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출신 은세공가 소티리오 불가리가 이탈리아 로마에 설립한 보석 회사 ‘불가리’는 138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4대 명품 보석 브랜드다. 불가리는 다채로운 컬러 조합과 차별화한 디자인, 혁신을 추구하는 브랜드 정체성으로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고 있다.
영화 ‘카지노 불가리’. [Universal Pictures]
고대 로마식 표기법 따른 불가리 로고
창업주 소티리오 불가리는 그리스의 작은 마을 에피루스에서 1857년 3월 태어났다. 은세공가로 일하던 불가리는 스물넷이던 1881년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 로마로 이주했다. 그가 정교하게 세공한 은공예품은 17~18세기 유행한 그랜드 투어(Grand Tour·17세기 중반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상류층 귀족 자제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프랑스, 이탈리아를 돌아보며 문물을 익히는 여행)를 즐기던 영국 여행객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이에 1884년 소티리오는 로마의 시스티나 거리에 첫 상점을 오픈한다. 1920년대 소티리오는 그 시대 유행하던 프랑스 아르데코(Art Deco) 스타일의 하이 주얼리를 플래티넘과 다이아몬드 등 귀중한 소재를 활용해 제작했다.
불가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티리오의 아들 조르지오(Giorgio)와 코스탄티노(Costantino)가 경영에 합류하면서부터다. 두 형제는 1905년 콘도티 거리에 두 번째 상점을 오픈했는데 이 상점이 현재의 브랜드 불가리 본점이다. 현재는 로마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도 유명하다. 당시 보석 세공은 브랜드 카르티에나 반클리프 & 아펠 등과 같은 프랑스 스타일의 화려하고 우아한 세공법이 일반적이었는데, 두 형제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주의를 바탕으로 르네상스풍의 대담하고 독창적인 이탈리아 로마의 헤리티지를 추구했다.
이는 불가리의 브랜드명에서도 잘 드러난다. 불가리 가문의 영문 철자는 ‘BULGARI’인데 고대 로마식 표기법에 따라 U 대신 V를 사용해 1934년 브랜드명을 ‘BVLGARI’로 변경했다. 브랜드 불가리의 로고 BVLGARI는 브랜드 불가리의 기업 정신인 혁신적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주의를 기반으로 한 클래식 이미지를 보여준다.
뱀을 뜻하는 ‘세르펜티’
세르펜티 브레이슬릿. [불가리 홈페이지]
세르펜티 주얼리는 특유의 유연한 디자인으로 착용감이 매우 편안한 것이 특징이다. 1940년대 후반 뱀을 형상화한 브레이슬릿을 제작했는데, 최초에는 뱀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브레이슬릿의 헤드 부분이 주로 정사각 또는 직사각 형태였다. 하지만 불가리는 점차 그 형태와 다이얼 디자인에 변화를 줬고 이후 원형, 정사각형, 팔각형 등 다양한 형태를 선보였다.
그리고 1960년 처음 실제 뱀 모양의 제품을 출시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제품은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손목에 착용한 모델이다. 뱀의 눈은 에메랄드, 머리 부분은 파베 다이아몬드와 마르퀴스 컷 다이아몬드로 장식해 강렬한 이미지를 주었다. 세르펜티 컬렉션은 2009년 불가리 125주년을 기념해 불가리의 헤리티지 컬렉션인 ‘스네이크’를 재해석한 형태로 선보인 바 있다.
불가리를 사랑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리자베스 테일러. [Gettyimage]
이탈리아의 화려했던 돌체 비타(Dolce Vita) 시대에 콘도티 거리에 위치한 불가리 상점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헵번, 잉그리드 버그먼, 그레이스 켈리, 아니타 에크베르그 등 수많은 유명 스타와 사교계의 유명 인사들이 즐겨 방문하는 만남의 장소가 됐다. 그리고 브랜드 불가리의 명성은 자연스럽게 전 세계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세계적 여배우이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불가리 주얼리를 사랑하는 애호가였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영화 ‘클레오파트라’ 촬영을 위해 로마를 방문하면서 브랜드 불가리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콘도티 상점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을 회상하며 “로마에서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촬영할 당시 저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아담하지만 멋졌던 불가리 매장을 방문하는 일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컬렉션(왼쪽)과 엘리자베스 컬렉션 전시회. [불가리 트위터, Gettyimage]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불가리 주얼리를 착용한 스타들. [Gettyimage]
시계 역사 새로 쓴 ‘불가리 불가리’
1970년대 불가리는 뉴욕, 파리, 제네바 등에 매장을 개장했다. 19세기 후반에 개발된 투보가스 기술은 1970년대에 불가리가 재현해 브랜드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가 됐다. 세련되고 유연한 투보가스 모티프는 1920년대부터 사용된 가스 파이프의 모양에서 영감을 받았다. 불가리 투보가스는 용접 없이 특별한 전문가의 오랜 시간의 작업으로 제작된 둥근 윤곽선의 유연한 밴드 제품이다.불가리 로마 리미티드 에디션 디지털 시계(왼쪽). 불가리 불가리 워치. [불가리 홈페이지]
이에 1977년 불가리는 시계 역사상 가장 상징적 디자인 중 하나인 불가리 불가리(BVLGARI BVLGARI) 시계를 론칭한다. 시계에는 불가리 불가리 로고가 인그레이빙돼 있다. 이는 고대 로마 코인에 새겨진 황제의 얼굴과 그 주변을 둘러싼 황제의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인그레이빙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원형의 불가리 불가리 케이스는 세심한 건축학적 연구를 통해 로마 성전의 기둥에서 영감을 받았다. 1982년 불가리는 스위스 뇌샤텔에 시계 제작을 관리하는 불가리 타임을 설립했다.
