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A 기준 운운하다 국내법으로 판단
- 국내 사정 때문에 7구역 설정 안 했는데, 이를 거꾸로 이용한 롯데
- 연구 용역 계약도 하기 전에 난류·와류 조사 맡겨
이에 대한 대답은 무엇일까. 먼저 ‘폭풍의 눈’이 된 이 학회의 위상부터 살펴봤다. 과학기술단체를 육성 지원하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는 416개 과학단체가 회원으로 있는데, 이 학회는 회원이 아니다. 그리고 이 학회가 발간하는 ‘한국항공운항학회지’는 한국학술진흥재단에 등록돼 있지도 않다. 이 때문에 이 단체의 능력과 위상은 의심받고 있다.
두 번째 궁금증은 행정조정협의위원회가 이 학회를 선정한 ‘과정’이다. 행정조정협의회는 해당 부처의 과장급 인사들이 ‘실무협의’를 한 뒤, 차관급을 대표로 한 ‘실무회의’를 열고, 이어 장관급이 모인 ‘본회의’에서 추인하는 형태로 결론을 도출한다.
찬성론자끼리 모여 연구기관 선정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장급 실무협의다. 3월2일 처음 열린 실무협의에 국방부 대표로 참석한 이는 군사시설기획관실 시설기획과의 중령이었고, 공군에서는 전력계획과장(대령)이 참석했다. 그리고 롯데와 입장이 같은 국토해양부에서 항공교통기획담당관이 참여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2월3일 국회에서 열린 제2롯데월드 공청회에서 “제2롯데월드와 서울공항에 입출항하는 항공기가 충돌할 확률은 1000조분의 1이다”라고 주장한 국방부 김광우 군사시설기획관이 이끄는 부서의 중령이 공군 대령과 함께 국방부 대표로 나온 것이다. 행정조정협의회는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기 위해 여는 것인데, 3월2일의 실무협의에서는 이견이 없는 부서의 대표자들이 모여 이 학회에 연구를 맡기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이 학회의 부회장인 송병흠 항공대 교수는 2월3일 국회 공청회에서 제2롯데월드 건설 찬성 의견을 발표한 바 있다.
2003년 공군과 국방부는 제2롯데월드 건설에 반대했다. 이때 국방부와 롯데입장을 옹호했던 건설교통부(국토해양부의 전신)는 같은 문제를 놓고 행정조정협의회를 열어, 미국 연방항공청(FAA)에 연구 용역을 맡긴 적이 있다. 그리고 2004년 초 FAA의 최종 보고서를 받고 제2롯데월드 건설 불허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6년이 지나 똑같은 문제를 항공운항학회에 맡기자, 180도 다른 결론이 나왔다. 그로 인해 왜 항공운항학회에 연구 용역을 맡겼느냐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총리실 관계자는 “돈 때문에 외국기관에 조사를 맡기지 못했다”며 이렇게 해명했다.
“FAA는 2004년 1월에 최종 연구보고서를 낸 바 있으니 또 맡겨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있었다. 외국기관에 조사를 맡기면 용역비가 1억~2억원에 달하는데, 이를 마련하려면 따로 추경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그런데 추경예산을 편성하면 연구 용역이 늦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최대한 빨리 조사하기 위해 예비비에서 지출이 가능한 3000만원 정도에 연구조사를 맡겨야 하는데, 이 돈으로 할 기관을 찾다 보니 이 학회를 선정하게 됐다.”
돈 때문에, 그리고 시간 때문에 항공운항학회에 연구 용역을 맡겼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항공기의 초고층 건물 충돌사고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정부의 조치는 ‘완전히 거꾸로’ 간 것이다. 행정조정협의 회의 이같은 결정은 지난해 초 이명박 대통령이 이상희 국방장관에게 ‘빠른 시간 내에 제2롯데월드를 지을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
결국 항공운항학회는 정부 정책에 부응하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 학회가 공개한 보고서를 분석해보면 사실관계는 물론이고 논리 전개에 상당한 허점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FAA 규정 아닌 국내법으로 판단
국내법인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은 군용기지 주변에 ‘여섯 개의 비행안전구역을 두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법에 따르면 제2롯데월드는 비행안전 6구역 바로 바깥에 위치한다. 따라서 국내법만으로 본다면 제2롯데월드 건설은 ‘적법’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공군이 제2롯데월드 건설에 반대했던 것은 제2롯데월드가 ICAO(국제민간항공기구)가 정한 비행안전구역은 물론이고, 비행안전에 대해서는 가장 권위 있는 곳으로 인정되는 FAA의 비행안전구역 안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행안전에 관한 법은 미국 것을 베끼다시피 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 법이 정한 비행안전구역은, FAA는 물론이고 ICAO의 규정과 다른 것일까.
