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출판계약서상 초상권에 대한 책임이 명시된 조세현씨에게 재판의 결과가 불리하게 나왔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을 계기로 국면이 전환됐다.
무엇보다 항소심 재판부는 황씨가 2004년 6월15일경 문예춘추에 “조세현으로부터 초상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제 인쇄에 들어가도 좋다”고 말했고, 문예춘추가 이 말을 믿고 다른 확인 절차 없이 6월16일경 사진집 ‘the man’ 인쇄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특히 조씨 측에서 황씨의 출입국 사실 등을 확인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 주효했다. 출입국 기록에 따르면 황씨는 2004년 6월11일 일본에서 태국으로 출국했고, 6월14일 심야에 태국을 떠나 6월15일 아침에 일본에 입국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6월14일(또는 15일) 조세현의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조세현으로부터 초상권의 사용승낙 사실을 확인했다”는 황씨의 법정 증언 자체가 성립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출입국 기록으로 자신의 진술이 모순된 것으로 나타나자 황씨는 “전화상으로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1심 재판부는 황씨의 이 같은 소명을 받아들여 “증언의 단편적인 구절에 구애할 것이 아니라 당해 신문절차에서 한 증언 전체를 일체로 파악해야 하고, 그 결과 증인이 무엇인가 착오에 빠져 기억에 반한다는 인식 없이 증언하였음이 밝혀진 경우에는 위증의 범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4월3일 황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기억에 반하여 한 것이라고 인정하기에 충분하다’며 원심을 깨고 유죄를 선고했다. 황씨가 단순한 착오로 날짜를 혼선해 증언한 것이 아니라 고의라고 판단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조씨의 손을 들어준 것은 크게 네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황선용씨가 가져온 한글계약서의 초안과 수정안 등에 조세현씨가 여러 차례 가필을 하면서 출판 시기와 초상권의 사용 승낙을 완료하는 시점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던 점에 주목했다.
둘째로 조세현씨로부터 사진집에 실릴 사진을 미리 제공받은 문예춘추는 초상권 문제만 해결되면 언제든지 인쇄에 들어갈 준비가 돼 있었고, 문예춘추가 황선용을 통해 조세현이 초상권의 사용승낙을 완료했는지 여부를 알고자 했던 점도 고려됐다.
셋째로 황씨가 6월15일경 문예춘추에 ‘조세현으로부터 초상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제 인쇄에 들어가도 좋다’고 말했고, 문예춘추는 이 말을 믿고 다른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6월16일경 사진집의 인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점도 작용했다.
넷째 황씨가 초상권 사용 승낙 사실을 확인했다는 날짜를 6월14일 또는 15일로 주장하다가, 출입국 사실 등을 확인해 이의를 제기하자 그제서야 ‘전화상으로 들었다’고 진술을 번복한 점도 조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황씨가 ‘단순히 착오에 빠져 증언한 것이라고 할 수가 없고,’ ‘기억에 반하여 한 것이라고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결론 내린 것. 즉 항소심 재판부는 문예춘추가 사진집 인쇄에 들어가도록 ‘초상권 사용 승낙’을 확인해 준 이는 조세현이 아니라 황선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위증 혐의에 대해 황씨의 유죄가 확정됨으로써 조세현씨는 ‘초상권 침해’라는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조씨는 항소심 판결 이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패소한 두 건의 민사 재판 결과를 바로잡는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씨는 “한국과 일본에서 패소한 손해배상 재판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항소심 판결로 문예춘추가 사진집을 출간하게 만든 초상권 승낙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씨는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재판부에 제출한 ‘사건 경위 요약서’ 말미에 한국과 일본에서 내려진 두 건의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황선용의) 위증을 밝혀야 그동안의 모든 거짓말에 대한 사실을 문예춘추에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피해자다. 중개인 한 사람의 잘못이 얼마나 큰 해를 입히는지, 작가의 명예에, 출판사의 도덕성에도….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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