로마 콜로세움에서 영감 얻은 ‘비제로원’
1993년 불가리 퍼퓸을 설립하며 향수 제품을 출시했고, 1996년에는 액세서리 컬렉션을 선보였다. 1998년 불가리는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2001년 메리어트 인터내셔널과 합작회사를 설립해 호텔&리조트 사업에 진출했으며 2004년 밀라노에서 불가리 호텔을 오픈했다. 그러나 2011년 LVMH가 인수해 2022년 현재 런던, 두바이, 발리, 베이징, 상하이, 도쿄에서 불가리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브랜드 불가리는 1884년부터 로마의 유적 및 건축학적 기념물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어왔다. 로마 제국 시절 장엄한 콜로세움의 유려하고 기하학적인 실루엣을 모던한 투보가스 기법으로 새롭게 재해석해 탄생한 것이 비제로원이다. 밀레니얼 시대를 맞아 1999년 출시된 비제로원은 20년 만에 200만 개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다.
비제로원은 혁신적 디자인으로 유명한데, 얇은 링에 다이아몬드 보석을 올린 전형성을 깨뜨리고 반지 형태 자체에 집중하면서 반지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제로원은 새로운 시작과 굴곡진 인생에 숨겨져 있는 수많은 기회를 상징한다고 한다.
불가리는 브랜드와 깊은 인연이 있는 로마를 위해 기념비적 유적 및 건축학적 기념물을 당대 모습으로 복원하거나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할 수 있도록 문화적 후원을 하고 있다. 2015년 불가리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주연 배우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 계단’ 보수 작업을 위해 150만 유로(약 18억8000만 원)을 지원해 1년여간 금이 간 바닥과 얼룩 등에 대한 보수 작업을 후원했다.
2016년 보수 작업을 마치고 불가리의 파올로 불가리 회장이 스페인 계단의 보전을 위해 최소한 야간 시간대라도 울타리를 설치해 관광객 접근을 제한해야 한다고 제안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불가리 CEO 장 크리스토퍼 바뱅은 스페인 계단 복원 사업 당시 “로마의 풍부한 고고학적, 예술적, 그리고 건축적 유산이 불가리의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브랜드 정체성 담은 불가리 카페
‘파르나스 호텔 제주’에 오픈한 불가리 카페. [불가리]
불가리 역시 2004년부터 호텔·리조트와 F&B 사업을 전개해 왔는데, 중국 상하이, 이탈리아 밀라노, 영국 런던에는 호텔, 일본에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다. 도쿄 긴자에 이탈리아 파인 다이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 ‘불가리 일 리스토란테’는 미슐랭 1스타를 받았고 ‘50대 아시아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릴 만큼 명성이 높다. 카페는 애프터눈 티와 브랜드 로고를 입힌 불가리 초콜릿으로 유명하다. 레스토랑과 카페의 웅장한 인테리어와 이탈리아 메뉴는 브랜드 불가리 영감의 원천인 로마에서 온 것이다.
불가리는 2022년 7월 제주도에 2022년 리조트 컬렉션 ‘선셋 인 에덴’의 콘셉트를 가져온 팝업 카페를 중문단지에 새로 오픈한 ‘파르나스 호텔 제주’의 로비 라운지에 열었다. 제주에 새로운 대형 호텔과 명품 브랜드의 카페가 생긴다는 소식에 오픈 첫날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불가리는 제주에 면세점을 제외하고는 불가리 정식 매장이 없다는 것을 고려해 호텔을 방문한 관광객뿐 아니라 제주도민에게 불가리 제품을 선보일 기회로 여겼다. 실제로 첫날부터 카페를 찾은 이들이 제품까지 구매해 1석2조의 효과를 누렸다.
불가리 카페에선 제주에서 나는 식재료를 사용해 제주와 불가리의 정체성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디저트를 선보이고 있다. 메인 메뉴는 불가리 인기 주얼리인 ‘비제로원’ 다이아몬드 반지 모양의 초콜릿이 올라간 2단 미니 케이크, 된장 캐러멜로 만든 소이빈 카넬레, 더덕·연어 타르트 등으로 구성한 애프터눈 티 세트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은 카페나 레스토랑은 매장에서 옷을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먹고 즐기며 소속되는 공간으로 고객이 브랜드를 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경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