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딜러룸.
이렇게 비유가 변하는 것은 과학의 패러다임이 변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등장한 뒤로는 뉴턴 패러다임은 맞지 않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는 뉴턴 역학이 주로 쓰인다 해도, 세상을 뉴턴 역학으로 바라보는 것은 낡은 관점이 됐다. 세상을 좀 더 정확히 반영한 양자역학이라는 모델이 있으니까 말이다.
과거의 모델이 뉴턴 역학이었던 것은 당시 우리의 지식이 그 한계 너머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언젠가 우리는 양자역학의 한계를 넘어설 것이다. 아인슈타인 패러다임을 대신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경제학이 과학으로부터 잘못된 전제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자동기계든 정규분포든 간에 한정된 범위에서는 지극히 타당한 모델이다. 또 그것을 처음 받아들였을 당시에는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세상은 급격히 변했다. 심리학과 뇌과학은 우리가 결코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존재가 아님을 입증해왔다. 역사는 가격 변동이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기대 범위를 벗어나는 극단 값인 이른바 검은 백조가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반증 사례가 계속 나와도 경제학은 여전히 오래된 가설을 벗어던지지 않고 있다. 아직은 기존 패러다임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기존 가설보다 현실을 더 정확히 반영하는 개념을 찾아내지 못한 것일까?
기존 개념을 대신할 새로운 개념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 영국 버밍엄 대학교의 키릴 일린스키는 물리학에서 뉴턴 역학이 양자역학으로 대체된 것처럼 경제학에서 뉴턴 역학 개념을 양자역학 개념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물질 입자와 장 개념을 이용해 시장의 역학을 설명하고자 한다. 입자가 움직일 때 입자 주위의 전자기장이 휘어지는데, 이것을 이용해 옵션이나 주식의 차익 거래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접근법을 경제물리학이라고 한다. 양자역학이 본래 확률론적이며 비선형적인 과정을 다루므로 뜻밖의 가격 변동 같은 상황에 더 유용할지 모른다. 물론 블랙-숄즈 모형의 편미분 방정식에 비해 훨씬 더 어려운 수학이 쓰인다. 물리학자, 수학자, 공학자 같은 전문 인력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현장에서는 이보다는 심리학과 뇌과학을 접목하는 행동경제학이 더 많이 논의되고 있다. 행동경제학은 ‘경제행위자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기본 가정을 뒤엎고자 한다. 한 예로 뇌 연구자들은 인플레이션 등으로 화폐의 실질적인 가치가 변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명목상의 가치에만 집착하는 화폐 착각이 실제 뇌의 활동과 관련돼 있음을 밝혀냈다. 가격이 올라 상대적인 구매력에는 아무 차이가 없음에도, 실험 대상자들은 더 큰 액수의 돈을 보자 배쪽 안쪽 이마 앞 겉질(VMPFC)이라는 뇌 부위가 더 활성화되는 현상을 보였다. 즉 뇌는 실제로 돈이 더 많다는 착각을 일으킨 것이다, 우리가 화폐 가치 하락이라는 뻔히 보이는 정보를 무시하는 비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의미다.
연구자들은 거품 경제와 관련이 있는 심리적 편향성도 규명해왔다. 뇌는 자신의 관점을 입증하는 정보를 더 중시하고 오래된 정보보다 최근의 정보를 토대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또 기분이 울적할 때보다 즐거울 때 고위험 금융 상품에 투자하려는 성향이 강해진다고 한다. 이런 편향은 주택 가격이나 주가에 거품이 끼는 것을 못 깨닫게 한다. 남이 부동산으로 재미를 봐서 웃고 있으면 자기도 언제든 투자해 웃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음의 피드백이 작용해 가격 거품 따위는 일어날 수 없다는 효율시장가설은 이러한 심리적 불완전성을 무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