 방법을 모색하고, 이는 곧 실적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세계그룹이 정 부회장의 캐릭터 사업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한국 유통의 전환기에 새로운 시도를 통해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은 필요한 일”이라고 평했다.

과감한 사업조정

정용진 부회장은 시장 변화에 민감한 트렌드세터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그룹 경영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평소 그는 해외 유통업의 성공 사례를 파악하는 데 열을 올리고, 이를 신세계만의 색깔로 기획해 시장에 선보여 왔다. 2010년 3월 신세계그룹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라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선 이후로는 다양한 신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노브랜드, 스타필드 등은 그룹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삐에로쇼핑, 제주소주 등은 실패의 아픔을 겪었다.

정 부회장이 추진한 신사업 가운데 현재 자리를 잘 잡은 케이스는 ‘노브랜드’다. 2015년 4월 이마트는 “브랜드가 아니다 소비자다”라는 슬로건처럼 브랜드 네임밸류에 따라 매겨지는 가격 거품을 빼고, 질 좋은 PB(Private-Brand) 상품을 자체 기획해 노브랜드라는 이름 아래 선보였다. 과자, 우유, 커피 등 가공식품뿐 아니라 양말, 비누, 수건 등 생활용품과 노트북, TV 등 전자제품을 아우른다. 소비자들은 가격 거품을 뺐다는 점에 지갑을 열었고, 특정 상품군은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후 노브랜드는 요식 브랜드로 확장해 나간다. 신세계푸드는 2019년 8월 햄버거 브랜드 ‘노브랜드버거(NBB)’를 론칭하고,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1호점을 열었다. 유명 햄버거 패스트푸드 브랜드의 세트 메뉴와 비교해 2000~3000원가량 저렴한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시장에 빠르게 안착했다. 1호점 오픈 20개월 만인 2021년 5월에는 인천 SSG랜더스필드에 노브랜드버거 100호 매장을 열었다. 지난 3월 기준 170여 매장이 영업 중으로, 연말까지 200호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세를 이어 신세계푸드는 2022년 3월에는 ‘노브랜드피자’를 만들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테스트 매장 성격의 1호점을 열었다. 글로벌 피자 브랜드의 유사 메뉴 대비 약 20% 저렴한 가격, 업계 최단시간인 8분 내 완성 등을 내세워 학생 수요가 많은 대치동 학원가 한복판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2016년 9월 경기 하남시에 문을 연 종합쇼핑몰 ‘스타필드’는 정용진 부회장의 역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신세계]

2016년 9월 경기 하남시에 문을 연 종합쇼핑몰 ‘스타필드’는 정용진 부회장의 역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신세계]

정 부회장의 또 다른 신사업 성공 사례로 스타필드를 빼놓을 수 없다. 2016년 9월 경기 하남시에 문을 연 ‘스타필드 하남’은 정 부회장이 기획부터 브랜드 입점까지 챙긴 야심작이다. 미국의 쇼핑몰 전문 운영 기업인 터브먼사와 제휴해 1호점 오픈을 5년 전부터 기획했다. “고객의 소비는 물론 시간을 빼앗겠다”는 정 부회장의 야심에 따라 체험형 콘텐츠 비중도 높였다. 전략은 적중했고, 개장 1년 만에 누적 방문객 수 2500만 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스타필드는 국민적 인기에 힘입어 전국으로 확장하고 있다. 최근 5년 사이 스타필드 코엑스몰·고양·안성, 스타필드시티 위례·부천·명지 등이 순차적으로 오픈했다. 향후 인천 청라, 경기 수원, 경남 창원 등에 오픈이 예정돼 있다.

정 부회장이 이끈 신사업들이 전부 성공가도를 달린 건 아니다. 2018년 6월 서울 강남구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처음 문을 연 ‘삐에로쑈핑’은 정 부회장의 뼈아픈 실패로 남았다. 일본의 중저가 할인잡화점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삐에로쇼핑은 ‘펀 앤 크레이지’를 콘셉트로 B급 감성의 흥미로운 상품을 미친 가격에 판매해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삐에로쇼핑은 정 부회장의 사업 철학처럼 고객의 시간을 빼앗는 데는 성공했으나, 고객의 지갑을 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신세계그룹은 삐에로쇼핑이 적자를 거듭하자 경영 개선을 위해 2020년 수도권 6개, 지방 2개 점포를 모두 폐점했다.

