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남자들이여, 쇼핑을 즐겨라! ”

  • 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입력2009-05-07 13: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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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들에게 쇼핑은 ‘악몽’이다. 부인의 지칠 줄 모르는 쇼핑열기에 의무감에서 가끔 동행해보지만 쇼핑 후 심신이 지친 상태로 집에 돌아오는 길은 고행길이다. 자신만을 위한 쇼핑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떤 옷을 골라야 할지, 보면 볼수록 더 헷갈리고….
    • 가여운 남성들을 위한 쇼핑노하우를 알아본다.
    “남자들이여,   쇼핑을 즐겨라! ”
    옷의 역사를 보면 인류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시 사회의 신분을 이해하려면 위계질서를 보여주는 의복을 살펴보면 된다. 동양과 서양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왔지만 의복에서만큼은 남성과 여성의 감성적인 차이, 특별하고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차림인 정장과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캐주얼은 항상 존재했다.

    결국 인류는 서로 다른 역사적 스펙트럼 속에서도 어떤 공통의 역사를 공유해온 셈이다. 특히 필요한 물건을 ‘획득’한다는 것은 시대나 지역에 상관없이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행위였다. 야생 상태에서 혹은 농경을 통해 얻거나, 때로는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쟁취했다. 물건의 단순 소통은 시장에서 화폐와 재화가 교환되는 것으로 업그레이드됐다. 화폐를 통한 물건획득, 즉 쇼핑은 모든 경제주체에게 매우 편리한 시스템이었다. 쇼핑은 나아가 쇼핑객들이 새로운 문화나 그동안 잘 몰랐던 것에 눈뜨게 해주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직도 많은 남성은 쇼핑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시대적인 추세는 남자들에게도 자신을 위한 음식과 옷과 물건들을 직접 획득하도록 자연스럽게 권장하고 있다. 지구의 인구 반을 차지하는 남성에게도 쇼핑은 감성의 대결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진지한 게임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차이

    옷은 실제로 역사책 다음으로 인간의 역사와 감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충실한 고증자료다. 복식의 역사를 살펴보면 여성복이 현대적으로 정돈되고 발전한 시점은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취향을 가졌던 프랑스의 루이 14세 시절이었다. 근대 이전에는 오히려 남성의 의복이 장소와 상황에 따라 여성보다 더욱 다양하고 화려했기 때문에 루이 14세라는 ‘절대 남성’의 옷이 모든 여성복과 액세서리에도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의 수많은 명품 브랜드와 여성복은 럭셔리에 대한 높은 안목을 가진 태양왕과 그를 둘러싼 귀족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제품에서부터 출발한 셈이다.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성격이 까다롭고 남다른 것을 추구하는 프랑스인의 취향이 반영된 여성복은 항상 디자인과 실루엣, 소재와 디테일 등을 변화시키는 데 능숙한 특징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특성들은 실제 여성의 감성과 잘 부합해서 여성을 위한 브랜드 수는 그 폭과 깊이가 더욱 다양하게 분화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의 남성 패션을 대표하는 복식인 슈트나 재킷은 프랑스보다는 조금 더 보수적인 영국식 귀족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를테면 19세기 사람들의 전형적인 옷차림과 현대인의 복장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여성의 옷차림은 과거와 현재에 공유점이 없을 만큼 그 변화가 드라마틱했고 시대적 격차도 컸다. 그러나 근대 영국 신사들의 옷차림과 현재 남성의 옷차림을 보면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놀랍게도 느낌이 거의 비슷하다. 근대나 현대 모두 남자들은 대표적으로 슈트를 입고 있으며, 그 슈트에는 항상 셔츠와 타이, 그리고 벨트와 구두가 변함없이 함께한다. 물론 소재나 디테일에서 사소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백년의 시간차를 두고서도 남자의 대표적인 룩이 같다는 것은 아마도 슈트를 창조한 영국인의 성향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오리지널에 대한 무한의 존중, 법칙을 세우기 좋아하고 그 법칙을 준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는 영국인의 사고방식은 이처럼 남성복을 입는 방식에도 투영돼 있다. 여성은 자신의 모습을 남다르게 연출하기 위해 소유한 아이템이 많을수록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반면 남자들은 여러 벌의 옷보다는 한 벌이라도 제대로 된 것, 그리고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품질 좋은 슈트를 한 벌 갖는 방향으로 문화가 형성됐다.

