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호

전 연세대 총장 송자

“학교가 주식회사면 어때요?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되지”

  •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hunghokim@hotmail.com

    입력2008-02-12 10:3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주)대교 고문을 맡고 있는 송자 전 연세대 총장은, 1990년대 초 연세대 총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유례없이 1500억원의 기금을 모았다. 이제는 전국 대부분의 대학이 갖춘 대외협력처와 입학처, 대외부총장 제도를 신설하기도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각광받고 있는 ‘CEO형 총장’의 초석을 다진 셈이다. 대학 사회에 경영과 경쟁 개념을 도입했으며, 최근에는 교육 산업화에 앞장서고 있는 그를 만났다.
    전 연세대 총장 송자

    <b>宋 梓</b><br>▼ 1936년 대전 출생<br>▼ 연세대 상학과 졸업, 미국 워싱턴대(세인트루이스) 석·박사(경영학)<br>▼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 연세대 교수·총장, 명지대 총장<br>▼ 한국경영학회장, 한국회계학회장, 자유기업원 이사장<br>▼ 교육부 장관, (주)대교 회장<br>▼ 現 (주)대교 고문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국 사람들 중에 기업인만큼 투명한 사람이 없을 거야. 매년 외부인의 감사를 받아야 하잖아.”

    기업의 외부감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솔직하긴 해도 그리 환영받을 만한 얘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평소 이런 말을 자주 하고 다닌다.

    한국 최초의 기업가형 총장으로 불린 송자(宋梓·72) (주)대교 고문 얘기다. 그는 연세대 총장으로 재임한 1992년부터 4년간 학교발전기금으로 1500억원을 모금했다. 돈을 만지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대학 사회의 금기를 깬 것이다. 그는 자유분방하고 솔직하고 과감하다.

    연세대 총장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의 반열에 올랐다. 맡은 직책도 많다. 총장, 회장, 이사장, 장관, 고문…. 그 자신은 그중에서도 ‘총장’이란 호칭을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 대담에서는 ‘송자 총장’이라 칭하기로 했다.

    송 총장은 자유분방한 사고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절제된 생활을 한다. 술 담배를 안 하는 것은 물론,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다.



    남들은 벌써 은퇴한 나이에 그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정말로 좋은 고등학교를 만들어 교장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지도자의 자질을 습득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진정한 자유인을 양성하는 학교를 꿈꾸는 것이다.

    “나눠주는 부자가 되라”

    김정호 총장께선 개인의 자유와 책임, 사유재산권의 중요성을 강조해오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자유주의자 중 한 분이신데, 자유주의는 어떻게 습득하신 겁니까.

    송 자 종교와 교육, 이 두 가지가 결정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껏 일하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는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벌 수 있는 한 벌어라, 저축할 수 있는 한 저축해라, 나눠줄 수 있는 만큼 나눠라.’ 그리고 이 세 가지를 항상 반복하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을, 기독교가 부자를 배척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부자도 천당에 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열심히 일해 부자가 되라, 다만 남에게 나눠주는 부자가 되라는 겁니다.

    김정호 조금 뜻밖입니다. 보통 기독교 신자는 사유재산제보다 공동체나 집단주의를 더 강조한다고 생각해왔는데요.

    송 자 그런 인상은 기독교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에서 왔다고 봅니다. 우리네 옛 이야기를 보면 못된 사람의 표상이 놀부이고, 드라마를 봐도 돈 많은 사장이 나쁘게 그려집니다. 돈 잘 버는 사람이나 부자는 늘 나쁜 짓을 하는 것으로 묘사돼왔죠.

    전 연세대 총장 송자
    김정호 부자를 나쁘게 보는 우리 문화가 기독교와 잘못된 조합을 이뤄 마치 기독교가 자유주의에 부정적인 양 비친 거군요.

    송 자 판사가 자기 집 한 채 없다고 하면 선비정신이 살아 있다고 박수치는 곳이 우리나라입니다. 저는 그런 문화에 대해 좋게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고 떡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는 데 떡이 필요하다는 걸 얘기하고 있어요.

