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턱시도는 블랙과 화이트의 심플한 조합으로 세련된 매력을 완성한다.
턱시도는 그것을 입도록 요청받은 장소에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호스트와 청중에게 표현하는 정중한 예절이다. 어떤 의미를 갖고 입는 예복이란 상대를 향한 예의범절의 문제이고, 자신의 문화적 수준을 드러내는 상징과도 같다. 격식을 차리기 위해서 갖춰 입는 옷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즐거운 분위기를 더욱 고취시키기 위한 역할도 한다. 예복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에 신비한 매력을 더하며, 우리로 하여금 좀 더 우아한 중세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거의 모든 남성의 옷차림은 유럽(특히 영국)에서 기원했으며 일상적인 정장이나 예복, 심지어는 캐주얼을 입는 방식도 그들의 관습과 라이프스타일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현대적인 예복을 대표하는 턱시도의 명칭만은 유럽이 아닌 미국 뉴욕의 턱시도 파크에서 유래했다.

맞춤복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귀한 옷이며 다른 사람은 구할 수 없는 한정품이다. 중요한 행사를 위해 마련하는 맞춤 예복은 소중한 순간을 평생 기억하게 하는 상징이 된다.
기존에도 영국에는 엄격한 연미복과 조금 자유로운 방식의 예복이 공존했지만, 그리스월드의 시도는 그동안 전통 이브닝 웨어만을 고수하던 미국의 스타일을 완전히 뒤흔들어놓았다. 유럽과 미국 상류층의 전유물이자 소수만의 표식과도 같았던 연미복은 시간이 흐르면서 예복의 엄격함을 조금 완화한 디너재킷(dinner jacket·약식 야회복 상의) 형태로 변화했고, 이 옷은 ‘턱시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예복의 새로운 기준이 됐다.
베이식하고 심플하게
턱시도가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블랙과 화이트가 심플한 조합을 이루기 때문이다. 턱시도 상의의 색상은 블랙과 (아이보리에 가까운) 화이트 두 가지이지만, 그 안에 입는 셔츠는 언제나 백설공주의 피부색 같은 순백색이다. 보타이와 구두는 갓 추출한 에스프레소처럼 짙은 블랙을 매치하게 된다. 이처럼 턱시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블랙과 화이트 컬러만으로 완성되므로 예복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별도의 장식이나 컬러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블루나 핑크, 퍼플 등의 기발한 컬러를 가진 턱시도도 있는데, 밤무대의 엔터테인먼트용으로 쓸 요량이 아니라면 파티를 위해서나 결혼식을 위해서나 모두 권하지는 않겠다. 물론 남성복 역사상 대단히 유명한 패셔니스타인 영국의 윈저공은 블랙 턱시도 대신에 아주 짙은 네이비 컬러의 턱시도를 입어 선택의 폭을 넓힌 바가 있다. 또 페이즐리 같은 패턴이 있는 디너 재킷도 있고, 여름에는 아이보리 컬러 상의에 블랙 바지를 매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빛을 발하는 예복은 베이식하고 심플한 블랙 앤 화이트 스타일이다.
턱시도가 슈트와 확연하게 구별되는 부분은 라펠(Lapel·깃). 턱시도용 라펠은 가장자리가 둥근 숄 라펠(Shawl Lapel)과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피크드 라펠(Peaked Lapel) 두 가지다. 턱시도 역시 슈트처럼 울 소재를 기본으로 만들지만, 상의의 라펠과 바지 옆 부분에는 실크나 새틴을 덧댄다. 예복의 가치를 상징하는 디테일이다. 턱시도용 바지는 슈트처럼 턴업(Turn-up·바짓단)을 하지 않는다. 상의 디자인은 슈트처럼 싱글 혹은 더블 브레스티드로 구분되는데, 두 가지 중 더블이 좀 더 엄격해 보인다.
턱시도는 애초에 연미복의 무거움을 다소나마 완화시키면서 등장했기 때문에 좀 더 유연하게 입을 수 있다. 예복을 입을 때 셔츠는 앞쪽이 빳빳하거나 주름진 윙칼라(Wing Collar·깃이 짧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셔츠)를 입는 게 원칙이지만, 턱시도는 포멀한 느낌이 있는 와이드 스프레드 칼라의 화이트 드레스셔츠와도 무리 없이 조화를 이룬다.
슈즈 선택 역시 자유롭다. 전통적인 예복 슈즈는 무광택으로 마무리한 실크 리본이 달린 블랙 에나멜 재질의 오페라 펌프스(끈이나 쇠 장식이 없는 예복용 구두)이지만, 이 구두가 좀 과하다고 생각한다면 쇠가죽으로 된 블랙 컬러의 옥스퍼드 슈즈나 블랙 에나멜 구두를 신어도 무방하겠다.
갖출수록 더 빛나는 스타일
그러나 예복을 대하는 자세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제대로 갖추면 갖출수록 더욱 빛이 난다는 사실이다. 턱시도를 입는 방식을 어느 정도 알아두면 중요한 자리에서 실수할 염려도 없고, 해외 비즈니스 파트너에게라면 확실한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첫째, 턱시도에는 대부분 블랙 보타이(Bow Tie·나비 넥타이)를 맨다. 물론 다른 컬러나 패턴의 보타이를 착용해도 문제는 없다. 다만 반드시 직접 매는 방식의 셀프 타이를 택하고, 미리 매어져 있는 클립온(Clip-on) 방식은 피해야 한다. 그런 보타이는 만화영화 속 펭귄이 주로 하는 것이다.
둘째, 턱시도에는 벨트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지에도 벨트를 끼우는 고리가 아예 없는 것이 정상이다. 대신에 커머번드(Cummerbund)라고 하는 일종의 밴드를 허리에 두르게 된다.
셋째, 제대로 만든 턱시도라면 상의의 왼쪽 라펠에 구멍이 하나 있을 것이다. 이곳을 플라워홀(Flower Hole)이라고 하고, 그곳에 꽂는 꽃을 부토니에(Boutonniere)라고 부른다. 남자 옷은 과학적인 제작 공정과 인체 비율을 기준으로 철학적으로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무엇 하나 허투루 존재하는 것이 없다. 소매의 버튼이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열리는 리얼버튼홀(Real Button Hole)이어야 하는 것처럼, 플라워홀에는 플라워가 필요한 법이다. 슈트나 턱시도의 상의 가슴주머니는 비워두지 않고 개성적인 포컷스퀘어를 꽂아두어야 한다.
넷째, 결혼식을 위해 턱시도를 입을 때는 먼저 시간을 체크해야 한다. 턱시도는 저녁에 입는 옷, 즉 이브닝 웨어(Evening Wear)이므로 낮에 하는 결혼식에는 입지 않는다. 낮에 결혼식을 한다면 신랑은 좋은 슈트에 보타이를 하면 된다.
다섯째, 턱시도를 입을 때는 그에 맞는 서양식 에티켓까지 지켜야 한다. 즉, 서양식 행사에서는 턱시도 상의를 벗지 않는다는 것. 상의를 벗는 것은 격식을 갖춘 자리의 분위기를 망치는 행동이므로 턱시도 상의는 잠자리에 들 때나 벗어야 한다. 그리고 싱글 턱시도라면 굳이 버튼을 잠글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턱시도에 대해 너무 큰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예복을 이해하면 정장에 대한 관점이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되긴 하지만, 옷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