애주가로도 잘 알려진 정 부회장은 주류 사업에도 손을 댔다. 이마트는 2016년 제주 조천읍에 본사를 둔 소주회사 ‘제주소주’를 인수했다. 당시 정용진 부회장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킨 소주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정용진 소주’라고 불리며 기대를 모았다. 이마트는 소주 생산설비 확충을 위해 250억 원을 투자했고, 2017년 9월 ‘제주소주 푸른밤’이란 이름으로 출시됐을 때 300만 병이 팔리며 인기를 끌었다.

제주소주는 출시 당시 반짝 인기를 끌었으나 입맛이 쉽게 바뀌지 않는 소주 업계 특성상 기존 소주들의 아성을 깨지 못했다. 제주소주에 대한 반응은 시들해져 갔고 2018년 기준 영업손실 129억 원을 기록했다. 신세계그룹은 3년간 570억 원을 더 투자했으나 적자 행진을 막지 못했다. 결국 정 부회장은 2021년 6월 제주소주 사업을 접었다.

정용진 부회장은 유통 대기업 오너 경영인답게 줄곧 트렌드를 앞서나가는 면모를 보여왔다. 그가 내놓는 신사업은 초반에 일단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성공적으로 안착한 경우도 많았으나 국내 소비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신사업들은 외면받았다.

기업들은 2년간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소비 패턴 방식이 급변한 탓에 더욱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는 “엔데믹 전환기에 무리한 신사업 추진과 인수·확장은 통용되지 않는다”며 “그동안 정 부회장은 자신이 마음에 들면 일단 신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그룹을 경영해 왔다. 이제는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예측 가능한 경영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경영자는 실적으로 말한다

경영자는 다른 무엇보다 실적으로 능력을 입증한다. 신세계그룹은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선방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2월 발표한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이마트 총매출액은 24조9327억 원으로 전년 실적인 22조330억 원에 비해 13.2% 올랐다. 영업이익 역시 2020년 2372억 원에서 2021년 3156억 원을 기록해 33.1% 증가했다. SCK컴퍼니(스타벅스), 이마트24, 신세계프라퍼티(스타필드), 신세계푸드, 조선호텔앤리조트 등 자회사들이 흑자 규모를 늘린 것이 주효했다.

그룹의 원류인 오프라인 유통 사업은 실적이 주춤해졌다. 이마트(할인점·트레이더스·노브랜드 등)는 2021년 별도 기준 총매출 16조4514억 원, 영업이익 2659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총매출은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줄었다. 이마트할인점 영업이익이 22.7% 감소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마트는 올해 5월 1분기 실적 발표에서도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13억 원, 18.9%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그룹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실행 중인 디지털 피보팅 전략의 성공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도 빨라져 소비 심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신세계그룹이 기존 SSG닷컴을 보유한 상태에서 지난해 G마켓글로벌까지 인수한 뒤 양사 간 독립성을 유지하며 오프라인에 이어 온라인 유통에서도 두드러진 실적 향상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정용진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올해 분명히 드러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정 부회장은 승계 차원에서 경영권을 물려받아 공격적인 사업 전개를 해왔다. MZ세대를 공략한 마케팅과 온라인 사업 추진으로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그런데 유통업은 과거처럼 활기를 띠는 업종이 아니며 투자 대비 수익이 높지 않다. 삼성전자가 1년에 30조 원을 투자해 60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것과 비교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정 부회장이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진행한 것과 관련해 그는 “이제껏 유통 수수료와 부동산 등 유형 자산을 통해 수익을 내왔기 때문에 정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평가하기 어려웠다. 최근 1년 사이 온라인으로 사업 비중을 옮기는 것은 정 부회장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연말에 가시적 성과가 나온다면 그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동아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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