    성장과 복지는 절대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둘은 같이 갑니다. 그리고 순서도 명확합니다. 성장이 먼저입니다. 돈이 있는 자가 나눠줄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그래서 빵과 떡을 만드는 일, 즉 부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하는데, 한국도 기회가 충분히 있는 나라입니다. 나 같은 충청도 촌사람이 이렇게 미국 유학도 갔다 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열심히 일한 사람이 성공하고 부자가 됩니다. 물론 제 친구들 중에는 부모 잘 만나 잘사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러나 대개는 남에게 기대지 않고 불평 없이 성실하게 자기 삶을 꾸린 사람이 성공했어요.

    중산층 수준의 대학등록금

    김정호 한국 최초의 CEO형 총장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때 얘기 좀 해주시죠.

    송 자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 모교인 연세대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단지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보직을 맡을 생각이 전혀 없었지요. 그런데 사람 일이 마음대로 되나요. 재무처장을 거쳐 기획실장이 됐는데, 그때 연세대가 재정적으로 어려웠어요. 그래서 교문을 닫아야 할 만큼 급한 돈이 아니면 모든 지출을 동결한다고 선언하고는, 개교 100주년에 맞춰 100억원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학교 일에 참여하게 되니 관심이 더 많이 가게 됐고, 총장선거에도 출마하게 됐습니다.

    총장선거에 출마하기 전 미국 브라운대에 두 달 동안 머물면서 입학과정과 학교경영에 대해 배울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대학도 이제는 경영이 필요하다, 교육도 마음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투자가 따라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지요.

    하버드대가 1등 학교인 이유는 가장 부자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돈 없이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500억원 모금을 공약으로 내세워 총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총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지금이 위기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모금 마련을 위한 팀을 만들어 브라운대와 펜실베이니아대에 보내 선진체제를 배워오게 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대학 총장 중에선 최초로 거의 모든 대기업 회장을 찾아가 만난 사람일 겁니다. 사람 안 만나기로 유명한 이건희 회장까지 만났으니까요. 동문들에게도 5만개의 저금통을 돌렸습니다. 세계 어디라도 연세대 동문이 20명만 넘으면 찾아간다는 생각으로 42개 도시를 다녔고, 저녁 리셉션에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송자 총장은 대학에 처음으로 대외협력처를 신설하고, 대외부총장 자리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 입학처를 만들어 그전까지 지원자 중에서 선별하던 수동적인 선발 방식에서 벗어나 우수한 학생들을 적극 유치했다.

    김정호 당시로서는 상당한 모험이었을 것 같습니다.

    송 자 처음엔 힘들었지만 성공을 거두자 다른 학교들이 따라왔어요. 지금 입학처며 대외협력처 없는 학교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연세대 교직원 중에 다른 학교로 스카우트된 사람도 많았습니다.

    김정호 지금 국내 대학들의 재정 상태는 어떻습니까. 등록금으로 운영이 되나요.

    송 자 쓰기 나름이겠지만 등록금은 경상비를 충당하는 수준일 겁니다. 투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죠.

    전 연세대 총장 송자

    고등학교 교장으로 교육자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송자 전 총장.

    김정호 대학 등록금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송 자 언젠가 연세대 동문회보에 등록금이 1000만원은 돼야 한다고 기고했다가 엄청난 공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등록금은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층을 기준으로 책정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의 문제는 장학금 등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죠. 등록금은 우리나라 국민소득과 비슷한 수준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정호 대학등록금이 중산층을 기준으로 책정돼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송 자 그렇습니다.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이 내게 해야 합니다. 미국이 그런 식이라 등록금이 비쌉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대학에 다닐 수 있는 기회는 유럽보다 미국이 월등히 많습니다. 유럽은 워낙 학비가 싸니까 가난한 학생을 돕는 시스템이 잘 안 돼 있어요. 반대로 미국은 지원 시스템이 잘 되어 있죠.