‘그림1’한국의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은 FAA 규정대로 비행안전구역을 설정했으나, 산악국가임을 고려해 7구역은 설정하지 않았다.한국 법/ 미 연방항공청(FAA) 규정
1945년 7월28일 미군의 B-25 폭격기가 짙은 안개 속에서 비행하다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79층을 들이받고 추락해 14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다쳤다. 이에 FAA는 ‘신규 장애물’인 초고층건물을 규제해야 한다고 보고, 공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대해서도 고도제한을 하는 7구역을 설정했다. 제2롯데월드는 FAA가 정한 7구역 안에 들어간다.
한국이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의 전신인 ‘군용항공기지법’을 만든 것은 1981년인데, 이때 한국에서 100층이 넘는 건물이 건설될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국은 전형적인 ‘산악국가’다. 따라서 7구역을 설정하면 고도제한에 걸리는 산 때문에 한국에서는 ‘군 공항을 지을 곳이 없다’는 역(逆)이 성립된다. 이런 사정으로 한국은 FAA 규정을 베끼면서도 7구역은 빠뜨렸다.
그런데 롯데는 이것을 ‘ 7구역 안에는 초고층건물을 지어도 좋다’는 논리로 바꿔, 치고 나옴으로써 공군과 14년간 싸움을 벌였다. 따라서 이 싸움은 국내법과 FAA 규정을 놓고 벌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에 관련 학회는 보고서에 ‘ICAO 규정은 민간 공항에 적용되는 것이니 군 공항인 서울공항은 FAA 기준으로 살펴보아야 한다’고 해놓고,‘ICAO는 7구역 설정은 각국이 사정에 따라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는 논리를 꺼내들어 FAA 규정을 살펴보자고 했던 자신의 전제를 뒤집어버렸다.
그리고 결론부에서는 ‘제2롯데월드는 ICAO와 FAA 기준의 제한표면(비행안전구역)을 초과한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한 후, 갑자기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을 거론해 ‘제2롯데월드는 관련법 규정에서 적용한 비행안전구역 밖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이 학회 김칠영 회장은 이렇게 해명했다.
“FAA 규정에 따른 서울공항 7구역에 는 7구역 제한고도를 넘어선 청계산 검단산 백운산 등의 자연장애물과 타워팰리스 코엑스 등 인공장애물이 ‘이미’ 들어와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곳에 제2롯데월드를 짓는 것은 ICAO와 FAA 기준을 초과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이에 기자가 “그렇다면 FAA 규정으로 살펴본다는 주장을 하지 말 것이지, 왜 했느냐? 그리고 이 학회가 비행안전성이 보장된다고 판단한 것은 국내법만을 근거로 한 것이지 않으냐?”고 묻자, “국회 국방위가 FAA와 ICAO 기준으로 비행안전성을 살펴봐달라고 했기에 ICAO와 FAA 기준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학회가 내린 판단은 FAA나 ICAO 규정이 아니라 국내법을 근거로 한 것임을 솔직히 인정한다”고 말했다.
제2롯데월드 문제와 관련해 주활주로인 서편활주로는 동편활주로보다는 제2롯데월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는 ‘시계(視界)비행’과 ‘계기(計器)비행’을 하는데, 시계비행은 3마일(약 5.5km) 떨어진 곳에 있는 물체까지 훤히 보이는 아주 쾌청한 날에만 할 수 있다.
그러나 항공기는 흐린 날은 물론이고 밤에도 이착륙해야 하므로 모든 조종사는 ‘반드시’ 계기비행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정밀한 계기라도 오차가 있다. 또 계기를 보는 사람도 ‘인적(人的) 오차’를 범할 수 있다.
착륙 항공기는 활주로 정중앙선을 따라 내려오는데 이때 계기오차와 인적오차 그리고 강한 옆바람 등을 받으면 정중앙선을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FAA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착륙 항공기가 날아야 하는‘기본구역’을 정해놓고, 그 좌우에는 고속도로의 ‘갓길’과 비슷한 개념으로‘부수구역’을 정해놓았다.
