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이면 어김없이 낚시가방을 짊어지고 집을 나선다. 주말 꼬박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은 그가 물고기 걸려들기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지금 명상을 하는 중이며,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내고 있다. 비워도 아깝지 않은 건 비울수록 소설의 조각들이 하나 둘 그의 머리를 노크하기 때문이다.
“선착장에서 나와 보문사 가는 방향으로 좌회전, 40~50m쯤 지나 왼쪽으로 난 첫 번째 길로 들어와요. 수로를 끼고 있는 길이요. 내 차 번호는….”
소설가 안정효(安正孝·66)씨는 모자를 눌러쓴 채, 수로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에 섬에 들어왔다고 한다. 보통은 토요일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선다는데, 어쨌거나 그가 주말마다 석모도를 찾은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덕분에 훤히 꿰는 마을 사정은 소설 ‘미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고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다. 물고기가 잡히면 고마운 일이고, 안 잡혀도 아쉬울 건 없다. 그는 지금 자연과 교감하는 중이며, 그러면서 머릿속에 엉켜 있는 이야기 실타래를 풀고, 새 생각도 담는다.
물에 담가놓은 살림망엔 배스 몇 마리가 체념한 건지, 졸린 건지 나른하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붕어가 밑밥을 물어야 길어올리는 재미가 있는데…” 하는 걸 보니 배스는 몸바쳐 희생해도 영 대접을 못 받는 모양이다.
그의 곁에 앉아 있으니 풀냄새 물냄새 스멀스멀 올라오고, 얌전한 바람이 일으키는 작은 움직임들이 스쳐 지나간다. 물은 잔잔하지만 끊임없이 흐르고, 햇빛은 물에 부딪혀 반짝이며 번진다. 낚싯대가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보고 듣고 맡고 즐길 거리가 지천이다. ‘글 쓰는 사람은 아무 일 안 할 때 가장 많은 일을 한다’는 얘기가 낚시하는 그에게도 통한다.
“고기가 잡히면 재미있고, 안 잡히면 나 일하는 거고. 여기 오면 구상하기 좋잖아요. 한 이틀 낚시하면 메모가 주머니 가득 모여요. 그럼 얼른 가서 일하고 싶어지지.”
그가 주말마다 낚시를 가는 건 일주일간 글을 쓰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휴식은 휴식으로 끝나지 않고 일에 대한 욕구를 부추긴다. ‘휴식이 곧 재생산’이라 하지 않던가. 때문에 그는 낚시를 ‘숙제’라고 생각하고, 설날이건 추석이건 주말 낚시를 거르지 않는다. 결국 그의 낚시 취미는 지독한 일 욕심의 변형일지 모른다.
안정효씨 집 거실에 마련된 작업 공간. 20년 넘게 산 집인데, 최근 인테리어를 새로 해 마치 새집 같다. 책상 여기저기 메모지가 붙어 있다.
간혹 간첩이 출몰하는 탓에 마을 사람들이 외지인에게 방을 내주기 꺼리던 시절부터 석모도를 찾았다. 그때 20대이던 동네 청년은 어느새 같이 늙어가는 지인이 됐다. 그는 석모도가 옛 풍경을 잃어가는 걸 안타까워했다.
11시 무렵이면 뒷산에 올라 숲 속을 한 시간가량 거닐다 땀을 흘리며 내려온다. 졸리면 낮잠을 자고,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면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러다 목요일쯤 되면 머리가 푸석푸석해지고, 글의 질도 갑자기 떨어진다. 낚시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의 생체시계는 꽤 정확한 편이다. 재충전할 시기를 정확하게 알린다.
그가 최근 펴낸 ‘인생4계’란 수필집은 낚시가 기둥 줄거리다. 그러나 고기 잘 잡는 법은 나와 있지 않다. 그는 ‘고기를 안 잡고도 즐거운 낚시’를 이야기한다.
“잡은 고기를 모두 놓아주거나, 아예 안 잡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마리만 잡아도 즐겁고, 잡는 마릿수만큼 즐거움이 늘어가기만 한다. 그것은 덧셈을 계속하는 행복이다.”
몸을 쉬게 해야 훨씬 더 많은 일을 능률적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숙제처럼 시작한 낚시. 쉬러 가서 물고기라도 한 마리 잡으면 덤인데, 낚시터의 군상에서 인생을 배우고, 그것이 글로 쓸 재료가 되니 이게 월척 아닌가.
안정효씨는 앞마당에 상추를 심었다. 삼겹살 구워 먹을 때 여린 상추 잎이 진가를 발휘한다. 손때 묻은 원서들과 영화 비디오테이프가 가득한 방 한편에 바둑판이 있다. 바둑은 한때 그가 즐기던 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