    김정호 총장님은 교육의 산업화에 긍정적이십니다. 실제로 교육을 산업화한 (주)대교를 경영하시기도 했죠. 요즘은 학교를 주식회사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는데, 신성한 교육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송 자 미국 피닉스대학이 나스닥에 상장을 했지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도 기업 형태가 돼야 원가가 낮아집니다. 공기업과 사기업 중 누가 더 효율적인지 생각해보세요. 중요한 것은 같은 등록금을 갖고 누가 더 잘 가르치느냐입니다. 학교의 법적 형태가 기업인지 비영리법인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전인적 리더로 자생하는 학교

    김정호 외국에선 그런 현상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나요.

    송 자 그럼요. 언젠가 Laureate Education이라는 회사의 관계자가 한국 진출을 위해 저를 찾아온 적이 있어요. 이 회사는 세계 여러 나라에 캠퍼스를 둔 온라인 대학을 기반으로 한 교육회사입니다. 평생교육기관에 가까워요. 그들이 한국에 투자하고 싶어하는데, 우리나라의 규제가 심해서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유독 교육 산업화에 뒤떨어져 있어 걱정입니다.

    김정호 송 총장께서 고등학교 교장을 하시고 싶어한다고 들었습니다.

    송 자 교육자로서 멋진 마무리를 고민하다가 결심한 겁니다. 대학이 잘되려면 고등학교가 중요해요. 미국 아이비리그 학생의 50%는 프렙스쿨(preparatory school·예비학교로 불리는 명문 사립고) 출신입니다. 그래서인지 미국 대학들은 학생들의 출신 고등학교를 중요하게 봅니다. 프렙스쿨은 명문 대학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고등학교를 가리키는데, 이런 학교들은 대부분의 커리큘럼이 대학과 연결돼 있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균형을 갖춘 전인적 리더를 키워내는 게 궁극적인 목표지요.

    김정호 총장께서도 그런 학교를 만들고 싶으신 건가요. 어떻게 보면 민족사관고등학교와 비슷한 듯합니다만.

    송 자 민족사관고등학교가 잘하고 있지만 아직도 지식 교육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이에요. 학과목 이외 활동이 그렇게 폭넓지 않아요. 미국 영재학교에 다니는 한국 아이들에게 미국과 한국 영재 교육의 차이가 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 대답이 “한국에서는 영재를 만들지만, 미국에서는 스스로 영재가 되게끔 한다”는 거예요.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인재를 양식하기에 급급했어요. 저는 생기 있고 똑똑한 학생들이 스스로 전인적인 리더로 성장할 멋진 프렙스쿨을 만들고 싶습니다.

    김정호 자녀교육에 성공하셨죠? 하버드대를 나왔던가요?

    송 자 큰아이는 학부를 브라운대에서 마쳤고, 시카고대 의대, 하버드대에서 공중보건을 공부했습니다. 작은아이도 브라운대와 뉴욕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안과의사로 일하고 있어요.

    김정호 독자에게 전수할 만한 자녀교육법이 있다면요.

    송 자 아이들 스스로 잘 해주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특히 큰아이가 부모의 마음을 읽고 책임감 있게 행동해줬어요. 제가 한 일이라고는 관심을 쏟은 것밖에 없어요.

    공교육 수준 끌어올려야

    김정호 자녀가 자생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가요.

    송 자 그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관심입니다. 아이 뒤통수가 근질근질할 정도로 부모가 관심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신에게 온 정성을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때부터 아이는 부모가 없어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아요. 또 대화를 자주 하고,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죠.

    김정호 조기유학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송 자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찬성하는 편이에요. 외국에 나가는 게 나쁠 이유가 없죠. 국수적으로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을 처음 보딩스쿨(기숙학교)에 보낼 때 중학교 2학년이라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방학을 계산해보니 1년에 5개월쯤은 집에서 보낼 수 있더라고요. 또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선생님들이 캠퍼스에 살면서 부모처럼 아이들을 돌봐요. 더욱이 요즘같이 국제전화가 잘 되고, 비행기 직항노선이 있는 여건에선 조기유학이 그리 어려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돈을 밖에서 쓴다는 게 문제죠. 그래서 더더욱 그런 학교를 한국에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한국종합예술학교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 학교 출신 세계 콩쿠르 우승자가 배출되지 않았습니까. 다른 분야라고 안 되나요. 한국 학교도 경쟁력을 키워야 하고, 또 그럴 수 있습니다.

