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금서 목록
책은 남자들의 여자에 대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여자? 아주 단순한 거지. 여자는 자궁이며 난소야. 요컨대 암컷이지…남자들이 암컷이라고 내뱉을 때 그 말은 경멸하는 것처럼 들린다. 남자들은 자신을 수컷이라고 하면 더욱 득의만만해지는데 말이다. 왜 그럴까? 여자를 자연 속에 놓아주지 않고 그녀의 섹스 속에 감금시키기 때문이다.”
보부아르가 다른 여성운동가들과 비교해 높이 평가받는 까닭은 단순히 남성들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으로 생물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신학, 철학 등 폭넓은 이론을 바탕으로 여성 권리 주장의 당위성을 천명했다.
보부아르는 ‘미국의 흑인 문제가 따지고 보면 백인 문제이듯 여성 문제도 실상은 남성 문제’라는 시각으로 접근했다. 물론 남녀차별 문제의 화살을 남성 쪽으로만 돌리지는 않았다. 여성 스스로 차별을 부르는 각종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음을 시인한다. “여자들이 스스로 쟁취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단지 남자들이 베푸는 것만 받아왔을 뿐이다. 여성들은 단 한 번도 독립된 계급을 형성하지 못하고 그냥 운명에 체념해왔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결론 격인 마지막 문장은 지나치게 도전적이지 않다. “이 주어진 현실 세계에 자유의 승리를 가져오느냐 마느냐는 우리 인간에게 달려 있다. 이 지고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남녀가 그 자연의 구별을 초월해서 분명히 우애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1949년 이 책이 출간되자 프랑스 사회는 벌집 쑤셔놓은 듯했다. 남자 지성인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작가 알베르 카뮈는 즉각 “프랑스 남성을 조롱했다”고 개인 성명까지 발표해 격렬하게 비난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포르노”라고 쏘아붙였다. 바티칸 교황청은 곧바로 금서목록에 올렸다. “성경의 이념도 남성의 여성 장악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는 대목이 결정적으로 교황청을 자극한 것이다. 프랑스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진영마저 싸늘하게 대했다. 여성해방은 계급해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게 좌파의 주장이었다. 사실 이 책이 나온 1949년은 프랑스에서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페미니즘의 어머니
이와 달리 당대 여성들은 열렬한 호응으로 화답했다. 출간 1주일 만에 2만 부가 팔려나갈 만큼 당시로서는 초베스트셀러였다. 1953년에 나온 영역본은 200만 부 이상 팔렸다. 미국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호평을 받은 뒤 프랑스에서 재조명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페미니즘 저서이자 현대 여성해방운동의 교과서로 불린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998년 ‘인간의 삶과 정신을 바꿔놓은 20세기 10대 논픽션’의 하나로 ‘제2의 성’을 꼽았다.
1986년 보부아르가 세상을 떠나자 각계의 추도사에는 ‘페미니즘의 성서’ ‘페미니즘의 어머니’ ‘여성운동의 최고 사제’ 같은 숭앙의 언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2006년 프랑스 파리의 센 강에 서른일곱 번째 다리가 개통됐을 때 ‘시몬 드 보부아르교’란 이름이 붙여진 것도 ‘제2의 성’을 기리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파리의 다리에 여성 이름이 붙여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제2의 성’은 20세기 전반 여성 참정권 획득 이후 다소 쇠퇴의 길을 걷던 서구 여성운동(제1의 물결)을 20세기 후반 여성해방운동(제2의 물결)으로 승화시킨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집력이 부족했던 여성운동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문화적 성(Gender)을 구분하는 현대 여성주의의 운동은 보부아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에서는 초판 이후 거의 4반세기 만인 1973년 처음 번역돼 가부장적 전통을 무너뜨리는 일등 공신이 됐다. 여성주의적인 시각으로 쓰인 책 가운데 최초로 한국사회에 소개된 것이다.
이 책은 지금으로선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지 모른다. 여성학자들은 이 책이 위계적 이분법 비판보다 여성이 열등하게 평가된다는 점을 비판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하기도 한다. 보부아르가 여성의 수동성과 여성의 과제, 성적 무지, 결혼에서의 역할 등 대부분을 19세기의 상황에 맞춰 서술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조차 성적인 계몽에 관한 한 1950년대 초까지 사실상 19세기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도 보부아르의 주장은 여전히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여자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이뤄진다고 해서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삶을 누린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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