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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나를 담금질하다

책으로 나를 담금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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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나를 담금질하다

‘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 : 아리프 아쉬츠 지음, 김문호 옮김, 일빛, 352쪽, 1만5000원. ‘레드 로드’ : 손호철 지음, 이매진, 424쪽, 1만7000원

지난 여름 12명의 대원이 중국의 북서쪽 끝자락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13일간 장정을 했다. 직장인으로서는 눈치가 보이는 긴 휴가지만 중국의 1/6, 남한의 17배에 달한다는 이 드넓은 지역을 답사했다고 말하기에는 염치없을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어쨌든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우루무치(신장위구르의 주도)에 갔다고 하면 단박에 “실크로드?”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때부터 잠시 세계지리 수업이 시작된다.

중국 전체를 닭 모양으로 보면 신장위구르자치구는 닭 꼬리에 해당한다. 이 지역은 3개의 산맥이 관통한다. 북으로 알타이산맥이 러시아·몽골과 국경을 이루고, 남으로는 쿤룬(곤륜)산맥이 티베트 자치구와 경계를 이룬다. 신장위구르를 남북으로 가르는 것은 톈산(천산)산맥이다. 톈산산맥 북쪽에 준가르 분지가 있고 이 지역을 동서로 잇는 길이 톈산북로(天山北路)다. 반면, 톈산산맥 남쪽에는 타림 분지와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으며 동쪽의 시안, 란저우, 하미, 투르판, 타슈켄트, 카슈가르, 사마르칸트 등 오아시스 도시를 잇는 길이 톈산남로다. 이 길에 석굴로 유명한 둔황이 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코스가 바로 톈산남로의 실크로드다. 원래 실크로드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중심으로 서역북로(톈산남로)와 서역남로를 가리켰으나 서역남로의 이용도가 떨어지면서 서역북로가 실크로드를 대표하게 됐다고 한다.

톈산북로와 톈산남로의 차이

산맥 이름이 나오고 북로, 남로 왔다갔다 하면 벌써 머리가 아파온다. 우리는 한때 대륙을 경영하던 조선의 후예지만 대륙 끝자락 반도의 땅에 머문 지 오래, 그나마 남북으로 갈라진 땅에서 우리의 시야는 바늘구멍만해졌다. 당장 내 집 앞의 산 이름도 모르는 판에 남의 나라 북서쪽 끝 어딘가에 있는 산맥이 무슨 상관이람. 얼마 전까지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알타이, 내몽골 알타이, 몽골 알타이, 이런 식으로 매년 알타이 문명의 근원을 찾아 떠돌면서 “길은 어딘가로 통하고 사람과 사람은 이어진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오늘처럼 비행기로 단숨에 달려가진 못해도 옛 사람들은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가다가 막히면 돌아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며 끊임없이 왕래를 했다.

올해 답사는 우루무치에서 시작해 톈산북로를 거쳐 알타이산맥 아래쪽을 빙 돌아 다시 우루무치로 오는 코스였다. 지금은 인적이 끊긴 곳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바위그림과 돌사람(선인상), 사슴돌, 돌무덤 등이 우리가 찾고 있는 알타이 문명의 흔적이었다. 후투비 바위그림 아래서 우리는 그들의 주술적인 춤 동작을 흉내 내며 잠시 시간 여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벅찬 감격은 휘발성이 강하다. 힘겨운 장정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머릿속은 텅 비어버린다. 답사를 마친 지 두 달이 되었건만 아직 사진과 일정 정리도 하지 못했다. 아마 내년 답사 코스가 확정될 때까지 한없이 게으름을 피울 것이다. 그런 내게 채찍질을 한 책이 ‘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아리프 아쉬츠 지음, 일빛)과 ‘레드 로드’(손호철 지음, 이매진)였다.

낙타를 타고 실크로드를 가다

‘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은 터키의 사진작가 아리프 아쉬츠가 중국 시안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2년에 걸쳐 낙타를 타고 옛 실크로드 1만2000km를 종주하며 기록한 책이다. 바로 톈산북로 코스다. 이 길을 아쉬츠 일행은 자동차 대신 고대인들처럼 낙타를 타고 건넜다. 아쉬츠는 사진작가답게 현지인들의 다양한 표정, 사막과 낙타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책 속에 담아놓았다. 만만치 않은 여정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은 이미 10년 전에 출간됐다. 그 사이 그들이 거쳐온 나라(중국,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들의 사정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특히 중국은 어디를 가도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신장위구르 지역만 해도 엄청난 광물과 석유 자원 덕분에 지금은 광활한 땅 구석구석까지 도로가 뻗어 있다. 더 이상 말과 낙타의 나라가 아닌 것이다. 그러한 시간 지체 현상을 감안한다면, 이 책은 옛 실크로드를 두 발로 걸어서(물론 낙타를 타고) 답사한 기록으로 후대에 그 길을 다시 가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앞으로 이 이상의 기록이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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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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