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거리기와 어긋나기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꼬리뼈를 세게 부딪친 후 이상한 사람이 되었기에 이상한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일곱 살 무렵 가을에 집 마당에서 감을 따러 감나무에 꽤 높이 올라갔다가 떨어져 잠시 정신을 잃은 후, 정신이 든 뒤에도 한참 동안 꼼짝할 수 없었고, 그래서 감나무 아래 누워 꼬리뼈 주위가 몹시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내가 따려고 올라갔지만 따지 못한 감들을 올려다보며, 이 세상에는 내가 딸 수 없는 것들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세상은 감을 따다 죽을 수도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며, 어떤 이상한 생각들에 사로잡혔고, 그 생각들이 재미있게 여겨졌고, 그런 생각들을 앞으로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후로 자연스럽지 않은 생각과 감정들에 자연스럽게 이끌리게 되며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고,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더 크지만, 나는 그렇게 믿게 되었고, 그것은 내가 이상해진 시발점이 되었다. - 정영문,‘어떤 작위의 세계’ 중에서
정영문의 ‘어떤 작위의 세계’는 그동안 지속해온 카프카적 꿈(악몽)과 모순 어법을 기저로 ‘지독히 사소하고 무용하며 허황된 고찰로서의 글쓰기’를 표방한다. 위의 인용에서 보듯 그의 소설은 독자가 읽어나가면서 나름대로 참여(상상)하고 합성(창조)하는 의미를 전복시키고 절단한다. 신기한 것은 그러한 전복과 절단이 일회성이 아닌, 무한대로 증식되고, 뻗어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가능한 것은 정영문의 생래적인 기질과 그것과 연계된 창작법에 기인한다. 곧, 중얼거리기와 어긋나기. 작품으로 예를 들면, 왕의 끝없는 독백으로 이루어진 장편 ‘중얼거리다’(2002, 이마고), 권태와 무관심의 절정인 ‘하품’(1999, 작가정신), 무한대로 접힌 꿈들의 끝없는 순환인 ‘꿈’(2003, 민음사)이 있다. 외형상으로 작가이자 번역가인 한 사내의 샌프란시스코 체류기, 또는 표류기인 ‘어떤 작위의 세계’는 궁극적으로 그가 일관되게 탐구해온 무의미와 무용(無用)에 대한 현재적 총화다. 여기에서 작위(作爲)란 꾸며낸 심리의 축조, 소설이다. 결국 ‘어떤 작위의 세계’란 ‘어떤 소설의 세계’인 셈이다.
이야기가 또 옆으로 새는데, 그것은 이 소설이 어디로 나아가도 좋기 때문이고, 이것은 또한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파생하고 이탈해 그것들이 뒤섞이며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는 소설이다. - 정영문,‘어떤 작위의 세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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