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세계 최대 바이오산업 전진기지 CJ 인도네시아

극렬한 주민 저항, 무책임한 종업원, 살인적 풍토병 이겨내고 17년 만에 정상 등극

  • 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입력2005-05-25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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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 열세 설움 주던 일본 업체 제치고, 핵산 생산 세계 1위
    • 전세계 농가 사육 돼지 5마리 중 1마리는 CJ 라이신 섭취
    • 금융위기 후 멈춘 사료 공장, 재가동 3년 만에 시장 장악
    • 한국서 경험한 군부독재 압축성장 뒤집어본 게 印泥 진출 열쇠
    • 동남아에 제2의 CJ그룹 구축 프로젝트 가동 중
    세계 최대 바이오산업 전진기지 CJ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진출에 성공한 CJ 파수루안 공장. 송석원 상무(왼쪽 두번째)와 현지 직원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차를 타고 동쪽으로 달렸다. 1000만명이 거주하는 자카르타는 동남아시아 최대 도시다. 서울 한복판처럼 고층빌딩, 고급 호텔과 주택이 즐비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900달러 안팎이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함께 떠난 CJ인도네시아그룹 박종철 과장은 “자카르타 시민은 1인당 국민소득의 4∼5배인 연간 3000~4000달러를 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부자”라며 “특히 화교 출신의 부(富)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설명했다.

    매출 대비 순익 20%

    그러나 도심을 벗어나자 가난한 마을과 헐벗은 주민들이 눈에 들어왔다. 맨발의 허름한 행상인은 하루 3000원을 벌기 위해 길거리에 나섰고, 한 청년은 오전부터 나무 그늘 밑에서 자고 있었다. 발가벗은 아이를 들쳐업고 지나가는 차를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아낙네는 예전에 어디선가 본 모습 같기도 했다. 1960년대 한국을 담아놓은 사진첩에서 봤음직한 풍경이 차 바깥에 펼쳐졌다.

    2시간 동안 2차선 도로에서 곡예하듯 중앙선을 넘나들며 달리다 왼편 샛길로 빠져나갔다. 잠시 후 오른쪽 하늘 중간에 ‘SUPER FEED’라고 씌어 있는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닭 사료를 생산하는 CJ 세랑 공장이다. 1997년 4만t의 사료를 생산하던 세랑 공장은 금융위기 직후 2000년까지 휴업에 들어갔다. 2001년부터 다시 공장을 가동한 지 3년 만에 50만t을 생산하는 인도네시아 최대 공장으로 발돋움했다. 지난해는 매출 1000억원을 기록했다.

    세랑 공장을 포함해 인도네시아에 있는 CJ의 여러 공장에서 거둔 실적은 더 놀랍다. 지난해 CJ는 5000억원 어치의 사료첨가제 라이신과 쓰레오닌, 식품첨가물 핵산을 판매했고, 매출액 대비 20%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순이익이 매출의 20%라는 것은 한국의 웬만한 일류기업도 달성하기 힘든 실적이다. 이 같은 업적이 오로지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손끝에서 나왔다는 사실 역시 놀랍다(여러 인도네시아 공장에 한국인은 몇 명밖에 없다).



    공장을 견학한 뒤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현지 직원들의 눈빛이었다. 길거리에서 보던 느슨하고 생기 없는 눈이 아니었다. 공장에서 만난 현지인은 세랑 공장을 총괄하는 박용덕 부장에게 깍듯하게 경례를 했다. 그들은 약간의 긴장이 감도는 군대 조직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혹시 사고는 없었냐고 묻자, 박 부장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그는 “조직은 군대처럼 운영하되 직원을 마주할 때는 이웃처럼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것이 현지 공장의 운영 노하우”라고 했다.

    박 부장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군사정권을 경험한 것이 이곳에선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구나.’

    인도네시아는 1965년 육군 장교 출신의 수하르토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집권, 무려 32년 동안 군부통치를 했던 나라다. 잠시 메가와티 전 대통령이 집권해 민간정부를 구성했지만, 현 대통령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역시 군인 출신이다. 민주화의 물결이 거세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인도네시아의 요직은 대개 군인 출신이 차지하고 있고 영향력도 건재하다.