초정밀장비를 이용하는 ‘정밀접근절차’를 수행할 때는 기본구역과 부수구역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다. 그러나 이 장비들이 작동하지 못해‘비정밀접근절차’를 수행할 때는 넓어진다. 한국은 FAA가 정한 정밀접근절차와 비정밀접근절차 때의 기본구역-부수구역 범위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림 2’는 정밀접근절차를 수행하는 항공기가 서편활주로로 착륙할 때 적용되는 기본-부수구역을 그린 것인데, 과거 제2롯데월드는 부수구역 안에 있었으나 지금은 벗어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정밀접근절차를 수행하는 장비가 발전함에 따라 2002년 2월6일 FAA가 정밀접근절차시의 기본구역과 부수구역의 범위를 대폭 축소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이에 따라 공군도 제2롯데월드에 대한 태도를 변경했다. FAA의 규정이 바뀌기 전에는, 부수구역 내에서의 제한고도인 164.5m까지만 제2롯데월드를 지을 수 있다고 했고, 바꾼 후에는 203m까지만 지으라고 한 것이다. FAA의 규정이 바뀌었음에도 공군이 제2롯데월드의 높이를 203m로 제한한 것은 제2롯데월드가 비정밀접근절차에 의한 부수구역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편법으로 허용된 비정밀접근절차
비정밀접근절차는 주로 ASR이나 VOR/DME라는 장비를 사용해 진행한다. 그런데 ASR 장비를 이용한 비정밀접근절차에서는 아무리 궁리를 해도 제2롯데월드를 부수구역 바깥으로 빼낼 해법이 없었다. 그러자 롯데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ASR은 정밀접근절차를 수행하는 PAR을 지원하는 일을 하다, PAR이 작동하지 못하면 단독으로 비정밀접근절차를 수행한다. 이에 주목한 롯데는 “서울공항에 PAR 1식을 더 설치했다가, 기존의 PAR이 고장 나면 새로 설치한 PAR로 정밀접근절차를 수행하면 되지 않느냐”는 묘책을 내놓은 것이다. 공군은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VOR/DME를 이용한 비정밀접근절차에 대해서는 이러한 편법도 통하지 않았다. VOR/DME에 대응하는 정밀접근절차 장비는 ILS인데, ILS는 1식을 더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공군이 내놓은 ‘편법’으로 풀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공군은 VOR/DME의 위치를 바꾸어 제2롯데월드가 부수구역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로 인해 VOR/DME로 서울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 조종사는 과거보다 더 큰 각도로 기수를 꺾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법을 지키고 집행해야 하는 정부(공군)가 롯데를 위해 VOR/DME의 위치를 바꿔주는 편법을 써도 되는 것일까.
롯데의 묘책, 공군의 편의 제공으로 제2롯데월드는 서편활주로를 이용한 비정밀접근절차의 부수구역을 ‘간신히’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동편활주로는 제2롯데월드와 인접하기에, 이러한 방법도 통할 수 없다.
‘그림2’ ① 정밀접근절차에 의한 활주로의 기본구역과 부수구역. 제2롯데월드는 정밀접근 절차에 의한 서편활주로 부수구역 바로 바깥에 있으나 동편활주로는 기본구역에 속해 있다. ② 비정밀접근절차의 경우 서편활주로도 부수구역 안에 제2롯데월드가 들어가 있어, 공군은 VOR/DME라는 비정밀접근절차 장비의 위치를 바꾸어 (‘신설 위치’ 자리로 이동) 제2롯데월드가 부수구역을 벗어나게 해주었다.
동편활주로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정부가 동편활주로를 3도 틀어준다고 하자, 적잖은 사람은 그렇게 하면 이 활주로를 이용한 항공기의 입출항이 원활해지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제2롯데월드는 동편활주로에서 정밀접근절차를 수행할 때 형성되는 기본구역 안에 ‘아예’ 들어가 있어 제2롯데월드는 203m 높이까지 지어져서는 안 된다. 이것이 진실인데도 공군이 제2롯데월드를 203m까지 지어도 좋다고 한 데는 사정이 있다. 사정이란 군 공항인 서울공항의 특성을 가리킨다.
인천공항에는 4개의 활주로가 있는데 이중 착륙에 사용되는 활주로에는 전부 정밀접근절차를 수행하는 장비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군 공항인 서울공항에는 서편활주로에만 정밀접근절차와 비정밀접근절차를 수행하는 장비가 있고, 동편활주로에는 아무것도 설치해놓지 않았다. 동편활주로는 비상시를 위한 활주로이기 때문에 장비를 설치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서편활주로가 파괴돼 동편활주로를 사용해야 되면, 착륙하려는 항공기는 위험한 시계비행으로 내려야 한다.