    “남자들이여, 쇼핑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오랫동안 남자의 멋 부리기는 사회적으로 권장되지 않는 행위였다. 남자의 매력은 그의 지위나 이룩해낸 업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는 뿌리 깊은 관습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시대는 달라지고 있으며, 남자다움에 대한 인식도 혁신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남자들이 화장품을 쓰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성형외과를 다니며 자신을 가꾼다는 것만으로 시대적인 변화를 감지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는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 남자를 평가하는 기준과 같은 전통적인 남성상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의 쇼핑 습관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쇼핑 그 자체를 두려워하기만 했던 남자들이 자신이 입을 옷을 직접 선택 하기 시작한 것은 정말 ‘거대한 혁명’이 아닐까. 물론 스킨케어에 수입의 상당부분을 지출하고 백화점 명품관을 순례하면서 모든 유명 브랜드를 줄줄이 꿰는 일부 남성을 제외한다면, 아직 ‘보통 한국남자’들은 옷차림과 쇼핑에 큰 자신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첫째는 옷을 입는 방법에 대해서 도무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아내나 여자친구(때로는 엄마!)가 골라주는 대로 입는 데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이며, 셋째는 옷과 자신의 궁합을 생각하지 않고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매장 직원들이 권하는 옷을 사기 때문이다.

    “남자들이여,   쇼핑을 즐겨라! ”

    남성다움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쇼핑을 즐기는 남성이 늘고 있다.

    해결책은 간단한 데 있다. 남자가 입을 옷을 그들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행착오는 당연히 있겠지만, 너무 걱정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학교에서 혹은 새 직장에서 새 일을 시작하면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고, 결국은 익숙해지면서 탄력을 만들어가지 않았던가.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합하다고 강요받은 공통의 매뉴얼 같은 옷차림이 아니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각종 미디어가 쏟아내는 ‘옷 잘 입는 법’이 하도 많아 오히려 이해하기가 힘들 때가 얼마나 많은가. 더구나 옷을 잘 입고 현명하게 쇼핑하는 방법을 완벽하게 가르쳐주는 책은 없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하버드 도서관까지 가서 무슨 전집까지 읽는다고 해도 실제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순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스타일을 이해하고 실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행동’이 필요하다. 좋은 제품이 많은 매장에 자주 들러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질문도 하며, 다른 매장의 제품과 비교해보는 것은 정말로 필요한 일이다. 역설적으로 옷을 죽도록 못 입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도 옷 잘 입은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비싼 값을 치르고도 입을 수 없거나, 입어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구매하는 불행을 방지하기 위한 쇼핑의 지혜를 이제 설명하려고 한다. 다만 이 지침들은 영원불변의 성스러운 교범이 아니라 당신이 적용할 수 있는 쉬운 법칙들을 찾기 위한 하나의 본보기일 뿐이다.

    남자가 스타일을 갖추기 위한 행동 강령

    1. 자신의 신체적, 심리적 나이를 정확히 파악하라

    “남자들이여,   쇼핑을 즐겨라! ”

    남성다움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쇼핑을 즐기는 남성이 늘고 있다.

    대한민국 남성의 90% 이상은 자기 신체 사이즈를 구체적으로 기억하기보다는 특정 기성복의 대표적인 치수로 파악하고 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최대공약수적인 치수로 자신의 몸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옷을 마련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신체 모든 부분이 어렵다면 적어도 가슴과 허리, 그리고 목둘레 치수만이라도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또한 좋은 옷이란 체형에도 잘 맞아야 하지만 자신만의 개성과 취향도 반영해야 하므로,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심리적 나이를 구체적으로 떠올려보는 것이 현명한 쇼핑에 도움이 된다. 심신이 젊어지려는 노력은 에너지를 불러일으키지만, 특정한 유행이나 연령대에 지나치게 얽매여 선택한 차림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2. 기본에서 출발하라