    CJ의 주재원들은 이런 상황이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노련한 경영진은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기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 터득한 경험으로 난관을 헤쳐가고 있다. 예컨대 군 출신 고위 인사를 회사의 총무부장으로 영입하는 것이 그렇다. 파수루안 공장에선 장성 출신을, 좀방 공장에선 해군 대령 출신을 영입했다. 조직에서 생활한 경험이 없는 직원에겐 규율을 가르치고, 인근 주민의 소요사태 땐 병력을 투입할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군 출신과 유대관계를 맺는 것은 불안한 사회에서 생존하는 방편이다.

    세랑 공장이 인도네시아 최대 사료생산지로 성장한 비결은 현지 양계장의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한 데 있다. 화교 출신이 대부분인 양계장 주인은 매일 닭이 먹는 사료의 양과 불어나는 닭의 체중을 분석해 꼼꼼하게 기록한다. 적게 먹이고도 체중이 많이 불어나는 사료를 찾다 보니 여간 까다롭지 않다.

    CJ 직원들은 이렇듯 세밀하게 효능을 확인하는 화교의 구미에 맞게 제품에 대해 꼼꼼하게 설명해줬다. 때론 직접 효능을 확인할 수 있도록 무료로 사료를 제공했다. 현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 CJ 직원들은 양계장 주인이 병아리 공급도 원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사료를 팔자면 병아리까지 같이 팔아야 한다는 현지의 요구에 CJ는 종계장을 짓기 시작했다. 현재는 자바 섬과 칼리만탄 섬에 11개의 농장을 운영하며, 연간 병아리 6000만 마리를 양계장에 공급한다.

    국내에서 사료산업은 사양산업으로 취급되지만, 다른 아시아 지역에선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저개발국가가 많아 가축을 키우는 농가가 많아서다. 이런 시장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내다본 CJ는 중국-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에 이어 올해 터키 공장까지 인수, 아시아 사료 벨트를 구축했다. CJ는 아시아 시장을 발판으로 사료뿐만 아니라 종계, 종돈, 고기 유통까지 아우르는 세계 5대 종합축산회사가 되는 꿈을 키우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CJ 공장을 둘러보고 싶었던 것은 바이오산업의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서였다.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 철강, 조선이 지금껏 한국경제를 견인한 주요 산업이지만, 장차 한국을 ‘세계 7강’쯤의 반열에 오르게 할 수 있는 품목은 무엇이 될지 궁금했다. 대안으로 바이오산업과 나노테크 산업이 올라와 있지만, 실제 산업화되고 세계에서 인정받는 품목을 생산하는 기업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이런 상황이니 CJ가 인도네시아에서 거둔 성공은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김치 종주국에서 태어난 CJ가 앞선 발효기술로 세계인의 식탁을 점령한다면 그 파급력과 부가가치는 막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17년 전, 1988년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의 조그마한 마을에 몇 명의 CJ 직원이 도착했다. 인도네시아 제2의 수도라고 하는 수라바야에서 자동차로 2시간을 달려야 닿는 파수루안이었다. 사료첨가제 라이신의 원료인 사탕수수가 풍부하고 공업용수와 전기 공급이 원활해 공장 부지로 찍어둔 곳이었다.

    당시 파수루안 공장 건립은 삼성그룹의 최대 투자건이었다(1988년 CJ는 삼성의 계열사였다). 그룹에선 8000만달러를 쏟아부으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공장을 짓자며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이런 까닭으로 공장 본관 건물은 마치 조선시대 궁궐을 연상케 했다. 공장 부지는 10만평, 설비는 최신식이어서 수라바야시(市) 일대에선 명소로 자리잡았다. 공장 내 커다란 잔디 구장은 시민이 애용하는 곳이며, 종종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축구경기를 벌이기도 한다.

    ‘발효산업의 반도체’로 부르는 라이신은 가축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아미노산이다. 동물이 체내에서 합성할 수 없기 때문에 외부에서 공급해줘야 한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라이신은 전세계 농가 다섯 곳 중 한 곳에서 구입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세계 시장점유율은 일본의 최대 식품기업 아지노모도에 이어 2위, 지난해 말엔 10만t을 생산했다. 15년 전 6000t을 생산하던 때와 비교하면 해마다 두 배씩 성장한 것이다.

