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 덕분 ‘마녀’에서 ‘천사’로
‘질병’ 보듯 하던 WHO도 ‘게임’ 권장
게임 기반 초중고 교육 플랫폼 구축해야
[GettyImage]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이미지가 급반전한 게임산업을 두고 이런 생각을 했다. 게임은 그간 한국 사회에서 ‘마녀사냥’을 당해 왔으나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비대면-온라인-가족 중심 여가문화’의 핵심 콘텐츠로 재인식되고 있다. 게임이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5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은 어린이날을 맞아 마인크래프트로 만든 가상의 청와대로 어린이들을 초대했다. 마인크래프트는 레고블록 같은 모듈을 쌓아 올리는 게임이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이지만 청와대가 앞장서 어린이들을 게임 공간으로 초청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마녀에서 천사로
3월 21일(현지시간)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 계정에서 게임을 통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제안했다(왼쪽). 5월 5일 청와대의 게임 ‘마인크래프트’ 형식 초청 행사. [청와대 제공]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트위터를 통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게임을 활용하라고 권고했다. 게임이 마녀에서 천사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게임에 대한 인식이 이렇듯 극적으로 반전한 이유는 뭘까
먼저 게임이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됐다. 그간 게임의 부정적 측면만 지속적으로 지적됐다. 대표적 이슈가 ‘게임중독’이다. 게임을 어린이, 청소년의 학업을 방해하는 오락이나 중독 매체, 심지어 범죄 원인으로 보는 등 게임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수준이 낮았다. 그런 인식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급변했다.
코로나19처럼 미지의 질병이 확산하면 사람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WHO가 게임 활용을 주장한 것은 게임 고유의 특성 때문이다. 게임뿐 아니라 동영상 시청도 집에서 할 수 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의 단점은 수동적 매체라는 점이다. 동영상은 수동적이기에 혼자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액티브한 집단적 활동, 다이내믹한 인간 생활을 동영상 시청으로 대체하기는 어렵다.
게임은 액티브한 집단적 활동
게임은 때로는 혼자, 때로는 다수의 유저가 플레이하면서 공동의 가상세계를 만든다. 특히 PC기반 온라인게임은 채팅(커뮤니케이션)하면서 진행하기에 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커뮤니티 활동, 즉 집단적 인간 활동이라는 느낌을 준다.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게임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심리적 위안을 받는 것, 이것이 게임이 가진 진정한 사회적 가치면서 심리적 순기능이다. 이 같은 점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WHO가 뒤늦게 인식한 것이다.또한 코로나19 사태는 게임의 산업적 가치를 재발견하게 했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이 치명상을 입었는데도 게임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사람들은 게임을 찾고, 그 결과 게임 매출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20여 년간의 게임산업 데이터 분석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게임 이용량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활발하게 진행된 3월 모바일 게임 다운로드 건수는 2019년 4분기에 비해 30%나 증가했다. 구글 플레이에서 게임 다운로드 수는 전년 대비 25% 성장해 약 100억 건을 기록했고, 앱스토어에서도 전년 대비 25% 증가한 30억 건을 기록했다. 특히 중국 앱스토어 게임 다운로드 건수는 전년 대비 62.2%나 증가하기도 했다.
이런 산업적 성장은 혁신산업으로서의 게임, 불황에도 성장하는 산업으로서의 게임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촉발한 게임의 사회적 가치 인식과 산업적 재성장의 기회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게임 회사의 노력과 정부 정책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정부는 게임의 사회적 인식 개선을 촉진하는 게임산업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게임을 사회적 문제 해결의 도구로서 활용하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게임을 기반으로 한 교육 플랫폼을 구축해 한국 사회의 근본적 문제 중 하나인 교육 격차 해소나 비대면 온라인 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
G러닝(게임 기반 학습)과 같은 온라인 프로그램 개발과 보급이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G러닝은 게임을 활용한 교수학습 방법으로 수십 명 이상이 참여하는 롤플레잉 게임을 통해 수학, 과학, 영어 등의 교과를 학습하는 것이다. G러닝은 게임의 순기능인 높은 몰입성을 통해 학습자의 동기부여를 이끈다. 게임강국인 우리가 전국의 초중고에 G러닝 플랫폼을 구축해 놓았다면 지금 벌어지는 비대면 교육의 혼선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게임은 세대 간 갈등을 완화하는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다. 콘솔게임의 역사가 오래된 일본 등에서는 조부모와 부모, 손자가 게임을 함께 즐기는 게 보편적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국도 60대와 10대가 5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게임이라는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게이머 중 e스포츠 같은 게임 방송을 시청하는 비율이 60대는 60%, 10대는 83%에 달한다. 60대 게이머는 과거 오락실에서 아케이드 게임을 하던 세대인데, 예상외로 청소년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게임 방송을 60%나 시청하는 것이다. 60대 게이머가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빈도도 주목할 만하다. 1회 1~3시간 게임하는 헤비게이머가 10대는 44%인데, 60대도 26%에 달한다. 특히 플랫폼 선택에서 PC 기반의 온라인 게임을 하는 60대도 73%에 이른다. 정말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한국에서 노인과 손자가 게임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몬스터 레이드’를 함께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게임은 익명의 공간이기에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처럼 함께 즐길 수 있다.