    김정호 한국 교육현실에 대해 한말씀 해주시죠.

    송 자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교육은 순서가 중요합니다. 교육은 ‘굿 앤 스마트 퍼슨(good · smart person)’을 만드는 건데 이 중에 ‘굿 퍼슨’을 만드는 일이 우선입니다. 인성교육은 어릴 때 잘해야지, 시간이 지나면 잘 안 됩니다. 지식교육은 평생 해야 하는 건데, 그러려면 인성교육을 통해 그럴 수 있는 체질을 만들어놔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는 스마트 퍼슨을 만드는 것, 즉 지식교육만 강조한 나머지 아이들이 다들 부모에 의해 양생되고 있어요. 이제는 스스로 공부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또 학부모에겐 학교선택권이 보장돼야 하고, 더불어 그만한 책임도 져야 합니다.

    둘째, 제도적으로 학교의 자율과 경쟁을 보장해야 합니다. 셋째, 교육에 대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때는 학교 가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학교 시설이 집보다 훨씬 좋았거든요. 학교에는 집에 없는 풍금, 철봉 같은 게 있으니 학교 가는 게 즐거울 수밖에요. 요즘은 안 그래요. 학교는 적어도 중산층 생활수준의 시설을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김정호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교육정책을 어떻게 보십니까.

    송 자 방향은 찬성입니다. 하지만 자립형 사립고를 100개 만들겠다는 등 수치를 정하는 것엔 반대합니다. 자립형 사립고 만들겠다는 사람은 그렇게 하도록 하고, 정부는 공립학교의 질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공립학교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정부의 몫 아닐까요. 그래야 어린아이들이 학원을 두 군데, 세 군데씩 안 다녀요. 말로만 창조교육 외치치 말고 마음껏 놀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지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의무교육의 질을 높이고,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학도 망해봐야…

    김정호 (주)대교 회장을 지내셨는데, 대학 운영과 기업 경영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입니까.

    송 자 대학엔 말 듣는 사람이 없어요. 누구나 쉽게 총장을 갈아 치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반면에 기업에선 사람들이 말을 잘 듣습니다. 지시만 하면 척척이죠. 그래서 기업 경영이 수월하긴 하지만 위험부담이 큽니다. 대학은 한번 판단을 잘못해도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학생들이 등록금 투쟁하느라 총장실이 난리가 나도 시간이 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죠. 또 대학은 망하지 않습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종종 “대학과 은행이 망해야 대한민국이 잘된다”고 했습니다. 요새는 은행이 망하기도 하니까, 이제 대학만 망하면 됩니다. 요즘은 대학 총장도 경영 능력과 성과를 요구받으니 대학 운영이 예전만큼 쉽지는 않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봐요.

    김정호 개인적으로 총장님의 인맥이 참 부럽습니다.

    송 자 모두 예전에 모금운동할 때 맺은 인연이죠.

    김정호 노력의 결실인가요.

    송 자 저 개인을 위해서라기보다 모금을 위해 일부러 노력했습니다. 일단 누구든 만나야 기부를 부탁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느 자리든 열심히 참석해서 적극적으로 저를 소개했습니다. 지금은 상대방이 누구이든 저를 소개하고 얘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어요. 연세대 기획실장 때부터니까 한 20년 투자한 셈이죠.

    사외이사제도의 예방효과

    김정호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송 자 술, 담배 안 하는 것과 규칙적인 생활입니다. 오전 5시 반이면 일어나서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합니다. 조찬 행사 때문에 아침운동을 거르면 저녁 때라도 꼭 챙기죠. 총장 임기 마칠 무렵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아 규칙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김정호 몇몇 대기업의 사외이사도 역임하셨는데, 사외이사제도를 어떻게 보십니까. 실효성이 있나요.