    파수루안 공장은 라이신뿐 아니라 사료첨가제 쓰레오닌, 화학조미료 MSG, 액체비료를 생산하는 세계 2위의 복합 아미노산 생산단지다. 사료첨가제의 핵심은 사탕수수를 분해하는 균주(菌株)인데, 주로 선진국이 기술과 시장을 좌우하고 있다. 첨단 바이오 테크놀러지를 기반으로 한 균주 개발과 생산현장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노하우가 필요해 후발주자는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CJ는 서울 바이오연구소에서 우수한 균주를 개발하고 있으며, 관련 산업인 미생물 게놈 연구, 생물 정보학, 대사 공학기술을 연구 중이다. 이 연구소에서 개발한 균주로 생산한 라이신, 쓰레오닌, 핵산은 모두 산업자원부에서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됐다. 정부도 바이오산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앞선 기업을 발굴하고 격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최대 바이오산업 전진기지 CJ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현지 직원이 라이신 생산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손재주가 좋은 인니인은 좀처럼 안전사고를 내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해서 17년 동안 상처가 없지는 않았다. 의욕적인 출발과 달리 라이신의 시장가격이 급락하면서 운영자금이 부족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CJ의 기술력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지 합작회사 아스트라 그룹이 부도를 내는 바람에 인도네시아 시장 개척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악재가 겹치면서 삼성에선 ‘가장 실패한 투자’로 손꼽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장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공장의 폐수 때문에 농작물이 죽는다면서 회사 유리창을 부수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폐수는 정화시설을 통해 방류되고 있으며, 환경기준에 적합하다고 설득했지만 성난 주민들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유순한 듯 보여도 집단행동에 쉽게 휩쓸리는 인니인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줬다.

    풍토병도 현지에 파견된 CJ 임직원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아무리 위생관리에 신경을 쓴다고 해도 티푸스(열병의 일종. 한국에선 장티푸스로 알려짐)나 설사병, 말라리아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직원치고 한두 차례 병원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인도네시아 직원들이었다. 1948년 네덜란드에서 독립할 때까지 350년 동안 식민통치를 받은 탓에 그들은 소극적이고, 의존적이었다.

    초기 공장 설립 중에 벌어진 일화다.

    현지 직원 두 명이 리어카에 흙을 담아 고갯길을 넘어가는데 힘이 부치는지 고개를 넘지 못했다.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미끄러졌다. 주위에서 300명이 넘는 현지인이 그 광경을 목격했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한국인 직원 하나가 “왜 동료를 도와주지 않냐”고 묻자, 한 직원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심지어 자신이 실수로 컵을 깨뜨려도 직접 치우지 않고, 청소담당 직원을 불렀다. 청소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1989년부터 파수루안 공장에서 근무한 이르잠(IRZAM·42) 부장은 “네덜란드인에게 오랫동안 눌려 살다 보니 나서는 것을 싫어하고,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안 돼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현지 직원들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인 관리자가 자칫 큰소리라도 쳤다간 다음날 회사에 나오지 않는가 하면, 잘못에 대해 “잊어버렸다”고 변명하기 일쑤였다. 실수는 반복되고, 고쳐지지 않았다. 종교의식도 문제였다. 대부분 회교도인 현지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다섯 번은 손발을 씻고 기도를 올렸다. 작업을 할 만하면 기도하러 가는 통에 작업이 수시로 끊겼다.

    ‘가난의 추억’은 후진국 진출의 열쇠

    소극적인 태도, 회사의 규율을 무시하는 종교 의식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기름값, 전기료 등 생산비용이 급증하자 다국적 기업들은 하나 둘 인도네시아를 떠나고 있다. 이미 소니, 나이키, P&G가 사업을 포기했다. 계산이 빠른 기업들은 미얀마와 캄보디아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다. 인건비와 생산비용이 싸다는 이유로 이곳에 진출하던 시기는 지난 것이다.

    그러나 CJ처럼 거대 설비를 들여와 투자한 기업은 거점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어떻게든 현지 상황에 적응하면서 생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가장 주력한 부분은 직원들의 가슴속에 잘살아보겠다는 열망을 심어주는 것. 하지만 인도네시아 국민은 무더운 날씨, 현재보다 사후 세계를 동경하는 종교관 때문에 돈을 벌겠다는 욕망이 없었다. 1년에 세 번씩 농사를 짓고, 아시아 최대의 사탕수수 농장이 있으며, 천연가스와 석유를 생산하는 인도네시아는 역설적으로 풍부한 자원 때문에 일하려는 욕심이 없다. 이런 성향의 현지인에게 한국이 과거 경험한 ‘새마을운동’ 같은 불길이 타오르기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었다.

