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용인
산에 올라가자 벗들 임들
우리 모두
산에 올라가
백의민족으로
하얗게
하얗게
산자락 뒤덮고
마음껏 실컷 대성통곡하자
산기슭에서 태어나
산기슭에 묻힌
내 조상들의 산을 내려와
다시 시작하자
다시 말하자
다시 꿈꾸고
다시 일터를 가자
엉엉 울어버린 뒤
그 영(靈)으로
그 빈 손 빈 마음으로
다시 가자
저 남녘바다 어이없는 참변 그 때문이다
아니
그 이전
그 이전의 참변들 그 때문이다
썩은 세상 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자
미쳐버린 성장
미쳐버린 경쟁
이런 난장판의 숙명이던
온갖 비리와 탐욕
어떤 절벽의 비탄으로도
어떤 칠갑의 분노로도
끝내 고쳐질 줄 모르던
이 무책임과 이 무능을 불질러 태워버리고
빈 혈혈단신의 각성으로
다시 시작하자
아퍼라
아퍼라
아퍼라
아퍼라
그리하여 얼어붙은 겨울밤
안중근의 뜨거운 단지동맹 그것으로
그 맹세로
다시 시작하자
4월이 무엇이더냐
5월이 무엇이더냐
이 하늘 사무치는 현대사의 애도제단
몇 백 몇 천 생령의
몇 백 몇 천 망령 영전에 서자
목 터지도록 부른 이름들이었다
넋 잃고 외친 이름들이었다
이제 단 하나의 소원이 남았다
제발 저기에 극락이 있으면 좋겠다
저기에 천당이 있으면 좋겠다
이 나라 밖에
반드시 다른 세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6만 년 전
아기 잃은 엄마
그 아기 주검 이마맡에 히아신스꽃송이 놓았다
울며불며 바라던 그 옛날의 세상이
지금 밤구름 속에서 달처럼 나타났으면 좋겠다
2만 년 전
아기 묻은 엄마가
아기 주검에 국화꽃송이 놓고
이 험악한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태어나기를 빌었던
그 세상이
지금 달려와
여기에 펼쳐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맹골수도 바다밑창에 묻힌
어린 넋들
몇몇 넋들
우르르 솟아올라
못다 산 삶의 낙원에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
오로지 이 소원 하나뿐
우리 모두 백의민족의 태초로 돌아가자
돌아가
모든 거짓 물리친 아침으로
다시 시작하자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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