확률형 아이템에 지친 게이머들
‘아이템 과금’과 관련해 논란을 빚은 엔씨소프트의 게임 ‘리니지2M’. [엔씨소프트 제공]
확률형 아이템이란 게임 내에서 이용자에게 유료로 판매되는 가상의 아이템이다. 유저가 일정 금액을 주고 확률형 아이템을 구입하면, 게임 회사에서 정한 확률에 따라 투입한 금액의 가치보다 질이 높거나 질이 낮은 게임 아이템이 지급된다.
이용자는 아이템을 구입한 후 열어보기 전까지 그 안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확률형 아이템은 원하는 게임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반복 구매할 가능성이 있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게이머들이 과금(課金) 거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넥슨의 ‘피파4’ 유저들이 아이템 구매를 거부하는 무과금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2M’에서도 비슷한 저항이 발생했다. ‘리니지2M’은 4월 업데이트를 통해 여러 아이템을 묶어 특정 가격에 판매하는 방식의 패키지 상품을 출시했으나 무리한 과금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일부 유저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등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게임에서 아이템은 ‘시간과 돈의 함수’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이용자는 아이템을 구매해 게임하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은 시간을 투입해 아이템을 얻는다. 그런데 한국 게임에서 최근 시간과 돈의 함수가 무너지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을 사지 않고 시간만 투입해서는 게임을 진행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이템을 사는 것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이 되다 보니 한국 게이머들이 분노했다.
넥슨이나 엔씨소프트가 아이템 관련 정책을 수정하더라도 확률형 아이템 과금 정책은 유지될 것이다. 넥슨의 경우 ‘듀랑고’ 등 신규 게임이 실패했기 때문에 기존 게임에서 매출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고, 기존 게임에서 매출을 올리는 방법은 신규 유저들을 유입시키는 것인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러면 남은 방법은 기존 유저로부터 ARPU(1인당 과금액)를 올리는 것이다. 1인당 과금액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템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한국 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이 활개 치는 이유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주는 교훈
코로나19 사태 속 인기를 얻은 닌텐도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 [닌텐도 제공]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확률형 아이템 구입에 지친 게이머들에게 어필한 이른바 ‘착한’ 게임이다. 유저 간 아이템을 두고 경쟁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평온한 게임, 코로나에 지친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게임인 셈이다. 사과가 필요하면 돈을 주고 사과를 사는 게 아니라 게임 속 사과나무를 흔들면 된다. 한국 게임은 “사과를 먹으면 경험치가 오릅니다. 다만, 사과를 돈 주고 사야 하는데 어떤 경우는 사과가 안 나오고 꽝입니다. 운이 좋으면 황금사과가 나옵니다” 같은 식이다. 게임은 본질적으로 일정 수준의 우연성이 가미돼야 하지만 우연성의 정도가 심하면 어느 순간 피로를 느낀다.
게임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앞으로 더욱 개선될지, 예전의 마녀사냥 대상으로 되돌아갈지는 게임사와 정부의 노력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위정현
● 1964년 출생
● 서울대 경영학과 학사, 일본 도쿄대 경영학 석·박사
● 한국게임학회장, 콘텐츠미래융합포럼 의장, 콘텐츠경영연구소장
●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 저서 : ‘Innovation and Strategy of online games’ ‘Japan Survival Strategy’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