    파수루안 공장의 송석원 상무는 우선 회사의 매출이 늘면 모든 직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도록 했다. 생산목표를 세우고, 달성한 팀원들에게 치약, 세제, 비누 같은 생필품이나 닭고기를 선물로 줬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회교도들에게 닭고기는 거의 유일하게 섭취할 수 있는 고기다. 이 때문에 아버지가 닭고기를 사들고 집에 가는 날이면 가족은 환호성을 지른다고 한다. 송 상무는 “우리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고기 한 근 사가지고 오시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며 “가난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서 현지인의 신뢰를 얻고 일하고픈 욕구를 심어주는 방법을 발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바이오산업 전진기지 CJ 인도네시아

    CJ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라이신, 쓰레오닌, 핵산, 닭 사료.

    이들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는 노력도 병행했다.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작업장에 마련했고, 회사 안에 작은 모스크를 세워 매주 금요일 예배를 볼 수 있게 배려했다. 문제가 있는 직원은 여러 사람 앞에서 면박을 주기보다 따로 불러서 조용하게 타일렀다. 반면 실적이 좋은 직원은 한국에 파견해 선진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회사의 노력에 직원들의 마음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작업장에 문제가 생기면 서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여기엔 현지 고참 사원들의 노력이 한몫을 했다. 한국 주재원은 현지인을 통해 문제를 푸는 방법을 택했다. 인도네시아 명문 가자마다대학 출신인 이르잠 부장이 대표적인 중재자 구실을 했다. 그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공장 가동 초기 폐수량이 많았다. 회사에선 폐수를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직원들이 나서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직원들을 모아놓고 폐수의 영향, 효율적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해줬다. 이렇게 대화를 시도하자, 소극적이던 직원들이 회사의 정책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대안을 내놓았다. 이를 한국인 경영진에게 전했고, 그 결과 폐수량을 50% 줄일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인은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느려도 논의가 중요하다.”

    지난해 2월 홍수가 났을 때 파수루안 공장에도 엄청난 물이 들어왔다. 비가 그친 뒤 영국인 손해사정인이 공장을 방문했을 때, 피해 규모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사흘 뒤 다시 방문한 그는 공장이 언제 홍수가 있었냐는 듯 말끔하게 정리돼 있는 것을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승호 부장은 “직원들이 사흘 밤을 새워 공장을 정리하는 것을 봤을 때, 우리 직원들이지만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목표 달성에 따른 인센티브 제공, 현지인의 감정과 문화를 고려한 처우 개선으로 직원들은 회사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따랐다. 그 결과, 생산효율이 급격하게 향상됐고, 설비투자 없이 연간 5만t의 라이신을 추가 생산하는 실적으로 연결됐다.

    현지인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CJ는 지역사회에서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마을 어린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장학금을 수여한다. 해마다 종교의식을 치르는 희생제 기간엔 염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말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아체 지역에는 봉사대를 파견해 구호물자를 제공하기도 했다. 초기 공장을 습격했던 주민들은 이제 CJ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에게 딸을 시집 보내는 것이 소원일 만큼 신뢰를 회복했다. 물론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의 평균 월급(30만원)이 수라바야시 주민의 평균 임금보다 여섯 배가 많다는 사실도 한 이유일 것이다.

    현지인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이것만큼 해외진출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도 없을 것이다. 이는 그 나라에 성공적으로 정착한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CJ는 17년 동안 함께 커온 인도네시아 직원을 중국 진출의 첨병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료와 사료첨가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에 라이신 공장을 세울 때, 파수루안 공장에서 동고동락한 인니 직원 18명을 파견했다. 오는 7월 중국 요성시에서 완공을 앞둔, CJ 라이신 공장은 한국인이 아니라 인니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공장 건립부터 중국 직원의 교육까지 전 과정에 인니인이 투입된 것이다. 한 지역에 거점을 확고하게 마련한 뒤, 여기서 얻은 자원으로 또다시 해외 진출의 성공사례를 만들어가는 것은 CJ식 글로벌 전략이다.