    시장에는 수없이 많은 콘셉트의 옷과 브랜드가 있다. 신용카드를 용감하게 휘두르며 옷을 사는 것은 어찌 보면 쉬운 일이지만,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이나 브랜드를 발견하기란 사실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쇼핑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필요로 하는 아이템들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순서다. 남자들은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아이템들을 먼저 갖추고 그 다음에 조금 더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 캐주얼을 쇼핑하는 것이 순서다. 슈트나 재킷과 같은 정통적인 복식을 먼저 경험해야만 그것을 크리에이티브하게 비트는 트렌디한 디자이너들의 옷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슈트도 차콜그레이(짙은 회색)나 네이비블루(검은빛을 많이 띤 파랑색) 같은 기본 컬러들을 구비해서 실용적으로 입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다음에 베이지나 화이트, 혹은 강렬한 패턴을 가진 슈트를 쇼핑하는 것이 현명하다.

    3. 믿을 만한 판매원을 사귀어라

    우리는 모두 사실 패션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므로 가정 경제를 위해서라도 나의 쇼핑 행위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전략적 조언자가 필요하다. 친구도 무방하지만, 그보다는 실제로 쇼핑 행위가 일어나는 현장에 있는 훌륭한 판매원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판매원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이 적절한 권유인지 단지 상술일 뿐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에게 적절한 사이즈를 내밀 수 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슈트건 스웨터건 바지건 가죽구두건, 직접 물어보지도 않고 당신에게 맞는 사이즈를 내밀 수 있다면 그건 그가 그만큼 당신을 섬세하게 관찰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또한 훌륭한 판매원은 말하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물론 요청을 받았을 때는 고객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아주기 위해 예산이 어느 정도인지, 언제 입을 옷인지, 개인적인 취향은 어떤지 자세히 물어볼 것이다. 때로 당신이 구입한 옷에 대해 평가해달라고 했을 때도 정직한 판매원이라면 그 옷이 사실 당신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할 것이다. 더불어서 판매원의 스타일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당신이 보기에도 옷을 못 입은 판매원의 말은 콧등으로 흘리는 게 낫다.

    4. 충동 구매하지 말라

    우리가 산 수많은 물건은 실은 충동적으로 산 것들이다. 억울한 것은 돈은 돈대로 썼지만 막상 입으려고 하면 도대체 마땅치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았나.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면 당신이 신뢰하는 판매원에게, 혹은 쇼핑의 고수들에게 그 지역에서 가장 명성이 있는 매장이 어딘지 물어야 한다. 또 매장에 들어갈 땐 부끄러워하거나 수줍어해서는 안 된다. 폐를 끼친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옷을 한번 입어보면 반드시 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입어보는 것이 왜 잘못인가. 자신이 생각하고, 지급할 수 있는 가격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밝히는 한국 남자는 너무나 드물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스타일을 갖추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인 동시에 서로의 시간을 아끼는 방법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보다 더 큰 오류는 남자들이 쇼핑을 정기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너무 자주일 필요는 없지만 정기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 매장을 방문해서 새로운 제품을 보고, 자신의 신체적 변화도 확인해보는 것은 충동구매를 피하고 신중한 쇼핑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남자의 아름다움

    옷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스타일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남자의 스타일은 특정한 브랜드나 아이템의 수집보다는 어떤 옷이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자신감에서 더욱 빛나는 법이다. 옷 입기의 법칙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의 기본 원칙을 알면 아무리 유행이 바뀌어도 자신만의 자주적인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다. 남자의 아름다움은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는 방법인 동시에, 역사적으로 보면 자신과 주변의 네트워크를 배려하는 마인드로부터 출발한 에티켓이 기본적인 바탕이 된다. 제대로 옷을 갖추어 입는 신사의 매너가 남달리 훌륭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탐구하고 용기를 내어 새로운 차림을 시도해보는 당신의 복식은 옷장 속에 담길 개인의 역사로서뿐만 아니라 미래에 다가올 우리 사회의 새로운 흐름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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