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겉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린 반하.
사람냄새 물씬 풍기던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기 전의 일이다. 개발과 발전이란 미명하에 온 천지를 자본의 탐욕에 종속시키기 전의 세상. 세상이 정말 많이 변해버렸다. 도시는 비대해지고 그 도시의 숨통이 턱턱 막히는 화차(火車) 안에서 인간들은 빠져나오지 못하지만, 푸른 생명이 살갑게 숨 쉬는 시골엔 사람이 없다. 화차 안에서 웰빙 타령들을 한 덕에 반하 캐던 보리밭이 좀 늘긴 했다.
6월 초. 야산 밭의 둔덕 아래에서 반하를 캤다. 손을 안 탄 덕에 씨알들이 굵다. 씨감자만큼이나 큰 ‘왕건이’도 있다. 꽃이 피었다가 진 알뿌리들이 대체로 크다. 햇볕을 꺼려 그늘지고 물기가 좀 있는 곳을 좋아한다. 반하를 캐다가 나무 아래 그늘을 찾아 누웠다. 온 산천이 푸른데 바람이 한 번씩 불면 금은화(忍冬) 꽃향기가 은은하다. 무상의 행복감. 둔덕의 바위 위에 마구 뒤엉켜 큰 넝쿨을 이룬 마삭줄(絡石藤)도 향기로운 흰 꽃들을 피워냈다. 마삭줄 꽃도 이 계절이 아니면 보기 어렵다.
반하는 우리말로 ‘끼무릇’이라 한다. 꿩이 밭에서 이 반하를 먹고 배 속을 뜨겁게 해 알을 낳는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꿩의 무릇’이라고도 한다. 끼무릇도 아마 그런 뜻이겠다. 꿩을 뜻하는 ‘끼’가 잘 먹는 무릇이란 정도.
반하 毒 다스리는 생강 법제(法製)

반하 독은 구강 같은 점막조직을 주로 자극한다. 심하면 조직 괴사도 초래한다. 그러나 생강즙에 하룻밤 정도 담가서 불린 다음 그늘에 말리면 그 독성이 없어진다. 여기에 백반을 소량 넣는다. 생강을 도와서 반하의 독을 제거하고 담(痰)을 없애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이를 강반하(薑半夏)라고 한다. 반하를 약용할 때는 이 강반하를 쓴다. 반하를 잘 먹는 꿩도 반드시 밭 주변의 생강을 쪼아 먹고 반하 독을 다스린다고 한다. 그만큼 생강 법제가 중요하다.
이 강반하에 석회와 감초를 더 넣어 법제한 것을 법반하(法半夏)라고 한다. 생반하를 생강 없이 백반으로만 법제하기도 한다. 청반하(淸半夏)라고 한다. 조금씩 쓰임새가 다르다. 누룩처럼 만드는 반하곡(半夏)이라는 것도 있다. 강반하를 가루 내어 통밀가루, 적소두(팥), 행인(살구씨) 등을 넣고 발효시켜 만든다. 여기에 조각자(?角子)의 즙을 더하거나 죽력(대나무에 열을 가해 추출한 목초액), 또는 백개자(겨자씨)를 더 넣기도 한다. 닥나무잎에 싸서 바람에 말려 약용한다.
천지가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주역(周易)에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란 말이 있다. 흔히 궁하면 통한다고 한다. 그러나 주역의 이 말은 모든 현상은 변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궁하면 언젠가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거라는 위안을 주는 말이 아니다. 달이 차면 이지러지게 되어 있다. 이지러진다는 것은 돌이켜 순환한다(變)는 것이다. 차기만 하고 이지러지지 않는다면 불통이고, 이지러졌다 차는 것은 통(通)이다. 그 통의 프로세스가 곧 지속(久)이다. 지속가능한 것은 모두 돌이키는, 순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