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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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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박노자 허동현 지음/ 푸른역사/ 360쪽/ 1만5000원

허동현과 박노자. 이 두 역사학자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눈 밝은 인문독자 중에 상당수가 이미 그들의 마니아 독자가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 두 학자의 신상에 관한 것부터 몇 자 적어두려는 것은 원고 매수를 채우려는 나의 사적인 속셈도 속셈이려니와 그래도 낯설어할 독자에게 알려야 하는 이 리뷰의 본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인 허동현은 1881년 일본에 파견된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 이른바 신사유람단)이 근대 일본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해 연구해왔다. 그리고 고난과 굴곡으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그는 제2공화국의 국무총리인 운석(雲石) 장면(張勉)이 보여준 리더십에 심취해 주변에서는 ‘장면주의자’로 불린다.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교에서 동아시아학 및 학국학을 가르치는 박노자 교수는 러시아 출신 귀화인으로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다. 국가와 민족에 짓밟힌 개인들이 겪은 아픔의 역사에 관심의 초점을 맞춰 근대국가 최고의 물신인 민족을 상대화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소개에 대해 스테레오타입하다고 힐난할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단 한 줄로 두 학자를 소개해보겠다. 허동현은 ‘건강한 보수주의자’요, 박노자는 ‘개인주의적 진보주의자’다. 이렇게 두 학자의 학문적 노선을 대비해놓는 것은, 물론 나름대로 계산이 있어서다. 지금 여기서 리뷰하는 책이 바로 두 학자가 반대 시각에서 벌인 논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학자 간에 논쟁이 시작된 것은 경희대에서 함께 근무하다 2000년 박노자 교수가 노르웨이로 간 후 e메일을 주고받으면서다. 이들의 사적(?) 메일 교류는 하루에도 두세 통씩 이어질 만큼 빈번했고, 단순한 안부 차원을 뛰어넘어 한국사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다루면서 이들의 e메일 소통은 소문이 났고, 나중에 그 결과물을 묶어 책으로 내게 됐다.



이들이 벌인 논쟁의 출발점은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처한 상황과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있었다. 근대라는 화두를 놓고 두 사람은 창과 방패가 되어 치열한 논쟁을 벌였지만 그 흔한 인신공격이나 우격다짐 따윈 찾아볼 수 없고, 동전의 양면처럼 엇갈린 시각 차이는 어느덧 인류의 보편적 이상이라는 지점으로 수렴되었다.

한국 근대 100년의 두얼굴

이번에 나온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 역시 ‘우리역사 최전선’(2003)과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2005) 등 두 전작과 그 궤를 같이하며 한국 근대 100년의 격랑 속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이번 책에서 이들 두 학자가 주목하는 것은 ‘지식인과 친일’을 비롯해 여성, 대중문화, 종교 등의 분야로, 박노자 교수가 먼저 한국 근대 100년은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비롯된 ‘길들이기’라고 공세를 취한다. 이에 대해 허동현 교수는 한국 근대 100년의 자화상은 ‘편가르기’였다고 박노자의 날카로운 비판을 맞받아친다.

그럼 두 교수의 본격적인 논쟁 속으로 들어가보자. 먼저 지식인과 친일 문제다. 이 논쟁에서는 당대의 대표적인 지식인 이광수를 통해 살펴본다.

박노자에게 이광수는 두 얼굴의 지식인이다. 이광수는 개인의 애정 문제 탐구에 몰두하기도 하고 부처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을 애써 본받으려 한 구도자의 모습을 보이는 한편 힘과 살인과 ‘황인종의 단결’을 예찬하는 친일 파시즘의 국가주의자였다는 것. 그래서 이광수는 톨스토이의 화두인 평화와 비폭력을 옹호하지만 “힘 있는 자만이 자유와 개성을 논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사회진화론의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을 신조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모순적인 이념과 사상의 혼재 그 자체다.

박노자는 이러한 이광수의 두 얼굴은 민족을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근본단체’로 보는 데서 연유한다고 말한다. 근대를 배우면서 개인적인 부분을 해체했기 때문에, 즉 국가의 신화를 해체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파시스트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허동현 교수에게 이광수는 ‘민족’이라는 실에 자신이 삶의 궤적에서 만난 다양한 사조라는 구슬들을 꿴 일관된 ‘민족주의자’다. 이광수가 일관되게 추구한 가치는 국가주의 내지 민족주의였으며, 기독교나 불교를 비롯한 여러 사상은 민족과 국가에 유익한지 않은지에 따라 취사선택됐던 종속적 가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그가 ‘민족개조론’에서 민족을 최우선에 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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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일│출판평론가 pundit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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