    송 자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확실히 낫지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보고 있을 때 더 잘해요. 사외이사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 내부의 경영 사정을 바깥사람에게 공개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더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사람들은 통계수치만 갖고 사외이사가 ‘노(No)’하는 게 없으니 하는 일도 없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사외이사가 거부할 만한 안건은 아예 내놓지 않습니다. 욕심을 부리자면 끝도 없지만 사외이사제도가 국내 기업 투명화에 공헌한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요즘은 사외이사들이 회사 내부 문제에도 상당히 개입하는 추세이고, 그런 분위기가 경영자들을 더욱 신중하게 처신하도록 만듭니다.

    김정호 “기업가들이 제일 믿을 만한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송 자 대한민국에서 자기 성적표를 공개하는 사람은 기업가뿐이거든요. 단적인 예로 정치인이 공약 못 지킨 것에 대해 자진 신고를 합니까, 잘못한 일에 사과를 한번 합니까. 과거에는 하다못해 교수들도 출판사에서 (교재) 채택료를 받기도 했어요. 저도 창피한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그런 거 다 없어졌어요. 우리 사회가 많이 나아졌습니다. 저는 이런 성장을 가장 빠르게 주도한 사람이 기업가였다고 평가합니다.

    새 정부, 공약에 집착 말길

    김정호 국내에 현대 회계학을 소개하셨는데, 우리나라 기업의 회계 관행을 어떻게 평가십니까.

    송 자 1963년에 한국에 와서 처음 ‘회계원리’라는 말을 쓰니까 출판사에서도 만류했어요. ‘부기’라면 모를까 ‘회계’란 제목으로 책을 내면 안 팔린다고요. 회계란 단어 자체를 사람들이 잘 모를 때였죠. 당시 신문 공시에 보면 가장 큰 항목이 자산에서는 가불금, 부채에서는 가수금이었어요. 어디에다 돈을 썼는지 모른다는 얘기죠.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회계도 관리회계, 원가회계 등으로 세분화해서 경영자에게 필요한 정보가 되고, 국제 회계기준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 감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김정호 우리나라 기업 경영 전반에 대해 조언을 하신다면.

    송 자 경쟁원리에 맞게 경쟁하고, 정부에 뭘 해달라고 손 벌리기보다 스스로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개방을 받아들여야 하고요. ‘샌드위치 위기론’을 곧잘 얘기하는데, 샌드위치가 나쁜 게 아니에요. 따지고 보면 세계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가진 나라들은 대부분 샌드위치 처지예요.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를 보세요. 그들의 성공 요인은 전적으로 개방입니다. 개방과 규제완화, 우리도 이것을 서둘러야 합니다. 또 전에는 뭐 하나 잘 되면 우르르 따라 해서 늘 과잉투자, 중복투자가 문제였어요. 우리처럼 작은 나라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생산품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기업 스스로 기업 환경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김정호 새 정부에도 한말씀 해주시죠.

    전 연세대 총장 송자
    김정호

    1956년 서울 출생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환경대학원 수료

    미국 일리노이대 석·박사 (경제학), 숭실대 박사(법학)

    한국산업경제연구원, 한국지방 행정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근무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겸임교수

    現 자유기업원 원장

    저서 : ‘땅은 사유재산이다’ ‘7천만의 시장경제 이야기’(편역) ‘갈등하는 본능’ 등


    송 자 새 정부의 전체적인 방향에는 찬성합니다. 그 방향을 지키며 각론까지 완벽하게 이어가고 실천하길 바랍니다. 지금 세계 경제가 워낙 안 좋아서 우리 혼자 노력한다고 잘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사정까지 다 고려해서 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또 선거 공약에 집착하기보다 실용적으로 정책을 채택하고 균형 발전을 위해 힘쓰는 정부가 되길 바랍니다.

    송자 총장의 대답은 마치 활자화한 글을 읽는 것처럼 앞뒤가 잘 맞았다. 그만큼 평소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또 그의 생각은 기대한 대로 자유로웠다. 학교를 기업 형태로 만들어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이 그렇고, 전직 대학 총장으로서 고등학교 교장을 맡고 싶어하는 것도 그렇다. 고정관념을 벗어난 자유로운 사고가 그로 하여금 다양한 경력을 소화하도록 뒷받침했을까.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