    수라바야에서 서쪽으로 70km 떨어진 좀방 공장. 이곳에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산(연간 5000t)을 생산한다. 공장에 들어서자 총무부장 가토 수하료소씨가 환한 웃음으로 맞아줬다. 건장한 체격의 해군 대령 출신답게 통솔력이 있어 보였다. 그에게 “CJ 좀방 공장이 어느 나라 회사라고 생각하는가” 물었다. 가토 부장은 “우리가 일하고, 우리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우리 아이들을 공부시키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회사”라고 말했다. “외국기업에 대한 적대감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말에는 “CJ처럼 국가에 세금 많이 내고, 고용을 창출하는 회사에 적대감이 있을 리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좀방 공장에서 생산하는 핵산은 식품첨가물이다. 식품 자체의 풍미를 강화하며, 쇠고기 맛을 내거나 송이버섯 맛을 낸다. CJ는 세계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 있지만, 5년 전엔 일본 업체보다 뒤진 후발주자였다. 당연히 시장에서도 열세였다. 그러나 핵산발효 부문에서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일본의 교와(協和)가 2001년 미국 신공장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핵산사업 확장을 포기했다. 원가 경쟁에서 못 버틴 탓이다. 그러나 CJ는 오히려 공격적인 생산 확대 전략을 펼쳐 결국 생산 규모면에서 세계 최대업체로 올라섰다.

    핵산의 세계 수요는 최근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가공식품의 발달, 라면 수요의 증가 덕분에 해마다 8%씩 시장이 커지고 있다. 가격도 많이 올라 2000년과 비교하면 현재 40%가 올랐다. 좀방 공장 이동혁 상무는 “중국의 라면 소비량이 폭증해 핵산 소비량이 늘고 있다”며 “해외 생산기지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월 1000만원 버는 고소득자 2500만

    세계 최고 업체를 지향하다 보면 경쟁자들의 견제를 받게 마련이다. CJ와 세계 시장에서 라이신, MSG, 핵산 생산에서 경쟁하는 일본 아지노모도는 CJ에 빼앗긴 최대 핵산 생산업체의 지위를 되찾기 위해 태국에 연간 3000t을 생산하는 공장을 설립 중이다.

    최대 곡물 생산업체인 미국의 ADM이나 금융위기 이후 대상의 라이신 사업을 인수한 독일의 BASF도 무서운 경쟁상대. 이들은 세계 유수의 연구진을 확보하고, 치열한 생존경쟁에 대비하고 있다. 향후 바이오산업은 점차 규모의 싸움, 인재의 싸움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CJ는 동남아시아에 또 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판 CJ그룹을 구축하는 계획이다. CJ가 한국에서 닦아놓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서의 콘텐츠와 노하우를 동남아 현지 사정에 맞게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자카르타 본부 최양기 상무는 이렇게 말했다.

    “동남아는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다. 한국에서 핵심 역량을 확보하고 국내 1, 2위에 오른 CJ그룹의 전 사업 분야가 동남아로 진출할 계획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도 탐색하고 있다. 한류(韓流)를 타고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설립할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분야도 연계해 진출할 수 있다. 동남아 지역의 풍부한 해산물을 소재로 식자재 사업을 펼칠 수도 있고, 단체 급식·외식 사업, 제약업에도 진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날, 자카르타에서 가장 물이 좋다는 디스코테크를 수소문해 찾아갔다. 인도네시아의 젊은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놀고 있는지 궁금했다. 새벽 1시가 넘었지만,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 젊은이와 눈이 마주쳤다.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20대 후반의 남자였다. 곱상한 얼굴이라 여성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슬쩍 다가가서 “인도네시아의 미래가 어디에 있냐”고 묻자 그는 “여기(디스코테크)에 있다”고 말했다. 아직 한참 더 성장해야 할 나라의 젊은이가 술 마시고 춤추는 곳에 미래가 있다고 대답하니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동행한 CJ 직원에 따르면 “매월 1000만원을 버는 고소득자가 2500만명”이라고 했다. 한국 인구의 절반이 부자인 셈이다. 새삼 인도네시아의 저력과 새로운 시장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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