현재 상태에서 동편활주로의 연장선과 제2롯데월드 사이의 거리는 1160m이다. 그런데 동편활주로를 3도 틀면 300m쯤 거리가 늘어나, 이격거리는 1500m에 달하게 된다. 서편활주로가 파괴된 비상시국에서 피격됐거나 연료가 떨어져 황급히 날아오는 아군기가 1500m 곁에 거대한 장애물을 두고 시계비행으로 동편활주로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다.
시계비행은 극히 제한된 때만 가능하니, 제2롯데월드가 건설되면 동편활주로를 이용한 착륙은 기적에 가까운 경우를 제외하면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동편활주로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륙뿐이다. 3도 틀어준 동편활주로를 이륙한 공군기는 1500m 차이를 두고 제2롯데월드를 지나가는데 비행 중 1500m는 눈 깜짝할 사이에 닿는 거리다.
이러한 부담 때문에 공군은 이륙하는 항공기는 주변 장애물과 반드시 1마일(1852m)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어놓았다. 그런데 동편활주로는 3도를 틀어줘도 제2롯데월드와의 거리가 1500m에 불과하기에, 공군은 동편활주로를 이륙한 항공기는 활주로 끝에서 2마일(약 3.7km)에 도달하면 무조건 오른쪽으로 선회한다는 원칙을 만들었다. 활주로 끝 2마일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선회하면 장애물과 1마일 이상 떨어지라는 공군 규정을 ‘겨우’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동편활주로를 3도 틀면 항공기가 안전하게 이륙할 수 있다는 정부 발표의 진실이다.
이륙 후 2마일 무조건 우회전?
그런데 이륙 직후 활주로 끝 2마일 지점에서 우(右)선회하라는 지시에는 큰 문제가 있다. 공군은 이륙한 항공기가 방향을 바꿔도 좋은 위치를 고도 1000피트(309m)로 정해놓았지, 활주로 끝 2마일 지점으로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1000피트에 도달하는 거리는 항공기마다 다르고, 같은 항공기라도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즉 텅 빈 C-130 수송기라면 활주로 끝 2마일 지점에서 1000피트에 도달할 수 있지만, 승객과 화물을 가득 실은 C-130은 훨씬 더 먼 거리를 날아야 1000피트에 도달할 수 있다.
1000피트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방향을 틀면 양력(揚力)이 떨어져 항공기가 추락할 수도 있다. 이것이 현실인데 공군은 3도 튼 동편활주로에서 이륙한 항공기는 2마일 지점에서 무조건 우선회하라는 ‘희한한’ 명령을 만들어냈다.동편활주로는 유사시에 대비해 만들어놓은 ‘비상구’다. 그런데 이 비상구를 평시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인화물질이 든 상자로 꽉 막아버린 것이 제2롯데월드다.
3도 틀어준 동편활주로에서 이륙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데도 항공운항학회는 “전시에 서편활주로와 3도 틀어준 동편활주로를 모두 사용한다면, 작전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는 이상한 이야기를 보고서에 담아놓았다. 또 “동편활주로에서 이륙한 항공기가 2마일 지점에서 선회하면 제2롯데월드와 이 항공기는 공군규정이 정한 안전거리 기준을 만족한다”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도 나열해놓았다.
동편활주로로 이륙한 항공기 조종사가 제2롯데월드로 인해 받을 스트레스에 대한 학회의 판단도 ‘요상’하다. ‘제2롯데월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 조종사의 불안감은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안일한 결론을 내린 것. 학회는 제2롯데월드 높이에 헬기를 띄워놓고, 동편활주로를 따라 C-130 수송기를 날아가게 한 후 판단을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난류·와류 계산 용역 먼저 발주?
제2롯데월드는 555m 높이를 가진 벽 인데, 과연 헬기가 제2롯데월드와 같은 역할을 했을까. 이 문제는 제2롯데월드가 일으킬 와류(渦流)와 난류(亂流)와 연관해 살펴보아야 한다. 제2롯데월드 높이에 떠 있는 헬기에 부딪힌 바람은 와류와 난류를 만들지 못하지만 거대한 구조물인 제2롯데월드는 다르다. 이에 대해 학회는 ‘제2롯데월드로 인한 난기류는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이 안전띠를 착용해야 하는 약함(light)으로 나왔다’며 ‘항공기 운항에 지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도 정(正)일까. 보고서를 살펴본 한양대 조진수 교수(항공공학)는 “이 학회 보고서에 실린 와류 난류 계산법은 토목계에서 하는 것이라, 항공공학계에서 하는 것과 크게 다르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착륙 항로 옆에 초고층빌딩이 건설된 사례는 세계적으로 전무하다. 따라서 초고층 빌딩이 1500~1852m 떨어진 곳에서 날아가는 항공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계산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항공공학 분야에서는 1의 위험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면 2나 3의 안전시설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학회는 토목계에서 하는 계산법으로 ‘약함’을 의미하는 1의 위험이 산출됐다며, 항공기 운항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항공운항이 뭔지 몰라서 한 작태다.”
난류·와류 계산은‘볼트 시뮬레이션’에서 대신해준 것이다. 이 회사의 김석철 대표는 “제2롯데월드 높이에서 부는 순간 최대풍속은 조사된 것이 없어 항공운항학회가 제시한 세개의 풍속(초속 5m, 10m, 15m)만 놓고 계산했다”고 반박했다. 초속60m의 태풍 ‘매미’가 왔을때 부산항의 캔트리 크레인이 넘어졌다. 과연 제2롯데월드 높이에서 부는 바람의 순간 최고 풍속이 15m이하일까.
김 대표는 또 항공운항학회로부터 용역을 받은 것은 3월2~3일이라고 말했다. 학회가 행정조정협의회로부터 연구 용역 계약을 맺은 것은 3월10일이다. 그렇다면 학회는 정부와 연구 계약을 맺기도 전에 볼트 시뮬레이션에 사업을 준 것이 된다. 이러한 모순에 대해 총리실 관계자는 “학회와의 계약은 3월10일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3월5일 학회에 용역을 준다는 결정이 내려졌기에 미리 발주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이 해명을 수용해도 볼트 시뮬레이션의 3월2~3일 수주는 이해할 수 없다. 이 의문은 3월2일이 국방부와 국토해양부의 과장급 실무자들이 모여 항공운항학회에 연구를 맡긴다고 합의한 날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풀리게 된다. 항공운항학회를 조사기관으로 선정한 날 이 학회가 볼트 시뮬레이션에 난류-와류 계산을 맡기기로 한 것은, 항공운항학회가 아니라 정부가 볼트 시뮬레이션에 용역을 맡겼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롯데 게이트가 일어날 수 있다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 과정도 의혹투성이다. 3월22일 서울 동부지검 형사6부는 제2롯데월드 인허가 로비 명목으로 롯데물산과 협력업체로부터 9억원가량을 받은 혐의로 롯데물산 고문변호사인 강모씨를 특가법상 알선수재와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강씨는 제2롯데월드 문제를 다루는 행정조정협의회 위원 인사 명목으로 롯데물산과 협력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를 인정했다. 당시 롯데물산의 사장도 강씨에게 로비 명목으로 돈을 준 사실을 시인했다”고 한 후 “그러나 강씨는 이 돈을 관계 공무원에게 주지 않고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져 강씨만 알선수재와 사기 혐의로 기소하게 됐다”고 밝혔다.
초대형 사업을 위한 인허가 로비는 교묘하게 이뤄진다. 검찰에 따르면 강씨는 주상복합 건물을 짓는 시행사업 경험이 많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이 로비를 한다면 꼬리를 자르는 데 귀재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로비를 해달라고 강씨에게 돈을 준 롯데물산과 하청업체 관계자는 기소하지도 않았다.
경기를 살려 경제위기를 벗어나려면 서울에 초고층건물을 지어야 한다. 그러나 경기 부양이 아무리 절실해도 항공사고가 우려되는 곳에 정부가 편법을 써가며 허가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정부의 행동에 ‘면죄부’를 준 것이 항공운항학회의 보고서가 아닐까.
지금 자리에 제2롯데월드가 들어선다면 이 건물은 항공기 사고 가능성 때문에 사무실 분양에 실패할 수도 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완공 후 한동안 분양이 되지 않아 ‘엠프티(empty·텅 빈)스테이트 빌딩’이란 소리를 들었다. 이러한 불행을 피하려면 롯데는 제2롯데월드를 항공안전이 보장되는 다른 곳에 지어야 한다. 이것이 롯데도 살고, 공군도 살고, 항공운항학회도 살고, 경기도 살리는 공생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